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들은 확실히 소준섭이 보낸 거야. 너한테 겁주려고 했었거든. 근데 마침 삼촌이 그걸 듣게 되었고 그놈들을 매수하라고 날 꼬드겼어. 그 당시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소준섭이 패가망신을 당하는 걸 보고 싶어서 더 이상 그에게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아서 삼촌의 꼬드김에 넘어갔어.”말을 마친 그녀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서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미안하다. 고모가 그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 소준섭 때문에 눈이 멀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널 해치지 않았을 거야. 네가 그렇게 괴롭힘을 당한 것을 보고 나도 죽을 만큼 후회했어. 늘 너한테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어.”주서희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온몸의 피가 차가워졌고 차가운 연못에 떨어져 얼어버린 것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부림칠 수 없었으며 그 차가움이 자신을 덮어버리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송문아의 말이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확한 건 단 한 가지. 소준섭은 사람들을 시켜 그녀를 성폭행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녀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일 뿐. 그래서 여태껏 소준섭이 해명을 하지 않았던 걸까? 가슴에 가득 찬 분노를 참으며 주서희는 멍한 눈빛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잔인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송문아의 눈을 쳐다보았다.“그 당시 가법으로 그 사람을 처벌했을 때도 그 사람은 해명하지 않던가요?”병원에 누웠을 때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 자리에서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진 건달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끌려갔다고 했다. 다만 배후가 누구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소준섭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깨어난 후, 몰아붙이는 송문아 때문에 그녀는 소준섭이라고 말했다. 그때 소준섭은 곁에서 그녀를 지키고 있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찰나 송문아가 그의 뺨을 때렸고 그는 결국 침묵을 택했다. 그가 소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끌려간 후 엄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보지
주서희는 똑똑했다. 송문아가 눈빛만 주어도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송문아가 먼저 손을 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 사실을 깨닫자 주서희는 송문아가 소준섭을 이용한 것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날 밤, 소준섭이 우연히 그런 생각을 했든 안 했든 간에 그녀의 고모는 소준섭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했을 테니까.결국 불량배들을 매수해 소준섭에게 누명을 씌우기만 하면 소준섭이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변명을 막는 데는 그녀의 한마디 고발이면 충분했다.그래서 그때 주서희가 깨어난 후 송문아는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기는커녕 누구의 사주를 받았냐고 끊임없이 추궁했던 것이다. 복수한다는 명목으로 실제로는 소준섭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것이다...그때 가족 간의 정에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소준섭에 대한 증오로 마음이 가려지지 않았더라면 곰곰이 생각해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한낱 장기말로 전락하지 않았을 텐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을 텐데...주서희는 속으로 냉소를 지으면서도 평온한 표정을 유지한 채 송문아에게 물었다.“고모, 말씀해 주세요. 언제부터 저를 이용하기 시작하셨나요? 절 소씨 집안에 데려오면서부터였나요, 아니면 제가 준섭 씨에게 접근하도록 유도하면서부터였나요...”송문아는 주서희의 붉게 충혈된 눈을 응시했다. 문득 주서희가 뭔가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본 듯했으니까. 이런 그녀 앞에서는 숨기든 말든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오늘 이후로 조카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모든 걸 털어놓고 자신의 선의를 조금이라도 기억하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송문아는 다시 주서희의 손을 잡았다. 치맛자락을 놓게 한 뒤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바닥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로 주서희의 손등을 감쌌다.“서희야, 고모가 널 소씨 집안에 데려온 건 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너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널 데려와 좋은 생활을 하게 해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소준섭이 저지른 잘못이 아직 충분히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주서희가 소준섭에게 접근하도록 했다. 먼저 주서희가 소준섭을 좋아하게 만들고 그 진심으로 소준섭의 진심을 얻게 하려 했다. 그녀는 두 아이의 마음이 통하기만 하면 자유분방한 소준섭이 틀림없이 주서희에게 손을 댈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고집불통 소준섭은 어떻게 해도 주서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주서희에게 소준섭의 욕실과 방에 들어가라고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혈기 왕성한 그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계획이 실패할 것 같아 걱정하던 송문아는 우연히도 소준섭이 한밤중에 주서희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조용히 따라가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소준섭이 주서희의 침대 앞에 서서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숙여 주서희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는 것을 보았다. 키스를 하고 나서는 마치 도둑질한 것처럼 스스로 놀라는 모습이었다.소준섭의 사춘기 모습을 본 송문아는 계획이 반쯤 성공했음을 알았다. 이후 몇 번이나 주서희가 잠들 때마다 소준섭이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았다. 키스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송문아는 소준섭이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다렸지만 그날이 오기도 전에 소정의가 소준섭의 진로 때문에 소유성과 다투게 되었다. 송문아는 소준섭의 평판이 이 정도로 나빠졌음에도 소정의가 소준섭을 상속인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정의가 소준섭이 금융학과에 진학하면 졸업 후 가업을 물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초조해졌다.그녀가 그 많은 것을 계획한 이유는 소준섭을 상속인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상속인이 되기를 원했다. 만약 소준섭이 권력을 잡으면 자신이 소씨 집안에서의 지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준섭에게 짓밟힐 것이 뻔했다. 어쩌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소준섭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할지
그녀가 과거를 회상하며 무의식중에 지었던 미소가 주서희의 눈에 모두 들어왔다. 주서희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자신이 소준섭에게 접근하도록 부추긴 것이나, 자라서 소준섭을 좋아하게 된 것이 모두 송문아의 이용이었다는 것을.나중에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고 소준섭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 그리고 한마디로 소준섭의 변명을 막아버린 것도 결국 소정의가 소준섭을 상속인으로 삼으려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은 결국 송문아의 손아귀 안에 있는 장기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녀를 장기 말로 삼은 사람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서희야, 언제부터였든 네가 알아야 할 건 준섭이가 먼저 나를 도발했다는 거야. 내가 들어온 순간부터 그 아이는 계속해서 나를 모욕했어. 심지어 사적으로는 나를 첩이라고 욕하기까지 했지. 원망하려면 나한테 모질게 대했던 그 아이를 원망하여야 해.”주서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갑자기 소리 내어 웃었다.“아니에요?”그녀는 눈물 고인 눈으로 이제는 너무나 낯선 고모를 바라보았다.“고모는 시골 아가씨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정의에게 아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분의 침대에 올랐잖아요. 준섭 씨는... 고모가 어머니 옷을 입고 어머니의 방에서 아버지와 뒤엉켜 있는 걸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고모를 미워한 거예요. 게다가 나중에는 강제로 소씨 집안에 들어와 살면서 준섭 씨 어머니를 계속 괴롭혀 결국 투신자살하게 만들었잖아요. 준섭 씨가 당신을 원망하지 않으면 누구를 원망하겠어요?”이런 일들은 주서희가 커서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가치관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송문아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그녀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믿기로 선택했었다.송문아는 자신에게 권력도 없고 힘도 없어서, 소정의처럼 권세 있는 사람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했을 때 도망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송문아는 정말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죽은 것도 산 것이라 말할 수 있고 검
“그게 어떤 일인데요?”주서희가 갑자기 냉소를 지었다.“고모가 사람들을 시켜 나를 집단 강간한 게 작은 일이라도 돼요?”송문아는 주서희의 태도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지 고의가 아니었다고.”‘고의가 아니었다고? 정말 날 바보 취급하는군.’주서희는 송문아에 대한 마지막 남은 정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송문아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살인을 안 했다고 하셨죠. 그럼 최우진은 어떻게 죽은 거예요?”송문아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소찬우를 노려보았다.‘이 망할 놈이 아니었다면 서희가 이 일을 알아차릴 리가 없었을 텐데.’“우진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송문아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주서희도 딱히 상관없었다.“제가 알아낼 거예요.”송문아는 이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알아냈다고 치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니?”“알아내면...” 주서희는 붉어진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의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직접 당신을 감옥에 보내겠어요.”송문아는 주서희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그래, 알아내 봐. 네가 알아낼 수 있다면 말이야.”최우진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거고 그녀는 단지 산소 호흡기를 뽑았을 뿐이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는데 주서희가 어디서 알아낸단 말인가. 죽은 사람이 말하지 않는 한, 그녀가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주서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나가려 했지만 송문아가 가로막았다.“서희야, 이왕 왔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렴. 고모가 그동안 너한테 잘해준 건 진심이었어...”그녀는 여전히 시간을 벌려고 했다. 주서희가 이미 그녀를 증오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붙잡으려 한 것은, 이 기회에 자신이 했던 일들의 흔적을 지우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주서희는 절대 남아있지 않으려 했다. 가방을 꽉 쥐고 자신 앞을 막고 선 송문아
송문아는 소준섭이 주서희를 찾지 못해 미친 듯이 자신에게 와서 주서희를 어디로 보냈냐고 따져 묻던 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송문아는 모른다고 했다. 당시에 그녀도 정말 주서희가 누구에 의해 구출되었는지 몰랐다. 소준섭은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자, 주서희가 스스로 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소준섭이 건달들을 시켜 주서희를 위협하고, 그녀가 집단 강간을 당하고, 임신하고, 감염되고, 낙태하는 등 온갖 고통을 겪게 했으니, 주서희가 그를 다시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소준섭은 더 이상 주서희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아마도 주서희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면 새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둘이 다시 만난 건 10년 후였다. 그 10년 동안 소준섭도 많이 성장했고 아마도 주서희를 생각해서인지 그녀에게 더 이상 냉담하게 대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때 소찬우가 태어났고, 소찬우의 상속권을 위해 송문아는 메시지를 보내 소준섭에 대한 주서희의 증오심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주서희 역시 소준섭에 대한 미움을 잊지 않았고 심지어 소준섭을 유혹해 사랑에 빠지게 한 뒤 복수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이런 마음을 품은 주서희가 소준섭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송문아는 안심했다. 어차피 둘이 서로 다툴 때 자신이 어부지리를 얻으면 그만이었으니까그래서 그녀는 둘이 싸우도록 내버려두었고 가끔 둘의 관계를 부추기기도 했다. 윤주원과 주서희 사이의 일에 대해서도 과장해서 소준섭에게 전했다.그때의 소준섭은 한편으로는 그녀의 자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서희에게 압박을 받아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서희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소정의가 집안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소정의는 소준섭을 감금해 버렸다...그때의 소준섭은 방에 갇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거짓말까지 견뎌야 했다. 그는 겉으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수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눈앞을 가로막은 송문아를 밀쳐냈다. 그의 힘이 워낙 세서 연약한 송문아는 그 힘에 밀려 바닥으로 넘어져 쿵 소리를 냈다.송문아는 아픔에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나려 했다. 그때 소수빈의 검은 구두가 갑자기 그녀의 흐트러진 원피스를 밟았다. 구두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마주친 것은 악귀 같은 얼굴이었다.소수빈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송문아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유언이나 준비해 두세요.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죠.”그는 이 말을 남기고 주서희의 손을 잡아 빠르게 소씨 집안을 떠났다. 저택엔 바닥에 엎드린 채 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송문아만이 남았다...잠시 후 송문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한 명은 그녀가 온갖 방법으로 지켜주려 했던 아들이었고 한 명은 그녀가 직접 키운 조카였다.그런데 감히 이렇게 자신을 대하다니.소수빈은 주서희를 차에 태운 후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으며 온몸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자 소수빈은 가슴이 아팠다.“서희야, 괜찮아?”항상 차분하고 침착했던 주서희는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설마 송문아에게 괴롭힘을 당한 걸까?소수빈이 주서희를 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게 하려는 찰나, 주서희가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열어 녹음기를 꺼내 소수빈에게 건넸다.“오빠, 부탁인데 이 안의 녹음을 소씨 집안 사람들에게 들려줘요...”그녀는 송문아의 행적을 폭로하고 소준섭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또한 소씨 집안 사람들에게 송문아가 소준섭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제거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것만으로도 송문아는 그 집안에 있을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송문아가 자업자득으로 구렁텅이에 빠지기를 바랐다. 그리고...“송문아가 최우진을 죽였어요. 오빠가 증거를 찾아 경찰에 넘겨주면 좋겠어요.”이미 녹음을 듣고 있던 소수빈은 주서희의 말에 잠시 놀랐다가 곧 눈 속 깊은 곳에 혐오감이 더욱 짙어졌다
송문아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개자식 주서희가 가방에 녹음기를 숨겨놓고는 자기가 한 말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언론에 퍼뜨린 것이다. 아들의 상속권을 차지하려고 원래의 상속인을 악랄한 수단으로 괴롭혔다는 내용이었다. 수년간 수도권 상류층에서 쌓아온 그녀의 이미지가 이 한 번의 녹음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귀부인들은 물론이고 온라인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미쳐 날뛰는 악마라고 욕하며 죽으라고, 소준섭을 돌려내라고 소리쳤다.집에 숨어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소정의는 단 한 마디 설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체면을 구겼다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를 때리기만 했다.송문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소정의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생각에 몇 마디 달콤한 말과 사과만 하면 어떻게든 용서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소정의가 울음을 터뜨렸다.“당신은 알기나 해? 당신이 들어오기 전에 준섭이가 얼마나 착하고 똑똑했는지. 의학적 재능은 물론이고 한번 보면 외우는 능력까지 있었어. 그렇게 어린 나이에 내 컴퓨터 화면의 데이터를 한 번만 봐도 문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고. 그런 좋은 아이를 당신이 망쳐버렸어...”소정의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그때 당신이 건넨 그 술잔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어!”그 비즈니스 자리에서의 한 잔의 술이 그를 타락시켰다. 아내와 아이까지 버리고 송문아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할 만큼. 이제 와서 이런 결과를 맞이하니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소정의는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리고는 등을 돌려 걸어갔다.송문아는 단호하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닥을 기어가 그의 바지 끝자락을 잡았다.“여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준섭이를 죽인 건 주서희지 내가 아니라고요!”소정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송문아를 실망스럽게 바라보았다.“서희는 당신 칼이었어.”그 말은 곧 누가 직접 손을 댔든 모두 같다는 의미였다.소정의에게 발로 차여 나뒹군 송문아는 소준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