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되돌리고 싶은 결혼: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손화영 씨, 그래도 제때 응급조치를 해서 동생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어요. 병원비는 언제쯤 납부할 생각이죠? 벌써 한참이나 밀렸는데 더 내지 않으면 동생분 약도 중단될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약까지 중단하면 언제든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데 수술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에요.”손화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바쁘게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최선을 다해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녀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선생님, 최대한 빨리 납부할 테니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 끌어주세요.”단승철은 동정 어린 눈으로 손화영을 바라보았다.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에 옷과 장신구도 화려하고 값비싼 것들로 가득해 재벌가 사모님처럼 보이는데 동생의 병원비조차 낼 형편이 안 되는 상황이라니.“이미 최선을 다해 시간을 끌고 있지만 약값뿐만 아니라 수술비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알다시피... 기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알아요.” 손화영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녀는 누구보다 초조해하고 있었다.“손화영 씨, 정말 안 되면 박 대표님한테 가서 빌어요. 그래도 부부인데 죽는 걸 뻔히 보고 있지만 않겠죠.”단승철은 손화영을 힐끗 쳐다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한 달여 전, 박연준은 갑자기 손화영 남동생의 병원비를 끊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실력의 의료진까지 철수시켰다.그리고 며칠 전에는 손씨 집안에 큰일이 생겨 손화영의 아버지가 횡령 혐의로 피소됐고 손화영의 남동생은 그 일로 누군가와 갈등을 빚다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단승철은 손화영이 대체 남편에게 뭘 잘못했길래 그가 이토록 매정하게 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리 비밀 결혼이라고 해도 부부 싸움은 말로 잘 달래면 될 것 같았다.강성 최고의 부호이자 부승그룹 대표인 그의 손 틈에서 흘러나온 돈으로도 남동생 병을 치료하기엔 충분했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손화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돈 가져올게요.”그녀와 박연준 사이가 말 몇 마디로 풀릴 거였으면 이 지경까지 되지도 않았다.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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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틀 후, 손화영은 두 달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박연준을 드디어 만났다.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멋있었다. 잘생긴 외모는 연예계에 내놔도 손꼽히는 미남일 것이다.잘 재단된 수트가 그의 완벽한 몸매를 감싸고 있었다.그가 문에 들어섰을 때 손화영은 소파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박연준에 대한 온갖 가십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박연준에 관한 소식은 언제나 연예인 스캔들보다 더 많았다.TV 속 뉴스를 훑어보던 박연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이걸 왜 보는 거야? 나 배고픈데, 오늘 저녁은 뭐 먹어?”손화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난 이미 밥 먹었어요. 먹고 싶으면 아주머니한테 해달라고 해요.”“면이나 한 그릇 삶아줘.”박연준은 잘생긴 눈썹을 다시 한번 찡그리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아주머니, 이 사람 면 먹고 싶다는데 한 그릇 만들어 주세요.”손화영은 무심하게 외치더니 박연준을 힐끗 쳐다보았다.“다 먹고 얘기 좀 해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돌아서서 위층으로 올라갔다.박연준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는 손화영의 불쾌함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예전에는 아무리 속상하거나 화가 나 있어도 그가 돌아오자마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한마디만 하면 서둘러 달려가 음식을 만들어주곤 했다.가끔 쉬지 않고 쫑알거리다가 그가 짜증을 내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이렇게 차분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평온함이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을 불쾌하게 했다.굳이 그의 아내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직 따지지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등을 돌린다고?손화영을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5년 동안 아내로 곁에 두면서 그녀의 몸은 만족스러웠다. 잠자리도 잘 맞았기에 그녀를 계속 옆에 두면서 자신도 그녀에게 섭섭지 않게 해준다고 생각했다.윤미숙은 재빨리 국수를 만들었다.늘 솜씨가 좋은 윤미숙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분명히 배가 고팠던 박연준은 몇 입 먹고 나서 입맛이 사라졌다.예전처럼 기대에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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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박연준은 서재에 들어간 지 20분 만에 저택을 떠났다.손화영은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창밖으로 슬프게 바라봤을 텐데 이번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선을 내린 채 계속해서 짐을 챙겼다.그녀의 캐리어는 크지 않았지만 모든 물건을 담기에 충분했다.손화영은 옷장에 있는 옷들을 바라보았다. 전부 그의 아내가 입어야 할 옷이었다. 박연준과 결혼한 이후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박연준의 취향대로 차려입었고 대부분 옷도 박연준이 직접 고른 것이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끔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으면 박연준은 항상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 대신 그의 아내로서 입어야 할 옷만 입었다.손화영은 그 옷들은 하나도 챙기지 않고 보석 캐비닛을 열어 결혼반지만 남겨둔 채 남은 보석은 전부 가져갔다.멀쩡한 보석을 왜 안 가져가겠나.어차피 이혼해도 박연준이 그녀에게 재산을 분할해줄 일은 없겠지만 보석은 여자 측 개인 재산이었다.전에는 멍청하게 철저히 구분하며 그에게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마치 그의 돈을 쓰는 것이 그녀에 대한 사랑을 더럽히기라도 하듯.그래서 그녀는 가진 돈이 없었다. 그의 아내로 있는 동안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결혼생활을 잘 이어 나갈 생각뿐이었고 그를 위해 가정부가 해야 할 모든 일을 자처하면서도 그걸 행복으로 여겼다.시선은 언제나 그에게 향하며 그를 위해 그날 입을 옷을 준비하는 걸로도 하루 종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줄곧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한테 일이 생기고 동생이 아프면서 그가 주치의를 돌려보내고 병원비 납부 고지서가 한 장씩 날아오면서 그제야 벼락을 맞은 듯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돈만 있으면 아버지가 누명 쓴 증거를 찾을 수 있었고 아버지를 위해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으며 동생의 병도 치료할 수 있었다.손화영은 짐 정리를 마친 뒤 이혼서류와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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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박연준은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손화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못 알아봐도 손화영이 자기 옆을 그냥 지나칠 줄은 몰랐다. 한눈에 알아봤을 텐데 손화영은 못 본 척 무시해 버렸다.“손화영!”그는 소리치듯 불렀다.“날 못 본 척하는 거야?”손화영은 이미 그를 지나쳤고 박연준의 외침에 비로소 발걸음을 멈췄다.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이 휠체어에 앉은 임청아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와 제법 닮아 있었다. 특히 눈썹 위쪽에 있는 작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이번에는 임청아가 입고 있는 드레스로 시선을 옮겼다.눈가엔 조롱 섞인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가슴에는 짙은 아픔이 밀려왔다.박연준은 그녀에게 똑같은 치마를 선물했었다...그가 왜 자신의 옷차림을 그토록 싫어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렇게 입으면 임청아 같지 않으니까.“날 만나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요.”손화영은 시선을 들어 박연준을 바라보았다.“원래 남자들은 아내와 내연녀가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잖아요?”“손화영 씨, 오해에요...”휠체어에 앉은 임청아는 여린 순백의 꽃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쪽한테 한 말 아니에요.”손화영은 임청아의 말을 단호하게 끊고 덤덤한 눈빛으로 박연준을 바라보았다.“집에 안 갔나 보네요.”박연준은 손화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그녀가 변했는데 어디가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더 이상 예전처럼 조심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가시가 돋쳐 있었다.그 가시가 소나기처럼 박연준의 가슴에 박히며 불쾌하게 만들었다.박연준은 어제부터 줄곧 손화영의 기분이 풀리지 않았고, 어쩌면 어젯밤 임청아의 전화를 받고 말도 없이 급하게 떠난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아내로서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손화영, 난 지금 너 떼쓰는 거 받아줄 시간 없으니까 마음 좀 추슬러.”박연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혼자 진정해.”손화영은 다소 조롱 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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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신경 쓰지 마! 자길 먹여 살릴 능력도 없을 텐데. 심나정도 본인 먹고살기 바쁠 텐데 언제까지 도와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박연준의 눈동자는 옅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고 차갑게 콧방귀를 뀌는 그의 모습에 진태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사모님 쪽은 내버려둘까요?”“신경 쓰지 마, 어차피 돌아와서 애원하게 될 테니까!”박연준은 어두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회의한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도착했어?”“다 왔습니다. 이제 회의실로 가셔도 돼요!”회의실에 들어선 박연준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온몸에 분노를 가득 뿜어내며 회의에 임했고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떨면서 더듬거리며 업무 보고를 마쳤다.오늘 누구 하나 죽일 기세인 대표님의 모습에 다들 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애썼다....“정말 결정했어?”카페에서 손화영을 바라보던 심나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물었다.“응, 이미 결정했어...”손화영이 피식 웃었다.“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위해 더 노력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리고 난 대역일 뿐이잖아. 이제 나한테 사랑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우영이의 건강 상태와 아버지 문제야.”그 두 가지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박연준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동안 아내로 지내면서 그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내가 말했잖아, 박연준 개자식은 좋은 놈이 아니라고!”심나정은 욕설을 퍼붓더니 안쓰러운 듯 손화영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지며 안아주려 했다.“착하지, 괜찮아. 아직 내가 있잖아. 동생은 돈이 얼마나 필요해? 내가 알아볼게!”손화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너도 돈이 없는 거 알아. 이미 생각 중이야.”심나정 역시 연예계에 진출했지만 아직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는 상태라 수입이 많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런 아버지까지 있으니 손화영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이미 너무 많은 빚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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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오빠?” 손화영은 그렇게 한참을 꽉 안겨 있었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눈을 마주하자 두 사람 다 눈에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눈앞의 남자를 살펴보다가 손을 들어 남자의 눈가를 어루만졌다.코끝이 시큰거리고 심장마저 떨렸다.그가 맞다, 오빠였다!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년 동안 그를 찾아 헤맸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의 행방에 대해 알아봤지만 전혀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이 순간,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고 믿기지 않았다.“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니지?”손화영은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했지만 그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며 이렇게 눈앞에 서 있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전보다 훨씬 키가 크고 성숙해졌고 잘생긴 얼굴에 소년 같은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그대로였다.“나야!”눈앞의 남자는 그녀보다 머리 하나 더 큰 키에 정장을 입고 있었고 훤칠한 두 다리를 자랑하며 뚜렷한 이목구비가 아주 멋들어졌다.“오빠, 나도 오빠를 계속 찾았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손화영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그녀는 줄곧 그에게 사고가 생겨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니 그는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몸에는 맞춤 정장을 입고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수억짜리였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마음속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화영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윤원우가 부드럽게 물었다.“난 잘 지냈어, 오빠는?”손화영은 윤원우를 바라보았다.그녀와 윤원우는 보육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당시 외톨이로 늘 왕따를 당하던 그녀를 마찬가지로 마르고 약했던 윤원우가 지켜주었다.친오빠가 아니라 같은 시기에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였다.손화영은 어렸을 때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귀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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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박연준, 우리 화영이 괴롭히지 마!”심나정이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미친 사람처럼 손화영 앞으로 달려와 손화영을 뒤로 숨기며 보호했다.박연준은 서슬 퍼런 얼굴로 심나정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비켜.”“안 비켜!”심나정은 손화영을 보호하며 고개를 들고 붉은 입술로 비웃음을 터뜨렸다.“왜, 우리 화영이가 이혼하겠다는데 불만 있어?? 박연준, 당신이 우리 화영이 안 좋아하면 우리 화영이도 당신 만날 필요 없어! 당신이 정말 그렇게 대단해서 세상 모든 여자가 당신만 바라보는 줄 알아? 경고하는데 나도 당신 싫어하고 우리 화영이도 당신 같은 스타일 안 좋아해! 사람 괴롭히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박연준은 심나정을 바라보았다.“나랑 손화영 일에 끼어들지 마. 심나정, 본인 일이나 신경 써. 민영빈이 요즘 당신 미친 듯이 찾던데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줄까?”심나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연준, 당신은 여자만 협박하는 거야?”박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나정이 뺨을 때리려 하자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그의 힘이 너무 세서 심나정은 온 힘을 다해도 손을 빼지 못했다.그녀는 격분하며 소리쳤다.“이거 놔!”“박연준 씨, 나정이 놔 줘요!”손화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심나정을 보호하려고 다가가면서 박연준을 밀어내려 했지만 두 여자가 달려들어도 힘으로 박연준을 이기지 못했다.박연준은 심나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숨을 헉 들이켰다.보다 못한 손화영이 급한 마음에 박연준의 단단한 팔뚝을 꽉 깨물었고 찌릿한 고통에 박연준은 심나정을 놓아주며 미간을 찌푸린 채 이미 입을 뗀 손화영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팔에 선명하게 남은 이빨 자국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손화영, 너 개야?”손화영은 무심하게 박연준을 쳐다보면서 경고하듯 말했다.“박연준 씨, 나한테는 마음대로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요.”“네가 뭔데 나한테 경고를 해? 손화영, 넌 내 덕에 산다는 것 잊지 마. 나 없으면 네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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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화영은 문틀을 붙잡고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그녀와 심나정 모두 상대가 박연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눈앞에 있는 남자는 또렷한 이목구비에 강렬한 아우라를 풍겼고 눈빛은 위협적이고 무서웠다.그는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약간 불쾌한 듯 무심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민영빈?”멈칫한 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심나정을 돌아보았고 심나정 역시 민영빈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민영빈은 급하게 온 것 같았고 얼굴에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손화영은 무의식적으로 민영빈 앞을 막아서며 민영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막았다.“민영빈 씨, 여긴 왜 왔어요?”“당연히 빚 받으러 왔지.”가늘게 뜬 눈으로 방 안에 있는 캐리어를 포착한 민영빈은 한눈에 봐도 심나정의 캐리어가 아니었기에 단번에 손화영의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뭐야, 박연준이 찼어?”“내가 박연준 찼어요.”손화영은 민영빈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나정이 오늘 바빠요. 그리고 귀찮게 찾아오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내가 약속 깨겠다면?”건방진 민영빈의 태도에 손화영은 어이가 없었다.심나정이 다가와서 손화영 옆에 선 채 민영빈을 올려다보았다.“민영빈, 우리 사이 일은 나중에 얘기해. 오늘은 화영이가 있으니까 당신이랑 얘기할 시간 없어.”“왜?”민영빈은 눈을 지그시 떴다.“내가 안 죽어서 실망했어?”심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내가 내일 만나러 갈게.”민영빈은 그녀를 무시한 채 곧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두 여자는 두 발짝 뒤로 물러섰다.음식 냄새를 맡자 그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나 배고파.”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무슨 왕이라도 되는 듯 심나정을 바라보았다.“나한테 밥 한 끼도 안 차려줄 거야? 여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심나정은 입술을 깨물었고 손화영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민영빈을 바라보았다.이런 민영빈의 태도를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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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손화영은 두 사람이 성인의 행위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기 남아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캐리어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갔다.박연준이 온다는 민영빈의 말을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렇게 빨리 오진 않겠지?빨리 내려가면 그와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손화영은 망설였지만 곧바로 캐리어를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박연준과 마주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물 입구에 서 있는 키 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그는 가장자리에 기대어 희미한 불빛에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 채 손에는 희미한 담뱃불이 빛을 내고 있었다.손화영의 발걸음이 무의식적으로 멈춰 섰다.미간을 찌푸리며 박연준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른 길이 없어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쫓겨났어?”박연준이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잘생긴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당신이랑 상관없어요.”손화영은 그를 피하려고 옆으로 돌아 다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했다.하지만 박연준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고 손화영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그쪽으로 가서 그녀의 길을 단단히 막았다.“박연준 씨, 비켜요!”살짝 화가 난 손화영은 뺨이 다소 붉어져 있었다.“돌아가든지 나랑 같이 집에 가든지.”박연준이 말했다.“지금쯤이면 저 위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가서 확인해 볼래?”손화영은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았기에 박연준의 말을 듣고 피가 쏠린 듯 얼굴이 붉어졌다.조금 전 그녀가 내려오기도 전에 민영빈은 그녀 앞에서 대놓고 심나정을 만졌다.심나정이 털털한 성격이라 뭐든 얘기해서 민영빈의 물건이 아주 크고 밤일을 잘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손화영은 자신이 제때 나오지 않았으면 민영빈이 정말로 그녀 앞에서 그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였다.심나정을 통해 민영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손화영은 민영빈이 심나정 앞에서 다른 여자와 그 짓거리를 했다는 것도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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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바람이 세게 분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먹구름이 달빛을 가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만 같다.길가에 서 있던 손화영은 밤이라 쌀쌀한 바람에 손가락을 움츠렸다.이미 예상한 일이라 별 감정 기복은 없었다.그냥 뭔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느낌,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은근히 전해지는 둔탁한 통증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오랜 세월 마음에 담아둔 첫사랑인데 당연히 임청아를 선택하겠지.대역에 불과한 그녀를 두고 떠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손화영은 옅은 핑크빛 입술로 비스듬히 웃고는 외투를 여민 채 계속 걸어갔다.순간 이 넓은 세상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맸다.아버지와 동생의 상황을 생각하며 손화영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아버지를 구할 방법도 없고 동생에게 수술해 줄 방법도 없었다. 지금 한약으로 시간을 끌고 있지만 그래도 될지 모르겠다.당장 돈이 필요했고 동생을 위해 최고의 의사를 찾아야 했다.손화영은 민 교수님을 떠올렸다. 민 교수님께 연락하면 그에게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휴대폰을 찾던 손화영은 휴대폰이 있는 가방을 차에서 놓고 내렸다는 게 생각났다.박연준은 임청아를 찾으러 갔고 그녀는 이제 무일푼에 휴대폰도 없는 상태였다!손화영은 순간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꼈고 병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심나정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휴대폰도, 돈도, 아무것도 없이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다.손화영은 길가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더니.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손화영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가로등 아래 빗물이 대지를 촘촘히 씻어내는 와중에 도로엔 차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었다.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자 박연준은 차 속도를 늦추며 미간을 찌푸린 채 전화기 너머 진태원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집에 데려다주고 아주머니한테 음식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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