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봄날처럼

당신의 봄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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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내 남편의 첫사랑은 정말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 여자가 귀국한 이후로... 남편은 나와 있을 때는 늘 사랑 따윈 모른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첫사랑 앞에서는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기쁘게 하려 했다. 심지어 내 아들조차 내 앞에서, 아빠의 첫사랑이 자기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다. 남편과 아들의 눈에 비친 나의 가치는 그저 빨래하고 밥하고 살림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작은 여자아이가 내 옷자락을 꼭 붙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배은찬이 필요 없는 엄마, 내가 가질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척박한 땅에서도 찬란한 장미는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 내 전남편과 아들은 뒤늦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전남편은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이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저는 은찬이 엄마 아니에요.” 그는 다시 말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 그때 내 곁의 남자는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질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내 마음도 받아주지 않는 여신님을, 네가 감히 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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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요?” 밤 9시, 나는 아들을 재우고 있었다. 아들이 막 잠든 줄 알았던 순간, 갑자기 충격적인 질문이 귀에 들려왔다.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놀라 순간 멍해지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의 등을 토닥이던 내 손도 멈췄다. 내 마음 한구석이 무의식적으로 찌릿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애 아빠와 나름대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온 아들이 당연히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했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아들을 놀라게 할까 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나한테 맨날 치킨도 못 먹게 하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잖아요...” 잠들기 직전인 아들은 졸린 목소리로, 어린아이의 투덜대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아빠와 이혼하라고 하다니... 애들의 생각은 참 단순해.’ 나는 아들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하는 것을 들으며, 아들이 잠이 들었다는 걸 확인한 뒤 슬며시 일어나려 했다... 딩동-아들의 침대 머리맡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뒤돌아보니 아들의 베개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베개의 한쪽을 들추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태블릿이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어린 아들의 눈이 나빠질까 봐,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히 정해 두고 관리하고 있었다. 아들이 항상 투덜거리며 불평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내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아이가 뜻밖에도 몰래 태블릿을 숨기다니... 나는 태블릿을 들고 전원을 끄려던 순간, 화면에 뜬 단독방 채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채팅방 이름은 ‘행복한 우리 가족’이었다. 참 아들다운 이름이었다. 이름 뒤에는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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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챕터

제1화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요?” 밤 9시, 나는 아들을 재우고 있었다. 아들이 막 잠든 줄 알았던 순간, 갑자기 충격적인 질문이 귀에 들려왔다.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놀라 순간 멍해지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의 등을 토닥이던 내 손도 멈췄다. 내 마음 한구석이 무의식적으로 찌릿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애 아빠와 나름대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온 아들이 당연히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했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아들을 놀라게 할까 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나한테 맨날 치킨도 못 먹게 하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잖아요...” 잠들기 직전인 아들은 졸린 목소리로, 어린아이의 투덜대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아빠와 이혼하라고 하다니... 애들의 생각은 참 단순해.’ 나는 아들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하는 것을 들으며, 아들이 잠이 들었다는 걸 확인한 뒤 슬며시 일어나려 했다... 딩동-아들의 침대 머리맡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뒤돌아보니 아들의 베개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베개의 한쪽을 들추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태블릿이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어린 아들의 눈이 나빠질까 봐,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히 정해 두고 관리하고 있었다. 아들이 항상 투덜거리며 불평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내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아이가 뜻밖에도 몰래 태블릿을 숨기다니... 나는 태블릿을 들고 전원을 끄려던 순간, 화면에 뜬 단독방 채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채팅방 이름은 ‘행복한 우리 가족’이었다. 참 아들다운 이름이었다. 이름 뒤에는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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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태블릿을 손에 들고 은찬의 방을 나와 곧바로 배정빈의 서재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하필 그 사람이 서달희일까... 내가 처음으로 ‘서달희’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배정빈과의 결혼식 때였다. 그때 배정빈은 내게 참 다정한 신랑이었다. 혹시라도 내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그는 항상 다가와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위로하곤 했다.“괜찮아, 누구나 완벽할 수가 없는 법이야.”그리고 내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내가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기다려 주었다. 내가 아픈 날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랑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배정빈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날, 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성스러운 부케를 들며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과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배정빈의 친구들이 그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배정빈과 서달희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걸 보면, 당연히 둘이 결혼할 줄 알았지.” “맞아, 둘은 정말 하늘이 내린 한 쌍 같았어.” “정말 안타깝다.” 그 사람들이 말한 그 ‘안타까움’은 진심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배정빈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배정빈에게 이 이야기를 물어보겠다고 결심하고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배정빈은 이미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몇번 말했지? 나는 이제 서달희를 잊었어!” “지금까지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말할게. 앞으로 내 앞에서 누구라도 서달희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그 사람 얼굴 안 봐!” 배정빈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정빈 씨는 서달희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잊은 거야!’ ...‘그런데 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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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배정빈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며, 강압적으로 내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그는 입술을 내 입에 부딪혀오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들 거야.” ...은찬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유치원생이다. 유치원 등원은 매일 아침 8시다. 유치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어서, 은찬이가 늦지 않도록 매일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간단하게,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둔 만두를 사용하기로 했다. 조금 손이 더 가는 건 국물이었다. 닭 육수를 바로 끓이기 때문이다. 나는 냄비 바닥에 생강 편을 얇게 깔고, 손질해 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담았다. 마지막으로 파로 매듭을 묶어 맨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덮고 센불에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자 뚜껑을 열자, 진한 닭 육수의 향이 뜨거운 김을 타고 코끝을 가득 채웠다. 소금을 약간 넣고 불을 낮춘 뒤, 약한 불에서 천천히 계속 끓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나섰다. 드레스룸으로 가서 오늘 입을 옷을 하나씩 골랐다. 배정빈과 은찬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조합을 신중히 찾아냈다.배정빈은 회사의 대표라 평소 출퇴근 복장은 늘 잘 갖춰 입어야 했다. 반면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라 편안하고 활동하기 쉬운 옷을 선호한다. 나는 두 사람을 위해 각각 옷을 고르고 배정빈과 은찬이의 방에 가져다 놓았다. 배정빈과 은찬이가 막 세면을 마칠 즈음이었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닭 육수를 덜어 만둣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미 뜨거워진 육수 덕에 금방 물이 끓기 시작했고, 세 사람 분량의 만두를 끓고 있는 육수에 넣었다. 만두가 익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은찬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고개를 돌리니, 은찬이가 태블릿을 들고 잔뜩 화가 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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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 편지는 결혼하기 직전에 배정빈이 서달희에게 쓴 것일까? 그리고 다른 한 통은 서달희가 배정빈에게 보내온 답장이었다. [네가 보낸 편지, 내 편지봉투 안에 넣어 함께 돌려보낸다.] [정빈아, 나 지금 정말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 나를 축복해 주길 바라.]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말아줘. 내 남편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 이 두 통의 편지를 읽고 나니, 그동안 계속 풀리지 않았던 모든 의문이 하나로 수렴했다. 서달희는 분명 배정빈의 ‘첫사랑’, 그의 마음속 깊이 각인된 첫사랑이었다. 그런데 배정빈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서달희를 증오했던 걸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청소하던 손에 쥔 대걸레를 더 꽉 움켜쥐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서달희가 한때 배정빈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배정빈은 서달희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에 애써 눈감고,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외면하며, 그저 그녀가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서달희는 배정빈을 다시 한번 냉정히 거절했다.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결혼식장에서 배정빈의 친구들이 서달희를 언급했을 때, 남편의 반응이 왜 그렇게 격렬했는지. 그러면 지금은? 이제 와서 이 편지들을 다시 꺼내놓은 이유는 뭘까? 혹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는 서달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차가운 거절을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아내와의 삶에 집중하자.” 아니면, 뭔가 두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를 버렸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달희에게 달려간다고 해도, 서달희는 결국 그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갈등하고 있는 걸까? 미련과 두려움, 그리고 후회라는 감정의 무게가 나를 눌러오자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 고통 때문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마도 은찬이 말대로일 것이다. 배정빈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서달희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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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상태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배정빈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까는 은찬이를 시어머니댁에 데려다줬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니는 은찬이 건강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절대로 아이에게 함부로 음식을 주실 분이 아니야. 그런데 왜 은찬이가 병원에 갔다는 거지?’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를 물며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달희는 대체 어떻게 은찬이 상태를 알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치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둘씩 맞춰지며, 뭔가 다른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느 병원이야?” 배정빈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들며 물었다. 서달희는 전화 너머로 울먹이며 병원의 이름을 말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수록,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내 모든 감정을 삼켜버렸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배정빈을 따라나섰다.그제야 배정빈은 내 존재를 알아챘다. 내 안색이 좋지 않다는걸,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처럼 보였겠지만, 그는 끝내 참고 침묵을 유지했다. 배정빈은 차 문을 열고 재빨리 운전석에 앉았다. 나도 조용히 조수석에 올라탔다. 가는 내내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무겁고 답답한 침묵으로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그 20여 분 동안,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뒤덮고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배정빈은 분명 아이를 데리고 나와 서달희와의 연락을 끊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눈을 피해 은찬을 서달희에게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눈치채지 않도록, 심지어 나와 둘째 아이를 갖자는 핑계를 내세워 내 경계를 허물어뜨리려 했을 것이다. 그의 이중적인 태도가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나는 창밖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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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은찬이의 순진하고도 직설적인 말이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내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탈이 나서 가장 아픈 순간에도 은찬이는 자신을 병들게 만든 서달희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잠든 은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탈이 나서 지친 아이의 모습은, 몇 마디 말을 겨우 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배정빈 역시 은찬의 말을 들었는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여보.” 지금 나는 그의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어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배정빈은 더욱 힘을 주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늘 일은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일이야. 어머니가 제멋대로 아이를 맡긴 거고, 아이는 아파서 그런 말을 한 거니까...”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야.” 나는 은찬이를 안고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은 은찬이가 서달희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뭐든 다 좋아 보이겠지.”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뒤 덧붙였다. “그리고 은찬이에게 서달희와 접촉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으니 처음에는 당연히 강하게 반발하겠지.” “하지만 우리 은찬이는 본성이 착한 아이니까 내가 잘 이끌면, 누가 정말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당신 약속 하나 해. 오늘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있으면 안 돼.” 나는 말을 멈추고 은찬이를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배정빈은 아이를 안은 내가 힘들까 봐, 자연스럽게 은찬이를 내 품에서 받아 들었다. “알겠어. 약속할게, 여보.” 나는 배정빈의 품에서 곤히 잠든 은찬을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집에 도착한 뒤, 배정빈은 차를 세웠다. 은찬이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어서 깨울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들을 안고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배정빈은 이미 조수석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 그러고는 아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안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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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은찬이는 작은 얼굴을 들어 배정빈을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철없음을 담고 있었다. 안쓰러우면서도, 본능적으로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배정빈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은찬이의 시선에 맞춰 앉았다. 이제 은찬이는 고개를 더 들 필요 없이 아빠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은찬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아빠, 제발 약속해 줘요.” “넌 아직 어리잖아.” 배정빈은 아들을 아끼는 마음에, 손을 들어 은찬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배은찬, 너 이렇게 엄마에게 화내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은찬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해요!” 혹시라도 배정빈이 믿지 않을까 봐, 은찬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빠, 엄마랑 헤어지고, 달희 이모랑 살면 좋겠어요. 달희 이모가 제 엄마가 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아이는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배정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은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일어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찬이를 바라보았다. 서달희와 한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이 단순한 변덕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아이의 격한 태도는 농담이 아니었다. 은찬이는 진심으로 서달희가 자신의 엄마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조건 헌신했던 이 엄마는? 버려져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아주 작은 무수한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마치 수많은 개미가 내 심장을 갉아 먹는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무거웠다. “여보.” 배정빈이 다가와 나를 안고,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천천히 두드리면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은찬이는 아직 어려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거야.” 나는 수없이 스스로 다짐했다. ‘은찬이가 무슨 말을 하든,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아직 어린아이니까, 더 넓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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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유치원 정문에서, 수많은 학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 아들은 반복해서 나를 부인했다. 그러고는 서달희가 자신의 엄마라고 재차 강조했다. 내 가슴은 이미 갈가리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나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각했다.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다. 이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를 뿐이야.’ 나는 은찬을 향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은찬!” “너에게 마지막으로 선택할 기회를 줄게!” “잘 생각해 봐. 나와 저 사람 중에서, 누가 너의 진짜 엄마인지 제대로 선택해.” 모두의 시선이 은찬에게로 쏠렸다. 은찬은 서달희의 뒤로 몸을 숨긴 채, 이마를 그녀의 등에 붙이고 말했다. “당연히 내 엄마를 선택해야죠.”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달희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안고 떠나려고 했다. “정말 미친 사람이네.” 나는 서달희가 은찬이를 데리고 그냥 가게 놔둘 수 없어서 급히 그녀를 따라가 막으려 했지만,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감정을 억제할 수 없던 나는 소리쳤다. “내 아이를 따라가야 해요! 제발 나를 막지 마세요!” 그러나 내 주변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모두 비난 일색이었다. “요즘 인신매매범 수법이 이 정도로 발전했나 보네?” “그러게, 저렇게 다급한 얼굴을 보면 친엄마인 줄 알겠어.” “진짜 말도 안 돼!” “앞으로 우리도 더 조심해야겠어.” “...” 경멸 어린 시선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나는 그 시선들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은찬이를 설득해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누군가 따라와 나를 막았다.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 그러나 서달희는 은찬이를 데리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내 앞을 막았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어떤 시민이 경찰에게 다가가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 아저씨, 요즘 인신매매범들이 얼마나 대담한지 몰라요.”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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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배정빈은 약간 아쉬운 듯 대답했다. “나와 지나정 아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지나정을 속이고 몰래 서달희와 아들을 만나게 한 거구나?” 한 친구가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은찬이가 서달희를 엄마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너도 아이를 데리고 첫사랑과 다시 함께할 수 있잖아!” 사람들은 웃으며 떠들었다. “역시 머리회전 빠르네!” “이 정도까지 계산하고 움직인 거 보면 말이야.” ‘그러니까... 서달희가 은찬이를 만난 일은 다 배정빈이 계획한 거였던 건가?’ ‘어쩐지... 배정빈이 은찬이를 시댁에 보낼 때마다, 시어머니가 서달희 집으로 보내더라니...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쌓도록...’ ‘어쩐지... 유치원 선생님들이 서달희를 은찬의 엄마라고 불렀어.’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속이고 용서하려고만 했지.’ 온몸이 떨려서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배정빈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달희?” “뭐라고? 은찬이가 자해를 했다고?” “기다려, 지금 당장 갈게!”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다. ‘은찬이가 유치원 앞에서, 나와 서달희 중 결국 서달희를 선택했는데...’ ‘그러면 서달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으니 은찬이가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된 충격에 도저히 자리에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벽에 기대어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은찬아...” 그 순간, 배정빈이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오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도 순간 멈춰 서며 나를 바라보았다. 배정빈의 친구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도 당황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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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나는 놀란 눈으로 배정빈을 바라보았다. 그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얼굴로 검사 결과지를 내게 바로 내밀었다. “어젯밤에 당신이 갑자기 쓰러져서 정말 깜짝 놀랐어.” “의사 선생님이 검사를 진행했는데, 당신이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런데 요 며칠 당신이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감정이 불안정하니까 태아도 많이 불안정하대.” “병원에 입원해서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대.” 나는 무심코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내 시선이 결과지 위에 닿았다. 아직 제대로 형체도 갖추지 못한 작은 생명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상처투성이였던 내 마음이, 그 순간 약간의 위로를 얻는 듯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올려 작은 생명을 다독이듯 배를 쓰다듬는 순간,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던 탓에,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내 아이는...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심하듯 입을 열었다. “배정빈.” 그는 내가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마치 큰 결단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말했다. “예전 일은 따지지 않을게.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리 예전처럼 잘 지내자, 응?” 배정빈은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보.”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주머니에서 작은 붉은 벨벳 상자를 꺼냈다.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백합 모양의 귀걸이가 들어 있었다. 결혼 후로 그가 내게 뭔가를 선물한 적이 거의 없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이게 뭐야?” 배정빈은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나는 상자를 받아 들며 말했다. “고마워.”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모두 잊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뱃속의 이 작은 생명 덕분에, 적어도 지금 이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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