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배정빈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며, 강압적으로 내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그는 입술을 내 입에 부딪혀오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들 거야.”

...

은찬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유치원생이다.

유치원 등원은 매일 아침 8시다.

유치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어서, 은찬이가 늦지 않도록 매일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간단하게,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둔 만두를 사용하기로 했다.

조금 손이 더 가는 건 국물이었다. 닭 육수를 바로 끓이기 때문이다.

나는 냄비 바닥에 생강 편을 얇게 깔고, 손질해 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담았다. 마지막으로 파로 매듭을 묶어 맨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덮고 센불에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자 뚜껑을 열자, 진한 닭 육수의 향이 뜨거운 김을 타고 코끝을 가득 채웠다.

소금을 약간 넣고 불을 낮춘 뒤, 약한 불에서 천천히 계속 끓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나섰다.

드레스룸으로 가서 오늘 입을 옷을 하나씩 골랐다. 배정빈과 은찬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조합을 신중히 찾아냈다.

배정빈은 회사의 대표라 평소 출퇴근 복장은 늘 잘 갖춰 입어야 했다.

반면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라 편안하고 활동하기 쉬운 옷을 선호한다.

나는 두 사람을 위해 각각 옷을 고르고 배정빈과 은찬이의 방에 가져다 놓았다.

배정빈과 은찬이가 막 세면을 마칠 즈음이었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닭 육수를 덜어 만둣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미 뜨거워진 육수 덕에 금방 물이 끓기 시작했고, 세 사람 분량의 만두를 끓고 있는 육수에 넣었다.

만두가 익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은찬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고개를 돌리니, 은찬이가 태블릿을 들고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 달려왔다.

은찬이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따졌다.

“엄마가 달희 이모 삭제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있던 채팅방에서도 나갔어요?”

나는 아이의 화난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하지만 나는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라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은찬이 눈에 비친 서달희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게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놀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은찬이에게는 서달희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우리가 어른으로서 은찬이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서달희와의 연결을 끊으려 했더라도... 은찬이 당분간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은찬이가 화내는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은 내 가슴을 그대로 찔렀다.

“엄마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은찬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아빠가 엄마를 안 좋아한다고 하는 거예요!”

“엄마처럼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는 사람은 누구도 좋아할 수 없어요!”

나는 은찬이가 자기감정에 휩싸여 극단적인 말을 쏟아내리라 예상했지만, 그 말이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엄마로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은찬의 말은 날카로운 화살처럼 내 마음의 방어벽을 가볍게 뚫고 들어와 깊이 박혔다.

그리고 나를 아프게 찔렀다.

‘내 아들 눈에는 내가 이렇게 추악한 존재로 보이는 걸까?’

내 손이 떨려와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아빠는 누구를 좋아하는데?”

은찬은 볼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당연히 달희 이모죠! 아빠도 말했어요. 옛날부터 달희 이모를 좋아했다고요!”

“...그래?”

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걸 은찬이가 어떻게 알았어...”

은찬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당연히 아빠가 말해줬어요. 안 그랬으면 아빠가 뭐 하러 나를 데리고 달희 이모랑 계속 놀았겠어요?”

이 순수하고 솔직한 대답은, 아이의 단순함 때문인지 더욱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래, 맞아. 배정빈이 정말로 서달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서달희와 연락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최근 배정빈과 서달희의 잦은 만남은 이미 선을 넘고 있었다.

그리고 서달희에 대한 배정빈의 마음은 더 이상 부인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꽉 움켜쥔 듯 순식간에 숨이 멎을 만큼 아팠다.

“아빠는 분명히 달희 이모를 좋아해요. 아빠가 달희 이모를 보는 눈빛은 엄마를 볼 때랑 완전히 달라요.”

“아빠가 그러던데, 자기가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엄마처럼 ‘한부모 가정의 아이’가 되면 정서적으로 좋지 않을까 봐서래요.”

“그리고, 이혼하면 엄마가 우리에게 집착할까 봐, 통제 못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된대요!”

나는 눈앞에 서 있는 배은찬을 바라보았다.

은찬이는 아직 아기 같은 목소리에 앙증맞고 귀여운 표정 지은 겨우 다섯 살짜리 아이였다.

하지만 이 어린아이가 내뱉은 이 말들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너무나 극단적이고 상처가 되었다.

나는 간신히 스스로를 달래며 생각했다.

‘은찬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순전히 감정이 격해져서 그럴 뿐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내 손의 떨림은 멈출 수 없었다.

...

만둣국이 완성되어 갔다.

만둣국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나는 애써 그런 상처 주는 은찬이의 말들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은찬이의 그릇에 만둣국를 담아 건넸다.

“자, 밥 먹자.”

만둣국이 뜨거울까 봐 걱정되어, 나는 그릇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은찬은 작은 두 손으로 식탁 위의 그릇을 들더니, 다시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쾅!

도자기 그릇은 산산조각이 났고, 닭 육수와 만두는 바닥에 엉망으로 쏟아졌다.

“배은찬! 아무리 화가 나도 정도가 있지. 엄마가 너 이렇게 버릇없게 행동하라고 가르쳤니!”

나도 역시 단단히 화가 나 소리쳤다.

아들과 시선이 마주쳤지만, 우리는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은찬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더욱 불만스러운 듯, 나에게 다가와 내 어깨를 밀치더니, 울면서 소리쳤다.

“누가 엄마한테 배운대?! 난 엄마 싫어!”

아이의 힘은 세지 않았지만, 나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은찬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 아이와 나는 서로를 굉장히 아끼는 모자였다.

물론 은찬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미성숙한 생각으로 실수하거나 잘못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때로는 은찬이의 그런 말들이 나를 아프게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아이에게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를 조곤조곤 알려주곤 했다.

그러면 은찬이도 다시 스스로 생각해 보고, 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곧 깨닫는 아이였다.

평소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은찬이는 자신의 그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끌어안으며 다가와 말했다.

“엄마, 내가 아까 나쁜 말 해서 엄마 속상했지, 맞죠?”

“이제부터 꼭 기억할게요. 다음부터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요.”

그러고는 작은 얼굴을 내 어깨에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아이를 나는 꽉 껴안아 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옆에 있던 가스레인지를 붙잡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한 방울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도대체 우리 은찬이가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정말로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걸까?’

나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은찬이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했을지도 모르지... 은찬이는 아직 어리고, 엄마가 하는 모든 일이 자기 행복을 위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거고... 그저 숨 막히고 싫었겠지.’

‘반면, 서달희는 어떻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은찬이에게 무조건 모든 것을 허용하고 풀어주니, 아이가 자유롭다고 느끼고, 서서히 서달희를 더 좋아하게 되니까 그만큼 나와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 거야.’

‘만약 내가 앞으로 은찬이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고, 아이에게 맞춰준다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찬장을 열고 은찬이가 내던져 깨진 밥그릇 대신 또 다른 그릇을 꺼냈다.

배정빈도 아직 아침을 먹기 전이라, 평소처럼 그의 밥을 미리 그릇에 담아두지 않는데, 오늘도 나는 빈 그릇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도 식탁에 앉으며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들로 뒤엉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배정빈이 식탁에 앉아 빈 그릇을 보더니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터져 나올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어제 채팅방에서 나가게 하고, 서달희 삭제한 것 때문에 은찬이가 화가 나서 밥을 바닥에 쏟았어. 오늘은 아마 내가 한 밥 먹을 생각이 없을 테니, 그냥 유치원 가서 먹게 둬.”

배정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만둣국을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여보, 너무 화내지 마. 아이와 같은 선상에서 일일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배정빈의 말을 들으며 은찬이가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아이가 홧김에 한 말인데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야?’라고 되물으면, 대답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내 속도 터질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열었다.

“어제 일은...”

배정빈은 마치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띠며 손을 들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약속했잖아. 잘 정리할 테니까.”

그의 확신에 찬 대답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래, 알았어. 밥 먹자.”

서달희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낸다면, 나는 다시 배정빈이 나를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이를 진심으로 아끼는 아버지라고 믿으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는 한때 정말 행복한 가족이었으니까.

...

배정빈은 아침을 먹고 나서 침실로 가서 은찬이에게 유치원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은찬이는 옷을 갈아입고 나오더니,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나를 힐끔 보고는 ‘흥’ 하며 고개를 돌리며 배정빈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갔다.

배정빈은 문 앞에서 나에게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고 나서 은찬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집에는 언제나처럼 나 혼자만 남았다.

내게 남은 일은 늘 그렇듯 반복적이고, 지루한 뒷정리였다.

바닥에 깨진 그릇 조각들, 흩뿌려진 만두와 육수.

식탁 위의 빈 그릇과 어제 갈아입은 옷들.

나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침실로, 그리고 서재로...

서재 문을 열자,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사진 한 장과 펼쳐진 편지 두 통을 보았다.

사진 속에는 젊고 생기 넘치는 서달희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왼쪽 편지에는 내가 너무도 익숙한 배정빈의 필체로 짧은 두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달희야, 너는 나를 배신하고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나는 너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

[네가 나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바로 지나정과의 결혼을 취소할 거야.]

쿵!

귓속이 윙윙 울려대고, 내 머릿속은 완전히 텅 비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