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요, 대표님. 간호사께서 이런 약은 꼭 천천히 맞아야 한다고 했어요. 속도를 너무 빨리 조절하면 안 돼요.”대표이사가 속도를 다그치려는 전태윤을 황급히 말렸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대표님, 저희는 사모님이 도착하시거든 그때 다시 돌아가겠습니다.”전태윤은 순간 고개 들어 두 사람을 쳐다봤다.“예정이가 왔어?”둘은 나란히 머리를 끄덕였다.“소 이사님이 말씀하시길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너무 걱정돼 이리로 와서 보살펴주겠다고 했대요. 사모님은 아마 이사님이 보낸 전용기를 타고 오실 거예요. 곧 도착하겠네요.”전태윤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대표님, 사모님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저한테 전화 올 겁니다. 이사님이 제 번호를 사모님께 드렸거든요. 그러니까 시름 놓으세요. 제가 사모님을 여기까지 안전하게 모셔올게요.”전태윤은 그제야 자리에 앉아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원래 날이 밝거든 다시 예정에게 연락하려 했는데 밤새 날아올 줄이야.‘예정이가 왠지 날 1순위로 생각하는 것 같아.’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아직 비행기 안인 듯싶었다.“지금 죽 살 수 있어? 흰 쌀죽이면 돼.”“제가 나가볼게요. 아마 살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 죽 드시고 싶으세요?”“응, 흰 쌀죽 한 그릇 포장해와. 그리고 신선한 과일도 좀 사 오고, 정교하게 포장된 디저트도 몇 개 사와.”대표이사가 말했다.“대표님... 아직은 디저트를 드실 수 없어요.”“우리 와이프 먹일 거야.”대표이사는 순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지금 바로 나가볼게요. 병원 입구 쪽 그 거리에 빵집이나 레스토랑이 꽤 많거든요.”어떤 식당은 24시간 운영하고 빵집도 24시간 운영하는 곳이 있다.대표이사는 부대표에게 몇 마디 분부한 후 얼른 밖에 나가 전태윤이 말한 흰 쌀죽 한 그릇, 신선한 과일 몇 종류, 정교한 포장의 디저트 몇 개, 그리고 선뜻 우유까지 사 왔다.물건을 가득 챙기고 병실에 돌아오니 마침 하예정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도 비행기에서 금방
하예정이 말했다.“그럼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며칠 더 입원시켜야겠어요. 거의 다 나으면 그때 퇴원하죠. 태윤 씨 업무랑... 월급은...”전태윤이 입원하는 동안 하예정은 그가 이참에 며칠 푹 휴식하길 바랐다.회사는 사장님의 것이지 그의 것이 아니니 몸져누워서까지 사장님을 위해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으니까!대표이사가 서둘러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예정 씨. 전 대표님의 업무는 저희가 이어받을 거예요. 대표님이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절대 업무상의 일로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출장 중이니 월급도 영향받지 않아요.”전씨 그룹 자체가 전태윤의 것인데 사모님이 의외로 그의 월급을 묻고 있다니, 입원하는 동안 월급을 안 줄까 봐 걱정하다니, 실로 어이없을 따름이었다.“고마워요.”하예정은 본인이 남편을 위해 병가도 챙기고 월급도 지켜냈다고 생각했다.“예정 씨, 저희가 계속 여기서 대표님을 챙겨드릴까요?”하예정이 물었다.“수액이 아직 몇 개 더 남았죠?”“이제 하나만 남았어요.”“그럼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대표이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대답했다.“예정 씨가 여기까지 친히 오셔서 대표님을 보살피니 저희도 훨씬 홀가분합니다.”그들은 비서를 보내 전태윤을 보살펴주기로 했는데 전태윤이 워낙 가족 이외의 젊은 여자가 가까이 오는 걸 싫어하다 보니 결국 비서를 데려오지 않았다.사모님이 대표님을 향한 사랑이 매우 깊어 여기까지 왔으니 다들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비록 전 대표가 언제 결혼했는지는 모르지만 소 이사가 말한 사모님이 무조건 전태윤의 아내일 거란 확신은 있었다.게다가 24시간 내내 병원에 있기 싫어하는 전 대표님을 마주하지 않아 다들 너무 홀가분했다.“예정 씨, 이건 대표님께서 친히 예정 씨를 위해 준비한 디저트들이에요. 신선한 과일도 있고 우유도 있어요. 아 그리고, 예정 씨가 개인 시간도 할애하며 전 대표님을 보살피니 제가 직접 예정 씨 수당을 정산해드릴게요. 나중에 대표님이 퇴원하시거
문자를 보낸 후 그녀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이미 밤이 깊어져 다들 꿈속일 테니 바로 답장을 할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이때 전태윤이 비스듬히 눈을 떴다.하예정을 본 순간 그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태윤은 수액을 맞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눈을 비비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내가 고열이 나서 머리가 잘못됐나? 왜 헛것이 다 보이지? 우리 예정이가 왜 눈앞에 나타난 건데?”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더니 손등을 세게 꼬집었다.“으악!”“아파요?”하예정이 물었다.전태윤은 가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아파, 너무 아파.”“아프면 됐어요. 이거 꿈 아니고 현실이에요. 태윤 씨가 병원 안 가면 내가 바로 달려온다고 했잖아요.”전태윤이 자리에 앉으려 했다.“누워있어요. 지금 입원 중이에요. 열도 다 내리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버텨요?”하예정이 그를 짓눌렀다.“얌전히 누워있어요. 지금 좀 어때요?”“열이 좀 내린 것 같은데 아직도 미열이 있어. 목이 잠기고 너무 아파. 콜록콜록...”전태윤이 기침을 두어 번 해댔다.“기침도 나네. 예정아, 나가서 간호사한테 마스크 좀 달라고 해. 나 이거 바이러스성 감기야. 너한테 옮길 수 있어.”그는 침대 머리맡의 벨을 눌러 간호사에게 말했다.“마스크 두 개 갖다 줄 수 있어요?”“환자분, 마스크는 왜요?”간호사가 본능적으로 물었다.전태윤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내 감기가 전염성이 있잖아요. 와이프가 날 챙기러 왔는데 옮길까 봐 마스크 씌워주려고요.”간호사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곧이어 간호사가 노크하며 의료용 마스크를 두 개 가져왔다.“고마워요.”하예정이 깍듯이 인사한 후 마스크를 하나 꼈다.전태윤이 그녀에게 말했다.“날 밝으면 약국 가서 의료용 마스크를 두 팩 더 사와. 내가 다 낫기 전까지 마스크를 쭉 끼고 있어. 너까지 아프면 안 돼.”“알았어요. 이 죽은 태윤 씨 먹으려고 사 왔어요?”하예정이 포장된 흰 쌀죽을 보더니 그릇을 만져보
전태윤이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이 회사가 바로 내 거야.’하예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아까 그 동 대표님은 계열사 대표이사 맞으시죠? 본인 소개를 그렇게 하셨거든요. 동 대표님이 말씀하시길 태윤 씨가 병원에 며칠 더 입원해야 한대요. 요 며칠은 아무 생각 말고 푹 휴식해요. 평소엔 건강한 것 같아도 계속 이렇게 바삐 돌아치면 피로가 쌓여서 면역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지금처럼 몸져눕죠. 태윤 씨 지금 월급 그대로 받으면서 쉬는 중이에요. 동 대표님이 나한테도 수당을 주시겠대요. 내가 직접 여기까지 와서 태윤 씨를 돌보니 당연히 줘야 한대요. 다들 참 주도면밀하게 고려한단 말이죠.”‘역시 대기업 계열사라 스케일이 남달라. 직원 가족이 입을 열기 전에 선뜻 수당을 주잖아.’전태윤은 죽을 먹으면서 구시렁댔다.‘결국 다 내 돈이야.’다만 그는 감히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나 며칠이나 더 입원해야 해? 그냥 고열에 독감일 뿐이니 날 밝으면 퇴원해서 오피스텔로 돌아가 휴식하면 돼. 기껏해서 매일 수액 맞으러 오면 되잖아.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아. 나 진짜 병원 너무 싫어.”하예정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 병원이 좋아서 와요? 몸이 아프니 치료받으러 왔죠. 약국에서 산 약을 먹고 아무 효과도 없을뿐더러 쓰러지기까지 했잖아요. 나 이리로 오면서 태윤 씨가 고열에 쓰러져 머리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단 말이에요.”전태윤도 본인이 바보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저도 몰래 손을 파르르 떨었다.“나 지금 많이 좋아졌어. 바보 되지 않았어.”“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예정아...”“의사 선생님 말씀 들어요!”전태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병원에 입원하면 엄청 따분하단 말이야.”“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도 괜찮다는데, 안 귀찮다는데 태윤 씨가 무슨 불만이에요?”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소정남이 그녀를 여기까지 보내오며 정성껏 보살피게 한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부부가 얼마 전에 또 한바탕 싸웠는데 아픈 걸 계기로
하예정은 곧바로 두 손 들어 항복했다.“태윤 씨, 그렇게 부르지 마요. 쉰 소리로 말끝까지 길게 끄니 너무 듣기 거북해요. 애교가 전혀 애교답지 않고 마치 변성기 소년 같아요. 뽀뽀해줄게요. 해주면 될 거 아니에요. 애교 그만 부려요. 더 부리다가 나 온몸에 닭살이 돋을 것 같아요.”전태윤이 그윽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그도 애교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애교를 부릴 줄도 모른다.다행히 지금 목소리가 잠겼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일부러 음성 변조하여 앵앵거린다고 하예정에게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안 해, 앞으론 안 하면 될 거 아니야.’하예정은 그의 요구대로 얼굴에 부드럽게 입맞춤하고는 넌지시 물었다.“만족해요?”그녀가 뽀뽀할 때 전태윤은 눈을 감고 가슴 깊이 그녀의 부드러운 키스를 느꼈다. 비록 마스크를 끼고 있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순 없지만 자신을 향한 그녀의 마음만은 충분히 느껴졌다.그래, 바로 사랑하는 그 마음, 그것 하나면 전태윤은 충분했다.평소에 일부러 그를 유혹하며 진한 키스를 퍼붓는 것보다 지금처럼 마음을 다해 뽀뽀하는 것이 훨씬 와닿았다. 진한 키스는 그저 일부러 유혹하는 키스일 뿐이다.하예정이 손 내밀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속상한 눈빛으로 말했다.“서른이 넘었는데 제 몸 하나 챙기지 못해서 나 이렇게 걱정시켜요? 얼굴이 다 핼쑥해졌잖아요. 출장 온 며칠 동안 밥도 제때 챙겨 먹지 않았죠?”전태윤은 제 얼굴에 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뚫어지라 쳐다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나도 감기까지 걸릴 줄은 몰랐어. 널 일부러 걱정하게 하려던 건 아니야. 네가 없으니 입맛도 없고 업무가 워낙 바빠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살이 빠졌어.”사실 그는 살이 빠지지 않았다.다만 아내가 빠졌다고 하니 바로 수긍했다.아내의 말이 곧 진리이니까.“누군 뭐 감기 걸린다고 예상하고 걸리나요? 평상시에도 옷을 많이 챙겨입어요. 여긴 관성보다 훨씬 추워요.”전태윤이 본능적으로 대답했다.“난 찬물에 샤워해서 그
전태윤은 줄곧 그녀만 쳐다봤다. 이에 하예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다가가더니 그의 이마에 또 살짝 입맞춤했다.하예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자요 얼른.”그리고 또다시 그의 이마를 만져보았다.“체온계 있어요? 내가 열 체크해줄게요. 왜 아무리 만져도 계속 열이 있는 것 같죠. 수액도 맞고 약도 먹었는데 왜 안 내려요?”전태윤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나도 체온계가 있는지 잘 몰라.”“간호사한테 가서 여쭤봐야겠어요.”하예정이 휴대폰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그녀가 나가자마자 전태윤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소정남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태윤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아직도 안 자고 뭐 해?”“한잠 자다가 깨났어. 깨나서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봤는데 마침 네 와이프한테서 문자가 왔네. 무사히 도착했다는 내용이길래 잠도 깼겠다, 너한테 전화해서 상태나 물어보려고 했지. 열은 좀 내렸어?”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아직 완전히 내리진 않았어. 의사가 며칠 입원하래. 이게 다 돈을 더 벌려는 수작이야.”환자는 이렇게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본인은 아무 문제 없는데 의사가 자꾸만 입원하라고 하니 돈을 벌려는 의도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전태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하예정이 안 왔다면 그는 날 밝아서 바로 퇴원했을 것이다.이젠 끝내 병실에 묶여 며칠 더 누워있어야 한다.전태윤은 단 한 번도 입원해본 적이 없다.“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며칠 더 입원하라면 하는 거지. 네 와이프까지 보내서 챙겨주고 있잖아. 이참에 부부가 서로 감정 회복도 하고 얼마나 좋아.”전태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부부는 늘 사이가 좋았어.”“그래?”소정남은 한사코 시치미를 떼는 전태윤의 모습에 진작 적응한 듯싶었다.‘누가 사소한 일로 아내랑 싸우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그러다가 정작 아내가 술집 가서 술 마신다고 하니 밤새 날아오고 말이야. 넌 지금 종일 네가 뱉은 말만 번복하고
“물 마실래요?”“아니, 화장실 자주 갈까 봐 안 마실래. 지금 화장실 한번 가기도 불편해.”하예정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전태윤은 도통 잠을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예정도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지 않고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부분 전태윤이 얘기했고 그녀는 들어주기만 했다.이러쿵저러쿵 남의 흉을 보던 전태윤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천천히 꿈나라에 빠졌다.링거 한 병을 거의 다 맞자 하예정은 간호사를 불러 약을 갈아달라고 한 후 간병인 침대에 누워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저도 모르게 스르륵 감기면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혹시라도 잠이 들까 봐 휴대 전화도 내려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마스크를 벗고 찬물로 세수했다.그렇게 전태윤이 마지막 링거 한 병을 다 맞고 그를 깨워 약을 먹인 후에야 간병인 침대에 누워 밀린 잠을 보충했다.이튿날, 휴대 전화 벨 소리에 하예정이 눈을 떴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언니였다.“언니.”“예정아, 제부 괜찮아?”하예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하예정은 몸을 일으키고 앉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전태윤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직 깨지 않은 걸 보고는 다가가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그런데 또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내가 자기 전까지만 해도 체온이 38도까지 떨어졌었는데 지금 또 뜨거워졌어.”“입원했잖아?”“독감이라서 의사 선생님이 열이 났다 내렸다 여러 번 반복한다고 했어.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 우빈이는 일어났어?”“아직 안 일어났어.”하예진이 신신당부했다.“너도 몸조심해. 무리하지 말고.”“알았어, 언니.”자매는 잠깐 얘기를 나눈 후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시간을 확인하던 하예정은 전태윤을 깨워 약을 챙겨주었다.의사가 회진하러 왔을 때 전태윤은 다행히 열이 내렸고 정신도 한결 맑아졌다.동권배가 두 사람에게 따끈따끈한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는데 아내에게 부탁하여 직접 만든 것이었다.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의사가 회진을 마친 후 간호사가 와서 전태윤에게 링거를 꽂았다.하예정은 옆에서 전태윤을 살뜰히 챙겼고 동권배는 약을 지은 후 약국에 가져가 달여달라고 했다.전태윤은 링거를 빤히 올려다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어떻게 하면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태윤 씨, 왜 그래요?”전태윤이 멍하니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링거를 올려다보자 하예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요?”“예정아.”전태윤이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불쌍한 척했다.“다시 양약으로 바꾸면 안 돼? 나 한약 싫어, 너무 써.”“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양약의 부작용이 심하다고 한 건 태윤 씨예요. 그러니 한약으로 바꾸는 수밖에 없죠.”하예정은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고 재미있다는 듯이 그의 볼을 꼬집었다.“태윤 씨도 무서워하는 게 있네요.”전태윤은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그윽하게 쳐다보았다.“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거야.”“됐어요, 연기 그만 해요. 아무리 불쌍한 척하고 그윽하게 쳐다봐도 소용없어요. 한약으로 바꿔 달라고 의사 선생님한테 얘기한 건 우리니까 아무리 써도 마셔야 해요.”전태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냥 확 한 번 더 쓰러질까?’소정남이 그를 걱정한답시고 아플 때 하예정의 보살핌이라도 받으라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 고맙지만 그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정남이 그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분명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챙겨주는 아내가 있는 걸 고맙게 생각해. 난 솔로라서 아내 말 듣고 싶어도 들을 아내가 없어.”그동안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참고 참아왔던 소정남이었다.“사과 먹을래요?”하예정이 물었다. 평소 사과를 좋아하지 않았던 전태윤이지만 하예정이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낸 걸 보고는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그냥 한 조각만 줘.”하예정은 사과를 깨끗이 씻은 다음 네 조각으로 자른 후 전태윤에게 한 조각 건넸다. 전태윤이 사과를 받으며 말했다.“왜 사과 껍질 안 깎아?”“난 계속 껍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