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당신의 봄날처럼
당신의 봄날처럼
작가: 구름위에

제1화

작가: 구름위에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02 16:23:42
“엄마,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요?”

밤 9시, 나는 아들을 재우고 있었다. 아들이 막 잠든 줄 알았던 순간, 갑자기 충격적인 질문이 귀에 들려왔다.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놀라 순간 멍해지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의 등을 토닥이던 내 손도 멈췄다.

내 마음 한구석이 무의식적으로 찌릿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애 아빠와 나름대로 무난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자라온 아들이 당연히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얘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했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아들을 놀라게 할까 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나한테 맨날 치킨도 못 먹게 하고, 아이스크림도 못 먹게 하잖아요...”

잠들기 직전인 아들은 졸린 목소리로, 어린아이의 투덜대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로 아빠와 이혼하라고 하다니... 애들의 생각은 참 단순해.’

나는 아들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하는 것을 들으며, 아들이 잠이 들었다는 걸 확인한 뒤 슬며시 일어나려 했다...

딩동-

아들의 침대 머리맡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뒤돌아보니 아들의 베개 아래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베개의 한쪽을 들추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태블릿이 보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어린 아들의 눈이 나빠질까 봐,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히 정해 두고 관리하고 있었다.

아들이 항상 투덜거리며 불평하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내 말을 잘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아이가 뜻밖에도 몰래 태블릿을 숨기다니...

나는 태블릿을 들고 전원을 끄려던 순간, 화면에 뜬 단독방 채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채팅방 이름은 ‘행복한 우리 가족’이었다. 참 아들다운 이름이었다. 이름 뒤에는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채팅방 프로필 사진은 네 명의 가족사진처럼 보였다.

나는 사진을 확대했다.

사진 속 여자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녀의 품 안에는 두 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내 아들, 배은찬이었다. 은찬이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내 남편, 배정빈. 그는 그 여자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배정빈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은 다정하고 깊었다. 마치 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그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처럼.

순간, 내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시선은 자연스럽게 채팅방에 있는 은찬이의 손가락이 멈춰 있는 그 여자의 이름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더 얼어붙었다.

아들이 그 여자를 저장한 이름은 ‘엄마’였다.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얼어붙었고, 떨리는 손으로 그 여자의 프로필을 눌렀다.

그리고 화면에 뜬 그녀의 닉네임은 '배 위의 달빛'이었다.

‘달빛...’

‘설마 이 여자... 배정빈의 첫사랑, 서달희?!’

이런 믿기 힘든 상황에서 혹시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남편의 첫사랑 여자와 다른 한 아이가 함께 가족 채팅방을 만들다니.

나만 제외된 채로...

이 사람들은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순간, 누군가 내 심장을 손으로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채팅방에 올라온 메시지들이 너무 많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나는 무감각해진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계속해서 올렸다.

사실, 우리 세 식구도 가족 단체 채팅방이 있긴 했다.

하지만 내가 가끔 ‘정빈 씨, 오늘 집에서 저녁 먹어요?’라고 물을 때 외에는 그 채팅방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때, 이 채팅방에 있는 ‘엄마’가 갑자기 동영상을 올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동영상을 열어보았다. 영상은 분명 공들여 편집된 것이었다.

...

짧은 1분 남짓한 영상 속에는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치킨, 콜라, 관람차, 회전목마...

은찬이의 작은 얼굴에는 밝고 자유로운 웃음이 가득했다.

심지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배정빈조차도 화면 속에서 미소와 다정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영상 속 다른 두 사람은 이미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영상이 점점 느려지더니, 마침내 은찬의 얼굴에서 멈췄다.

은찬이는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으며, 진지하고 집중한 모습으로 커다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이의 순수하고 간절한 목소리.

“나는 달희 이모가 우리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네 명이 영원히 함께였으면 좋겠어요!”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서달희와 그녀의 아이가 함께 손뼉을 치며 은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원했다.

배정빈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완벽하고 행복한 가족 같았다.

‘그럼... 나는?’

나는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 채팅방의 ‘엄마’가 또 다른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의 목소리는 밝고 쾌활했으며, 마치 은찬의 편을 들어주는 ‘친근한 누나’ 같았다.

“아가, 전에 나한테 엄마가 되어달라고 했었잖아.”

“그리고 또, 누가 됐든 지금 엄마만 아니면 된다고.”

“너무 궁금해. 우리 은찬이 왜 엄마를 그렇게 싫어하느냐? 네 엄마가 너를 너무 통제하는 거야?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게 해서 그렇구나.”

“네가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앞으로 이 채팅방에서는 내가 네 엄마 해줄게.”

“이 채팅방이 바로 우리 네 사람의 집이야.”

‘그런가? 누구든 괜찮다고? 단지 내가 엄마가 아니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한 마디 한 마디...

나는 스스로를 학대하듯 음성 메시지를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지만, 여전히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배 아파서 낳고, 먹이고, 입히고,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내 아이가... 어떻게 나를 미워할 수 있을까.

눈을 감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은찬이는 어릴 때부터 위가 약해서 평소에 먹지 않던 다른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쉽게 배탈이 나곤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장염 때문에 입원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식단을 철저히 관리했고, 매일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여 아이의 체질과 체력을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해온 모든 노력이 은찬이 입을 통해서 하나하나 모두... 내가 아이를 학대한 것처럼 변질되고 말았다.

‘어쩐지... 최근 은찬이의 위염이 다시 도진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네.’

이유 없이 아이가 아파서 답답해하던 나에게, 진실은 이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멍하니 은찬이가 전에 보냈던 음성 메시지들을 하나씩 들었다.

아이의 모든 말은 나를 비난하는 화살이었다.

하나하나의 음성메시지는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르는 듯했다.

나는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그 뒤 은찬이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직접 아이의 방에 들어가 재우려 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은찬이는 내가 태블릿을 몰래 보고 있다는 걸 감추려고, 달희와 채팅을 더 하고 싶어도 나와 눈을 맞추며 억지로 나에게 박자를 맞추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은찬이를 바라보았다.

마치 인형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아이.

은찬이도 그저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아무런 악의 없이.

하지만...

거짓말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더라도, 진실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다.

나는 내가 은찬이 엄마이기에, 비록 엄하게 키우더라도, 지금은 아이가 조금 답답해하더라도, 언젠가 은찬이가 자라면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은찬이가 나를 이렇게까지 미워할 줄은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슬픔과 분노는 어쩔 수 없었지만, 다행히 이성의 끈은 놓지 않았다.

나도 안다. 은찬이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걸.

은찬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인데, 엄마인 나를 이렇게 싫어하고, 오히려 서달희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혹시라도 있다면...

오직 한 사람, 내 남편, 배정빈 때문임이 틀림없다.

관련 챕터

  • 당신의 봄날처럼   제2화

    나는 태블릿을 손에 들고 은찬의 방을 나와 곧바로 배정빈의 서재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하필 그 사람이 서달희일까... 내가 처음으로 ‘서달희’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배정빈과의 결혼식 때였다. 그때 배정빈은 내게 참 다정한 신랑이었다. 혹시라도 내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그는 항상 다가와 부드러운 말투로 나를 위로하곤 했다.“괜찮아, 누구나 완벽할 수가 없는 법이야.”그리고 내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내가 마음을 추스르기까지 기다려 주었다. 내가 아픈 날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와 나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랑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배정빈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날, 나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성스러운 부케를 들며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과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배정빈의 친구들이 그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배정빈과 서달희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걸 보면, 당연히 둘이 결혼할 줄 알았지.” “맞아, 둘은 정말 하늘이 내린 한 쌍 같았어.” “정말 안타깝다.” 그 사람들이 말한 그 ‘안타까움’은 진심이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배정빈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배정빈에게 이 이야기를 물어보겠다고 결심하고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배정빈은 이미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몇번 말했지? 나는 이제 서달희를 잊었어!” “지금까지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말할게. 앞으로 내 앞에서 누구라도 서달희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그 사람 얼굴 안 봐!” 배정빈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정빈 씨는 서달희를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잊은 거야!’ ...‘그런데 지금의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3화

    배정빈은 다른 손으로 내 턱을 움켜쥐며, 강압적으로 내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막았다. 그리고 그는 입술을 내 입에 부딪혀오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들 거야.” ...은찬이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유치원생이다. 유치원 등원은 매일 아침 8시다. 유치원은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어서, 은찬이가 늦지 않도록 매일 7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6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오늘 아침 식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간단하게, 어젯밤 미리 준비해 둔 만두를 사용하기로 했다. 조금 손이 더 가는 건 국물이었다. 닭 육수를 바로 끓이기 때문이다. 나는 냄비 바닥에 생강 편을 얇게 깔고, 손질해 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담았다. 마지막으로 파로 매듭을 묶어 맨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을 덮고 센불에 올려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어오르자 뚜껑을 열자, 진한 닭 육수의 향이 뜨거운 김을 타고 코끝을 가득 채웠다. 소금을 약간 넣고 불을 낮춘 뒤, 약한 불에서 천천히 계속 끓였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나는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나섰다. 드레스룸으로 가서 오늘 입을 옷을 하나씩 골랐다. 배정빈과 은찬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조합을 신중히 찾아냈다.배정빈은 회사의 대표라 평소 출퇴근 복장은 늘 잘 갖춰 입어야 했다. 반면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라 편안하고 활동하기 쉬운 옷을 선호한다. 나는 두 사람을 위해 각각 옷을 고르고 배정빈과 은찬이의 방에 가져다 놓았다. 배정빈과 은찬이가 막 세면을 마칠 즈음이었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닭 육수를 덜어 만둣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미 뜨거워진 육수 덕에 금방 물이 끓기 시작했고, 세 사람 분량의 만두를 끓고 있는 육수에 넣었다. 만두가 익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은찬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고개를 돌리니, 은찬이가 태블릿을 들고 잔뜩 화가 난 얼굴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4화

    이 편지는 결혼하기 직전에 배정빈이 서달희에게 쓴 것일까? 그리고 다른 한 통은 서달희가 배정빈에게 보내온 답장이었다. [네가 보낸 편지, 내 편지봉투 안에 넣어 함께 돌려보낸다.] [정빈아, 나 지금 정말 행복하게 잘살고 있으니, 나를 축복해 주길 바라.] [그리고 앞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말아줘. 내 남편이 오해할까 봐 두려워.] 이 두 통의 편지를 읽고 나니, 그동안 계속 풀리지 않았던 모든 의문이 하나로 수렴했다. 서달희는 분명 배정빈의 ‘첫사랑’, 그의 마음속 깊이 각인된 첫사랑이었다. 그런데 배정빈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서달희를 증오했던 걸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청소하던 손에 쥔 대걸레를 더 꽉 움켜쥐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서달희가 한때 배정빈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배정빈은 서달희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에 애써 눈감고,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외면하며, 그저 그녀가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서달희는 배정빈을 다시 한번 냉정히 거절했다.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결혼식장에서 배정빈의 친구들이 서달희를 언급했을 때, 남편의 반응이 왜 그렇게 격렬했는지. 그러면 지금은? 이제 와서 이 편지들을 다시 꺼내놓은 이유는 뭘까? 혹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제는 서달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차가운 거절을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아내와의 삶에 집중하자.” 아니면, 뭔가 두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내를 버렸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서달희에게 달려간다고 해도, 서달희는 결국 그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갈등하고 있는 걸까? 미련과 두려움, 그리고 후회라는 감정의 무게가 나를 눌러오자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 고통 때문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마도 은찬이 말대로일 것이다. 배정빈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서달희뿐일지도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5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은 상태였다. 나는 놀란 눈으로 배정빈을 바라보았다. ‘분명 아까는 은찬이를 시어머니댁에 데려다줬다고 하지 않았어?’ ‘어머니는 은찬이 건강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데, 절대로 아이에게 함부로 음식을 주실 분이 아니야. 그런데 왜 은찬이가 병원에 갔다는 거지?’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를 물며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서달희는 대체 어떻게 은찬이 상태를 알고 있는 거야?’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치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둘씩 맞춰지며, 뭔가 다른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느 병원이야?” 배정빈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들며 물었다. 서달희는 전화 너머로 울먹이며 병원의 이름을 말했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수록,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내 모든 감정을 삼켜버렸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배정빈을 따라나섰다.그제야 배정빈은 내 존재를 알아챘다. 내 안색이 좋지 않다는걸,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처럼 보였겠지만, 그는 끝내 참고 침묵을 유지했다. 배정빈은 차 문을 열고 재빨리 운전석에 앉았다. 나도 조용히 조수석에 올라탔다. 가는 내내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은 무겁고 답답한 침묵으로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그 20여 분 동안,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뒤덮고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점차 정리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배정빈은 분명 아이를 데리고 나와 서달희와의 연락을 끊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눈을 피해 은찬을 서달희에게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눈치채지 않도록, 심지어 나와 둘째 아이를 갖자는 핑계를 내세워 내 경계를 허물어뜨리려 했을 것이다. 그의 이중적인 태도가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나는 창밖을 바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6화

    은찬이의 순진하고도 직설적인 말이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내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탈이 나서 가장 아픈 순간에도 은찬이는 자신을 병들게 만든 서달희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잠든 은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탈이 나서 지친 아이의 모습은, 몇 마디 말을 겨우 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배정빈 역시 은찬의 말을 들었는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여보.” 지금 나는 그의 말을 들을 기분이 아니어서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배정빈은 더욱 힘을 주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오늘 일은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일이야. 어머니가 제멋대로 아이를 맡긴 거고, 아이는 아파서 그런 말을 한 거니까...”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야.” 나는 은찬이를 안고 병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은 은찬이가 서달희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뭐든 다 좋아 보이겠지.”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뒤 덧붙였다. “그리고 은찬이에게 서달희와 접촉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으니 처음에는 당연히 강하게 반발하겠지.” “하지만 우리 은찬이는 본성이 착한 아이니까 내가 잘 이끌면, 누가 정말로 자신을 위하는 사람인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당신 약속 하나 해. 오늘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게.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 있으면 안 돼.” 나는 말을 멈추고 은찬이를 조금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배정빈은 아이를 안은 내가 힘들까 봐, 자연스럽게 은찬이를 내 품에서 받아 들었다. “알겠어. 약속할게, 여보.” 나는 배정빈의 품에서 곤히 잠든 은찬을 바라보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집에 도착한 뒤, 배정빈은 차를 세웠다. 은찬이는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어서 깨울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아들을 안고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배정빈은 이미 조수석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게.” 그러고는 아이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안았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7화

    은찬이는 작은 얼굴을 들어 배정빈을 올려다보았다. 눈물로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는 아이다운 순수함과 철없음을 담고 있었다. 안쓰러우면서도, 본능적으로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배정빈은 천천히 무릎을 굽혀 은찬이의 시선에 맞춰 앉았다. 이제 은찬이는 고개를 더 들 필요 없이 아빠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은찬이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아빠, 제발 약속해 줘요.” “넌 아직 어리잖아.” 배정빈은 아들을 아끼는 마음에, 손을 들어 은찬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배은찬, 너 이렇게 엄마에게 화내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은찬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해요!” 혹시라도 배정빈이 믿지 않을까 봐, 은찬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빠, 엄마랑 헤어지고, 달희 이모랑 살면 좋겠어요. 달희 이모가 제 엄마가 되는 게 제 소원이에요!” 아이는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배정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은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일어섰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은찬이를 바라보았다. 서달희와 한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이 단순한 변덕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아이의 격한 태도는 농담이 아니었다. 은찬이는 진심으로 서달희가 자신의 엄마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조건 헌신했던 이 엄마는? 버려져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아주 작은 무수한 바늘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고, 마치 수많은 개미가 내 심장을 갉아 먹는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무거웠다. “여보.” 배정빈이 다가와 나를 안고,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천천히 두드리면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은찬이는 아직 어려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거야.” 나는 수없이 스스로 다짐했다. ‘은찬이가 무슨 말을 하든,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아직 어린아이니까, 더 넓은 마음으로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8화

    유치원 정문에서, 수많은 학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 아들은 반복해서 나를 부인했다. 그러고는 서달희가 자신의 엄마라고 재차 강조했다. 내 가슴은 이미 갈가리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나는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각했다. ‘은찬이는 아직 어린아이다. 이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모를 뿐이야.’ 나는 은찬을 향해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은찬!” “너에게 마지막으로 선택할 기회를 줄게!” “잘 생각해 봐. 나와 저 사람 중에서, 누가 너의 진짜 엄마인지 제대로 선택해.” 모두의 시선이 은찬에게로 쏠렸다. 은찬은 서달희의 뒤로 몸을 숨긴 채, 이마를 그녀의 등에 붙이고 말했다. “당연히 내 엄마를 선택해야죠.”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달희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힐끔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안고 떠나려고 했다. “정말 미친 사람이네.” 나는 서달희가 은찬이를 데리고 그냥 가게 놔둘 수 없어서 급히 그녀를 따라가 막으려 했지만,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감정을 억제할 수 없던 나는 소리쳤다. “내 아이를 따라가야 해요! 제발 나를 막지 마세요!” 그러나 내 주변에서 터져 나온 소리는 모두 비난 일색이었다. “요즘 인신매매범 수법이 이 정도로 발전했나 보네?” “그러게, 저렇게 다급한 얼굴을 보면 친엄마인 줄 알겠어.” “진짜 말도 안 돼!” “앞으로 우리도 더 조심해야겠어.” “...” 경멸 어린 시선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나는 그 시선들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은찬이를 설득해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누군가 따라와 나를 막았다.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 그러나 서달희는 은찬이를 데리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내 앞을 막았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어떤 시민이 경찰에게 다가가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 아저씨, 요즘 인신매매범들이 얼마나 대담한지 몰라요.” “유치원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 당신의 봄날처럼   제9화

    배정빈은 약간 아쉬운 듯 대답했다. “나와 지나정 아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지나정을 속이고 몰래 서달희와 아들을 만나게 한 거구나?” 한 친구가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은찬이가 서달희를 엄마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너도 아이를 데리고 첫사랑과 다시 함께할 수 있잖아!” 사람들은 웃으며 떠들었다. “역시 머리회전 빠르네!” “이 정도까지 계산하고 움직인 거 보면 말이야.” ‘그러니까... 서달희가 은찬이를 만난 일은 다 배정빈이 계획한 거였던 건가?’ ‘어쩐지... 배정빈이 은찬이를 시댁에 보낼 때마다, 시어머니가 서달희 집으로 보내더라니...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쌓도록...’ ‘어쩐지... 유치원 선생님들이 서달희를 은찬의 엄마라고 불렀어.’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나 스스로를 속이고 용서하려고만 했지.’ 온몸이 떨려서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배정빈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달희?” “뭐라고? 은찬이가 자해를 했다고?” “기다려, 지금 당장 갈게!” 나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해졌다. ‘은찬이가 유치원 앞에서, 나와 서달희 중 결국 서달희를 선택했는데...’ ‘그러면 서달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으니 은찬이가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된 충격에 도저히 자리에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벽에 기대어 몸을 지탱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은찬아...” 그 순간, 배정빈이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오다가 나를 발견했다. 그도 순간 멈춰 서며 나를 바라보았다. 배정빈의 친구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도 당황한 듯

    최신 업데이트 : 2024-12-02

최신 챕터

  • 당신의 봄날처럼   제30화

    배정빈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아직 배정빈을 차단하기 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 어쩌겠어?” 내 태연한 대답에, 그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당신이 은찬이를 데리러 가지 않아서 아이가 유치원 앞에서 밤 9시까지 혼자 기다렸다가 결국 9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는 걸 알기나 해?”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건 나한테 따질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배 대표님.” “지금은 서달희가 은찬이 엄마잖아. 그리고 나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 멀리 바라보았다. 검푸른 밤하늘, 반짝이는 별빛과 저 멀리 펼쳐진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이고.” 내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배정빈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아직도 우리를 원망하고 있는 거야?] “아니.” 나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전 그냥 새 삶을 살고 있어... 굳이 과거의 사람들과 얽히고 싶지 않아.” “그쪽 생각은 어때?” 나는 더 이상 배정빈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전화를 끊은 뒤, 바로 그를 차단했다. 똑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곧장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기쁨이 긴 귀를 가진 토끼 인형을 안고 서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뒤에는 하지훈이 조금 곤란해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기쁨이가 단 걸 먹어서 밤에는 꼭 양치질해야 해요. 그래서 깨웠는데...” 그는 이마를 문지르며 덧붙였다. “엄마랑 같이 양치하고 싶다면서 고집을 부리네요.” 기쁨은 조금 민망한 듯 작게 말했다. “우리 반 친구들은 다 엄마랑 같이 양치한다고 했어요. 근데 내 엄마는... 같이 해준 적 없어요.” 아이의 소박한 바람을 내가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기쁨이는 엄마 방에서 양치하고 싶어, 아니면 네 방에서 하고 싶어?” 기쁨의 두 눈이 금세 반짝였다. “엄마 방에

  • 당신의 봄날처럼   제29화

    기쁨이는 하지훈 옆자리에 앉더니 옆에 있는 자리를 톡톡 손으로 두드렸다. “엄마, 여기 앉아요!” 나는 아이의 요청에 따라 옆에 앉았다. 기쁨이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소원 빌어봐요!”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기쁨이가 점점 더 건강해지길... 그리고 우리가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눈을 뜬 뒤, 나는 힘껏 촛불을 불어 껐다. 기쁨이는 즉시 내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몸을 내게 바싹 붙이며 물었다. “엄마, 무슨 소원 빌었어요?” 내가 대답하려던 찰나, 하지훈이 먼저 나 대신 말을 꺼냈다. “기쁨아, 소원은 입 밖으로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거야.” 기쁨이는 마음속에 담긴 궁금증을 숨기지 못하고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어린아이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아쉬워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나는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아이에게 건넸다. “그럼 먼저 케이크 좀 먹자.” 기쁨은 두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근데 아빠가 밤에 단 거 먹으면 안 된대요. 이가 상한다나 뭐라나.” 기쁨이는 마치 하지훈을 고발이라도 하듯 말을 덧붙이며 동시에 자신이 케이크를 먹을 수 없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하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훈은 어색하게 기침을 두 번 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조금 먹어도 돼.” “야호!” 하지훈의 허락을 받자마자, 기쁨은 행복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작은 포크로 케이크를 크게 한 덩어리 떼어 입안에 넣었다. 그녀의 큰 눈이 기쁨으로 반짝이며 말했다. “케이크 진짜 맛있다!” 기쁨이가 케이크를 먹는 동안, 나는 하지훈에게도 한 조각을 잘라 주고 마지막으로 내 몫을 잘랐다. 기쁨이가 케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배!” 하지훈과 나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외침에 맞춰 케이크를 들고 가볍게 부딪쳤다. 기쁨은 매

  • 당신의 봄날처럼   제28화

    상대방은 내가 은찬이의 보호자인지 물으면서도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배은찬 어린이의 담임교사입니다. 지금 수업이 끝났는데, 가족분이 아직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여쭤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예의 있게 상황을 물었다. ‘이혼 전까지만 해도... 서달희가 매일 은찬이를 적극적으로 데리러 다니지 않았나?’‘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달희는 벌써 아이를 내팽개쳤단 말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이제 그 가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나도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 저는 같은 반에 다니는 하기쁨 엄마이고, 배은찬과는 관계없어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선생님이 전화를 잘못 거신 것 같네요.” 선생님은 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나는 담담히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내 핸드폰 벨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배정빈의 전화였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죠?” 배정빈은 불편한 목소리로 물었다. [은찬이를 좀 데리러 가줄 수 있을까?] 엘리베이터 벽에 비친 내 모습은... 조금 전까지 미소로 가득했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안 돼.” 나의 부드럽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었다. “배 대표님, 혹시 잊었나? 이제 이혼한 사이잖아.”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니면,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마.” 배정빈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달희와 쇼핑 중이라...]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나는 차갑게 말을 끊었다. “굳이 나에게 보고하지 말고.” [하지만 아이가 아직 유치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무도 데리러 가지 않아서.] 배정빈은 내가 전화를 끊을까 봐, 한꺼번에 말을 쏟아냈다. [나는 지금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어. 나정아, 제발 부탁이야

  • 당신의 봄날처럼   제27화

    ‘나에게 사랑스럽고 속 깊은 딸이 생겼구나...’ ‘그리고 내 딸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거고...’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훈은 시선을 거둔 뒤 다시 일에 몰두하며 말했다. “방 정리는 아직 못 한 것 같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바로 정리할게요.” ... 내 방은 2층 동쪽 끝에 있었다.방은 넓었고, 별도의 드레스룸도 있었다. 채광이 아주 좋았고, 넓은 발코니까지 있었다. 지금은 커튼이 열려 있어, 햇살이 침대 위로 듬뿍 쏟아져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바로 정리하지 않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고요함과 마음의 평온을 한참 만끽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분히 쉰 뒤, 나는 옷걸이에 옷을 걸기 위해 여행용 가방을 드레스룸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옷장을 열자마자, 이미 옷으로 옷장 안은 가득 차 있었다. 드레스, 티셔츠... 다양한 스타일과 디자인의 옷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나는 다시 가방을 닫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외출 준비를 하던 하지훈에게 말했다. “대표님, 저에게 배정해 주신 방, 누가 이미 쓰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훈은 태연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 방은 나정 씨를 위해 준비한 방이에요.” 나는 내 방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드레스룸 안의 많은 옷들은 분명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런데 드레스룸에 옷이 많던데요?” “아.” 하지훈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말했다. “기쁨이가 나정 씨 온다는 얘길 듣고 엄청나게 신났었어요. 그래서 저를 졸라 같이 쇼핑하러 가서, 나정 씨에게 드릴 옷을 골랐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거실에서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묻던 하지훈의 말은 단순히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 당신의 봄날처럼   제26화

    입원 병동에는 환자들이 많았다. 병실이 부족해 복도에까지 환자들이 머무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환자들의 상태는 대체로 심각했고, 여기에 장기 입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입원했을 때는 이미 있던 환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내가 퇴원할 때도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나는 병동을 걷다가 금세 몇몇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쳤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물었다. “아니, 퇴원한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이야? 병원에 또 온 거야?” “며칠 전에, 제가 계단에서 떨어졌거든요.” 나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이 사람들이 뭔가를 봤거나, 그 사건을 촬영한 사람이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이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진 않아서 바로 대충 설명했다. “그때 계단이 너무 미끄러웠어요. 마치 누군가 고의로 저에게 무슨 짓을 한 것 같아서요.” “그래서 혹시 근처에 CCTV가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여기 CCTV가 있다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기록됐을지도 모르니까요.” 할아버지는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 “CCTV라면, 복도에 다 있어. 보안실에 가면 CCTV 화면을 볼 수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CCTV가 있다니, 이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지.’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바로 확인하러 가볼게요!” ... 병동의 비상계단은 거의 사람이 출입하지 않아서 조용한 곳이었다. 내가 떨어졌던 그곳은 이미 청소가 돼서 피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바로 내 머리 위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떨어졌던 지점 바로 위에도 또 다른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즉, 이 병원의 CCTV는 매우 촘촘히 배치돼 있었고, 심지어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비상계단에도 설치되어 있었다.이 사실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여서 나는 바로 보안실로 달려갔다. 나는

  • 당신의 봄날처럼   제25화

    유치원 선생님이 다가와 은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은찬아, 이분은 기쁨이 어머니이셔. 오늘 기쁨이를 데려다주신 거니까 오해하지 마.” “그럴 리가 없어요!” 은찬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반박했다. “이 아줌마는 분명히 제 엄마예요!” 나는 차갑게 은찬을 끊었다. “친구야, 가족관계를 함부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난 너 같은 아들을 둔 적 없으니까.” 은찬이는 놀라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선생님도 은찬이를 타일렀다. “지난번에 그분이 널 데리러 왔을 땐, 네가 모른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자기 엄마라고 하다니, 정말 이상하구나.” 은찬이는 내가 차에 올라타고 아무 미련 없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다. ‘엄마가 정말로 나를 버렸어! 이제부터는 마음껏 달희 엄마와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은찬이의 얼굴에는 처음 나를 보았을 때의 불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가득 차서 교실로 뛰어갔다. 기쁨이는 그런 은찬이의 뒷모습을 보며 불만스럽게 코웃음을 쳤다. ‘바보 같은 녀석. 자기가 얼마나 좋은 엄마를 놓쳤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 차가 달리고 있었다. 하지훈과 나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지훈은 나를 바라보며 뭔가 캐내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 시선을 느끼고 문득 불편해졌다. “대표님, 제가 왜 은찬이에게 그렇게 냉정하게 대했는지 궁금하신 건가요?” 하지훈은 부정하지 않았다. “네, 그 아이... 그래도 나정 씨의 친아들이잖아요.” 나는 그제야 하지훈이 내가 계단에서 떨어진 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당시 사건의 전말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치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덩어리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달희가 계단에 미리 손을 써 놨어요. 그런데 제 친아들인 은찬이는 제가 떨어지는 걸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쳤어요.” “그 이유는 단 하나, 제가 자기 아빠랑 이혼해서 서달희랑

  • 당신의 봄날처럼   제24화

    나는 하지훈을 바라보자 하지훈이 덧붙였다. “게다가 둘은 같은 반이에요.” 기쁨은 뭔가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기쁘게 말했다. “저는 우리 반에서 모든 친구를 다 관찰했는데, 은찬이가 가장 잘 돌봄을 받고 있어요!”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은찬이 엄마가 내 엄마가 되어주면 정말 좋겠다고요!” 기쁨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 ‘기쁨이는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 있지?’ 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차가웠던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기쁨이의 동그란 얼굴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축하해.” 기쁨은 멍청히 웃으며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하 대표님, 제가 이미 기쁨이 엄마가 되기로 했으니, 진짜 엄마처럼 기쁨이를 책임지고 유치원에 등원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하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치원에 누가 있든 상관없어요. 제가 기쁨이 등·하원 다 시킬 거예요.” 하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부탁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 기쁨이가 나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만 봐도, 아이가 많이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집에 있는 다른 어느 누가 말을 걸어도, 기쁨이는 여전히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심지어 하지훈이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의사표시를 하는 정도였다. 나는 차 안에서 옆에 앉아 있는 기쁨을 보며 깨달았다. ‘하 대표님이 왜 굳이 나를 기쁨이 엄마로 고용하고 싶어 했는지... 이제 알겠어.’ ‘내가 아니었다면, 이 아이의 상태는 더 나빠질 수도 있었을 거야.’ 차가 유치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기쁨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지난번 사건 이후로 나를 알아본 듯했다. 선생님들은 모두 경계심을 품고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훈은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고

  • 당신의 봄날처럼   제23화

    기쁨이의 방은 매우 넓었고, 마치 애니메이션 속 공주님의 방처럼 정교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쁨이는 겹겹이 레이스를 쌓아 올린 공주 드레스를 입고, 긴 귀를 가진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등지고 카펫 위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하지훈은 서둘러 기쁨이를 달래려 애썼다. “기쁨아, 누가 왔는지 보렴.” 기쁨은 고개만 돌렸을 뿐, 하지훈을 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훈은 나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이건 내 일이긴 하지만, 나는 늘 딸을 갖고 싶었다. 기쁨이는 정말로 마치 작은 공주 인형 같았다. 이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기쁨이에게 애정이 생겼다. 나는 일부러 고민하는 척하며 말했다. “아, 기쁨이는 엄마를 환영하지 않는구나.” 기쁨이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작은 발걸음으로 나에게 달려왔다. 기쁨이는 기뻐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왜 엄마랑 말하지 않아? 혹시 엄마가 싫어서 그러는 거야?” 기쁨은 다시 고개를 저으려다, 자칫 내가 오해할까 두려웠는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저는 엄마 엄청나게 좋아해요.” “엄마도 기쁨이 좋아해.”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말했다. “그리고 기쁨이 목소리 듣는 것도 좋아. 그러니까 기쁨이가 엄마랑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겠니?” 기쁨이는 작은 어른처럼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요, 알겠어요.” 기쁨은 오랜 시간 입을 닫고 지냈기 때문에, 갑자기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천천히 이끌며 물었다. “들었는데, 요즘 기쁨이 밥 잘 먹지 않는다며? 지금 배고프지 않아?” 기쁨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손으로 배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응!”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밥 먹으러 갈까?” 기쁨은 처음에

  • 당신의 봄날처럼   제22화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배정빈의 눈빛은 복잡했다. “나정아... 돌아왔구나. 그 사람이... 당신을 해치진 않았지?” ‘허! 정말 가증스럽군!’ 이제 와서 내가 다른 남자와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식적으로라도 ‘여보’라고 부르지도 않는군! “아, 그 사람은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냥 앉아서 잠깐 대화만 나눴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진실을 말했다. “미안하다... 나정아,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배정빈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얼굴로 가식적인 사과를 늘어놓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가 믿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조현석은 앞으로 서달희의 악행을 폭로하는 데 중요한 증인이 될지도 모르기에, 굳이 배정빈에게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배정빈을 무시하고 나는 옆에 있는 창고에서 내 여행 캐리어를 꺼내왔다. “가자.” 이혼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증거를 모을 것이다. 배정빈 부자가 이 가짜 행복에 취해 있는 동안, 그 모든 진실을 한순간에 드러내고 말 것이다.‘배정빈 부자가 그때도 과연 지금의 이런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 참 궁금하군.’ ... 이번에는 배정빈이 매우 협조적으로 나와서 순조롭게 협의이혼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여행용 가방을 들고 떠나려 했지만, 배정빈은 내 뒤를 따라왔다.“나정아, 어쨌든 내 잘못이야. 하지만 당신이 나랑 이혼하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잖아. 게다가 당신은 직장에서 일해 본 경험도 없으니, 밖에서 일을 구하기 어려울 거야.” “내 생각인데, 우리 집에 와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건 어때? 내가 월급 줄게.” ‘뭐? 너희 네 식구를 위해 일하면서 눈치까지 보며 살라고?’ ‘내가 그렇게 비참해 보이니? 네 맘대로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존재야?’ 나는 배정빈은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배정빈, 참 뻔뻔하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배정빈은 자신의 호의를 무시당했다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