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 부모님의 사고에 대해 조사해보셨어요? 도대체 타살인지 사고인지 알고 계신가요?” 희영이 물었다. 두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그 당시의 사고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제 부모님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면서, 오히려 원장님이 저를 해쳤다고 단정짓는 건가요? 힘 없는 사람만 골라서 괴롭히시는 거예요?” 희영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이런 상황이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다른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만약 원장님이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면, 제가 죽었을지도 모르잖아요.” 두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희영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고귀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손에 막대한 권리를 쥐고 있으며, 단순히 임서향에게 화풀이를 하려던 것이다.“당신들은 원장님이 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괴롭히셨던 거잖아요. 곧 죽을 사람인 데다가, 원장님이 절 사랑하는 걸 이용해서...” 희영은 수화를 멈추고 주먹을 쥐었다. 임서향이 조금이라도 이기적이었다면 진작에 희영을 찾아왔을 것이다. 굳이 숨을 거두기 직전에 자신을 만나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아가야, 그렇게 흥분하지 마.” 송혜정이 당황한 듯 말했다. “저는 당신들의 아이가 아니에요.” 희영은 잠시 진정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천천히 수화로 말했다. “원장님은 이미 죽었어요, 잊으셨나요?” 송혜정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희영아!” 서준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송혜정을 바라보았다. 희영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오늘 온 이유는 원장님을 위협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 외에도, 두 분께 말씀드릴 게 하나 있어요.”“희영아, 너 지금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방에 가서 잘 생각해보고 다시 내려와서 이야기하려무나.” 서준모는 경고하는 눈빛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희영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이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희영에게서 고인이 된 딸의 그
희영은 그들의 반응에 매우 만족했다. 오히려 임서향이 몇 년 동안 혼자서 겪었던 고통과 비교하면,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희영은 약간의 예의는 갖추었지만 그리 친절하지 않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인사한 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아가야! 돌아와!” 송혜정이 서둘러 그녀를 쫓았다. 그러나 발을 헛디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서준모가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아주었다. 희영은 몇 걸음 밖에 가지 않았기에 뒤에서 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으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다. 저택을 나서려던 찰나, 기현이 급히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엄청 어두웠다. 희영을 보자 화를 내려고 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 자국을 보자 마음이 저릿해졌다. 희영은 기현을 보지 못한 것처럼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를 쳐다보거나 멈출 생각이 없었다. 기현은 희영의 팔을 붙잡고 강하게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힘이 엄청나서, 하마터면 희영의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 희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 차려입은 모습과 익숙한 시선이 귀찮기만 했다. “허희영, 이혼은 네가 원해서 한 거잖아. 절차를 밟을 땐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으면서, 지금 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왜 우는 거야? 내가 이혼을 강요한 건 아니잖아?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기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희영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며 중지를 세웠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기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희영의 모습에 당황했다. ‘어르신들께 이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러 온 게 아닌가?’ ‘왜 이런 태도를 보인 거지?’ 기현은 주아가 보낸 메시지를 받은 뒤 회의를 중단하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다급했던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여보!” 그때 거실에서 서준모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현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건강했던
“기현아, 희영이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서준모가 천천히 말했다. 기현은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두 분을 찾으러 온 게 아니었나요?” “우리에게 이혼한다고 통보하러 온 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와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어.” 서준모는 더 이상 기현을 쳐다보지 않고 피곤한 눈빛으로 그를 내쫓았다. “네가 그동안 늘 못되게 굴었으니 상처받은 거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상대를 만나 결혼해. 우린 더 이상 간섭하지 않을 거야.” 모두가 서씨 가문의 두 노인이 딸의 죽음으로 유씨 가문의 사람들, 심지어 기현마저 원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현은 결국 그들의 외손자였다. 딸을 그렇게 사랑했으니, 기현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서준모는 정훈에 관한 이야기를 기현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대역이라는 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현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이미 헤어지기로 결정했으니, 이 비밀은 이쯤에서 묻어두기로 했다....서씨 저택을 떠난 희영은 임시로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돌아갔다. 그녀는 차가운 물로 얼굴의 눈물을 씻어냈지만, 가슴이 여전히 아팠다. 희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저녁에 무용단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어서, 그녀는 울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때 기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희영은 바로 끊어버린 후, 그를 차단했다. ‘멍청한 놈, 내가 말할 줄 모르는 걸 알면서 전화를 해? 그냥 날 혼내려고 걸어온 전화겠지?’ 내일 고급 ‘정신병원’으로 휴가를 가야 하니, 희영은 밤에 늦게 돌아오는 게 걱정되어 미리 짐을 챙겼다. 짐을 다 정리한 후, 기현에게서 카톡이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외할머니가 너 때문에 쓰러지셔서 지금 병원에 있어.] 기현이 곧이어 주소를 보내왔다. 그곳은 서씨 가문이 투자한 개인 병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 임서향은 희영을 집
서씨 저택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희영은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다. 수화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희영이 두 사람과 싸웠다는 것을 눈치채고, 결국 송혜정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서미래는 신이 나서 허벅지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주아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다. 주아는 매우 기뻤다. 희영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서씨 가문의 두 노인뿐인데, 이제 송혜정을 입원하게 만든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 내가 돌아오자마자, 허희영은 이혼 서류에 서명할 뿐 아니라, 서씨 가문의 어르신들과 크게 싸우기까지 했어! 기절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아는 행복해서 입이 귀에 걸렸다. 송혜정이 항상 그녀를 싫어했으니, 주아는 그동안 늘 송혜정을 저주해왔던 터였다. 송혜정이 믿었던 희영에게 배신당한 모습을 보니, 주아는 두 배로 기뻤다. “이럴수록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유기현이 이혼을 마치기 전까지 옆에 딱 달라붙어야 해!” 허창석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씨 가문은 흔들리고 있었기에, 서씨 가문과 기현이 가끔 주는 도움으로는 도저히 부족했다. 허창석은 허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희영은 단 한 번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주아는 달랐다. 주아가 기현과 결혼하게 된다면, 허창석은 기현에게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이혼 서류에 서명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 희영이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희영이 서씨 가문의 두 노인과 싸우며 송혜정을 기절시켜서, 기현이 더는 참지 못하고 이혼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졌다. 이에 대해 희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에도 G시의 재벌가 아가씨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비꼬는 말들을 들을 일도 없었다. 희영은 간단히 정리한 후, 저녁 모임에 나갔다. 미나는 삶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화려하고 낭만적
내일 무용단은 새로운 순회공연을 위해 해외로 떠날 예정이다. 총 3개월 기간이다. 모두 아쉬워하며 희영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언니, 돌아올 때 선물 가져다 줄게요!” “나도나도! 언니 뭘 좋아해요?” 모두 저마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희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애들이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돼. 난 아무거도 필요없어. 고마워 애들아.” 그러자 모두 다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마지막으로 희영은 한 사람씩 차에 태워 주었다. 미나가 술을 마셨기에, 희영은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희영 씨, 얼른 타. 먼저 데려다줄게!” 미나가 비틀거리며 말했다. 희영은 집 방향이 다르다며 손을 흔들었다. 주아는 명함을 희영의 손에 쑥 밀어 넣었다. “내 친구야, 내가 잘 부탁해놨어.” 희영은 방금 레스토랑에서 주아에게 자신이 G시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기에, 그녀가 술에 취해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주아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친구는 전국에 댄스 학원이 있어! 그러니 G시를 떠나서 어디서 살지 말해주면, 자리를 마련해줄 거야!” 말이 끝나자, 주아는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정말 걱정이야. 희영 씨는 말도 잘 못하고, 성격도 이렇게 부드러운데다가 이렇게 예쁘기까지 하니, 나쁜 사람한테 괴롭힘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희영은 그녀를 위로하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출발하라고 손짓했다. 주변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희영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허전해져 명함을 한 번 보고 가방에 넣었다. 택시를 부르려던 찰나, 뒤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비쳤다. 희영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역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희영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지만, 차가 그녀 옆에 멈췄다. 희영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 기현과 눈을 마주쳤다. 조수석에는 주아가 앉아 있었다. “언니! 나와 기현 오빠도 방금 정원 레스토랑에서 식사했어! 언니가 잘생긴 남자랑 춤추는 거 봤어, 정말 멋지더
기현은 병원을 나설 때 기분이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넘쳐오르는 화는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희영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솟구쳤다. 희영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현은 곧 희영이 무용단 동료들과 함께 유명한 정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쯤 주아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아는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며 기현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현은 정원 레스토랑에 자리를 예약한 뒤 주아를 데리고 갔다. 무용단이 예약한 자리는 무대 쪽 긴 테이블에 위치해 있었다. 기현은 그곳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지만, 희영은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기현은 전혀 다른 희영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의 희영은 항상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녀는 크게 웃고 있었다.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둘 희영에게 다가가고, 곧 희영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춤을 추게 했다. 그 남자와 춤추는 희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기현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때 주아가 말했다. “기현 오빠, 희영 언니와 저 남자 너무 가까운 거 아니에요? 설마 언니가 그렇게 서둘러 이혼하려는 이유가...” 주아는 입을 가리고, 진실을 알아챈 듯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현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밥이나 먹어.” 주아는 가볍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틀 동안 기현은 계속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람 마음이 정말 갑자기 변할 수 있는 걸까?’ ‘혹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라면?’ 이런 생각이 들자 희영의 경쾌한 춤사위와 빛나는 미소가 더욱 날카롭게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허희영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때?’ ‘어차피 난 허희영을 사랑하지 않고, 이혼도 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잖아.’ 하지만 가슴속의 화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전, 기현은 일
“정말 G시를 떠날 생각이야?” 기현이 갑자기 물었다. 그는 차 안에서 희영이 미나와 대화하는 모습을 듣고 있었다. 희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 손을 높이 들어 다시 중지를 날렸다. 벙어리도 장점이 있었다. 쓸데없는 설명을 줄일 수 있었기에, 욕할 때도 간결하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일 ‘정신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예정이니, 이혼 판결이 나기 전에 기현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기현 오빠, 괜찮아요?” 희영이 떠나자 주아가 다가와 기현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분명 언니가 잘못한 건데 왜 오빠한테 손을 댄 거죠? 역시 허희영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기현은 주아의 손길을 피했다. “병원에 데려다줄게.” “기현 오빠!” 주아는 손을 떨구며 기현의 뒷모습을 보며 투정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기현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차로 돌아갔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허희영이 날 때린 건 처음이야.’ ‘감히 날 때리다니...’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와 허주아를 언급하다니...’ 주아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기현은 차 안에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였기에 주아조차도 조금 겁을 먹을 정도였다. 기현은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다. 3년 전의 기현은 여전히 순수하고 활기 찬 재벌가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고작 3년 만에, 기현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주아는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희영이 기현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기현이 쉽게 희영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기현은 언제나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지만, 희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늘 격하게 다투었다. 심지어 희영에게 한 대 맞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를 기르더라도 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괜찮아! 난 최대한 빨리 희영을 기현의 삶에서 완전히 떼어 놓고,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앞으로는 영원
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준은 가벼운 음악을 틀어 놓았고 차 안은 은은한 향기로 가득했다. “요양원 근처에 대중교통이 없으니, 밖으로 나오고 싶으시다면 저한테 말해줘요. 제가 차로 데려다 줄게요. 제가 그쪽에 없다면...” 서준이 희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운전면허는 있어요?”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서준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였기에, 희영은 심리적 장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살 때 배워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무서워서 극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배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훈은 정말 대단했다. 운전면허를 만점으로 한 번에 합격했으니까. 정훈은 희영에게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가 항상 곁에 있을 테니, 희영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 줄 거라고 말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희영 씨의 기사가 되어야겠군요.” 희영도 웃으며 약속했다. “그럼 제가 밥 사 드릴게요.” 두 시간이 지나자, 차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희영은 브로셔를 읽어봤는데, 보통은 홍보 차원에 미화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풍경은 브로셔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희영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자연이 그녀의 몸속의 모든 불순한 기운을 정화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 정말 좋은 곳이네.’ 체크인을 마치고, 서준은 희영을 그녀의 숙소로 안내했다. 희영은 호텔과 같은 숙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준은 그녀를 작은 독채로 안내했다. 독채의 환경은 정말 좋았다. 밖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정원과 통하는 길이 있었고, 마당에는 귀여운 식물이 가득했다. 게다가 침실의 창문은 푸른 호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봄이 오면, 저기 백조가 돌아올 거예요.” 서준이 호수를 가리키며 희영에게 물었다. “맘에 들어요?” 희영은 서준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제가 지불한 돈이 부족하진 않은 가요?” “그럼요.” 서준은 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