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할머니는 그림을 다 본 후 그 종이를 전이혁에게 돌려주었다.“할머니.”할머니는 손을 들어 전이혁에게 말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네가 꿈을 꾼 것이기 때문에 의문이 있으면 너 스스로 원인을 찾을 것이지 나에게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야? 내가 신도 아닌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그런데 할머니께서 며느릿감을 골라주셨고 제가 그 사진도 다 받았잖아요. 제가 언제든지 아내에게 구애할 준비가 다 되었지만 할머니께서 뽑아준 그 아내가 꿈에 나타난 여자가 아니에요.”“우리 전씨 가문의 남자는 이혼하지도 않고 내연녀도 키우지 않는데, 저는 제가 전씨 가문에서 첫 번째로 아내에게 미안한 남자로 되고 싶지 않아요.”전씨 할머니는 여전히 자신과 상관없다는 태도로 말했다.“그건 네 일이니 네가 잘 알아보고 문제점을 찾아야 해. 네가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내가 너에게 아내를 선택해 주었기 때문이라면 그 여자를 한 번 찾아가 봐.”“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 옆에 앉아 애교를 부리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할머니, 제가 더는 예쁘지 않으세요?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하는 손자가 바로 이혁 손는 손자가 전씨 가문에서 첫 번째 찌질남으로 되는 것이 가슴 아프지도 않으세요?”“내가 그랬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자는 항상 네 큰형이었어. 태윤이야말로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손자였어.”“할머니가 말씀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잊어버리셨을 뿐이에요. 할머니.”전이혁은 애교가 소용없자 불쌍한 척했다.“할머니, 저를 좀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제가 앞으로 정말로 그런 짓을 하면 우리 엄마와 큰어머니도 저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걱정 마.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제가 엄마한테 맞으면 할머니께서 살려주신다고요?”전씨 할머니는 정색하며 대답했다.“난 가만히 있지 않고 빨리 자리를 뜨려고. 네가 네 엄마에게 맞는 걸 보지 않으면 되잖아.”전이혁은 어이가 없었다.“할머니 정말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큰형이
그러나 전씨 할머니는 여전히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이혁아, 가서 셋째 형에게 물어봐. 셋째 형의 방법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전이혁이 말을 이었다.“할머니, 제가 도망치려고 한 건 아니에요. 할머니께서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골라주신 아내인데 제가 어떻게 도망치려고 하겠어요. 저 정말로 한동안 같은 꿈만 꾸었어요. 매일 밤 그림 속의 여자와 얽매였다니까요.”전이혁은 자신이 한 말이 모두 진심이라고 하늘에 맹세할 수 있었다.꿈이 사실이었다.할머니께 용서를 빌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내 생각은 변함없어. 네 아내로 정하기 전에 할머니가 뒷조사할 만큼 다 했어. 그 여성분이 너에게 잘 어울리기 때문에 너에게 선택해 준 거야. 실물을 만나본 적도 없고 그 여성분에 대해 알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꿈속의 그 여자를 찾을 수 있다면 할머니가 정해준 아내를 포기해도 돼. 나도 네 탓 하지 않을게.”전이혁이 되물었다.“세상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찾아요?”전이혁은 이 일로 할머니를 설득해서 선택된 아내를 포기하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전이혁은 자신의 결혼에 대한 결정권을 거머쥐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전씨 가문이 번창하기 때문에 전이혁이 대를 잇지 않아도 되였다. 자신이 없어도 전씨 가문에 여덟 명의 형제가 장가들고 아이를 낳아 전씨 가문의 번창함을 지속할 수 있었다.“지훈 씨도 수많은 사람 속에서 윤하 씨를 만났잖아. 지훈 씨는 너보다 상황이 더 어려워. 인연이 있으면 두 사람은 만나게 돼 있어. 만약 인연이 없다면 그 여자가 네 앞에 서 있다고 해도 넌 알아볼 수 없을 거야.”잠깐 말이 없던 전이혁이 중얼거렸다.“지훈 씨는 점쟁이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셨잖아요. 저는 누구도 조언해 주지 않았는걸요.”“그래야 스릴 있지. 사사건건 미리 알고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어?”전이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보아하니 할머니가 전이혁을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던 모
한참이 지나자 전이혁이 입을 열었다.“할머니, 배고프시죠? 돌아가서 아침 드세요. 큰형이 직접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어요. 큰형이 형수님께 정말 잘해 주시네요. 우리도 큰형이 해준 음식 먹을 기회가 거의 없는데 형수님은 날마다 드실 수 있네요.”전이혁의 말속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큰형은 형수님에게 정말 진심으로 대했다.전씨 할머니는 전이혁에 의해 부축되어 일어섰고 전이혁은 할머니를 도와 스피커를 집안으로 옮겨 드렸다.그리고 할머니께서 입을 열었다.“큰형이 부럽지? 너도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어.”전이혁은 스피커를 안아 들고 할머니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를 아직 본 적도 없는데 저한테 잘 맞을지 누가 알았겠어요? 게다가 저의 꿈에서 어떤 여자가 저에게 매달리고 있는걸요.”“나중에 제가 누구랑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할머니 요구대로 그 여성분과 결혼하면 제가 그분을 배신할 가능성이 엄청 클 거예요. 그리고 꿈에서 저와 얽매이고 있는 그 여자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여자가 아닌걸요. 저 너무 힘드네요.”전씨 할머니가 바로 말을 이었다.“모든 일에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야. 때가 되면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지금은 일단 아무 생각 말고 네 큰형의 결혼식이나 참석해. 그리고 다시 아내에게 구애하러 가. 어차피 내가 너희들에게 준 시간이 1년이니까.”전이혁이 물었다.“할머니, 저 좀 봐주시면 안 돼요?”“내가 가장 아끼는 네 큰형도 봐주지 않았거든. 봐봐. 태윤이랑 예정이도 딱 1년 만에 결혼식을 올리잖아.”할머니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커플이 바로 전태윤과 하예정, 그리고 전이진과 여운초 두 커플이었다.지금 정겨울이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여운초는 매일 약을 먹고 있었고 정겨울도 그녀가 곧 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여운초는 빛을 조금 볼 수 있었지만, 독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앞이 여전히 흐릿하게 보였다.여운초는 자신이 다시 빛을
그러나 그 부잣집 할머니들의 건강은 전씨 할머니보다 못할 것이다. 전씨 할머니는 나이가 드셨지만 자주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손자들을 위해 아내를 신중하게 선택해 주었다.휴, 손자들이 불효하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전이혁은 할머니가 임무를 내리지 않았다면 자신도 28세에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비방했다.결혼은 35세 이후에 결혼하려고 결정했다.형수님들의 결혼이 매우 행복해 보여서 부럽긴 했지만, 전이혁은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는 삶을 더 추구했다.전씨 할머니는 그런 손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이런 임무를 내렸다.그들의 생각을 따른다면 아마 모든 손자가 30세 이후에 결혼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할머니가 춤을 추면 몸도 단련되고 좋잖아. 집에서 춤추시는 거라 누구한테도 영향 주지 않고.”전태윤은 할머니께 밖으로 나가 춤추는 아줌마들에게서 춤을 배웠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어르신은 평생 멋지게, 마음대로 살아오셨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전씨 손자들도 할머니께서 기뻐하시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만 즐거워하신다면 어떤 일을 하시든 모두 지지했다.“할머니는 왜 찾으러 왔어?”전이혁이 부엌으로 들어가며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나를 봐주라고 설득하러 왔어. 너무 일찍 결혼하고 싶지 않거든. 원래 계획은 35세에 결혼하는 건데 할머니께서 벌써 나한테 아내를 골라주셨잖아. 1년이란 기간이 지나가면 난 29살이야. 내 계획보다 몇 년이나 앞섰단 말이야.”전태윤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넌 할머니와 28년 동안이나 지내왔으면서 할머니가 어떤 성격인지 아직도 잘 몰라? 왜 쓸데없는 짓만 해? 난 또 이진이가 겪었던 일들이 너희들에게 교훈을 가져다줄 줄 알았어. 그래서 너와 전우가 말 잘 들을 줄 알았는데. 너도 벗어날 궁리를 하고 있었어?”전호영은 반년 동안 질질 끌다가 끝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아예 장기적으로 강성에 머물면서 아내에게 구애하고 있었다.아마 며칠 더 있어야
전태윤이 물었다.“할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나보고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셨어. 날 그냥 내버려 둔다는 의미지. 내가 할머니의 친손자 맞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전씨 가문의 첫 번째 이혼남이 되라는 뜻 아니야?”전이혁이 구시렁거렸다.“할머니의 지팡이가 간지러워서 날 때리려고 꾸민 것이 틀림없어. 우리가 너무 철이 들어 효도심이 강해서 핑곗거리를 찾고 계시는 것 같아. 날 찌질남으로 몰아넣어 시원하게 때리려고 작정하신 것 같아.”전태윤은 피식 웃었다.“그 말을 할머니께서 들으신다면 아마 당장 널 때려눕히실 거야.”“내 말이 맞잖아.”전태윤이 말을 이었다.“할머니께서 정해주신 목표가 꿈속의 여자랑 겹친 걸 잘 못 본 거 아니야?”“어떻게 겹쳐? 생김새부터 다른데. 사극처럼 얼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전이혁이 중얼거렸다.전태윤이 입을 열었다.“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A시 예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 재주를 참고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인간 가면을 잘 알아봐”전태윤은 할머니가 전이혁에게 골라주신 아내가 어떤 신분인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께서 고르신 분은 분명 전이혁에게 어울리는 여자라는 것만은 확신했다.능력이 없는 여자애들은 할머니의 성에 차지도 않았기 때문이다.아마도 하예정이 가장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할머니께서 전태윤에게 선택해 준 하예정은 성장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람이었고 전태윤이 그녀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성장해야 했다.그 점쟁이에 대한 할머니의 신뢰를 떠올린 전태윤은 할머니가 자신에게 하예정을 골라준 이유가 바로 소균성처럼 아들이 빨리 결혼하여 평생 홀아비로 살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 수도 있었다.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고 하셨기에 할머니께서는 전태윤을 강제로 하예정과 결혼시켰다.나머지 조건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물론, 하예정은 지금 점점 더 훌륭해지고 있었다. 마음이 넓은 하예정은 앞으로 고귀한 출신인 동서들과 잘 맞을 것이다.전이혁이 의심했다.“형의 말은 내 꿈속의 그 여자가 할
전태윤이 위층으로 올라갔다.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장실에서 하예정의 구토 소리가 들려왔다.하루도 빠짐없이 하예정은 깨어나기만 하면 바로 화장실에서 토했다.“예정아.”전태윤은 화장실로 재빨리 들어가 하예정의 등 뒤에서 서서 안쓰러운 듯 등을 토닥여주었다.“하루도 어김없이 일어나기만 하면 토하네. 이 녀석 사람 너무 괴롭히는군.”아마도 장난꾸러기일 것이다.“임신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뿐이에요. 입덧한다고 해서 아기가 사람 괴롭히는 건 아니에요.”하예정은 토한 후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었고 전태윤은 휴지를 가져와 아내의 입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배 속의 아기를 대신해 해명했다.“내가 대신 입덧 해주고 싶어.”“저 대신 입덧을 해줄 수 있다면 태윤 씨가 직접 임신해서 우리 여자들을 출산의 고통에서 구해줘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하예정을 부축하며 걸어서 나왔다.소파에 자리를 잡은 전태윤은 다시 몸을 돌려 하예정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다.“이혁이가 왔어.”“할머니 보러 오셨겠죠.”전씨 할머니께서 전태윤의 집에서 살고 계셨기 때문에 시동생들이 자주 할머니를 뵈러 오곤 했다.하여 하예정도 매일 시동생들을 보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할머니가 선택해 주신 아내감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하러 왔거든. 미래의 아내에게 구애하기 싫었던 모양이야.”하예정은 피식 웃었다.“쓸데없는 행동일 뿐이에요.”“나도 그렇게 말했어.”전태윤은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우리는 역시 부부야. 어쩜 하는 말도 똑같아?”전태윤은 전이혁이 꾼 꿈을 하예정에게 알려주어 하예정이 가십거리를 듣고 싶어 하는 욕구를 채워주었다.“이혁 도련님이 다시 환생한 것 아닐까요? 아니면 미래의 아내가 다시 태어나 도련님이 예견 능력이 생긴 건 아닐까요? 제가 환생 소설에서 이런 줄거리를 본 적 있거든요.”전태윤이 되물었다.“언제 또 소설까지 읽은 거야?”“저는 제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효진처럼 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가끔 책을 읽으
십여 분 후.하예정은 옷을 갈아입고 남편 손에 이끌려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전이혁과 할머니는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전태윤 부부가 들어오는 것을 본 전이혁은 즉시 식사하던 동작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인사했다.“형수님.”“네.”하예정은 시동생들이 자신을 존중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모두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 전태윤 덕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예정은 시동생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할머니.”하예정이 할머니께 인사드렸다.할머니는 자애롭게 물었다.“오늘은 좀 괜찮아?”“그대로예요. 한 달 뒤면 좀 나아질지 모르겠어요.”“괜찮아질 거야.”할머니는 전태윤을 힐끗 쳐다보았다.하예정이 계속 이렇게 토하고 있으니, 눈앞의 장손이 마음이 아플지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다.“예정아, 태윤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너를 위해 준비한 아침이야. 나도 네 덕분에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어.”할머니께서 웃으셨다.“할머니, 저 불효자식처럼 말하지 마세요. 할머니께서 드시고 싶으신데 제가 어떻게 감히 안 해드릴 수 있겠어요?”전태윤은 할머니의 말에 반박했다.전이혁은 하예정에게 일러바쳤다.“형수님, 제 큰형이 너무 인색해요. 형은 저에게 아침밥도 차려주지 않으셨어요. 저도 손님인데 형이 저 스스로 아침을 해 먹으라고 한 거 있죠? 우리 형을 꾸지람하셔야 해요. 너무 인색해요.”하예정은 웃으며 남편을 바라보았다.“태윤 씨, 너무 인색하네요. 이혁 도련님께서 모처럼 오셨는데 잘 대접하지도 않고 아침밥을 스스로 차려서 드시게 하다니.”“가족인데 뭘 그리 예의를 차려?”하예정은 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전이혁에게 말을 건넸다.“도련님, 태윤 씨가 우리가 한 가족이라고 했잖아요. 사양할 필요 없어요. 앞으로 드시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여기로 와서 혼자 차려 드세요.”전이혁은 할 말을 잃었다.아침 식사 후, 전태윤은 하예정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러 밖으로 나갔다.전이혁은 남아서 할머니께 한참
박 집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바로 대답했다.“지금 차를 준비할게요.”“어서! 빨리! 오늘 밥 먹으러 안 올 거야. 내일 다시 올 테니 태윤이가 오면 대신 알려줘.”할머니는 박 집사에게 당부했다.“알겠습니다.”전씨 할머니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박 집사도 매우 익숙해진 모양이다.전씨 할머니는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이었기에 짐 정리할 필요도 없이 휴대전화만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박 집사는 이미 차를 대기시켰다.전씨 할머니는 직접 운전하여 돌아가려고 했지만, 박 집사는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다.전씨 할머니는 신체가 튼튼하셨지만, 나이가 많이 드셨다. 혹시나 가던 길에 사고라도 생기면 박 집사는 그 책임을 질 수 없었다.게다가 전씨 할머니는 차를 빠르게 모는 것을 좋아했다.큰 도련님이든 사모님이든 모든 사람이 박 집사에게 전씨 할머니가 직접 운전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알았어. 알았어. 박 집사와 싸울 시간 없어. 차 안 몰게. 얼른 가자.”할머니는 박 집사의 고집을 이길 수 없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전씨 할머니의 안전 문제에 있어서 전씨 가문의 사람들은 매우 집요했다. 전태윤이 안전에 관한 모든 일을 지시하고 있었기에 할머니가 운전대를 만지고 싶어도 만질 기회가 없었다.박 집사는 가장 침착한 운전기사를 할머니께 안배해 드렸고 전씨 할머니는 이내 서원 리조트로 향했다.소지훈은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차를 타고 서원 리조트에 가서 정윤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소지훈도 이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하 두 명을 운전기사로 차를 몰게 하여 함께 관성의 호텔로 향했다.정윤하와 12명의 학생은 오늘 서원 리조트에 가는 것을 생각하며 기뻐서 밤새 잠을 못 잤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났다.정윤하가 가장 흥분했다.학생들은 서원 리조트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선생님께서 오늘 그들을 데리고 놀러 간다고 하셨으니 선생님만 믿고 따라가면 되었다.“좀 잇다가 다들 조용히 해야 해. 딴 곳으로 돌아
“할머니, 어디 가시려고요?”소정남은 전씨 할머니가 나가려는 것을 보면서 묻고 있었다.전씨 할머니가 대답하셨다.“너무 오래 나가 놀았는데 산기슭에 있는 옛 친구들을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카드놀이도 해야지.”전씨 할머니는 귀부인티를 내지 않고 산기슭에 있는 노동자들의 부모님들과 잘 어울려 다니셨다.그 할머니들도 전씨 할머니와 이런저런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이야기들 나누렴. 난 나가야겠어. 좀 이따가 밥 먹을 때 날 부를 필요 없어. 사람을 시켜 산기슭에 음식을 가져다주라고 해. 옛친구들과 함께 먹게. 어묵 같은 거 있으면 더 좋고.”“할머니,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 음식은 적게 드세요.”전씨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알았어. 안 먹을게.”“제가 할머니께 드시지 말라고 하면 할머니께서는 저를 욕하시더니 왜 예정이가 드시지 말라고 하면 바로 수긍하세요?”전태윤이 일부러 투덜거렸다.그는 전씨 할머니가 손자며느리가 생겼다고 손자를 안중에 두지도 않으신다고 불평했다.전씨 할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를 떠나셨다.할머니는 하예정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듯했다.그러나 손자는 너무 많아서 그다지 소중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떠들썩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저녁 6시가 넘으니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전씨 가문의 세 사모님은 여운초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하러 집을 나섰다.전이진은 리조트 입구까지 배웅하며 끊임없이 명해은에게 당부했다.“엄마, 우리 운초 씨를 잘 돌봐주세요. 남들이 괴롭힘당하게 하지 말고요.”“알았어. 누가 감히 우리 며느리를 건드리면 내가 가장 먼저 그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명해은은 전이진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있었다.전이진은 또다시 들이밀었다.“아니면 제가 따라갈래요.”“네 아버지랑 다 집에 있는데 네가 따라가서 뭐 하게?”명해은은 운전 기사에게 차를 몰아라고 지시했고 창문을 눌러 아들에게 고개를 내밀어 말을 건넸다.“날도 어두워지고
전창빈은 할머니께 말씀드렸다.“할머니께서 조금 전에 저 보고 할머니를 잘 모셔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집에 방금 돌아오셨는데 물도 아직 한 모금 마시지 않으시고 바로 내려가셔서 카드놀이도 이야기도 나누시겠다고 하시다니.”하예정도 말했다.“할머니, 그 할머니들도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께서도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그 할머니들의 돈을 전부 따버리면 안 돼요.”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돈 내기하는 거 아니야. 카드놀이에서 지는 사람의 얼굴에 낙서하면서 노는 거지. 누가 얼굴에 가장 많이 그려지는지 지켜보면서 노는 거야.”현장의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노인네의 세계를 그들은 아직 잘 모른다.어르신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재치다.곧, 소정남과 심효진 부부, 그리고 소정남 부모님도 함께 들어왔다.집안이 더 시끌벅적해졌다.전씨 할머니는 소정남의 아버지 소균혁을 보더니 물었다.“셋째야, 당신 집 맏이가 사돈집에 갔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안 왔어?”소정남의 아버지는 형제 중 셋째였다.전씨 할머니는 예전부터 줄곧 소균혁을 셋째라고 불렀다.“설전에야 돌아온다고 하셨어요.”소지훈은 정윤하에게 고백했고 정윤하도 소지훈에게도 약간의 관심이 가진 듯 했다.소지훈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정윤하는 수차례의 고민 끝에 결국 소지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소균성 부부는 연성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은듯했다.하마터면 홀아비가 될 뻔한 아들이 드디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 생겼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소균성 부부의 마음에 걸려 있던 큰 돌도 마침내 땅에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하여 너무 기뻐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비록 관성이 매우 춥고 가끔 눈이 온다고 해도 소균성 부부는 따뜻한 관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차라리 정씨 가문에 틀어박혀 불을 쬐고 싶어 했다.세 식구가 정씨 가문 사람들이 정윤하와 소
“여보, 오늘 밤은 내가 선물한 보석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가.”“보석 반지만 이진 씨가 선물한 걸 착용하면 되잖아.”전이진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래, 그럼. 이것만은 우리 엄마에게 양보할게.”여운초는 웃긴다는 듯 그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참, 당신과 형수님께서 용씨 사모님도 오늘 밤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던데.”전이진은 문득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목소리와 몸매가 여운별과 닮은 그 젊은 사모님을 언급하자 여운초의 웃고 있던 얼굴이 굳어졌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마침 잘 지켜볼 수 있게 됐네.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지켜보면 허점을 잡히기 마련이야.”“내가 시간 날 때 사람 시켜서 알아봤거든. 근데 그 사모님이 정말로 용씨 사모님이더라고. 남편이 정말로 용씨였어.”“응.”여운초는 용씨 사모님이 여운별이라고 의심은 하고 있지만, 증거는 없었다.만약 용씨 사모님과 여운별이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음모일 것이다. 만약 음모라면 배후에는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 모든 상황을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여운초는 10년 동안 어둠 속에서 살면서 인간성을 꿰뚫어 보게 되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지금 여운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경계심을 품고 있다.그녀의 친어머니마저도 그녀가 죽기를 원했기에 그녀는 정말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나와 여운별은 20년 동안 자매로 지내면서 많은 일이 있었거든. 남들이 모르는 여운별의 사소한 습관들도 난 전부 잘 알고 있어. 아마 여운별 본인도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몇 번만 더 만나고 접촉해 보면 분명 허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용씨 사모님도 우리 앞에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만약 정말로 여운별이 가장한 거라면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생활 습관은 고칠 수 없을 거야.”전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동일 인물이 옳든 아니든 용씨 사모님의 실체를 알기 전에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해.”“나도 알아. 아주버님과 형수님이 곧 돌아오실 거야.
그랬다. 전태윤도 하예정과 딸을 낳고 싶었다.특히 그가 매일 예지연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마다 늘 딸이 갖고 싶었다.예준성의 그 보배 딸은 점점 더 귀여워지고 있었다. 옥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에 눈도 어찌나 동그란지 여기저기 눈동자를 굴려서 볼 때면 앞으로 분명 똑똑한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예준성도 매일 SNS에 그의 보물단지 예지연의 사진을 몇 번이고 올린다.물론, 매일 예씨 가문의 대표 SNS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예준성은 소중한 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아까워했다. 심지어 A시 사람들은 예씨 가문의 손자 세대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예지연이 너무 어려서 어른들의 보호를 잘 받고 있었기에 언론에 아이의 정면 거의 찍히지 못했다.전태윤도 예준성의 SNS를 볼 수 있는 것도 하예정과 모연정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이지, 그와 예준성의 친분으로는 볼 수 없었다.그는 예준성이 전씨 가문이 딸을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의 소중한 딸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때때로 예준성이 영상을 보내면 전태윤은 예준성이 보낸 영상을 반복해서 보곤 한다. 심지어 영상 속으로 들어가 예지연을 집으로 데려가 그의 딸로 삼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들은 할머니 일행이 돌아오면 모두 서원 리조트로 출발하려고 했다.어젯밤에 리조트로 돌아온 전이진 부부는 지금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다.여운초가 연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고 전이 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가끔 여운초가 남편에게 물었다.“이진 씨, 이 드레스를 입으면 어때?”“좋은데. 당신은 어떤 옷을 입어도 너무 예쁘고 너무 어울려.”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일어나서 여운초의 등 뒤로 가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여보,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우리 엄마와 함께 있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을 잘 보호할 수 있을 거야.”“처음으로 당신 아내의 신분으로 어머님을 따라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