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현아, 희영이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서준모가 천천히 말했다. 기현은 놀란 표정을 보이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 두 분을 찾으러 온 게 아니었나요?” “우리에게 이혼한다고 통보하러 온 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와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어.” 서준모는 더 이상 기현을 쳐다보지 않고 피곤한 눈빛으로 그를 내쫓았다. “네가 그동안 늘 못되게 굴었으니 상처받은 거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앞으로는 네가 원하는 상대를 만나 결혼해. 우린 더 이상 간섭하지 않을 거야.” 모두가 서씨 가문의 두 노인이 딸의 죽음으로 유씨 가문의 사람들, 심지어 기현마저 원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현은 결국 그들의 외손자였다. 딸을 그렇게 사랑했으니, 기현을 미워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서준모는 정훈에 관한 이야기를 기현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대역이라는 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현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이미 헤어지기로 결정했으니, 이 비밀은 이쯤에서 묻어두기로 했다....서씨 저택을 떠난 희영은 임시로 머물고 있는 호텔로 돌아갔다. 그녀는 차가운 물로 얼굴의 눈물을 씻어냈지만, 가슴이 여전히 아팠다. 희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저녁에 무용단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어서, 그녀는 울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때 기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희영은 바로 끊어버린 후, 그를 차단했다. ‘멍청한 놈, 내가 말할 줄 모르는 걸 알면서 전화를 해? 그냥 날 혼내려고 걸어온 전화겠지?’ 내일 고급 ‘정신병원’으로 휴가를 가야 하니, 희영은 밤에 늦게 돌아오는 게 걱정되어 미리 짐을 챙겼다. 짐을 다 정리한 후, 기현에게서 카톡이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외할머니가 너 때문에 쓰러지셔서 지금 병원에 있어.] 기현이 곧이어 주소를 보내왔다. 그곳은 서씨 가문이 투자한 개인 병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 임서향은 희영을 집
서씨 저택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희영은 더 이상 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다. 수화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희영이 두 사람과 싸웠다는 것을 눈치채고, 결국 송혜정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서미래는 신이 나서 허벅지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주아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다. 주아는 매우 기뻤다. 희영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서씨 가문의 두 노인뿐인데, 이제 송혜정을 입원하게 만든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 내가 돌아오자마자, 허희영은 이혼 서류에 서명할 뿐 아니라, 서씨 가문의 어르신들과 크게 싸우기까지 했어! 기절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주아는 행복해서 입이 귀에 걸렸다. 송혜정이 항상 그녀를 싫어했으니, 주아는 그동안 늘 송혜정을 저주해왔던 터였다. 송혜정이 믿었던 희영에게 배신당한 모습을 보니, 주아는 두 배로 기뻤다. “이럴수록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유기현이 이혼을 마치기 전까지 옆에 딱 달라붙어야 해!” 허창석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씨 가문은 흔들리고 있었기에, 서씨 가문과 기현이 가끔 주는 도움으로는 도저히 부족했다. 허창석은 허씨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희영은 단 한 번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주아는 달랐다. 주아가 기현과 결혼하게 된다면, 허창석은 기현에게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이혼 서류에 서명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 희영이 버림받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희영이 서씨 가문의 두 노인과 싸우며 송혜정을 기절시켜서, 기현이 더는 참지 못하고 이혼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졌다. 이에 대해 희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에도 G시의 재벌가 아가씨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비꼬는 말들을 들을 일도 없었다. 희영은 간단히 정리한 후, 저녁 모임에 나갔다. 미나는 삶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화려하고 낭만적
내일 무용단은 새로운 순회공연을 위해 해외로 떠날 예정이다. 총 3개월 기간이다. 모두 아쉬워하며 희영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언니, 돌아올 때 선물 가져다 줄게요!” “나도나도! 언니 뭘 좋아해요?” 모두 저마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희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 애들이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돼. 난 아무거도 필요없어. 고마워 애들아.” 그러자 모두 다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마지막으로 희영은 한 사람씩 차에 태워 주었다. 미나가 술을 마셨기에, 희영은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희영 씨, 얼른 타. 먼저 데려다줄게!” 미나가 비틀거리며 말했다. 희영은 집 방향이 다르다며 손을 흔들었다. 주아는 명함을 희영의 손에 쑥 밀어 넣었다. “내 친구야, 내가 잘 부탁해놨어.” 희영은 방금 레스토랑에서 주아에게 자신이 G시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기에, 그녀가 술에 취해 잊어버린 줄 알았다. 그러나 주아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친구는 전국에 댄스 학원이 있어! 그러니 G시를 떠나서 어디서 살지 말해주면, 자리를 마련해줄 거야!” 말이 끝나자, 주아는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정말 걱정이야. 희영 씨는 말도 잘 못하고, 성격도 이렇게 부드러운데다가 이렇게 예쁘기까지 하니, 나쁜 사람한테 괴롭힘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희영은 그녀를 위로하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출발하라고 손짓했다. 주변이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희영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허전해져 명함을 한 번 보고 가방에 넣었다. 택시를 부르려던 찰나, 뒤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비쳤다. 희영은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역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희영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지만, 차가 그녀 옆에 멈췄다. 희영은 차갑게 고개를 돌려 기현과 눈을 마주쳤다. 조수석에는 주아가 앉아 있었다. “언니! 나와 기현 오빠도 방금 정원 레스토랑에서 식사했어! 언니가 잘생긴 남자랑 춤추는 거 봤어, 정말 멋지더
기현은 병원을 나설 때 기분이 최악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넘쳐오르는 화는 가라앉지 않았고, 오히려 희영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강하게 솟구쳤다. 희영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현은 곧 희영이 무용단 동료들과 함께 유명한 정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쯤 주아가 전화를 걸어왔다. 주아는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며 기현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현은 정원 레스토랑에 자리를 예약한 뒤 주아를 데리고 갔다. 무용단이 예약한 자리는 무대 쪽 긴 테이블에 위치해 있었다. 기현은 그곳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지만, 희영은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날 밤, 기현은 전혀 다른 희영의 모습을 보았다. 예전의 희영은 항상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녀는 크게 웃고 있었다.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둘 희영에게 다가가고, 곧 희영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춤을 추게 했다. 그 남자와 춤추는 희영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기현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때 주아가 말했다. “기현 오빠, 희영 언니와 저 남자 너무 가까운 거 아니에요? 설마 언니가 그렇게 서둘러 이혼하려는 이유가...” 주아는 입을 가리고, 진실을 알아챈 듯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현은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대답했다. “밥이나 먹어.” 주아는 가볍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틀 동안 기현은 계속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람 마음이 정말 갑자기 변할 수 있는 걸까?’ ‘혹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라면?’ 이런 생각이 들자 희영의 경쾌한 춤사위와 빛나는 미소가 더욱 날카롭게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허희영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때?’ ‘어차피 난 허희영을 사랑하지 않고, 이혼도 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잖아.’ 하지만 가슴속의 화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전, 기현은 일
“정말 G시를 떠날 생각이야?” 기현이 갑자기 물었다. 그는 차 안에서 희영이 미나와 대화하는 모습을 듣고 있었다. 희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두 손을 높이 들어 다시 중지를 날렸다. 벙어리도 장점이 있었다. 쓸데없는 설명을 줄일 수 있었기에, 욕할 때도 간결하게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내일 ‘정신병원’에 치료받으러 갈 예정이니, 이혼 판결이 나기 전에 기현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기현 오빠, 괜찮아요?” 희영이 떠나자 주아가 다가와 기현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분명 언니가 잘못한 건데 왜 오빠한테 손을 댄 거죠? 역시 허희영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기현은 주아의 손길을 피했다. “병원에 데려다줄게.” “기현 오빠!” 주아는 손을 떨구며 기현의 뒷모습을 보며 투정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기현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차로 돌아갔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허희영이 날 때린 건 처음이야.’ ‘감히 날 때리다니...’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와 허주아를 언급하다니...’ 주아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길에, 기현은 차 안에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였기에 주아조차도 조금 겁을 먹을 정도였다. 기현은 몇 년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다. 3년 전의 기현은 여전히 순수하고 활기 찬 재벌가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고작 3년 만에, 기현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주아는 매우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희영이 기현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에 기뻐하면서도, 기현이 쉽게 희영의 감정에 영향을 받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기현은 언제나 침착하고 신중한 사람이었지만, 희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늘 격하게 다투었다. 심지어 희영에게 한 대 맞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를 기르더라도 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괜찮아! 난 최대한 빨리 희영을 기현의 삶에서 완전히 떼어 놓고,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앞으로는 영원
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준은 가벼운 음악을 틀어 놓았고 차 안은 은은한 향기로 가득했다. “요양원 근처에 대중교통이 없으니, 밖으로 나오고 싶으시다면 저한테 말해줘요. 제가 차로 데려다 줄게요. 제가 그쪽에 없다면...” 서준이 희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운전면허는 있어요?” 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서준은 자신을 치료해주는 의사였기에, 희영은 심리적 장애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8살 때 배워봤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무서워서 극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배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훈은 정말 대단했다. 운전면허를 만점으로 한 번에 합격했으니까. 정훈은 희영에게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가 항상 곁에 있을 테니, 희영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 줄 거라고 말했다.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희영 씨의 기사가 되어야겠군요.” 희영도 웃으며 약속했다. “그럼 제가 밥 사 드릴게요.” 두 시간이 지나자, 차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희영은 브로셔를 읽어봤는데, 보통은 홍보 차원에 미화되기 마련인데, 이곳의 풍경은 브로셔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희영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자연이 그녀의 몸속의 모든 불순한 기운을 정화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 정말 좋은 곳이네.’ 체크인을 마치고, 서준은 희영을 그녀의 숙소로 안내했다. 희영은 호텔과 같은 숙소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준은 그녀를 작은 독채로 안내했다. 독채의 환경은 정말 좋았다. 밖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정원과 통하는 길이 있었고, 마당에는 귀여운 식물이 가득했다. 게다가 침실의 창문은 푸른 호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봄이 오면, 저기 백조가 돌아올 거예요.” 서준이 호수를 가리키며 희영에게 물었다. “맘에 들어요?” 희영은 서준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제가 지불한 돈이 부족하진 않은 가요?” “그럼요.” 서준은 주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는데, 주아 씨의 언니가 갑자기 끼어들어 집안의 어르신들에게 부탁해서 두 사람을 갈라놓은 거예요! 결국 유 대표는 언니랑 결혼하게 됐고, 주아 씨는 외국으로 쫓겨났어요!][정말 뻔뻔한 여자네! 유 대표는 그 여자를 엄청 싫어했다던데. 결혼한 3년 동안 손대본 적조차 없다고 들었어!][자기 것이 아닌 걸 빼앗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유 대표는 자리를 되찾자마자 첫사랑에게 다시 가버렸잖아!]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현과 주아를 응원하며 희영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보정한 희영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 밑에는 주아의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고, 한쪽은 기괴할 정도로 못생겼으며 다른 한쪽은 청순하고 아름다웠다. 모두가 희영이 못생겼을 뿐 아니라 동생을 괴롭히는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다. 네티즌들의 비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그때 한 유명인이 폭로글을 올렸다. [유 대표가 왜 급히 이혼했는지 아시나요? 허주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이 함께 산부인과에 나타난 걸 목격한 분들이 있다네요.]글은 곧 삭제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논란이 다시 커졌고, 기현과 주아에 관한 폭로였음에도 불구하고 희영의 이름이 인기 검색어에 올라갔다....소란이 커져가고 있었을 때, 기현과 주아는 친구 아기의 돌잔치에 참석하고 있었다. 구한결은 기현의 친구로 부동산 회사의 후계자였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그는 늘 사고를 일으켰다. 모두가 기현을 두려워했지만, 한결은 그런 기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형, 진짜 이혼했어?” 한결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응.” 기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주아는 그 옆에서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였다.한결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허희영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필요는 없잖아?”기현은 연예계의 소문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실시간 검색어?”“누군가가 예전 일들을 적어 인터넷에 올린 것 같아요. 오빠와 제가 결
주변은 점차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기현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방금 말을 꺼냈던 사람은 얼굴이 창백해져, 기현이 왜 갑자기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봐 걱정했다.“마시긴 뭘 마셔!” 기현이 짜증스럽게 한마디 했다.연회장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기현이 침울한 표정으로 떠나자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가 벙어리 나쁜 말 해서 화난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모두 유 대표가 벙어리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잖아. 안 그러면 결혼한 지 3년 동안 한 번이라도 우리한테 소개해줬겠지.” “맞아, 기현이 형이 왜 그 여자 때문에 화를 내겠어?” “그 여자가 신경 쓰였다면, 이혼조차 안 했겠지!” 주아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고, 긴 손톱이 살을 깊게 파고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확신했다. 기현이 화를 낸 것은 분명 희영 때문이었다.‘그럴 리가 없어! 기현 오빠 스스로도 허희영한테 관심 없다고 말했잖아!’“주아야...”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주아는 빠르게 감정을 다스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현을 대신해 모두에게 사과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기현 오빠는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거지, 여러분에게 화를 낸 건 아니에요.” “내가 말했잖아, 주아와 화해했으니 벙어리 때문일 리가 없지...” 사람들은 다시 왁자지껄 얘기를 나누었다. 한결은 그들의 비열한 모습이 역겨웠기에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자리를 떴다. 작년에 기현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한결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었다. 그는 희영이가 기현을 보호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작고 연약한 그녀는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오직 기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희영은 기현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의식을 잃었다. 한결은 늘 희영을 못마땅해 했었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