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는 그 소리를 듣고 몸이 살짝 떨렸다. 희도가 화가 난 듯 보여, 그녀는 서둘러 수화를 이어갔다.“죽이 입맛에 안 맞아요?”희도는 셔츠 깃을 잡아당기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 얼른 먹어.”그러나 희도가 음식을 먹지 않자, 인아는 수화를 멈추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희도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인아가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가 출발하자, 도로 옆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창밖의 나무들은 마치 달아나는 것처럼 뒤로 밀려났다. 인아는 그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어린 시절, 인아는 유씨 가문에 입양되었다. 당시 유정석은 인아를 친손녀처럼 아껴주었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늘 인아를 걱정했다. 3년 전, 유정석은 자신의 마지막 소원으로 희도에게 인아와 결혼하라고 강요했다. 그는 인아를 책임지지 않으면 편히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희도에게는 이미 연서라는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유정석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던 희도는 결국 마지못해 인아와 결혼을 결심했다.그러나 결혼 후에도 희도는 인아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에게 특별히 차갑게 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따뜻한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는 점차 침묵이 자리 잡았고, 그들은 가장 익숙한 낯선 사람으로 변해갔다.오늘 유씨 가문은 희도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의 백일잔치로 온종일 북적였다. 인아는 희도의 뒤를 따라 번잡한 앞마당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서는 장희정이 외손자를 안고 활짝 웃으며 아이와 놀고 있었다. 그러나 인아를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다. 인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장희정은 냉담하게 외면하며 계속 딸과 대화를 나눴다.“외손자가 외삼촌을 닮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 이 녀석 희도가 어렸을 때랑 똑같이 생겼어.”유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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