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단기 대가(鍛器大師)가 연갑(軟甲)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특별한 재료를 만들었었다. 유연하지만 단단하여 절대 뚫을 수 없는 그런 재료를 말이다.하지만 그 단기 대가가 세상을 떠난 뒤로 화리선을 만드는 방법이 실전되며 이 세상에 화리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게다가 이미 대부분이 연갑으로 만들어져 암시장에서 엄청난 값에 팔렸다.이러한 절세 보물을 허군한이 이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었다.게다가 그녀는 그중 네 개를 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기옥 또한 무척 놀랐다.“이 화리선은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보물이 아닙니까? 이렇게 귀한 것을 제가...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상녕이 황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이 물건이 우리 집 안에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오히려 저희에게 화가 될 겁니다.”“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이번에 남은 화리선을 전부 연갑으로 만들어 여러분에게 선물로 드릴 생각입니다.”“저희는 오히려 집안에 이것들이 없어야 마음이 놓입니다.”그들이 낙요 일행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귀중한 물건들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귀중한 것을 쉽게 내주지 못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노리기라도 한다면 화를 입을 수 있으니 말이다.낙요는 말을 다 들은 뒤 곧바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러면 받도록 하겠습니다.”“이 비밀은 꼭 지키겠습니다.”허군한은 웃으며 말했다.“그러고 보니 이것들은 수년 전, 내가 도왔던 한 사내가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선물로 준 것이었소.”“이제는 그가 위험에서 벗어났을지 모르겠구려.”상녕이 위로했다.“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분명 무사할 것입니다.”그 말에 낙요는 미간을 구기며 어떠한 추측이 생겼다.그녀가 다급히 말했다.“이 일은 외부에 발설하지 마세요.”“그 사람이 화리선을 가지고 있다는 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를 추격하는 사람도 절대 만만치 않을 겁니다.
낙요는 사건의 경과를 설명했다.그리고 허서화가 했던 얘기도 허군한에게 그대로 전했다.허군한은 미간을 구기고 사색에 잠겼다.“그럴 리가.”“아버지는 유약한 분이 아니오. 비록 데릴사위이긴 하나 우리 어머니를 아주 아꼈고 두 분은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소. 그렇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허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오지도 않았겠지.”“모든 일을 우리 어머니 혼자 감당한다면 아버지는 분명 마음이 아플 것이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니...”허군한은 놀랐고 이해할 수 없었다.낙요가 물었다.“그래서 허서화의 말에서 진실은 얼마나 있습니까?”허군한은 흠칫하며 놀란 표정으로 낙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잠깐의 침묵 뒤 대답이 들렸다.“나도 모르겠소.”“하지만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소.”’“이렇게 하는 게 좋겠소. 내가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면 직접 물어보겠소.”낙요가 황급히 제지했다.“성주부에 가서 직접 물어본다면 허서화는 제가 이 일을 누설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허서화가 진실만 말했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절 속였다면요?”“이 일이 탄로 난다면 성주 어르신의 처지는 더욱 난처해질 것입니다.”“절 믿으신다면 이 일은 제가 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다. 제 소식을 기다리시면 됩니다.”허군한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당부했다.“그러면 조심하시오.”“우리와 허서화는 왕래가 없어서 솔직히 그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오.”“우리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소.”낙요는 웃었다.“이 일을 제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습니다.”어르신 성주의 말과 허군한의 말을 생각해 보니 허서화가 한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그래도 한때는 가족이었다. 만약 그들 집안이 전부 어머니에게만 기대고 성주 어르신은 유약한 사람이었다면, 허군한은 사정을 잘 모른다고 해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허군한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허서화의 말은 아마도
“향낭이요? 스승님께서 향낭도 만드실 줄 아십니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모른다.”“그냥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낙요는 비교적 향긋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약재들을 준비했다.그중에는 말린 꽃도 있었다.“내가 약재를 조합할 것이다. 누가 향낭을 꿰맬 것이냐?”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할 줄 압니다.”강여가 대답했다.“저도 할 줄 압니다. 그러면 같이 향낭을 꿰매지요.”“오늘 이렇게 큰 선물을 받았는데 그 답례로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그렇게 그들은 향낭 위에 이름 중 한 글자를 선택해 수놓았다.낙요는 여러 가지 향을 가진 꽃과 약재를 배합했다. 약재가 들어간 탓에 향이 흔하지 않고 조금 특별했다.게다가 이 약재들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능도 있었다.세 사람은 밤새 모든 이들을 위해 향낭을 만들었다.기옥과 강여는 먼저 자신의 향낭을 받고 계속 냄새를 맡았다.“향이 정말 좋습니다.”“스승님이 만드신 향낭은 참 특별합니다.”“이 향기는 다른 향낭들과 다릅니다.”낙요는 그 향낭들을 일일이 봉해놓은 뒤 말했다.“너희는 이 향기들을 기억해야 한다.”“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향낭의 머리 부분을 거꾸로 해서 분말을 조금 뿌려 향기를 남기거라.”그 말에 강여는 눈빛을 빛냈다.“스승님이 향낭을 만드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요.”“이게 있으면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구십칠의 죽음을 떠올린 낙요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표기를 남길 수 있는 향낭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날이 밝자마자 그들은 향낭을 선물로 돌렸다.상씨 집안사람 모든 사람들에게 준비했다.낙요는 부진환의 것도 준비했다.“저는 왜 두 개입니까?”부진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하나는 주락의 것이오. 그가 돌아오면 전해주시오.”부진환은 웃었다.“대제사장님은 참 섬세하십니다.”-이어진 며칠 동안 그들은 도주성으로 돌아가 조사를 계속했다.큰 세력들은 전부 조사를 마쳤다.그중 왕생방과 접촉한 사람은 없었고, 그들에게 사람을 죽여달
낙요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기옥아, 그만 생각하거라. 일단 점심부터 먹자.”기옥은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흔들며 붓을 들고 종이에 이름들을 적고 줄을 그었다.“먼저 드시러 가세요. 전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잠시 뒤에 다시 생각하면 생각이 끊길까 봐서 그럽니다. 먼저 가세요.”낙요는 어쩔 수 없이 먼저 방에서 나왔다.곧이어 기옥은 종일 자신을 방 안에 가두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시켜 음식을 기옥의 방문 앞에 놓았다. 그러나 음식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낙요 일행은 기옥이 걱정되었다.밤이 되어 낙요가 기옥의 방문 앞을 지나칠 때, 안은 여전히 불이 밝혀져 있었고 기옥은 아직도 뭔가를 적고 있었다.낙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쉰 뒤 방으로 돌아가 창문 옆에 섰다.그러다가 창문 밖 달빛 아래 누군가 지붕 위에 누워 달을 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얄팍한 몸을 가진 그는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낙요는 창문을 넘어 경공을 이용해 맞은 편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그녀는 이내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진환의 곁에 섰다.“여기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소?”부진환은 시선을 살짝 들더니 그녀를 향해 술을 한 주전자 내밀었다.“이젠 두 명이군요.”낙요는 주전자를 받아 든 뒤 자리에 앉아 차가운 목소리로 말해다.“지금 몸 상태가 어떤지 당신이 제일 잘 알 것이오. 비록 용삼과 불전연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멋대로 하면 안 되오.”“당신의 몸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못하니 술은 안 마시는 게 좋소.”부진환은 덤덤히 웃었다.“이것은 물을 탄 술이라 조금 마셔도 괜찮습니다.”낙요는 살짝 놀랐다. 주전자를 열어 냄새를 맡아 보니 확실히 물이 섞인 듯했다.“술맛도 거의 나지 않는데 왜 마시는 것이오?”부진환은 피식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남들보다 낙요와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했고 그녀와
어두운 밤, 그림자 하나가 창문 밖 골목길을 지나갔다.낙요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떠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그 사람은 부진환이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가는 것일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낙요는 급히 벽 뒤로 몸을 숨겼다.어둠 속에서 부진환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얼른 걸음에 박차를 가해 도망쳤다.다시 창문 앞에 선 낙요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부진환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곧이어 그녀 또한 소리 없이 방을 나서 그를 몰래 따라갔다.부진환은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본 뒤 작은 마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낙요는 따라가서 몰래 엿들을 생각이었다.그런데 바로 그때, 마당에서 두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왔다. 둘은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며 마당을 지켰다.낙요는 가까이 갈 수 없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마당을 바라봤다. 부진환이 야심한 시각에 누구를 만나러 온 것일까?문 앞을 지키고 선 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무공이 약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낙요는 더는 가까이 갈 수 없자 몸을 돌려 돌아갔다.객잔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자지 않고 침상에 누운 채 가만히 기다렸다.부진환은 한 시진 뒤에야 돌아왔다.낙요는 돌아오는 그의 발소리를 들었다.-다음 날, 성주부의 사람이 객잔을 찾았다.“낙 낭자, 저희 부인께서 별원 쪽 보수가 끝났으니 오늘 가신다고 하셨습니다.”“낙 낭자에게 시간이 되는지 여쭈라 하셨습니다.”낙요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지금 출발하겠소.”그들은 얼른 짐을 정리한 뒤 마차를 타고 성을 떠났다.성 밖, 허서화의 마차가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그곳에서 만나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날씨는 화창했고 부드러운 바람이 볼을 간지럽히며 스쳐 지나갔다.강여는 마차 안 창문에 기대어 바람을 느꼈다.“며칠 동안 답답했는데 이렇게 나오니 살 것 같습니다.”말하면
대문 밖에 적지 않은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그곳을 찾은 사람은 관사의 차림새를 하고 소리쳤다.“류 집사, 우리는 물건을 받으러 왔소. 우리 물건은 다 준비되어 있겠지?”류 집사가 황급히 다가가 말했다.“준비 다 됐소. 잠시 기다리시오.”말을 마친 뒤 그는 하인을 불러 옆에 있던 창고를 열고 안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모두 갓 딴 과일이었다.허서화가 그들에게 설명했다.“때가 되어 최근 도주성의 각 양조장에서 주문한 과일을 납품해야 하오. 오늘 여러 양조장에서 찾아올 것이오.”말을 마친 뒤 허서화는 고개를 돌려 기옥을 바라봤다.“옥아, 네 어머니가 만든 술이 바로 저 산 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굵은 황갈나무 옆에 있다.”“내가 이 일들을 다 처리하면 느지막하게 너와 함께 가보마.”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그들은 주위를 누비기 시작했다.허서화는 물건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사람을 시켜 그것들을 실었다.낙요 일행은 방해가 될까 봐 근처에 있는 산을 둘러보았다. 산에는 과일나무가 가득했고 과일들을 많이 수확한 듯했다.그들은 풍경을 감상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그런데 정오가 되기도 전에 하인이 헐레벌떡 찾아왔다.“낙 낭자! 낙 낭자!”“부인께서 중요한 일로 찾으십니다. 얼른 돌아가 보셔야 하겠습니다.”그는 아주 급해 보였다.낙요 일행은 그를 따라 산에서 내려와 별원으로 돌아갔다.허서화를 본 낙요는 표정이 심각해졌다.그녀는 초상화를 하나 꺼내며 말했다.“이것 좀 보시오. 혹시 전에 당신들과 동행했던 친우가 맞소?”초상화를 건네받은 낙요는 화들짝 놀랐다.그 초상화의 주인공은 주락인 듯했다.낙요가 황급히 캐물었다.“부인,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허서화가 대답했다.“내 사람이 조금 전 말하길 도주 경계 지역에서 백성을 도륙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소. 두 농사꾼 집안이 전부 죽임당했다고 하오.”“당시 누군가 한 사내가 검을 들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집 안에서 나오는 걸 봤다고 하오.”“화
허서화는 곧바로 류 집사에게 부진한을 뒤따라갈 사람들을 몇명 뽑아 보내라고 했다.그녀는 이내 낙요 일행을 위로했다.“걱정하지 마시오. 조사해 낼 것이오. 별일 없을 것이오.”낙요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근심되지 않았다.이내 양조장 사람들이 찾아왔고 허서화는 또 밖으로 나가 일을 처리했다.낙요를 포함한 3인은 화원에 앉았다.강여가 걱정스레 말했다.“주락은 정말 괜찮을까요?”“저희가 같이 가는 건 어떻습니까?”낙요가 위로했다.“걱정하지 말거라. 괜찮을 것이다.”“그들은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낙요가 걱정하지 않자 강여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이번 여행이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세 사람은 오후가 지나 날이 거의 저물 때까지 기다렸다. 허서화는 그제야 볼일을 마쳤다. 창고 안의 과일들을 전부 비운 것이다.“시간이 늦었군. 참 바빴다.”“옥아, 우리 함께 산에 오르자꾸나.”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세 사람은 허서화를 따라 산에 올랐고 산 위 술독이 묻힌 곳에 도착했다.땅을 본 낙요는 누군가 땅을 파헤친 적이 있다는 걸 이내 눈치챘다. 위쪽 흙이 조금 촉촉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날이 워낙 어둡다 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었다.“바로 이곳이다.”허서화는 감탄했다.“나와 네 어머니가 함께 이곳에 술독을 묻었을 때, 우리는 3년 뒤 이것을 꺼내자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사람 일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기옥은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는 속이 많이 쓰렸다.곧이어 기옥은 허서화와 함께 묻힌 술독을 꺼냈다.이때 날은 이미 완전히 저문 뒤였다.그들은 급히 산에서 내려왔고 별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다들 배고팠겠군. 음식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다들 먼저 식사부터 하는 게 좋겠소.”허서화는 그들을 데리고 내원으로 향했다.저녁을 먹을 때 허서화는 기옥의 어머니와 함께 겪었었던 일을 얘기해줬다.그녀의 얘기를 들어 보면 두 사람은 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는 절친한
기옥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하지만 저희도 고모와 함께 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설진재는 악질적인 사람이니까요.”허서화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다. 난 오랫동안 그를 상대했으니 괜찮다.”“당신들은 나와 함께 고생할 필요 없소.”“여기서 마음 놓고 푹 쉬시오.”“난 아마 내일쯤 돌아올 것이오.”말을 마친 뒤 허서화가 당부했다.“잘 됐다. 네 어머니가 담근 술도 마셨으니 잠이 잘 오겠구나.”기옥은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허서화는 류 집사와 함께 마차를 타고 도주성으로 향했다.커다란 별원에 낙요 일행 세 명만 남았다.식사를 마친 뒤 세 사람은 마당에 앉았다.기옥은 술독을 안고 열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낙요가 귀띔했다.“이 술은 네 어머니가 담근 것이니 운주로 돌아가서 열거라.”기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알겠습니다. 그러면 열지 않겠습니다.”시간이 늦어 세 사람은 마당에 잠깐 앉아있다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침상에 누운 낙요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그곳은 아주 적막했고 밖에서도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다. 그래서 오히려 불편했다.그렇게 반 시진 뒤 밖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작게 들렸다.낙요는 곧바로 침상에서 일어났다.곧이어 그녀는 그 발소리가 자신의 방에 가까워졌음을 발견했다.바로 방문 밖에 있는 듯했다.아마 그녀가 자고 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낙요는 아무런 인기척도 내지 않았고 그자는 이내 떠났다.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기에 낙요는 몰래 방에서 나왔다.그녀는 발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황급히 따라갔다.그렇게 낙요는 한 마당 밖에 도착했다. 마당의 문은 열려 있었고 안의 방문도 열려 있었다.낙요는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따라갔다.방 안은 캄캄했고 아무도 없었다.낙요는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내 그녀는 책궤 뒤에서 밀실을 하나 발견했다. 밀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그자가 이 밀실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낙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하다가 곧장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어둠 속, 앞쪽에서 불빛이 보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