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생일날, 나는 선물을 가지러 가던 길에 사고가 났다. 그리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기에, 간단히 붕대를 감고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생일 파티는 끝난 상태였다. 남은 건 내가 치워야 할 어질러진 흔적뿐이었다. 아무도 내 팔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옷은 다 빨았는지, 밥은 준비되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아침을 준비하는데 늦었더니, 아들과 며느리는 나를 게으르다고 욕했다. 나는 마음이 상해 친구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려 했으나, 그들은 내가 나이 먹고도 고집을 부린다고 말했다. 게다가 남편은 가정부와 사랑에 빠져, 나와 이혼하자고 했다. ‘그래, 까짓것 이혼해.’ 끝도 없이 반복되는 집안 일과 빼앗긴 월급, 그리고 가족들의 무관심, 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더 보기나는 별 감흥이 없이 듣고만 있었다.준우를 데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원래 우리는 그저 아이를 두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정은 호기심이 들어 나를 붙잡고 무슨 일인지 몰래 엿보려 했다.“이것 좀 봐요, 엄마가 있을 때는 모든 일이 잘 풀렸는데 지금 이게 뭐예요! 몇십 년을 모았던 돈을 모두 사기당하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이제 와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네 엄마는 내가 혼자서 쫓아낸 거 아니야, 너도 도와줬잖아. 어쨌든 난 네 아빠니 너희들이 날 책임져야 해.”싸우는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친구는 자기의 곱슬머리를 만지며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갔다.“어머, 싸우는 중이었네?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얼마 전 결혼했다면서 그새 사기당해서 돈을 다 잃은 거야?”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집 안은 내가 떠날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문을 열자마자 악취가 퍼졌고, 온 집안이 쓰레기장과 같았다. 마치 도둑맞은 집 같았다.정아는 한쪽에서 피곤에 찌들어 앉아 있고, 준혁은 눈에 띄게 초라해졌다.그 짧은 두 달 사이, 나는 이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우리가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준혁은 빠르게 나를 향해 달려왔다.“엄마! 제발 도와줘요, 저도 정말 어쩔 수가 없어요. 아빠 돈은 모두 그 여자한테 사기당했어요.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저랑 정아는 빚쟁이들 때문에 일자리마저 잃고 말았어요. 엄마, 제발 좀 도와주세요!” 준혁은 비참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난 더 이상 마음 약해질 리가 없었다.나는 그 모습을 보고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한발 물러서기까지 했다.“내가 무슨 수로 너희를 도와주겠어? 이혼할 때 나한테 딱 200만 원만 줬잖아, 그 돈은 이미 다 써버려서 나도 돈 없어.”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말했다. ‘돈이 있어도 너한텐 안 줘.’미정도 뒤로 물러서며,
“넌 어떻게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엄마를 찾으러 오는 거야? 도저히 애를 못 돌보겠으니까 찾아온 거잖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우린 네 아이 돌봐줄 시간도 생각도 없어! 애초에 너희 엄마 필요 없다며 내쫓은 건 너희야!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당장 나가라고!” 미정은 나 대신 거침없이 말하며 준혁을 재빨리 쫓아냈다.문이 닫히자, 미정은 돌아서서 나를 한 번 살펴봤다. 내가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던 그녀는 안심하고 나를 놓아주었다.나는 더 이상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마음 한구석에 조금의 연민이 생겼던 건 사실이었다.그러나 그동안 내가 겪어온 아픔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우리는 다시 해외여행 준비에 몰두했다.며칠 후, 준혁이가 또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아이를 데리고 왔고 아주 가엾어 보였다.“엄마, 제발 준우를 며칠만 봐주세요. 집에 난리가 나는 바람에 저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어요.”준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를 던져두고 도망갔다.나는 어이가 없어서 달려가 아이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 준우가 내 다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그 뚱뚱한 아이가 내 다리를 잡고 있었기에 나는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할머니! 저 버리실 거예요?”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나는 썩을 노인네잖아. 넌 엄마, 아빠와 할아버지를 좋아하니까 나 말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가.” 그러자 준우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아니에요, 전 할머니가 좋아요.”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이때 미정이 다가와 준우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그가 불편해하든 말든 바로 옆으로 던져버리고 나를 풀어주었다.“냄새나는 할머니 찾지 말고 얼른 네 집으로 돌아가!”“할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도망갔고, 엄마 아빠는 매일 싸우고 있어요. 집에 돌아가기 싫어요! 저 할머니가 해준 밥 먹고 싶어요!”‘어린놈이 감히 날 부려먹으려 해?’나는 준우를 무시했고 미정이 대신 말했다.“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야? 여기
“200만 원?”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나와 네 아버지의 공동 재산엔 그 집도 포함되어 있어.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으면, 재산은 당연히 반으로 나누는 게 정상 아니야? 200만 원은 절대 안 돼.”한때 가장 가까웠던 세 사람은 몇백만 원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었다.사실 나는 진짜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부부 공동 재산도 이제 아들에게 다 보태줬고, 내가 원하는 건 그저 그들에게 엿을 먹이는 것이었다.서로 돈을 가지고 싸우며 그들이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본 후 나는 입을 열었다.“그래, 200만 원만 받을게. 하지만 나머지 남은 공동 재산은 준혁이에게 주는 게 좋겠어. 그리고 당신이 나머지 돈 가지고 여자를 만나든 말든 더 이상 신경 안 쓸게.”내 말을 듣자 준혁의 눈이 반짝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우리는 무사히 이혼 절차를 마쳤고, 곧바로 법원에 갔다.우리는 합의 이혼이었기에 30일 후 정식적으로 이혼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나는 드디어 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이혼했어! 지금 이사할 거니까 와서 좀 도와줘!”미정은 차를 몰고 빠르게 도착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그녀의 운전 실력은 여전히 뛰어났다.미정은 나이가 들어 보이긴 하지만, 다른 방면들은 전혀 노인 같지 않았다.그녀는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걸어오는 내게 다가와서 귀중품은 챙기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축하해, 58살의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네!”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꽉 안았다.“고마워.”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미정과 나는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젊은 사람들이 가는 맛집과 술집도 다녀봤다. 술집은 너무 시끄러워서 별로였지만, 온천은 정말 좋았다. 처음 해 본 경험들이 많았기에 모두 소중하고 특별했다.우리는 여행도 갔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돈 걱정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내 이제야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된 것 같다고 느꼈다
서정국이 화를 내며 말했다. 원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해야 했지만, 그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기에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아버지! 약속한 대로, 제가 엄마와 이혼하는 걸 도우면 저에게 2,000만 원을 꼭 주셔야 해요. 전 그 돈이 정말 필요해요.”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굳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이혼? 2,000만 원?“그럼, 그동안 내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모았거든. 하지만 내가 설아랑 결혼하는 건 반대하지 말아야 해.”그 뒤의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나는 그때 정말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했다.고작 뇌경색이라는 말에 또다시 돈을 내어주다니.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속고도 다시 속을 줄은 몰랐다.나는 길을 떠돌며 오후 내내 생각했다.많은 것을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이 일은 미정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이번만큼은 정말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배달로 삼계탕을 주문해서 병원으로 갔다.서정국은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병약한 척을 하고 있었고 준혁이가 나를 병실로 데리고 나갔다.그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계속해서 몸을 움찔거리며 나를 보았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갔지만 우선은 기다리기로 했다.결국, 준혁이가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엄마랑 아빠는 몇십 년 동안 하도 싸우셔서 더 이상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거 아니에요?”나는 한숨을 쉬며 옷깃을 탁탁 털었다.“오래 살다 보니까, 그런 것 다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다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준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아빠가 깨어나셨을 때 엄마와 이혼하고 싶다고 하셨어요.”나는 고개를 돌려 준혁을 보았다. 내가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자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엄마,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사실 미정이도 최근에 나더러 이혼하라고 권했었어. 하지만 난 우리 아들이 걱정돼서 그
나는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 준우의 울음소리를 듣고 준혁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어쩌면 그 기억들이 정말로 필터를 거쳐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내 머릿속에서 과거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화가 나고 분했던 순간들이, 이제는 마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때의 내 분노가, 어쩌면 너무 지나쳤던 걸까?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머릿속을 떠다녔다.미정은 나와 함께 병원에 갔다.병실 안, 그곳에는 서정국이 누워 있었다. 얼굴이 야위고, 기력이 다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준혁은 눈이 부었고, 피곤한 얼굴로 밤을 새우며 서정국을 지키고 있었다.미정은 더 이상 거친 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준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넌 집에 가. 엄마가 여기 있을게.”준혁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마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미정의 집에서 지내며 내 상처는 어느 정도 나았지만,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시작부터 끝까지,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바쁜 하루였다. 준혁은 음식을 가지고 오며 드물게 내게 신경 써주는 모습을 보였다.“차라리 간병인이라도 부릅시다. 엄마 너무 힘들어 보이세요. 저희는 하도 바빠서 도움이 안 되는데, 엄마 혼자서 힘드시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그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이게 내가 거의 60년을 살아온 인생에서 처음 듣는 아들의 배려였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복잡한 감정. 살짝 씁쓸하고, 마음이 아렸다.“가정 형편이 나빠 보이진 않는데, 차라리 간병인을 쓰세요. 나이도 있으신 분이 자기 건강부터 챙기셔야죠. 간병인을 부르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옆 침대에 누워있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가 부러워하며 말했다. 그 여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은 지쳐 보였다.아마도 준혁이가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보인 것도 있었고, 미정의 덕분에 돈 쓰는 습관도 조금 바뀐 탓일지도 모르겠
미정은 화를 내며 불을 끄고, 손을 허리에 올린 채 내게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엄마! 왜 아침에 준우를 학교에 안 보냈어요? 준우 선생님한테서 전화까지 왔잖아요!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어떻게 깜빡할 수 있어요? 요즘 학업이 얼마나 중요한데,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냐고요!]내가 설명하려 입을 열자, 미정이가 갑자기 손을 뻗어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네 아버지는 어디 덧나기라도 했어? 다 큰 어른이 네 아들 하나 학교에 못 보내? 넌 무슨 일만 생기만 엄마한테 맡겨놓는 거야? 네 엄마가 가정부야? 가정부는 월급이라도 주는데 너 한 번이라도 네 엄마한테 용돈 준 적 있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 네 엄마는 앞으로 너희 집 가정부 노릇 관두고 나랑 살 거니까, 네 집안일은 너희가 알아서 처리해!”미정은 나이가 거의 60이 되어갔는데, 욕을 할 때 여전히 힘이 넘쳤다. 나보다 훨씬 더 기운이 넘쳐 보였다.미정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쌓였던 답답함을 씻어내는 듯했다.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토닥였다.“밥 먹자, 나 배고파.”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았기에,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나는 미정의 집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짐은 별로 챙겨오지 않았다.미정은 새로 사라고 했지만, 나는 항상 절약하는 버릇이 있어 차라리 집에 가서 몇 벌의 옷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미정은 나를 데리고 차에 올라탔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족들이 식탁에 앉아 배달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준우는 배가 고팠는지, 아주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할머니가 만든 음식보다 100배 더 맛있어!” 미정은 차갑게 웃으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하하, 그렇게 맛있으면 매일 시켜 먹어! 누가 너희들을 챙겨줄 것 같아?” “아주머니, 준우는 아직 어린애잖아요. 뭘 그렇게까지 까칠하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께서 하신 음식보다 훨씬 맛있는 건 사실인데 뭐가 문제죠?”준혁의 말을 듣자 나는 눈썹을
준혁은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방 문을 닫고 나갔다. 그의 뒤를 이어, 거실에서 정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밥은 왜 또 안 하신 거야. 또 나가서 먹어야 되네. 어머니 진짜 너무 게으르신 거 아니야?”준혁이가 작은 목소리로 정아를 달래자 곧 조용해졌다. 그들은 출근을 했다.그러나 곧이어, 근처에서 서정국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정말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그런데 왜?왜 내가 모든 집안일을 해야 하는 걸까?내가 팔을 다친 바람에 밥을 못 했을 뿐인데 왜 게으르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그 누구 하나 내 고생을 알아주지 않는 걸까?갑자기 너무 지쳐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귀 옆에서 들리는 서정국의 코 고는 소리와 머릿속에서 맴도는 오늘 해야 할 일들.마치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 밀폐된 방 안에 갇혀 숨을 쉴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래도 나는 일어났다.힘겹게 옷을 갈아입고, 준우를 깨우기 위해 방으로 갔다.준우는 유난히 깊게 자는 아이였다.한참을 불러야 겨우 일어났지만, 시간이 다 돼 가고 있었다.내가 수건을 적셔 준우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지만, 준우는 화를 내며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째려보았다.“만지지 마요! 전 할머니 싫어요!”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다가갔지만, 준우의 반응은 더욱 거세졌다.“썩을 노인네! 할머니는 그냥 우리 집 보모에요! 보모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예요! 내가 아빠한테 할머니를 쫓아내라고 할 거예요! 할머니 말고 다른 보모로 바꿀 거예요!”손자의 터무니없는 말에, 내 마음속에서 쌓아 온 모든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눈물이 나려고 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내가 이렇게 많은 걸 바쳤는데, 이 집엔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나는 젊었을 때 일을 하면서 시부모와 남편을 챙기고, 하루 세 끼 밥을 짓고 빨래하고 시부모 옆에서 효도도 하며 아이까지 키웠다.나는 몇 번이고 팔이 여덟 개였으면 좋
사고를 낸 운전자가 집으로 전화를 수십 통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마 다들 바쁜가 보네.’손자의 생일을 축하해 주느라, 아마 나를 잊었을 것이다.간단하게 응급처치를 받은 후, 운전자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서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대화가 들렸다.이 집은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내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손에 쥔 열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모두 그냥 차분하게 나를 쳐다보았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밖에서 뭐 하다 늦은 거야? 애 생일인데 그런 것도 신경 안 써?”남편이 불평을 시작했다.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손자를 바라보았다.“준우야, 할머니가...”‘금 팔찌를 하나 샀어.’“어머니께서 너무 늦게 돌아오셔서 저희끼리 이미 식사 마쳤어요. 나머지 좀 치우신 다음 먹을 것 좀 있나 한번 살펴보세요.”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며느리, 임정아가 내 말을 끊고 준우와 함께 식탁에서 일어났다.준우는 여전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남편, 서정국은 이쑤시개로 치아를 이리저리 쑤시며 일어나서 말했다.“방금 치킨 먹어봤는데 맛없더라. 네가 먹고 난 후 식탁 치워.”1분도 지나지 않아, 식탁 위의 웃음소리와 떠들썩함은 사라졌다.역시나 내 존재가 그들의 즐거운 분위기를 방해한 것 같았다.나는 식탁 위에 흩어진 뼈다귀들, 먹다 남은 산산조각 난 케이크, 한 입 물었던 치킨을 보고 있었다.참으로 아이러니했다.내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 차, 붕대로 감긴 팔을 내려다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팔은 내 가슴 앞에 걸려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조차 묻지 않았다.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나서야, 한 손으로 일어나 힘겹게 치우기 시작했다.한 팔을 움직일 수 없었기
사고를 낸 운전자가 집으로 전화를 수십 통 걸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아마 다들 바쁜가 보네.’손자의 생일을 축하해 주느라, 아마 나를 잊었을 것이다.간단하게 응급처치를 받은 후, 운전자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서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대화가 들렸다.이 집은 내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내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손에 쥔 열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제야 그들은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나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미안해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리 모두 그냥 차분하게 나를 쳐다보았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 밖에서 뭐 하다 늦은 거야? 애 생일인데 그런 것도 신경 안 써?”남편이 불평을 시작했다.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 손자를 바라보았다.“준우야, 할머니가...”‘금 팔찌를 하나 샀어.’“어머니께서 너무 늦게 돌아오셔서 저희끼리 이미 식사 마쳤어요. 나머지 좀 치우신 다음 먹을 것 좀 있나 한번 살펴보세요.”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며느리, 임정아가 내 말을 끊고 준우와 함께 식탁에서 일어났다.준우는 여전히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남편, 서정국은 이쑤시개로 치아를 이리저리 쑤시며 일어나서 말했다.“방금 치킨 먹어봤는데 맛없더라. 네가 먹고 난 후 식탁 치워.”1분도 지나지 않아, 식탁 위의 웃음소리와 떠들썩함은 사라졌다.역시나 내 존재가 그들의 즐거운 분위기를 방해한 것 같았다.나는 식탁 위에 흩어진 뼈다귀들, 먹다 남은 산산조각 난 케이크, 한 입 물었던 치킨을 보고 있었다.참으로 아이러니했다.내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 차, 붕대로 감긴 팔을 내려다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팔은 내 가슴 앞에 걸려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조차 묻지 않았다.나는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나서야, 한 손으로 일어나 힘겹게 치우기 시작했다.한 팔을 움직일 수 없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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