“태윤 씨 회사 임원분이 제가 갈 수 있게 다 마련해줬어요. 지금 바로 그분 별장으로 가야 해요.”하예정이 대답했다.“그럼 얼른 가봐. 회사 임원분이 마련해줬다니 아마 전용기로 갈 거야. 금방 도착하겠구나. 기현아, 네가 예정이 별장까지 보내줘.”이경혜는 하예정이 말한 회사 임원분이 전태윤이라고 생각했다. 전씨 일가에 전용기가 있을 테니 시름 놓고 하예정을 보낼 수 있었다.몇 분 후.성기현이 하예정을 차에 싣고 성씨 일가 별장을 나섰다.가는 길에서 성기현이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오빠가 살짝 불합리한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말해요, 오빠.”성기현이 운전하며 말을 이었다.“소현이가 전씨 그룹 도련님을 짝사랑하는 건 너도 알잖아. 걔가 지금 말로는 그 감정을 내려놨다지만 몇 년 동안 짝사랑한 감정이라 하루아침에 내려놓을 순 없을 거야. 태연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하예정은 문득 김진우가 떠올랐다.김진우가 그녀를 향한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던가.김진우도 그가 자꾸 하예정을 집착하는 게 안 좋다는 걸 알지만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한순간에 그녀를 향한 마음을 쿨하게 내려놓을 수 없다고 했다.“이해해요.”하예정이 대답했다.“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쉽지만 한때 가슴 깊이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건 너무 힘든 일이죠.”하예정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 적이 없어 공감되지 않는다.하지만 지금 그녀가 전태윤을 향한 마음으로 볼 때 언젠가 이혼하고 이별할 날이 다가온다면 아주 괴롭고 긴 시간이 흘러야 이 감정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듯싶었다.사랑할 땐 화끈하게, 내려놓을 땐 쿨하게.말이 쉽지, 정작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그래서 내 생각엔 네가 앞으로 소현의 앞에서 너희 남편 얘기를 적게 꺼냈으면 해. 회사 얘기도 포함해서 말이야. 전씨 그룹을 언급하면 소현이가 또다시 전 대표를 떠올릴 거야. 네가 너희 남편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같은 전씨라서 소현이가 전 대표 생각이 날 수밖에 없어.”하예정은
유일하게 잘못 본 건 바로 전태윤이다.아니, 그녀는 전태윤의 가족에게 단단히 속은 케이스다.두 사촌 남매는 그렇게 수다를 떨며 곧장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다. 하예정은 별장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소정남은 별장에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여전히 심효진 오누이와 함께 밖에서 훠궈를 먹고 있었다. 심효진은 절친 하예정이 몹시 걱정됐는데 소정남이 모든 걸 마련했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그제야 마음을 내려놓았다.하예정이 소씨 일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효진이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해 별장에 간 걸 확인하더니 한시름 놓았다.“효진아, 오늘 밤엔 정남 씨한테 너무 큰 도움을 받았어. 나 대신 꼭 고맙다고 전해줘. 돌아오거든 꼭 정남 씨한테 제대로 고맙단 인사할 거야.”소정남은 전태윤의 동료이기에 전화 한 통으로 그쪽 직원들에게 분부하여 전태윤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굳이 그녀가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하지만 하예정이 한사코 가겠다고 하니 소정남도 바로 전용기를 띄워 보냈다. 그녀는 이 은혜에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알았어, 넌 얼른 가서 태윤 씨 잘 보살펴줘. 정남 씨가 그러는데 의사 선생님더러 한약을 며칠 더 처방해서 한꺼번에 말끔히 치료하래. 그렇게 하면 다음에 또 감기 걸렸을 때 억지로 버티지 못 할거래. 태윤 씨는 한약 마시는 걸 엄청 질색해서 사약을 먹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한대.”하예정이 대답했다.“정남 씨 아이디어가 살짝 얍삽하긴 해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 태윤 씨 약점을 잡고 제대로 혼내야 두 번 다시 버티지 않을 거야.”하예정도 전태윤 때문에 너무 놀랐다.“효진아, 나 비행기 타야 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그래, 일 봐. 난 아직 훠궈 먹는 중이야.”“부러워.”하예정의 말에 심효진이 웃으며 답했다.“태윤 씨가 출장 다녀오면 우리 다 함께 훠궈 먹자.”“그래.”통화를 마친 후 하예정은 소씨 일가에서 마련한 전용기에 올라탔다.“예정아, 도착하면 우리한테 문자 보내.”성기현이 그녀에게 당부
대표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의 책임이 가장 크다.본사에서 그를 신임하여 이곳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맡겼는데 큰일이 터진 바람에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야만 했다.대표님은 과로로 인한 독감에 걸려 고열까지 났다. 다행히 진작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뻔했다.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여긴 어디야?”전태윤이 일어나 앉으려 했다.“대표님, 일어나시지 말고 누워 계세요.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아서 수액을 맞는 중이에요.”전태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새겼다.약국에서 산 감기약을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고 도리어 몸이 점점 뜨겁게 끓어올라 고열에 기절해버렸다. 비몽사몽 한 와중에 하예정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와이프에게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통화를 마쳤다.‘예정이가 걱정하는 건 아니겠지?’“너희들이 날 병원에 실어왔어?”전태윤은 누운 채로 이마를 짚어보았는데 여전히 열이 있었다.“소 이사님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비상키를 챙겨 오피스텔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대표님이 쓰러져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대표님을 모시고 병원에 오게 됐죠. 그 약을 먹어서 효과가 없으면 진작 병원에 가셨어야죠. 저희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전태윤을 병원에 실어왔을 때 열이 무려 41도까지 났었다.방금 열을 재본 결과 39도 좌우로 내려오긴 했다.의사 선생님은 그가 찬바람을 맞아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고열과 기침을 며칠 반복할 것이고 게다가 어젯밤에 고열로 기절하기까지 했으니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할 것을 권했다.대표이사는 이 말들을 감히 전태윤에게 전하지 못했다. 전태윤은 무조건 병원에 입원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소 이사님께서 사모님이 밤새 날아왔다고 하니 아마 거의 도착할 듯싶었다. 사모님이 오시거든 대표님의 상황을 낱낱이 알리고 사모님께 전적으로 대표님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대표님이 부디 사모님의 말을 듣고 병원에서 푹 휴식하며 병 치료를 하길 바랐다.계열사 대표이사는 생각을 마친
“안 돼요, 대표님. 간호사께서 이런 약은 꼭 천천히 맞아야 한다고 했어요. 속도를 너무 빨리 조절하면 안 돼요.”대표이사가 속도를 다그치려는 전태윤을 황급히 말렸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대표님, 저희는 사모님이 도착하시거든 그때 다시 돌아가겠습니다.”전태윤은 순간 고개 들어 두 사람을 쳐다봤다.“예정이가 왔어?”둘은 나란히 머리를 끄덕였다.“소 이사님이 말씀하시길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너무 걱정돼 이리로 와서 보살펴주겠다고 했대요. 사모님은 아마 이사님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오실 거예요. 곧 도착하겠네요.”전태윤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대표님, 사모님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저한테 전화 올 겁니다. 이사님이 제 번호를 사모님께 드렸거든요. 그러니까 시름 놓으세요. 제가 사모님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게요.”전태윤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원래 날이 밝거든 다시 예정에게 연락하려 했는데 밤새 날아올 줄이야.‘예정이가 왠지 날 1순위로 생각하는 것 같아.’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아직 비행기 안인 듯싶었다.“지금 죽 살 수 있어? 흰 쌀죽이면 돼.”“제가 나가볼게요. 아마 살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 죽 드시고 싶으세요?”“응, 흰 쌀죽 한 그릇 포장해와. 그리고 신선한 과일도 좀 사 오고, 정교하게 포장된 디저트도 몇 개 사와.”대표이사가 말했다.“대표님... 아직은 디저트를 드실 수 없어요.”“우리 와이프 먹일 거야.”대표이사는 순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지금 바로 나가볼게요. 병원 입구 쪽 그 거리에 빵집이나 레스토랑이 꽤 많거든요.”어떤 식당은 24시간 운영하고 빵집도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있다.대표이사는 부대표에게 몇 마디 분부한 후 얼른 밖에 나가 전태윤이 말한 흰 쌀죽 한 그릇, 신선한 과일 몇 종류, 정교한 포장의 디저트 몇 개, 그리고 선뜻 우유까지 사 왔다.물건을 가득 챙기고 병실에 돌아오니 마침 하예정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비행기에서 금방
하예정이 말했다.“그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며칠 더 입원시켜야겠어요. 거의 다 나으면 그때 퇴원하죠. 태윤 씨 업무랑... 월급은...”전태윤이 입원하는 동안 하예정은 그가 이참에 며칠 푹 휴식하길 바랐다.회사는 사장님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니 몸져누워서까지 사장님을 위해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으니까!대표이사가 서둘러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예정 씨. 전 대표님의 업무는 저희가 이어받을 거예요. 대표님이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절대 업무상의 일로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출장 중이니 월급도 영향받지 않아요.”전씨 그룹 자체가 전태윤의 것인데 사모님이 의외로 그의 월급을 묻고 있다니, 입원하는 동안 월급을 안 줄까 봐 걱정하다니, 실로 어이없을 따름이었다.“고마워요.”하예정은 본인이 남편을 위해 병가도 챙기고 월급도 지켜냈다고 생각했다.“예정 씨, 저희가 계속 여기서 대표님을 챙겨드릴까요?”하예정이 물었다.“수액이 아직 몇 개 더 남았죠?”“이제 하나만 남았어요.”“그럼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대표이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대답했다.“예정 씨가 여기까지 친히 오셔서 대표님을 보살피니 저희도 훨씬 홀가분합니다.”그들은 비서를 보내 전태윤을 보살펴주기로 했는데 전태윤이 워낙 가족 이외의 젊은 여자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하다 보니 결국 비서를 데려오지 않았다.사모님이 대표님을 향한 사랑이 매우 깊어 여기까지 왔으니 다들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비록 전 대표가 언제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소 이사가 말한 사모님이 무조건 전태윤의 아내일 거란 확신은 있었다.게다가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기 싫어하는 전 대표님을 마주하지 않아 다들 너무 홀가분했다.“예정 씨, 이건 대표님께서 친히 예정 씨를 위해 준비한 디저트들이에요. 신선한 과일도 있고 우유도 있어요. 아 그리고, 예정 씨가 개인 시간도 할애하며 전 대표님을 보살피니 제가 직접 예정 씨 수당을 정산해드릴게요. 나중에 대표님이 퇴원하시거
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이미 밤이 깊어져 다들 꿈속일 테니 바로 답장을 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이때 전태윤이 비스듬히 눈을 떴다.하예정을 본 순간 그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태윤은 수액을 맞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눈을 비비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내가 고열이 나서 머리가 잘못됐나? 왜 헛것이 다 보이지? 우리 예정이가 왜 눈앞에 나타난 건데?”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더니 손등을 세게 꼬집었다.“으악!”“아파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은 가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아파, 너무 아파.”“아프면 됐어요. 이거 꿈 아니고 현실이에요. 태윤 씨가 병원 안 가면 내가 바로 달려온다고 했잖아요.”전태윤이 자리에 앉으려 했다.“누워있어요. 지금 입원 중이에요. 열도 다 내리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버텨요?”하예정이 그를 짓눌렀다.“얌전히 누워있어요. 지금 좀 어때요?”“열이 좀 내린 것 같은데 아직도 미열이 있어. 목이 잠기고 너무 아파. 콜록콜록...”전태윤이 기침을 두어 번 해댔다.“기침도 나네. 예정아, 나가서 간호사한테 마스크 좀 달라고 해. 나 이거 바이러스성 감기야. 너한테 옮길 수 있어.”그는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말했다.“마스크 두 개 갖다 줄 수 있어요?”“환자분, 마스크는 왜요?”간호사가 본능적으로 물었다.전태윤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감기가 전염성이 있잖아요. 와이프가 날 챙기러 왔는데 옮길까 봐 마스크 씌워주려고요.”간호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간호사가 노크하며 의료용 마스크를 두 개 가져왔다.“고마워요.”하예정이 깍듯이 인사한 후 마스크를 하나 꼈다.전태윤이 그녀에게 말했다.“날 밝으면 약국 가서 의료용 마스크를 두 팩 더 사와. 내가 다 낫기 전까지 마스크를 쭉 끼고 있어. 너까지 아프면 안 돼.”“알았어요. 이 죽은 태윤 씨 먹으려고 사 왔어요?”하예정이 포장된 흰 쌀죽을 보더니 그릇을 만져보
전태윤이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이 회사가 바로 내 거야.’하예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아까 그 동 대표님은 계열사 대표이사 맞으시죠? 본인 소개를 그렇게 하셨거든요. 동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태윤 씨가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해야 한대요. 요 며칠은 아무 생각 말고 푹 휴식해요. 평소엔 건강한 것 같아도 계속 이렇게 바삐 돌아치면 피로가 쌓여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지금처럼 몸져눕죠. 태윤 씨 지금 월급 그대로 받으면서 쉬는 중이에요. 동 대표님이 나한테도 수당을 주시겠대요.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와서 태윤 씨를 돌보니 당연히 줘야 한대요. 다들 참 주도면밀하게 고려한단 말이죠.”‘역시 대기업 계열사라 스케일이 남달라. 직원 가족이 입을 열기 전에 선뜻 수당을 주잖아.’전태윤은 죽을 먹으면서 구시렁댔다.‘결국 다 내 돈이야.’다만 그는 감히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나 며칠이나 더 입원해야 해? 그냥 고열에 독감일 뿐이니 날 밝으면 퇴원해서 오피스텔로 돌아가 휴식하면 돼. 기껏해서 매일 수액 맞으러 오면 되잖아.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아. 나 진짜 병원 너무 싫어.”하예정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 병원이 좋아서 와요? 몸이 아프니 치료받으러 왔죠. 약국에서 산 약을 먹고 아무 효과도 없을뿐더러 쓰러지기까지 했잖아요. 나 이리로 오면서 태윤 씨가 고열에 쓰러져 머리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단 말이에요.”전태윤도 본인이 바보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도 몰래 손을 파르르 떨었다.“나 지금 많이 좋아졌어. 바보 되지 않았어.”“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예정아...”“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전태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병원에 입원하면 엄청 따분하단 말이야.”“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도 괜찮다는데, 안 귀찮다는데 태윤 씨가 무슨 불만이에요?”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소정남이 그녀를 여기까지 보내오며 정성껏 보살피게 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부부가 얼마 전에 또 한바탕 싸웠는데 아픈 걸 계기로
하예정은 곧바로 두 손 들어 항복했다.“태윤 씨, 그렇게 부르지 마요. 쉰 소리로 말끝까지 길게 끄니 너무 듣기 거북해요. 애교가 전혀 애교답지 않고 마치 변성기 소년 같아요. 뽀뽀해줄게요. 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 애교 그만 부려요. 더 부리다가 나 온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아요.”전태윤이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그도 애교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애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다행히 지금 목소리가 잠겼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일부러 음성 변조하여 앵앵거린다고 하예정에게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안 해, 앞으론 안 하면 될 거 아니야.’하예정은 그의 요구대로 얼굴에 부드럽게 입맞춤하고는 넌지시 물었다.“만족해요?”그녀가 뽀뽀할 때 전태윤은 눈을 감고 가슴 깊이 그녀의 부드러운 키스를 느꼈다. 비록 마스크를 끼고 있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순 없지만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껴졌다.그래, 바로 사랑하는 그 마음, 그것 하나면 전태윤은 충분했다.평소에 일부러 그를 유혹하며 진한 키스를 퍼붓는 것보다 지금처럼 마음을 다해 뽀뽀하는 것이 훨씬 와닿았다. 진한 키스는 그저 일부러 유혹하는 키스일 뿐이다.하예정이 손 내밀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속상한 눈빛으로 말했다.“서른이 넘었는데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해서 나 이렇게 걱정시켜요? 얼굴이 다 핼쑥해졌잖아요. 출장 온 며칠 동안 밥도 제때 챙겨 먹지 않았죠?”전태윤은 제 얼굴에 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나도 감기까지 걸릴 줄은 몰랐어. 널 일부러 걱정하게 하려던 건 아니야. 네가 없으니 입맛도 없고 업무가 워낙 바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살이 빠졌어.”사실 그는 살이 빠지지 않았다.다만 아내가 빠졌다고 하니 바로 수긍했다.아내의 말이 곧 진리이니까.“누군 뭐 감기 걸린다고 예상하고 걸리나요? 평상시에도 옷을 많이 챙겨입어요. 여긴 관성보다 훨씬 추워요.”전태윤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난 찬물에 샤워해서 그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