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려갈 듯 야윈 몸이었다.그때 언니가 걱정되어 외투를 들고 뒤를 따라가던 허승아가 들고 온 슬리퍼를 허이서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언니, 얼른 신어.”“승아야, 너 왜 내려왔어?”허승아는 외투로 허이서의 몸을 감싸주며 말했다.“추워, 얼른 올라가자.”날이 갈수록 생기가 도는 허승아를 보며 허이서는 자신이 한 일들에 보람을 느꼈다.허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을 보면 다시 자신을 다독이며 힘을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언니랑 저분 무슨 사이야? 아까 저분이 왜 언니 방에서 나온 거야?”예민한 허승아를 잠재우기 위해서 허이서는 슬리퍼를 신으며 대충 둘러댔다.“그냥 나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인데 내가 안 받아줘서 그러는 거야.”“왜 안 받아줘? 키도 크고 잘 생겼던데.”입을 크게 벌리며 물어오는 허승아에 허이서는 싸가지가 없어서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애써 웃으며 답했다.“돈이 너무 많잖아, 나랑은 안 어울려.”방으로 돌아온 허이서는 메모장에 “피임약 사기”라는 문구를 적어넣었지만 이렇게 큰일을 까먹진 않을 것 같아 다시 그 문구를 지워버렸다.한편 밤을 지새우고 나니 화가 많이 가라앉은 조서희는 여도준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차분하게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밥 먹자.”침대 쪽으로 다가온 여도준이 조서희를 안아 들려 하자 조서희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도준 씨, 나랑 약속 하나만 해줄 수 있어?”“응, 말해.”“그렇게 확신하진 말고, 못 지킬 수도 있잖아.”어젯밤 내내 운 건지 빨개진 눈을 하고 말하는 조서희에 여도준은 가슴이 저릿해 왔다.“지킬 수 있으니까 말해봐.”“허이서한테 약 주지 마 이제.”자신만만하게 약속하던 것과 달리 여도준은 조서희의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허이서 동생이 많이 아파. 보심단을 안 먹으면 죽을 수도 있어.”“도준 씨가 약을 줄 때마다 나는 둘이 잤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 허이서도 약 때문에 도준 씨랑 잔 거잖아.”조서희는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아까는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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