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설령 그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속상한 일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차를 몰고 가려는데 고현성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에 나는 차를 멈추고 욕했다.“미쳤어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요!”고현성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곤 없었고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냥 쫓아내려는데 그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아직도 날 사랑해?”질문이면서도 긍정의 한마디였다.3개월 후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다는 사람이 지금 이런 소리를 했다. 자신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따지고 보면 그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도 나였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그에게 완전히 보여주고 말았다.‘굳이 탓하려면 확고한 내 사랑을 탓해야지. 내가 현성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확고하니까.’“그래요. 사랑해요. 그래서 싫어요?”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홧김에 한 말인 것도 사실이었다. 고현성은 실눈을 뜬 채 운전에 집중하라고 했다.“연씨 별장으로 가.”“현성 씨는?”나의 질문에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나도 같이 가야지.”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됐어요. 난 현성 씨를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그럼 고씨 별장으로 가.”나는 차를 운전하여 고씨 별장에 도착했다. 고현성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별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가 정리했는지 매우 깨끗했고 소파도 흰 천으로 뒤덮어놓은 게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현성은 손목을 내려놓고 흰 천을 치웠다. 나는 소파에 앉았고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떠다 주었다.따뜻한 물을 들고 있는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오후 시간이라 창밖의 햇살이 나의 몸을 비춰 너무도 따뜻했다. 고현성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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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고현성이 나를 보면서 끈질기게 답을 원했다. 가끔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혼까지 한 마당에 왜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는 건지...나는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내고 최대한 진정하려 애를 썼다.“딱히 이유는 없어요. 그냥 애정 결핍이라 그런가 봐요. 그래서 돈을 줘서라도 사랑을 받고 싶은 거고. 어차피 이런 짓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요, 뭐.”잠시 후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그때 연씨 가문으로 당신과의 결혼을 바꿨잖아요. 이젠 사랑을 바꾸는 거죠.”“그럼 나랑 연애하자.”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면서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요?”“너랑 연애하겠다고. 사랑하는 척, 아끼는 척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해줄게. 그리고 네 말에 거역하지도 않고 완벽한 남자 친구가 되어줄게.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그 한마디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고현성은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해도, 거리에서 아무 남자를 찾는 한이 있더라도 고현성과 연애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혼 전에 이미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말투는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나에 대한 연민처럼 느껴졌다.나는 그를 뼛속까지 사랑했지만 끝내는 거절했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고씨 별장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방 안에만 갇혀 있었고 고현성이 문자를 보내도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왜 도망쳤어?]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현성이 사랑하는 여자는 임지혜였고 임지혜의 남편이었다. 만약 이혼 전에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라면 나는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다 끝난 마당에 그의 동정과 은혜는 받고 싶지 않았다.죽을 때까지 외로운 한이 있더라도 필요가 없었다.그 후 일주일 동안 나는 연씨 별장에만 틀어박혀 어디도 가지 않았다. 병이 점점 악화되어 힘없는 날이 더 많았고 한 번 침대에 누우면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그렇게 흐리멍덩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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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나와 최희연은 고현성을 만나기 전부터 친구였다. 하여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는 마음도 알고 있었고 모든 비밀번호가 고현성을 만난 그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바로 2009년 12월 27일, 첫눈이 내리던 그날이었다.“수아야, 안색이 너무 창백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그래?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나는 카페에서 최희연과 잠깐 얘기를 나눈 후 나왔다. 별장으로 돌아가 계속 틀어박혀 있으려던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 물었다.“누구세요?”“고씨 가문 사모님 임지혜입니다.”내가 피식 웃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임지혜는 잠깐 멈칫하다가 집념을 버리지 않고 말했다.“알아요. 근데 수아 씨한테 알려주고 싶었어요. 내가 바로 고현성의 아내고 당신 때문에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3년이나 놓친 임지혜라고요. 연수아 씨, 난 현성이를 3년 기다렸고 당신을 3년 참았어요. 지금은 그때 잘못된 걸 바로잡았을 뿐이에요. 난 드디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현성의 아내가 되었어요.”고현성의 아내 자리가 남들의 존경의 받아야 한다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아끼면 모를까.나는 딱히 관심 없는 말투로 말했다.“네.”그런데 임지혜가 말하다가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사실 난 수아 씨를 탓한 적이 없어요. 그때 수아 씨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재벌 집 딸이 사모님이 되었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수아 씨처럼 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을 상대하느라 몇 년 동안 편히 살지도 못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수아 씨한테 내가 고마워해야 해요.”나는 차분하게 물었다.“그래요?”‘난 착한 게 아니라 싸우기 싫었을 뿐인데.’“네.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현성이랑 오래전부터 결혼하고 싶었거든요.”잠깐 멈칫하다가 임지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이제 난 현성이의 아내 임지혜예요.”나는 싸늘하게 그녀에게 귀띔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 아버님이 허락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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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요즘은 운성시에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다.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자 고현성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까 폭우가 쏟아져서 옷이 다 젖었는데 계속 문 열어주지 않을 거야?”말투에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속상함이 살짝 묻어있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물었다.“무슨 일로 왔어요?”“연수아, 내가 지금 네 남자 친구라는 거 잊은 건 아니지?”‘기억하고 있었구나...’“난 당신이 후회한 줄 알았어요.”내가 말했다.“며칠 동안 연락 안 해서?”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말투에 속상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이 바보야, 내가 말했잖아. 회사 일 처리해야 한다고. 앞으로 두 달 동안 회사에 급한 일이 없는 이상 쭉 네 옆에 있을 거야.”고현성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옆에 데리고 다닐게.”그의 말에 나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고현성이 나에게 이토록 다정하고 친절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그에게 매달리기만 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들었어?”내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물었다.“현성 씨.”“응?”“문 열어줄게요.”나는 전화를 끊은 후 안방에 뒀던 진통제를 숨겼다. 그리고 전에 바닥에 넘어지면서 생긴 흉터를 가리려고 메이크업도 했다.얼굴에 상처가 났을 때 손톱으로 세게 긁은 적이 있었다. 분풀이이자 고현성이 나에게 준 상처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신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됐었는데...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현성은 손가락으로 이마에 딱밤을 때리면서 장난을 쳤다. 화들짝 놀란 나를 보며 고현성이 덤덤하게 웃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얼어 죽을 뻔했다고.”나는 아무 거짓말이나 했다.“화장실 다녀왔어요.”고현성이 나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방금 화장했어?”나는 무심코 부인했다.“아니요.”그런데 고현성이 끈질기게 캐물었다.“날 위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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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고현성도 참 웃긴 남자였다. 단 두 달만 연애하기로 했고 또 두 달 후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 텐데 지금 물어봤자 의미가 있을까?그리고 두 달의 연애는 그저 연기에 불과했고 그가 나에게 베푸는 은혜와 보상이었다.나는 고현성의 목을 끌어안고 웃었다.“사랑하죠, 당연히. 현성 씨도 알잖아요. 연씨 가문 딸인 내가 고씨 가문에 시집간 건 현성 씨를 사랑해서라는 거.”예전이든 지금이든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나의 말에 고현성은 피식 웃더니 품에 꼭 끌어안고 따뜻한 손으로 등을 어루만졌다.“수아야, 사랑해.”그 순간 나는 경악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렸다. 나와 연애할 때 사랑하는 척, 아끼는 척해주겠다고 했었고 거역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행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었다.지금 그는 그때의 약속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진심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진심인지 물어봐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내 옆에 딱 두 달만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아는 고현성은 절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임지혜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이상 무조건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마치 지금 날 싫어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나는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현성이 나를 꽉 끌어안고 물었다.“넌 언제부터 날 사랑했어?”내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아주 오래전에.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요.”...저녁에 고현성은 우리 집에서 잤다. 잠자리를 해선 안 된다는 나의 조건 때문에 그냥 품에 안기만 했다. 고현성이 내 침대에서 밤을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고현성이 깨기 전에 진통제를 먹었고 화장도 했다. 옅은 화장이었지만 창백한 안색은 가릴 수 있었다.화장을 마치자마자 고현성이 잠에서 깼다. 그는 비몽사몽 나를 보다가 한참 후에 말했다.“나 어젯밤에 여기서 잤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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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고현성이 밖에서 2분 정도 전화를 받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내가 가볍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고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따가 나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나는 알면서도 물었다.“임지혜 씨 때문이에요?”고현성이 두 눈을 감았다.“교통사고 당해서 다쳤대.”나는 계속하여 인내심 있게 물었다.“그래서 지금 보살펴주러 가려고요?”고현성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귀띔했다.“우리 전에 했던 약속 기억해요? 연애하는 동안에는 임지혜 씨를 만나선 안 된다고 했었어요.”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기억해. 그래서...”‘내 의견을 물으려고? 뭘 믿고 내가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현성 씨, 지금 가면 이 게임 중지할 겁니다.”나는 영화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현성 씨가 가겠다고 하면 막지는 않을게요. 가면 약속을 어긴 거로 생각하겠어요. 현성 씨, 사실 난 현성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해심 많은 여자가 아니에요.”고현성은 날 묵묵히 바라보다가 결국 나가버렸다. 창문 앞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는데 아주 단호했다.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초저녁쯤 고현성의 어머니가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자 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캐리어를 끌면서 거실로 내려갔다.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고현성의 어머니는 나를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가려고?”“네. 비행기 시간이 곧 돼서요.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실례는 무슨. 내 며느리인데 뭘 그런 예의를 차리고 그래.”“어머님, 저랑 현성 씨 이혼한 지 좀 됐어요.”고현성의 어머니가 아무 말이 없자 내가 웃으며 물었다.“눈사람 만들어도 돼요?”“당연하지. 내가 도와줄까?”“괜찮아요. 다 만들면 갈게요.”나는 눈이 두껍게 쌓인 곳을 찾아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만들어본 적이 있어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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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고현성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2년 전 낙태 수술이 뭘 빼앗아 갔다고?”그가 정확히 들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희연이 풀어줘요. 사랑하는 사람이 희연이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굳이 탓하겠다면 사고나 치고 다니는 임지혜 씨를 탓해요. 조사해보면 임지혜 씨가 8년 전에 뭔 짓을 했는지 알 거예요. 그 사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쳤어요. 희연이는 지금 그때 당한 거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고 차로 친 것도 임지혜 씨가 모진 말을 해서 홧김에 그런 거예요. 현성 씨 그 약혼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요.”나는 말하다가 잠시 멈칫하고 비웃었다.“아, 내가 잘못 말했네요. 당신은 못 하는 게 없는 고현성이죠, 정말. 남이 무슨 짓을 하든 다 아는데. 지금은 단지 임지혜 씨의 잘못도 눈감아주고 있는 거고요.”고현성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이 일은 내가 제대로 조사할 거야. 근데 2년 전 그 일은 제대로 설명해. 아이를 지운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무슨 일? 다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의사가 수술을 했지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궁이 감염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고현성과 관계를 가졌다.내가 싸늘하게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 아이를 지운 후에 몸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어요. 의사가 내가 앞으로 아이를 가지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내가 왜 선양 그룹을 현성 씨한테 줬겠어요? 그동안 선양 그룹을 혼자서 경영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후계자도 없어서 준 거죠.”한참이 지나서야 고현성이 말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현성아,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병실 안의 임지혜가 고현성을 부르자 나는 싸늘하게 웃고는 다시 경찰서로 갔다.최희연을 보석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권력을 내 손으로 직접 고현성에게 갖다 바쳤고 고현성은 그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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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연애 말이야. 없었던 거로 하자.”이젠 사랑하는 척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내가 피식 웃었다.“그래요. 내가 바라던 바예요.”“수아야, 그때 너랑 이혼한 건 지혜한테 해주지 못한 결혼식을 돌려주기 위해서였어. 진짜 너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좋아.”“전처한테 미련이 남았어요?”나는 싸늘하게 웃었다.“미안할 거 없어요. 현성 씨는 날 사랑하지 않을 뿐이고 나도 아쉬울 게 없어요. 이혼을 후회하고 있다는 둥, 이젠 날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둥, 임지혜 씨에 대한 마음이 진짜 사랑인지 모르겠다는 이딴 어이없는 소리만 하지 말아요. 만약 그런 소리 했다간 현성 씨가 너무 역겨울 것 같아요.”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고현성이 대답했다.“이렇게까지 날을 세울 거 없어. 너한테 죄책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함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야.”“이 전화를 한 목적이 뭐예요?”“아이 일은 정말 미안해...”“그만 해요. 사과받을 생각 없으니까. 아이 일은 아이한테 사과해야죠, 내가 아니라. 현성 씨가 뭔 생각인지 잘 알아요. 나한테 사과해서 양심의 가책이라도 덜어낸 다음에 임지혜 씨랑 결혼하겠다는 말이잖아요.”고현성은 아무 말이 없었다.나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끄고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켜고 고현성에게 문자를 보냈다.[됐어요. 현성 씨 탓하지 않을게요. 이제부턴 각자 살아요. 현성 씨는 임지혜 씨와 행복하게 살고 난 새로운 삶을 살 거예요.]참으로 가식적인 말이었다. 아마 고현성도 내가 탓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희연의 일 말고는 정말 탓할 게 없었다.사실 따지고 보면 다 내 탓이었다. 모든 게 다 자업자득이었고 고생을 사서 했다.몸이 점점 추워져 나는 숨을 내뱉었다. 두 다리에 갑자기 힘이 풀린 바람에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먼 곳의 파도가 밀려오면서 내 몸을 적시려던 그때 누군가 힘 있는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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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조민수는 며칠 동안 쭉 연씨 별장에 있으면서 나의 일상을 보살펴줬다. 그러는 사이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상주로 언제 돌아가려고?”그러자 조민수가 웃으며 물었다.“그렇게 날 내쫓고 싶어?”“새언니가 화낼까 봐 그러지.”내가 대답했다.“네 새언니는 어려서 자주 삐져.”새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예전에 오빠에게서 들었는데 확실히 좀 제멋대로인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고 절대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진 않았다.만약 임지혜 같은 스타일을 만나면 거두절미하고 바로 해결해버렸기에 조민수의 옆에는 이성이 매우 적었다. 그런 그녀와 달리 나는 신경 쓰기도 귀찮았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틈을 준 것이었다.내가 웃으면서 말했다.“새언니 아직 어리니까 오빠가 많이 양보해줘.”그러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조민수가 피식 웃었다.“난 걔를 탓한 적이 한 번도 없어.”새언니에 대한 조민수의 마음은 진심 같았다.“두 사람 꼭 행복해야 해.”“응. 알았어. 그렇게 할게.”내가 말했다.“오빠, 빨리 상주로 돌아가. 새언니가 보고 싶어 하겠어.”“그럼 넌? 난 여기 남아있을 거야.”내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오빠,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개인적인 시간을 줘야지.”그를 돌려보낸 건 그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새언니와 싸운 상태이기에 더더욱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되었다.조민수는 망설이다가 결국 타협했다.“그럼 오늘 저녁에 나랑 파티에 참석하자.”“갑자기 무슨 파티?”조민수가 히죽 웃더니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임지혜 말이야, 자기는 너보다 더 귀하다고 했지? 오늘 저녁에 대체 누가 파렴치한 건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수아야, 거절하지 마.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두려움이란 걸 알아야 해. 고현성이 하도 오냐오냐해서 너한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거라고.”“난 신경 쓰지 않아.”“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나는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민수와 함께 파티에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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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조민수는 운성시를 떠나기 싫어했지만 내가 계속 다그쳤다. 나를 집에 데려다준 후에도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 버티고 있자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꼭 날 내쫓아야겠어?”이제 내 옆에 남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최희연마저 감옥에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조민수를 보내기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 그에게 자주 전화가 오는 사람이 있었다. 조민수에게도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 그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내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혼자 있을 시간을 좀 줘.”“9년이나 혼자 있었는데 부족해?”나는 순간 멈칫했다. 부모님이 돌아간 지 올해도 9년이었다.9년이라는 시간을 바삐 보낸 탓에 날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했던 선택이 내 인생의 가장 잘못된 결정이 되고 말았다.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고현성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그동안 챙겨줘서 고마워, 오빠.”나의 결정을 바꿀 수 없자 조민수가 알겠다고 했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직접 메이크업을 지워주었다.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인내심 있고 꼼꼼하게 지워주었다. 얼굴에 생긴 옅은 흉터를 본 순간 조민수는 더 속상해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이건 또 무슨 흉터야?”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고현성이 임지혜를 지키려고 날 밀어버린 바람에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고현성에게 나도 아프다고 분명히 얘기했었지만 그는 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 후에도 이 상처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실수로 넘어진 거야.”“아무리 넘어져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넘어져?”조민수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지만 내가 말하길 꺼리자 더는 캐묻지 않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고씨 가문과의 계약을 취소하면 조씨 가문에 손해가 커?”나도 줄곧 사업을 해온 사람이라 조민수는 나에게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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