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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Author: 동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30 10:31:49
나와 최희연은 고현성을 만나기 전부터 친구였다. 하여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는 마음도 알고 있었고 모든 비밀번호가 고현성을 만난 그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바로 2009년 12월 27일, 첫눈이 내리던 그날이었다.

“수아야, 안색이 너무 창백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그래?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나는 카페에서 최희연과 잠깐 얘기를 나눈 후 나왔다. 별장으로 돌아가 계속 틀어박혀 있으려던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 물었다.

“누구세요?”

“고씨 가문 사모님 임지혜입니다.”

내가 피식 웃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

임지혜는 잠깐 멈칫하다가 집념을 버리지 않고 말했다.

“알아요. 근데 수아 씨한테 알려주고 싶었어요. 내가 바로 고현성의 아내고 당신 때문에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3년이나 놓친 임지혜라고요. 연수아 씨, 난 현성이를 3년 기다렸고 당신을 3년 참았어요. 지금은 그때 잘못된 걸 바로잡았을 뿐이에요. 난 드디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현성의 아내가 되었어요.”

고현성의 아내 자리가 남들의 존경의 받아야 한다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아끼면 모를까.

나는 딱히 관심 없는 말투로 말했다.

“네.”

그런데 임지혜가 말하다가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난 수아 씨를 탓한 적이 없어요. 그때 수아 씨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재벌 집 딸이 사모님이 되었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수아 씨처럼 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을 상대하느라 몇 년 동안 편히 살지도 못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수아 씨한테 내가 고마워해야 해요.”

나는 차분하게 물었다.

“그래요?”

‘난 착한 게 아니라 싸우기 싫었을 뿐인데.’

“네.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현성이랑 오래전부터 결혼하고 싶었거든요.”

잠깐 멈칫하다가 임지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난 현성이의 아내 임지혜예요.”

나는 싸늘하게 그녀에게 귀띔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 아버님이 허락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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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워!”한민영의 날 선 목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석지훈이 천천히 눈을 뜨고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민영아.”그의 차분한 목소리에 한민영은 순간 말을 멈추고 눈길을 돌렸다.그녀는 애써 무심한 척하며 대답했다.“왜?”석지훈은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내가 아직 한씨 가문에 빚진 게 뭐가 있지?”그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어마어마했다.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 한마디에 숨을 죽였다.한민영은 입술을 깨물며 말문이 막힌 듯 대답하지 못했다.분위기가 점점 무겁게 가라앉자, 한민수는 눈치 빠르게 상황을 전환하려 애쓰며 얼른 말을 꺼냈다.“자, 여기까지 하자. 앞으로 경쟁사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자. 그들이 유럽뿐만 아니라 국내 세력까지 강탈하면서 지금처럼 성장한 건 골치 아프잖아.”하지만 석지훈은 한민수의 중재를 무시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네가 수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줄 알았어? 내가 굳이 언급하지 않은 건 한씨 가문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야.”그는 한민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한 어조로 덧붙였다.“한민영, 나라는 사람은 마음먹으면 항상 독하게 행동에 옮기는 거 잘 알고 있을 거야. 내 앞에서 감히 이득을 보려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내 영역에서 내 여자를 괴롭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테고...”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며 무심한 어조로 마무리했다.“설령 그 대상이 한씨 가문이든, 한씨 가문의 미래 후계자든... 난 봐줄 마음이 없어.”나도 그의 입에서 ‘독하다’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한민영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 석지훈, 네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내가 말실수했다는 것도, 네 여자를 괴롭혔다는 것도 모두 인정해. 그래도 나는 네 오랜 친구야. 그리고 한씨 가문은 너를 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02화

    별장 문 앞에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들 중 한민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어머, 아가씨도 여기 있었어요?”그의 말투는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옆에 있던 원태웅이나 한 번 게임을 같이했던 유진, 그리고 나에게 늘 차갑게 대했던 한민영보다는 훨씬 나았다.문제는 지금 내가 석지훈의 셔츠 한 장만 걸친 채 머리카락도 흐트러진 상태라는 점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 상황은 아무리 봐도 난처하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그들은 석지훈의 친구들이자, 나를 완전히 용서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그런 사실이 떠오르자 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결국 한민수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석지훈에게 말했다.“오빠, 나 먼저 들어가서 옷 좀 갈아입을게요.”나는 서둘러 별장 안으로 들어와 2층 방으로 올라갔다.침대에 앉자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석지훈의 SNS에 등장하는 사람 중 나를 반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그 사실이 나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었다.‘괜한 생각은 그만하자.’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며 스스로를 다독였다.옷장으로 가서 은빛이 도는 몸에 딱 붙는 미니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어차피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높은 구두는 신지 않았다.가볍게 화장을 마친 뒤 침대를 정리하려 돌아섰을 때, 아침에 석지훈이 벗겨 준 궁전 스타일의 드레스가 바닥에 던져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윤 비서의 말에 따르면, 그 드레스는 F국 왕실의 것이었다.F국 왕실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예전에 석만호가 해 준 이야기뿐이었다.그는 내 친모가 F국의 공작과 결혼했다고 말했다.‘날 납치한 사람들이 왜 F국 왕실의 드레스를 가지고 있었던 거지? 왜 나한테 그 옷을 입히려 했을까? 이게 무슨 의미일까?’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친모에게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석만호가 준 연락처가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긴 했지만 말이다.그때, 아래층에서 갑자기 다투는 소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01화

    석지훈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막지 않았다.항상 그랬다. 그는 나를 제지하거나 간섭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했다.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러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그의 가슴이 드러났고, 그곳엔 상처들이 가득했다.아침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몸이 잠옷에 가려져 있어서 자세히 볼 틈도 없었다.그러나 지금, 그의 몸에 새겨진 상처들은 너무도 선명했다. 상처들은 각기 다른 깊이와 모양을 지니고 있었다.얕은 상처는 세월의 흔적으로 이미 희미해졌지만, 깊은 상처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듯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상처는 그의 복부에 있었다.길게 그어진 흉터는 그의 단단한 복부 근육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 거친 흉터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그의 상처가 전해주는 차가운 감촉에 마음이 먹먹해졌다.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오빠, 안 아파요?”그는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익숙해졌어.”‘익숙해졌다고?’그의 말에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익숙해졌다고 해도,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잖아요.”그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나는 그의 허리와 복부 위로 몸을 기울여 얼굴을 살짝 댔다. 그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며, 내 마음은 더욱 아려왔다.나의 위로를 눈치챘는지, 석지훈은 작은 강아지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위험을 피할 수 없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위험이 닥칠 거야. 나와 함께하기 두렵지 않아?”그가 자신이 사는 세상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오빠의 세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머릿속에 불현듯 최현욱의 말이 떠올랐다.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오빠의 세계는... 어떤 곳이에요?”내 손끝은 그의 허리띠에 닿아 있는 금속 부분을 천천히 매만지고 있었다.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담담한 어조로 말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400화

    나는 석지훈을 집에 데려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먼저 청혼하지 않는 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었다.만약 내가 그를 집에 데려간다면 부모님께서 결혼을 재촉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마치 내가 그와 빨리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일 테니, 반드시 막아야 했다.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와의 결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나는 대충 둘러댔다.“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급한 거 없어요. 제가 일정 잡으면 미리 알려드릴게요.”그러자 엄마는 만족한 듯 말했다.“이건 네 일만이 아니야. 시혁이도 있잖니. 나랑 네 아빠가 얘기를 좀 해봤는데, 시혁이도 연씨 가문의 자식이니까 네 아빠가 어른으로서 그 여자애랑 직접 얘기를 좀 해 보려고 해. 두 사람이 지금처럼 어색하게 지내지 않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어.”엄마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돈 걱정은 하지 마. 연씨 가문이 운성시에서의 명망은 사라졌지만, 나랑 네 아빠가 몇억 원 정도 모아 놨단다. 그 돈으로 시혁이한테 운성시에 집을 마련해 주고, 예단도 준비해서 그 여자애랑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게 해 주고 싶어. 그래야 네 큰아버지한테도 체면이 서지 않겠니.”큰아버지는 그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부모님은 운 좋게 살아남았다.아무래도 부모님은 송이연의 진짜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굳이 그 사실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부모님은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추진하려는 게 마음이 쓰였다. 게다가 연시혁도 연씨 가문의 사람이기에, 나 역시 내심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물론 그녀가 연시혁을 용서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여자로서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했다. 그리고 이 일에 있어서는 결과가 어떻든 송이연의 결정을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나는 언제까지나 승아의 고모로 남을 테니까...“시혁 오빠가 자존심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9화

    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석지훈은 어느새 내 옆에 몸을 기댄 채, 팔로 머리를 받치고 누워 있었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도 깊었고, 얼굴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숨결이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나는 목이 타들어 갔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언제 자요?”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되물었다.“왜?”나는 그 시선을 피하려 애쓰며 무심한 척 대답했다.“그... 그냥요. 이제 좀 자고 싶어졌어요.”나의 대답에 그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리고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나의 귀를 스쳤다.“아가...”그 한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얼떨결에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네?”“키스해 줘.”갑자기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그의 말투엔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여유와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 분위기에 눌린 나는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굳어 있는 나를 보고, 석지훈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그러더니 두 손가락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스치며 조용히 물었다.“하기 싫어?”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가볍게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그의 입가에도 입술을 살짝 포갰다. 그러고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똑바로 마주했다.그는 말없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내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방 안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퍼져 있었다.햇살에 물든 그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 눈빛만큼은 달랐다.말없이 나를 끌어당기는 그 눈빛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격정이 가득 차 있었다....나는 녹초가 된 몸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함께 있던 석지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베개 옆에 낯익은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이걸 어디서 찾았지?’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원을 켜자, 화면에는 부모님께서 걸어왔었던 부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8화

    ‘F국 왕실? 왜 러국에서 F국 왕실의 물건이 발견된 거지?’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답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함에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었다. 결국 석지훈의 품에 기댄 채 금세 잠들어 버렸다.동성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침 일곱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헬리콥터는 석씨 가문의 별장, 석지훈이 전에 머물던 곳에 착륙했다.나는 희미하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나를 안고 헬리콥터에서 내린 뒤 별장으로 들어갔다. 헬리콥터는 곧바로 잔디밭에서 이륙 준비를 했고 진유겸과 그 일행은 다시 운성시로 떠났다.석지훈은 별장에 들어선 뒤에도 나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은 채 곧장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한 후, 커다란 침대 위에 나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나서야 그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나는 지친 몸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욕실 쪽에서 물소리가 끊겼고 인기척이 들려서 눈을 떠보니, 검은색 실크 잠옷을 입고 나온 석지훈이 보였다. 넓은 가슴팍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나는 눈을 깜빡이며 나지막이 그를 불러보았다.“오빠...”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앉더니 손을 뻗어 내 볼을 살짝 꼬집듯 어루만졌다. 그러고 나서 부드러운 손길로 내 어깨를 덮고 있던 코트와 신고 있던 신발을 벗겨냈다.나는 그의 손길에 저항하지 않았고 조용히 지나간 상황을 설명했다.“누군가가 나를 구해준 것 같아요...”그는 담담히 대답했다.“알고 있어.”“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어요.”나는 그 사람이 최현욱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설명하지 않아도 돼.”석지훈은 진유겸이 했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쑥스러웠다. 눈앞의 그를 마주하자, 마음이 뒤숭숭했다.8개월 만에 다시 만난 탓인지 어딘가 어색하고 서먹했다. 그런데 그가 한참 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바람에 더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맑고 따뜻했다. 어떤 욕망이나 불순한 기색도 없었다. 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7화

    사실 윤승민은 석지훈을 의식해 억지로 예의를 차린 것뿐이었다.이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조금 울적해졌다.나는 윤승민을 지나쳐 헬기에 올라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창백한 얼굴의 최희연이 진유겸의 품에 기대 있었다.진유겸은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냉랭한 표정으로 내 뒤에서 막 들어온 석지훈을 노려보더니 불만스럽게 물었다.“내 여자는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됐는데 네 여자는 왜 이렇게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거야?”진유겸은 최희연이 다친 것 때문에 화가 나고 속상한 상태였다.나는 얼른 해명했다.“난 처음에 그 사람들이 희연이를 기절시키는 걸 보고 그다음에 그 사람들이 몽둥이를 나에게 휘두르자 바로 기절한 척했어요.”진유겸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바보들이 그걸 믿었단 말이에요?”석지훈은 진유겸의 맞은편에 앉았고 나는 석지훈의 옆으로 가서 앉으며 추측하듯 말했다.“그 사람들이 내가 연기한 걸 알았을 수도 있지만 굳이 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것 같아요.”진유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수아 씨는 운이 좋았네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석지훈의 팔에 기댄 뒤 몰래 그의 얼굴을 살폈다.석지훈도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우리는 이렇게 오랜 시간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있었다.한참 뒤 최희연은 간신히 힘을 내어 나에게 물었다.“수아야, 넌 괜찮아? 나는 머리가 좀 어지럽고 힘이 없어서 말하기도 힘들어.”나는 대답했다.“괜찮아. 다만 다리가 좀 아프고 피곤할 뿐이야.”최희연은 부드럽게 물었다.“왜?”“저택을 떠난 뒤에 걸어서 도시까지 왔어. 길엔 온통 눈이 쌓여 있었고 입은 옷이 너무 무거워서 더 춥고 피곤하네.”최희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나저나 너 지금 입고 있는 그 전통 드레스 정말 예쁘다. 그런데 네 머리 위에 있는 흰 꽃장식 많이 망가진 것 같네.”눈밭에서 여러 번 넘어졌기 때문에 작은 흰 꽃장식은 이미 엉망이 된 상태였다.하지만 최현욱이 매번 그것을 주워 내 머리에 다시 꽂아 주었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6화

    나는 깜짝 놀란 얼굴로 뒤로 돌며 물었다.“나는 오빠가 여기로 올 줄 알았는데. 어떻게 내 뒤에 있어요?”밤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돌아보니 석지훈은 평소에 자주 입던 검은색 정장을 벗어 던진 채 얇은 검은색 군복 스타일의 외투를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검은색 버클 벨트를 둘러 약간 조여 맨 것 같았다.이 때문에 석지훈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더욱 길고 강인해 보이면서도 날렵한 느낌을 줬다.게다가 차가운 석지훈의 표정과 뒤로 깍지를 낀 손까지 몸 전체에서 엄격하고 단정한 분위기를 뿜어냈다.약간 흐트러진 앞머리는 그의 이미를 가리고 있어 살짝 부드러운 인상을 더해주었지만 지금의 그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나는 석지훈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재빨리 석지훈에게 달려가 품에 뛰어들었다.그리고 석지훈의 목을 꽉 껴안으며 외쳤다.“지훈 오빠.”“왜? 이제 나한테 화 안 나?”석지훈의 목소리는 어딘가 너그럽고 다정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나는 석지훈의 어깨에 턱을 대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는 오빠에게 화난 게 아니에요. 그냥 나 자신한테 화가 났던 거예요.”석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미안한 마음에 말했다.“미안해요. 분명 내 잘못인데 괜히 오빠에게 화풀이했어요.”석지훈은 한 손을 들어 늘 그랬던 것처럼 내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윤 비서 말로는 여자들이 가끔 그러는 건 정상이래.”석지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단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하지만 석지훈은 서운한 적이 없었을까?석지훈도 분명 서운하고 힘든 적이 있었을 것이다.“미안해요, 지훈 오빠.”“다음번엔 이런 일 없도록 해.”석지훈은 손을 내 목덜미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날 모른 척하지 마.”석지훈은 언제나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엄청났다.석지훈이 언제나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까지 폭풍우 같은 인생을 헤쳐나온 남자이기 때문일까?석지훈의 눈빛은 항상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5화

    예를 들면 지금 최현욱은 나를 데리고 이 얼어붙은 설원을 벗어나고 있었다.대략 두세 시간을 더 걸었을까 최현욱은 지친 기색으로 나를 눈밭에 내려놓으며 투덜댔다.“너 진짜 무거워.”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나 진짜 50킬로도 안 돼.”나의 몸무게는 50킬로가 안 되긴 했지만 최현욱이 나를 업고 이렇게 오래 걸었으니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나는 일어나며 말했다.“내가 조금 더 걸어볼게.”그러자 최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그쳤다.“서둘러야 해. 우리 지금 떠난 지 네다섯 시간이나 됐어. 저들이 네가 도망친 걸 눈치챘을 거야. 빨리 도시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둘 다 붙잡힐 거라고.”최현욱의 말투는 상당히 긴박했다. 나는 얼른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최현욱은 뒤에서 웃으며 쫓아왔다.“빨리 좀 가. 꾸물거리지 말고.”우리는 그렇게 거의 뛰는 수준으로 걸었다. 나는 30분도 채 못 가 기운이 빠졌지만 억지로 버티며 30분을 더 걸었다.그러다 결국 나머지 거리는 최현욱이 다시 나를 업고 걸었다.새벽 12시가 가까워졌을 때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나는 얼른 최현욱의 등에서 뛰어내려 그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최현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넘어지지 마.”“얼른 핸드폰부터 구해서 전화해야 해.”지금 최희연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어 나는 마음이 초조했다.우리는 마침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도시는 번화했고 작은 상점들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길가의 큰 가게들도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나는 놀란 얼굴로 최현욱에게 물었다.“다들 아직 문을 안 닫았네?”최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아마 너를 위해 열어둔 걸지도 모르지.”당시 나는 방금 큰 저택 안의 사람들도 이 도시의 사람들도 전부 최현욱이 거액을 써서 매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몰랐다.이유는 아주 간단했다.최현욱은 나를 알고 싶어 했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말이다.하지만 그 외국인은 석지훈에게 진짜 원한이 있었고 최현욱은 그 복수심을 교묘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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