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리고 싶은 결혼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누가 데리러 오는데?” 정민호가 웃었다.“나 다 들었어. 박연준 집에서 나왔다며, 둘이 이혼한다던데?”“네가 알 바 아니잖아!” 손화영은 얼굴을 찡그렸다.정민호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기더니 다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왜 나랑 상관 없어. 전에는 날 쳐다보지도 않더니 이젠 버려진 이혼녀가 됐으면 나 같은 건 감지덕지 아니야?”손화영은 못마땅한 얼굴로 정민호를 바라보았다.전에 정민호가 좋다고 그녀를 따라다녔지만 그녀는 그의 행실이 바르지 않아 싫어했다.몇 번이나 그가 접근해도 그녀는 거절했다.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전업주부로 일하면서 그와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접점이 없었고 박연준까지 있으니 두 사람 사이엔 더더욱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정민호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더군다나 그는 다소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정민호, 나 아직 이혼 안 했고 아직 박연준 아내야.” 손화영이 말했다.“이혼 얘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박연준이 어떻게 할까 봐 두렵지도 않아?”“박연준이 날 상대할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임청아가 돌아온 후 하루 종일 임청아 주변을 맴돌지 않아?”정민호는 크게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손을 들어 손화영의 턱을 잡았고 손화영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나 건드리지 마! 날 건드리면 소리 지를 거야!”“손화영, 봐, 여기 누가 있어?”정민호가 입꼬리를 올렸다.“차에 타, 집에 데려다줄게. 진심이야!”손화영은 정말 정민호의 차에 타면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민호가 다가오려 하자 일그러진 얼굴로 내리는 폭우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정민호의 손에 넘어가면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차라리 빗속으로 뛰어들었다.손화영은 힘차게 달렸지만 체력이 좋지 않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발이 미끄러져 심하게 넘어졌다.재빨리 따라잡은 정민호가 우산을 들고 그녀 앞에 섰다가 천천히 몸을 웅크렸다.그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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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손화영은 서윤성이 건네준 재킷을 재빨리 입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토끼처럼 빨갰다.“고마워요.”말하는데 목소리가 이미 갈라져 있었다.“빚진 거 갚는 거예요.”서윤성의 잘생긴 얼굴에는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손화영은 무섭고도 억울한지 눈가가 빨개진 채 서윤성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놀란 그녀는 울기까지 한 탓에 아직도 흐느끼고 있었다.“박연준 씨한테 전화해요. 데리러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줄게요.”서윤성이 다소 짜증스럽게 미간을 구겼다.“데리러 오지 않을 거예요.”손화영은 실망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자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가장 나타나길 바랐을 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아마 지금쯤 임청아와 함께 있느라 그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모를 거다.그가 이곳에 버려두고 갔을 때부터 이미 그녀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그를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가끔 그녀를 생각해 주고 잘해줄 때도 그저 그녀에게서 다른 여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제 주인이 돌아왔는데 한낱 대역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그녀가 산산이 부서지고 찢겨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설령 무슨 일이 생긴 걸 알아도 귀찮다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겠지.“돈 좀 빌려도 될까요?” 손화영은 고개를 들어 애원하는 눈빛으로 서윤성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저 좀 태워다 줄 수 있어요?”갈 곳도 없고, 손우영을 찾으러 병원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민영빈이 아직 있다고 해도 지금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심나정의 곁뿐이었다.“어디로 가요?” 서윤성은 별다른 말 없이 그녀를 자신의 차로 이끌었다. “일단 타요.”손화영은 고마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차에 올랐다.차 옆에서 서윤성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서를 보며 소리쳤다.“도진택, 내버려두고 와서 운전해.”“네!” 도진택이 돌아오자 서윤성은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차에 올라탔다.그는 수건을 꺼내 옆에 있던 손화영에게 건넸다.손화영은 흠뻑 젖은 채 헝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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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손화영은 객실에서 샤워하고 서윤성 여동생의 옷으로 갈아입었다.헐렁하고 편한 운동복이 딱 맞았다.머리를 말리고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올블랙으로 차려입은 서윤성이 소파에 앉아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한 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들어 손화영을 바라봤다.비록 운동복 차림이었지만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이 확실한 손화영은 몸매가 좋았고 씻은 머리를 늘어뜨리자 작은 얼굴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무척 예뻤지만 조금 전 일 때문인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어 연민을 불러일으켰다.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서윤성은 그녀를 힐끗 바라보다가 손화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손화영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통화하는 서윤성을 보며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렸다.서윤성이 전화를 끊고 나서야 입을 열고 말했다.“고마워요, 서윤성 씨.”“나한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서윤성이 덤덤하게 말했다.“아주머니한테 생강차 끓여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몸에 상처가 꽤 많던데 내가 준 약 발랐어요?”“발랐어요.”손화영이 말했다.서윤성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다소 어색했다.원래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어느 한번 서윤성이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녀가 발견하고 구해준 뒤로는 접점이 많지 않았다.그냥 만나면 가볍게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랄까.서윤성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보상으로 돈이나 집 같은 것을 주겠다고 했다. 그땐 손화영도 부족한 게 없었을 때고 아버지한테 일이 생기지도 않았기에 돈이나 집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한번 도와준 것일 뿐 서윤성이 주겠다는 걸 거절했다.그런데 그때 서윤성을 도와준 게 지금 그녀를 구한 셈이 되었다.은혜를 기억하고 있던 서윤성이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었다.“그래요.”서윤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잠시 후 말했다.“그래도 이런 상황은 박연준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금방 전화했어요.”손화영은 의아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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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단번에 손화영을 발견한 박연준은 서윤성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재빨리 손화영 옆으로 걸어갔다.손화영 앞에 서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본 그는 그녀가 이미 옷을 갈아입었고 이마가 약간 붓고 어딘가 긁힌 것처럼 보이는 부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단번에 표정이 어두워졌다.“어떻게 된 거야!”박연준이 물었다.검은 눈동자로 박연준을 바라보는 손화영의 눈가가 붉은 것을 보아 한눈에 봐도 운 게 분명했다.손화영이 대답하지 않자 박연준은 서윤성을 돌아보았다.“내 아내가 왜 여기에 있어!”박연준은 손화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 채 단지 서윤성과 함께 있다는 것만 아는 듯했다.서윤성은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박 대표님, 그쪽 아내라면 왜 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왜 아무도 오지 않는 거죠?”턱을 살짝 들어 올린 그에게서 형언할 수 없는 여유로움과 비아냥거림이 느껴졌다.한 명은 잔뜩 힘이 들어가고 한 명은 느긋했지만 누구 하나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서윤성, 무슨 뜻이지?”박연준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서윤성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손화영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뜻은 분명했다.“그쪽 아내가 길에서 괴롭힘당하는 걸 마침 내가 보고 데리고 온 겁니다.”서윤성이 느긋하게 말했다.“박 대표님은 저한테 화내실 게 아니라 감사해야죠. 제가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이 그쪽 아내 건드렸을 테니까요.”박연준은 손화영을 돌아보았다.손화영은 그런 그의 시선에 왠지 모르게 억울함이 밀려와 코끝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었다.하지만 박연준도 그녀가 정말 괴롭힘을 당했고 서윤성이 거짓말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누구야?” 박연준은 고개를 돌려 서윤성에게 물었다.“정씨 가문에 쓰레기 아시려나, 정민호라고.”서윤성은 여전히 소파에 기대앉아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정민호?” 박연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지금 어디 있어?”“미안하지만 전 그냥 몇 대 때려줬을 뿐 데려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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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상처를 본 윤미숙은 소리를 질렀고 자세히 살펴보니 손화영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이마도 부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박연준도 그제야 조금 붉게 부어올랐던 이마가 이젠 더 심해진 걸 보았다.특히 불빛 아래서 보니 엄청나게 크게 부은 것 같았다.“언제 다친 거야, 아픈데 왜 말 안 했어?”박연준이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손화영, 대체 무슨 고집을 부리는 거야, 자기 몸 하나 지킬 줄 몰라?”손화영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누군 자기 몸 지키기 싫어서 안 지켜요?”나도 지키고 싶은데 능력이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박연준이 버리고 간 곳에 정민호가 나타날 줄 내가 알았겠냐고.“박연준 씨, 나라고 이런 일 겪고 싶은 줄 알아요? 내가 재밌자고 정민호한테 몹쓸 짓 당할 뻔한 줄 알아요? 당신이 날 집으로 데려오겠다고 데리러 와서 버려두고 갔잖아! 임청아 보러 간다고 내가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썼잖아! 당신만 없었으면 이런 일 없었어! 정민호가 날 건드린 것도 당신 때문일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화가 난 손화영은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얘기하려고 했지만 몸의 떨림은 감출 수 없었다.눈시울이 붉어져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이렇게 화낼 거면서 난 왜 데리고 왔어요? 당신 눈에 거슬리지 않게 내 가방, 내 휴대폰만 챙겨서 바로 갈게요!대충 눈물을 닦아낸 손화영은 억울함에 코끝이 빨개졌다.이미 충분히 무섭고 속상한데, 그녀가 원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그는 여전히 그녀를 탓하고 있었다.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원망하는 걸까?박연준은 손화영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닌데 그녀는 지금 마구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펑펑 우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알았어, 그만해.”박연준은 부드럽게 말했다. “우재 불러서 치료하라고 할게. 더 다친 데는 없어?”“난 괜찮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손화영은 박연준의 손을 피했다.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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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정민호는 겁에 질린 채 박연준을 바라보았다.“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그의 몸이 두려움에 떨리더니 갑자기 노란 액체 웅덩이가 쏟아져 나왔다.박연준은 정민호를 흘깃 쳐다보며 비웃었다.“배짱이 대단하지 않나? 왜 바지에 지리는 거지?”“제가 잘못했어요, 박 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대표님 사람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요!”정민호는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박연준에게 미친 듯이 고개를 숙였다.“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네가 사과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 박연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박 대표님, 제 아들이 잘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과드립니다!”정현철은 상황 파악을 끝냈는지 다가가 정민호에게 몇 마디 욕설을 퍼부었고 정민호의 모친도 허둥지둥 박연준에게 용서를 빌었다.“박 대표님, 제 아들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세요!”“내가 그렇게 쉬운 사람인가?”박연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고 주위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을 향해 눈치를 주자 그들이 달려들어 정민호를 두들겨 팼다. 결국 정민호는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가 되었다.박연준이 다가와 다리를 들어 정민호의 가랑이를 세게 걷어찼다.원래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정민호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아랫도리를 손으로 움켜잡고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박연준은 뒤돌아 자리를 떠났고 진태원은 침을 꿀꺽 삼키며 정민호를 쳐다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박연준을 힐끗 쳐다봤다.언제부터 이렇게 손화영을 신경 썼다고?속으로 오싹함을 느꼈지만 진태원은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차에 탄 진태원은 백미러 속 악마 같은 남자를 바라보았다.“박 대표님, 다 제 잘못입니다. 그때 사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 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정민호를 가만두지 않았을 겁니다.”“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해.” 박연준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진태원은 겁에 질린 마음으로 박연준을 힐끗 쳐다봤다.보아하니 다음부터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벙어리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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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언제 온 걸까.그가 이렇게 자신을 품에 안고 잠을 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이 품을 갈망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오랜 세월 그를 사랑했으니 실망스러워도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토록 오랜 인연은 말 한마디로 쉽게 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박연준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떠나기가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박연준이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고 단지 임청아와 비슷해서 이렇게 안고 있는 것이다.임청아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 자신을 버렸을지도 모른다.임청아가 이미 결혼했기에 자신과 이혼하지 않으려는 걸 수도 있다.손화영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가치가 겨우 이 정도라니.그는 박연준의 품에서 벗어나 일어나려 했다.그의 온기가 아무리 탐났어도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그런데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강한 힘이 그녀를 이끌며 또다시 남자의 품에 안겼고 단단한 두 팔로 꽉 붙잡고 있었다.“깼어?”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너무 늦게 잤으니까 좀 더 쉬어.” 방금 잠에서 깬 탓인지 목소리가 잠겨 있긴 했어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좋았다.손화영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빠르게 뛰었다.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비록 거듭 그녀를 실망하게 해도 그녀의 마음은 매정하게 끊어내지 못했다.“깼으면 일어나요. 할 일 있어요.”손화영이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그의 품에서 나올 수가 없었고 그는 그녀를 단단히 감싸 안고 도망갈 틈을 주지 않았다.귓가에 비비적거리는 느낌에 손화영은 박연준을 밀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박연준 씨, 이거 놔요...”“손화영, 이제 그만해. 내가 잘못한 거 인정해. 어제 일은 내가 사과할게.”박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청아한테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찾으러 간 거지 일부러 널 버려둔 건 아니야.”그래, 임청아한텐 일이 생겨서 달려가고 날 두고 떠나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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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박연준이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손화영이 짐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또 어디 가려고?”“여기서 나가려고요.”손화영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손화영, 그만하라고 여러 번 말했잖아. 네가 어디 갈 수 있는데?”박연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심나정 집은 너도 봤겠지만 민영빈이 수시로 들락거려. 너랑 같이 지내기 불편하다고. 다른 친구도 없고 집도 없는데 어디로 가려고? 여기가 너한테 최적의 선택지야.”손화영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캐리어를 천천히 정리한 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검은 눈동자가 결연한 의지로 반짝거렸다.“여긴 나한테 최적의 선택지가 아니에요.”“손화영!” 박연준은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고 손화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난 집이 없어요, 있어 본 적이 없죠. 아빠는 구속됐고 동생은 병원에 입원했는데 내가 집이 어디 있어요.”그런 그녀의 모습에 박연준은 가슴이 답답했다.“여기가 네 집이야!”이미 결혼까지 했는데 그의 집이 그녀의 집이 아닌 적이 있었나?그가 언제 그녀를 쫓아내기라도 했나?손화영은 박연준을 바라보다가 문득 헛웃음을 터뜨렸다.여기가 그녀의 집이라고?아무런 소속감도 없이 결국 조만간 임청아를 위해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집이 아니던가.손화영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도 여기가 자기 집이었으면 좋겠다. 영원히 이곳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지내고 싶었다...하지만 더 이상 대역은 하고 싶지 않았다.이젠 지쳤다.하루 종일 그의 눈치를 보고 그만 기다리고 말 한마디에 도와줬다가 어느 순간 동생을 치료해 주던 의사까지 돌려보내야 하는 그런 일상을 살고 싶지 않았다.겪은 게 하도 많아서 이젠 무서웠다.사랑은 동생의 심장을 치료해 주지도, 아빠를 구해주지도 못한다.손화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짐을 모두 챙긴 뒤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이혼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 재산 하나도 바라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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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는 찡그린 얼굴로 점점 더 멀어지는 손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단호하게 떠나는 모습이 절대 단순히 떼를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사모님 정말 가셨어요!” 윤미숙은 불안한 마음에 발을 굴렀다.“대표님께서 좀 달래시지, 왜 그런 말로 자기 아내를 위협하세요!”“본인이 나가겠다잖아요!” 박연준은 화가 났다.어제 그렇게 걱정했는데 미련 없이 바로 떠나버리다니.아니, 오히려 윤미숙에게 더 애착이 가는 듯 자신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박연준의 질투와 분노가 섞인 시선이 윤미숙에게 향했다.윤미숙은 그 눈길에 오싹한 느낌이 들어 자기 얼굴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내 얼굴에 있는 검버섯이 거슬리세요?”“...”...심나정은 민영빈의 가슴팍 위에 나른하게 누워 그림 그리듯 손가락을 움직였다.민영빈이 그런 그녀를 품에 감아 안고 격하게 입술을 감쳐물었다.“밤새 한 걸로 모자라? 너 진짜 대단한 여자구나.”“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뭘.”느긋하게 말하던 심나정은 장난스럽게 민영빈을 바라보았다.“내가 아까 한 말 들었어?”“심나정, 넌 나보다 손화영한테 더 잘해주는 것 같아.”민영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내가 싫을 땐 죽이려고 들다가 필요할 때만 부탁하는 거야?”“어차피 안 죽잖아. 원수는 천년 간다는데 이 정도 벌은 천년도 적은 거지.”심나정은 살짝 미소 지었다.“허, 너 나한테 빚진 거 평생 갚을 수도 없는 거 알아? 또 빌리면 대체 몇 번의 생을 거쳐야 갚을 수 있는데?”짓궂게 심나정의 볼을 꼬집는 민영빈의 눈빛이 짙었다.“난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금방 질려.”“그래서 내가 열심히 벌어서 갚으려고 하잖아.”심나정은 입술을 달싹였다.“거짓말 아니야, 기회만 있으면 술집도 나갔어!”“심나정, 말조심해. 쓸데없는 생각 마! 감히 몸 더럽히는 일 하면 죽여 버릴 거야!”심나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휴, 그렇게 돈도 못 벌게 하고 빌려주지도 않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어디서 억울한 척이야? 손화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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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손화영은 저택에서 나온 후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심나정이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민영빈이 있는 이상 그곳에서 지내기엔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았다.갈 곳 없는 그녀는 일도 해야 했기에 쉴 곳이 필요했다.이미 이혼할 결심을 굳힌 이상 박연준과는 절대 같이 살지 않을 거다.그가 이혼을 원하지 않더라도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돈이 많지 않았고 아빠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아껴 써야 했다.손화영은 부동산에 몇 군데 집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오래된 동네에 있는 계단식 아파트에 크지도 않고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괜찮은 집을 고른 뒤 바로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열쇠를 받은 손화영은 캐리어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안을 둘러보니 방 2개에 거실까지 있어 그다지 크지 않고 조금 낡았지만 나름 깨끗했다. 간단히 청소하고 생활용품을 마련한 뒤 그곳에서 지내기 시작했다.짐을 푼 뒤 손화영은 바쁘게 움직이며 안팎으로 한바탕 청소했다.점심까지 고생하고 나니 힘들어서 숨이 다 찼다.하지만 드디어 청소가 끝나고 다소 낡은 집을 바라보는 손화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조금은 허름하고 조금은 작았지만 어쨌든 지낼 곳이 생겼다.아버지가 나오고 동생이 다 나으면 이보다 더 허름한 곳에서 살더라도 행복할 것 같았다.심나정이 왔을 때 손화영은 소파에서 쉬고 있었다.창문이 열려 있고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하얀 커튼을 날리는데 얼굴에 닿는 기분이 좋았다.“아직 밥 안 먹었지, 일단 뭐 좀 먹자!”심나정은 테이블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안을 둘러보았다.“괜찮아 보이네. 동네 환경도 나쁘지 않은데 아파트 주민들이 어떨지 모르겠네.”“괜찮을 거야.” 손화영이 음식을 뜯으며 말했다.“어차피 매일 일해야 하니까 주민들과 자주 마주치지도 않아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하긴.” 심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전화해!”“알았어.”고개를 들고 웃던 손화영은 심나정의 목에 멍이 살짝 든 것을 보고 어제 민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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