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30 챕터

제1화

“사모님, 암 말기입니다...”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뭐라고요?”의사는 진단서 위에 팔을 올려놓고 또박또박 말했다.“사모님, 2년 전 유산했을 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후에 감염까지 된 바람에 자궁에 암 덩어리가...”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그럼 얼마나 남았나요?”“암세포가 퍼져서 길어야 석 달 정도...”그 후로 의사가 더 뭐라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윙 했다. 머릿속에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맴돌았다......그날 저녁, 고씨 가문 별장.조금 전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바로 나의 남편 고현성이다.결혼 3년 동안 그는 매번 별장으로 돌아와 나와 관계를 가진 후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마치 더러운 뭔가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매정하게 나가버렸다.별장으로 들어와서부터 나갈 때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오늘도 그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후 양복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가려고 했다.나는 침대에 앉아 고현성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자 고현성이 입술을 깨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그의 무관심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 막혀 결국 이 한마디만 했다.“조심해서 가요.”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내려다보면서 고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고현성이 전화를 받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나와 고현성은 올해로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 여자의 목숨으로 고현성을 협박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강요했다.고현성은 반항도 해봤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3년 동안 나를 대하는 고현성의 태도는 늘 차가웠고 잔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나와 잠자리를 할 때도 그 여자의 이름 임지혜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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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고현성이 살짝 멈칫했다.“또 무슨 수작이야?”창밖에 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23살 생일까지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그날은 섣달 그믐날인데 그때까지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매끈한 배를 어루만졌다.“내가 현성 씨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나에 대한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딱 3개월만 연애해요, 우리.”고현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꿈도 꾸지 마.”휴대전화 너머로 온기라곤 전혀 없는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방 안에 가득한 외로움이 날 덮치는 것 같았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아팠다.나는 울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현성 씨, 나랑 이혼하고 싶다면서요? 그럼 이렇게 해요. 나랑 3개월 연애하는 동안에 예뻐해 주고 챙겨줘요. 설령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날 사랑하는 척해요. 만약 3개월 버티면 이혼해 줄게요. 그리고 연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다 현성 씨한테 줄게요. 생각해봐요. 3개월만 버티면 나랑 이혼할 수 있고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당당하게 임지혜 씨와 결혼할 수도 있고요. 현성 씨한테는 전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에요.”고현성이 덤덤하게 물었다.“너랑 같이 3개월 동안 연기하라고?”3개월 동안 관중은 나 하나뿐이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기만하는 거나 다름없었다.나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말했다.“네. 나랑 연애해요.”“허. 역겨운 소리 좀 그만할래?”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고현성은 내가 보는 앞에서 검은색 마이바흐를 몰고 별장을 나가버렸다....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머리가 윙 했고 목이 너무 말라 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어젯밤에 너무 많이 운 모양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의사의 말대로 약을 먹은 다음 준비한 후 회사로 출근했다.고현성의 아내인 것 외에 나는 선양 그룹의 대표였다. 한창 회사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고씨 가문 진화 그룹의 회장 고승철에게서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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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고현성이 화를 내면서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내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나가려던 그때 가장 만나기 싫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 바로 고현성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는 여자 임지혜.나는 임지혜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임지혜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고씨 가문 사모님 맞죠?”순간 멈칫한 나는 그녀를 흘겨보았다.“왜 그러시죠?”“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좋아요?”임지혜의 도발에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지만 립스틱은 진한 레드색을 발랐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얇은 롱원피스에 하얀색 코트로 가녀린 몸을 가리고 있었다.‘예쁘긴 하네. 이러니까 현성 씨가 그렇게 좋아하지.’연적끼리 만나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나는 임지혜를 무시하고 그냥 가려 했지만 그녀가 나를 비웃었다.“내 자리를 빼앗아 갔는데 편할 리가 없겠죠. 현성이가 수아 씨를 사랑해요? 귓가에 대고 달콤한 얘기를 해주던가요? 밥도 해준 적 없죠? 특별한 날에 선물 사주던가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죠? 현성이는 절대 수아 씨한테 해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선양 그룹 대표라는 이유로 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에요.”임지혜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녀가 한 말들은 전부 고현성이 그녀에게 해줬던 것들이었다.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질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모님 자리도 지키지 못하게 생겼는데...나는 덤덤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그럼 지혜 씨는요? 3년 전에 난 지혜 씨한테 기회를 줬었어요. 지금 인정하든 안 하든 현성 씨 와이프는 나예요. 그리고 지혜 씨 말이 맞아요. 난 선양 그룹 대표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현성 씨한테 결혼을 강요했어요. 근데 당신은...”절대 남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 건드린다면 그대로 갚아주는 성격이었다.그런데 고현성은 이런 나를 3년이나 모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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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고현성은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내가 저녁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 동안 내버려 둔 탓에 음식이 차갑게 식어버렸다.입맛이 없어서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밥을 천천히 먹었다. 그런데 기다리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고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연수아,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고현성의 시선이 음식 쪽으로 향했다.“다 네가 한 거야?”고현성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나는 설거지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낮에 현성 씨한테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겠냐고 물어봤었잖아요. 들어오겠다고 해서 현성 씨가 좋아하는 요리들로 한상 차렸죠.”고현성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나는 수저를 치우던 동작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두 눈 사이에 예전에 느꼈던 따뜻함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침묵을 택했다. 아무 말 없이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나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위층을 올려다보며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어보니 고현성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다리 위에 얇은 금색 노트북이 놓여있었다.나는 잠옷을 챙기고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욕조에 앉아 있다가 욕실 문을 연 순간 짙은 기운이 날 감싸 안았다.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침대까지 끌려갔다. 마지막에 고현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혜가 그러는데 3년 전에 네가 강요해서 미국으로 간 거래.”고현성은 이미 내가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는 3년 전에 그와 6억 원 사이에서 고민도 없이 6억 원을 선택했다.그렇다. 3년 전에 내가 임지혜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 건 사실이었다.만약 임지혜가 고현성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고씨 가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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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3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생명이 끝나가는데도 나는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소원은 고현성과 뜨거운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고현성이 나를 조금만 달래줘도 나는 아마 날뛰듯이 기뻐할 것이다.그나저나 나는 평생 귀한 대접과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여 임지혜를 자주 질투했고 미친 것처럼 고현성을 욕심냈다.고현성이 나를 괴롭히고 모욕해도 기꺼이 당해주었다. 그의 앞에서 나는 한없이 보잘것없고 비굴한 존재였다.나는 항상 자신을 낮추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고현성은 평소처럼 그냥 휙 가버린 게 아니라 샤워를 마친 후 소파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회사 서류를 처리했다.나는 잠옷을 입고 가볍게 물었다.“오늘 여기서 자고 가려고요?”나는 시력이 좋아 그의 노트북 화면에 나타난 서류를 정확히 보았다. 전부 예전에 선양 그룹과 체결했던 계약이었다.최근 선양 그룹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 거래처들이 줄줄이 계약을 파기하면서 주가가 뚝뚝 떨어졌다. 이 모든 게 다 고현성이 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까발리지 않았다. 그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길 바랐다.고현성이 무시하자 나도 더는 방해하지 않고 서랍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혼에 관해 그와 상의하려는데 임지혜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임지혜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현성아, 살려줘. 그 여자가 사람을 시켜서 날 납치했어. 내 몸을 더럽혀서 너랑 어울리지 않는 여자로 만들겠대.”고현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네가 시킨 거야?”나는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웃었다.“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예요?”고현성이 나가려고 하자 나는 달려가서 그를 잡았다. 그러고는 용기 있게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물었다.“현성 씨는 왜 그 여자 말을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요? 자작극일 수도 있잖아요.”“난 지혜를 잘 알아. 걔는 너 같은 사람이 아니야.”나는 순간 멈칫했다.‘너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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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임지혜는 나를 보더니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진짜 내가 한 짓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고현성이 다급하게 그녀를 끌어안았다.고현성의 가슴팍은 따뜻해서 늘 상대에게 안정감을 주었다.임지혜도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고현성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그리고 내 남편은 임지혜를 다독이느라 여념이 없었다.“괜찮아. 내가 있는 한 절대 너한테 무슨 짓 하지 못해.”고현성의 다정함은 임지혜만의 것이었다. 나에게 말할 땐 말투가 싸늘하게 바뀌었다.“병원에는 왜 왔어? 당장 집에 가지 못해?”임지혜의 앞에서 그는 늘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나는 시선을 거두었고 고현성이 임지혜에게 다정하게 대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임지혜는 고현성을 믿고 뜨거운 물을 나의 얼굴에 확 뿌렸다. 나는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뭔가에 부딪힌 바람에 넘어지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현성 씨.”고현성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임지혜를 째려보고는 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정교하게 한 메이크업이 번지면서 한쪽 얼굴의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점심에 넘어졌을 때 생긴 상처였고 손톱으로 긁으면서 더 심해졌다.고현성은 거즈와 알코올을 가져와 말없이 소독해주었다. 너무도 아팠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그가 나에게 건네는 잠깐의 따뜻함을 만끽했다.검은 머리도 다 젖고 말았다. 나는 고현성의 길고 하얀 손가락을 내려다보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현성 씨.”고현성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왜?”나는 욕심을 드러내며 물었다.“내가 연씨 가문을 현성 씨한테 주고 이혼도 하겠다고 하면 나랑 연애해볼 생각 있어요?”고현성이 움직임을 멈추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물었다.“어제 지혜가 귀국한 다음부터 계속 이상했어. 대체 뭐 하자는 거야?”고현성은 나에게 인내심이 별로 없다고 얘기했었다. 잔뜩 찌푸린 미간만 봐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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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연씨 가문 별장이었고 집에 부모님과 고현성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23살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할까 상의하고 있었다.내가 소파 옆에 서 있는데 고현성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 빨간색 좋아하니까 빨간 장미꽃을 세팅하는 건 어때요? 제가 피아노도 직접 연주할게요.”고현성의 표정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창밖의 햇살이 그에게 비추면서 더욱 멋있어 보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미간을 어루만지려 했다. 그런데 손가락은 그를 뚫고 허공에 머물렀다. 당황한 내가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내가 목놓아 울부짖던 그때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병실에 누워있었고 낮에 입었던 밝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며 옆에는 싸늘한 표정의 고현성이 서 있었다.꿈속에서 다정했던 고현성을 봤던 탓인지 차가운 그를 차마 볼 수가 없어 두 눈을 감았다.“아까 무슨 일 있었어요?”고현성은 시선을 늘어뜨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고승철이 갑자기 병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고현성을 째려보면서 화를 냈다.“방금 넘어져서 얼굴이 피범벅이 됐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 여자만 아니었더라도 병원에 와서 이런 일 당하지 않았을 텐데. 수아야, 너 평소에 현성이를 너무 풀어줬어. 남편을 잘 단속했어야지.”‘남편이라... 방금 이혼하자고 했는데.’나는 고현성을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었고 아버지의 얘기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승철에게 말했다.“아버님, 우리 이혼했어요.”그 소리에 고현성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고승철도 놀란 눈치였다. 다행히 내가 낮에 귀띔이라도 한 덕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낮에 그 얘기를 꺼내더니 벌써 이렇게 빨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빠른가요? 현성 씨는 3년 전에 이미 이혼하고 싶어 했어요. 지금까지 끌어도 아무도 득을 본 사람이 없고요. 아 참, 전 사업 머리가 없어서 선양 그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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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운성시의 하늘에 흰 눈이 흩날리고 있었고 대지를 하얀색으로 뒤덮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는 안에 금색 롱원피스를 입었고 밖에는 하얀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거기에 예쁜 실버 귀걸이를 매치했고 메이크업까지 한 채 길거리를 목적 없이 걸어 다녔다.운성시는 아주 시끌벅적했지만 나는 외톨이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방황하듯 사람들 사이에 서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찬바람이 스치면서 눈꽃이 얼굴에 내려앉아도 전혀 춥지 않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평범하고 키도 평범한 한 사람을 따라갔다.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던 그때 나는 용기 내어 다가가 은행 카드를 건네면서 부탁했다.“내가 10억 원 줄 테니까 나랑 3개월만 연애할래요?”그는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나를 보았다.“미안해요. 난 여자 친구가 있어요.”혼자 걸어 다니는 걸 보고 용기 내서 다가간 것이었는데...“알겠어요. 괜찮아요.”나는 실망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리다가 또 다른 평범한 남자를 찾았다. 사실 나 정도 얼굴이라면 남자들이 거절할 리가 없었고 게다가 10억으로 유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들은 되레 날 미친 사람 취급했다.“나랑 연애할래요?”“머리가 어떻게 됐어요? 가족한테 연락해 줄까요?”나는 멋쩍게 웃었다.“아닙니다. 다른 사람 찾아볼게요.”또 다른 사람을 잡고 물었다.“나랑 연애할래요?”“미안해요...”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대로 된 연애가 하고 싶었고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왜냐하면 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행복이라는 게 대체 어떤 걸까?내가 해본 거라곤 임지혜를 미친 듯이 질투한 것뿐이었다.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나랑 연애할래요?”그런데 그때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진짜 언니였어요?”내가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고씨 가문 사람 고민영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고현성이 싸늘하게 서 있었다.나는 민망함이 극에 달했고 고민영이 놀란 기색이 역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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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은 끝까지 계속 빤히 쳐다보았다.버스가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고 고현성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아까 그곳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커다란 별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에 고현성이 했던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지혜한테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했어.”자세히 생각해보면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빚진 건 사실이었다. 3년 전에 임지혜가 고현성을 포기했고 고현성도 임지혜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만약 임지혜가 6억 원을 받지 않고 운성시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고현성은 그녀와 헤어지려 했을 것이다.사랑 속에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성대한 결혼식을 3년 전에 임지혜에게 줬어야 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기회가 생겨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최희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최희연은 몇 안 되는 나의 절친이었고 운성시에서 고양이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녔다. 그나저나 카페는 항상 적자 상태였고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덕에 겨우 살아남았다.나는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물었다.“무슨 일이야?”최희연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옆에 음악 센터가 있잖아. 저녁에 피아노 공연이 있는데 미국에서 온 연주가래. 너 피아노 좋아하지? 지금 이리 와. 저녁에 같이 공연 보러 가자.”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공연은 단지 고현성이 연주하는 피아노였다.고개를 살짝 수그리자 테이블 위에 놓인 10억짜리 은행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를 거닐며 사랑을 사려 한 바람에 미친 사람 취급당했고 고현성에게 초라한 모습마저 보여주고 말았다.돈이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최희연에게 카페 운영 자금으로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희연과 공연을 보기로 했다.“한 시간 정도면 도착해.”나는 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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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운성시에 눈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내린 바람에 도시 전체가 흰 눈으로 뒤덮였다. 우리 둘은 좁고 긴 골목에 마주하여 서 있었고 옅은 가로등 불빛이 그를 비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으며 마치 만화에서 나온 남자 같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살짝 놀라는가 싶더니 빤히 보면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꼬마 아가씨, 어디 살아?”“연씨 별장...”고현성이 연씨 별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허둥지둥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고현성은 환하게 웃으면서 목도리를 풀어 나에게 둘러주었다.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었다.고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자. 집에 데려다줄게.”‘웃을 때 참 예쁘네...’그림을 찢고 나온 듯한 얼굴이었고 또 무척이나 다정했다.나는 그의 옆에서 걸으면서 손을 살며시 잡았다. 고현성이 살짝 멈칫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내 손을 더 꽉 잡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가는 길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별장 문 앞에 도착해서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성 씨,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갈래요?”고현성이 웃으면서 거절했다.“시간이 늦었어.”밤이 늦은 건 사실이었다. 나는 발끝을 들어 고현성의 옷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그럼 다음에 봐요.”그는 약속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순간 오늘 저녁의 모든 게 다 나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 이 사람은 임지혜의 신랑이 될 텐데.고현성은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올려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난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이고.‘난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나는 어두운 얼굴로 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고 통유리 쪽으로 다가가 아래층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무심한 듯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나는 얼굴을 창문에 기댄 채 나지막하게 인사를 건넸다.‘잘 가요, 현성 씨. 다신 보지 말아요. 이번 생에 당신이 원하는 걸 다 이루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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