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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동과
고현성이 화를 내면서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내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나가려던 그때 가장 만나기 싫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 바로 고현성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는 여자 임지혜.

나는 임지혜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임지혜가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고씨 가문 사모님 맞죠?”

순간 멈칫한 나는 그녀를 흘겨보았다.

“왜 그러시죠?”

“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좋아요?”

임지혜의 도발에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옅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지만 립스틱은 진한 레드색을 발랐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얇은 롱원피스에 하얀색 코트로 가녀린 몸을 가리고 있었다.

‘예쁘긴 하네. 이러니까 현성 씨가 그렇게 좋아하지.’

연적끼리 만나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나는 임지혜를 무시하고 그냥 가려 했지만 그녀가 나를 비웃었다.

“내 자리를 빼앗아 갔는데 편할 리가 없겠죠. 현성이가 수아 씨를 사랑해요? 귓가에 대고 달콤한 얘기를 해주던가요? 밥도 해준 적 없죠? 특별한 날에 선물 사주던가요? 한 번도 그런 적 없죠? 현성이는 절대 수아 씨한테 해주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그저 선양 그룹 대표라는 이유로 사모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에요.”

임지혜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녀가 한 말들은 전부 고현성이 그녀에게 해줬던 것들이었다. 질투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질투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사모님 자리도 지키지 못하게 생겼는데...

나는 덤덤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

“그럼 지혜 씨는요? 3년 전에 난 지혜 씨한테 기회를 줬었어요. 지금 인정하든 안 하든 현성 씨 와이프는 나예요. 그리고 지혜 씨 말이 맞아요. 난 선양 그룹 대표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현성 씨한테 결혼을 강요했어요. 근데 당신은...”

절대 남에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상대가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 건드린다면 그대로 갚아주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고현성은 이런 나를 3년이나 모욕했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난 돈이 많아서 고씨 가문에 많은 돈을 줄 수 있지만 지혜 씨는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의 말에 임지혜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어찌나 가여운지 남자들이 봤더라면 아마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레 싸늘하게 웃었다.

“내 앞에서는 가여운 척하지 말아요. 현성 씨한테는 먹히겠지만 나한테는 전혀 통하지 않아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 임지혜를 뒤로 감쌌다. 고현성이 널찍한 어깨로 그녀를 지켜주었고 검은색 코트가 오늘따라 더 차갑게 느껴졌다.

고현성은 눈살을 찌푸린 채 나를 냉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임지혜를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 잔뜩 경계한 모습이었다.

내가 조금 전에 한 얘기를 분명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현성은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고현성이 실눈을 뜨면서 덤덤하게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친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왜요?”

나는 뒤에 있는 임지혜를 보며 말했다.

“현성 씨, 나 몰래 옛 애인을 만나고 있었어요?”

임지혜를 옛 애인이라고 말하자 고현성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별장에 돌아가서 기다려. 저녁에 들어갈게.”

말투가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나에게 베푸는 엄청난 은혜인 것처럼 말이다.

‘내 신세가 이 정도로 가여워졌나? 게다가 전 여자 친구의 앞에서...’

나는 자신을 비웃었다.

“집에 갈 겁니다. 근데 한마디만 할게요. 난 지혜 씨 존재를 신경 쓰지 않지만 아버님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고현성이 아무 말이 없자 임지혜가 앞으로 나와서 내 손목을 잡더니 가여운 척하며 설명했다.

“수아 씨, 오해하지 말아요...”

남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걸 싫어했던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쳤다. 고현성은 내가 임지혜를 때리는 줄로 착각하고 임지혜를 잡아당겨 품에 끌어안았다.

그의 힘이 어찌나 센지 나는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바닥에 넘어지면서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고현성이 임지혜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다정하게 다독이고 있었다.

“지혜야, 괜찮아.”

‘지혜야, 괜찮아? 저 여자가 무슨 일이 있겠어?’

나는 따끔거리는 얼굴을 부여잡고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했었던 나를 비웃었다.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고현성이 싸늘하게 물었다.

“왜 웃어?”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현성 씨, 나 다쳤어요.”

나약한 말투에 고현성은 잠깐 흠칫하더니 비서에게 날 병원에 데려다주라고 한 다음 임지혜와 함께 떠나버렸다.

떠나기 전에 임지혜는 나를 보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고현성의 비서가 나를 부축하고 병원에 데려다주려 하자 나는 거절하고 직접 운전하여 별장으로 돌아온 다음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얼굴이 계속 따끔거렸지만 마음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심지어 뾰족한 손톱으로 상처를 꽉 꼬집기도 했다.

고현성이 임지혜에게 잘해줄수록 나만 더 가여워 보였다.

나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일어나서 이혼 합의서를 작성한 후 진지하게 사인까지 마치고 서랍에 넣었다.

그러고는 주방에 가서 한상 가득 요리를 한 다음 거실에서 고현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고현성은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었고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다.

...

새벽 3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현관문 쪽을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고현성이 더듬거리며 불을 켰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더니 웬일로 먼저 물었다.

“아직 안 잤어?”

나는 그에게 다가가 겉옷을 받았다. 위에 차가운 눈꽃이 묻어있었고 낮에 임지혜를 안다가 배인 옅은 향수 냄새까지 남아있었다.

내가 옆에 가만히 서 있자 고현성은 나를 확 잡아당겼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 몸을 만지려 했다. 차가운 손바닥이 내 몸에 닿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내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현성 씨, 나 아직 저녁 안 먹었어요.”

나는 그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늘 다정하게 말했던 이유는 예전의 따뜻했던 고현성에게 차마 심한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의 그가 예전의 고현성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고현성은 잠깐 멈칫하더니 손을 내려놓고 빤히 쳐다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연수아, 너 어제부터 좀 이상했어.”

“현성 씨한테 할 얘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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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성시에 눈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내린 바람에 도시 전체가 흰 눈으로 뒤덮였다. 우리 둘은 좁고 긴 골목에 마주하여 서 있었고 옅은 가로등 불빛이 그를 비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으며 마치 만화에서 나온 남자 같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살짝 놀라는가 싶더니 빤히 보면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꼬마 아가씨, 어디 살아?”“연씨 별장...”고현성이 연씨 별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허둥지둥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고현성은 환하게 웃으면서 목도리를 풀어 나에게 둘러주었다.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었다.고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자. 집에 데려다줄게.”‘웃을 때 참 예쁘네...’그림을 찢고 나온 듯한 얼굴이었고 또 무척이나 다정했다.나는 그의 옆에서 걸으면서 손을 살며시 잡았다. 고현성이 살짝 멈칫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내 손을 더 꽉 잡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가는 길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별장 문 앞에 도착해서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성 씨,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갈래요?”고현성이 웃으면서 거절했다.“시간이 늦었어.”밤이 늦은 건 사실이었다. 나는 발끝을 들어 고현성의 옷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그럼 다음에 봐요.”그는 약속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순간 오늘 저녁의 모든 게 다 나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 이 사람은 임지혜의 신랑이 될 텐데.고현성은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올려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난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이고.‘난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나는 어두운 얼굴로 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고 통유리 쪽으로 다가가 아래층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무심한 듯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나는 얼굴을 창문에 기댄 채 나지막하게 인사를 건넸다.‘잘 가요, 현성 씨. 다신 보지 말아요. 이번 생에 당신이 원하는 걸 다 이루길 바랄게요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11화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설령 그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속상한 일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차를 몰고 가려는데 고현성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에 나는 차를 멈추고 욕했다.“미쳤어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요!”고현성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곤 없었고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냥 쫓아내려는데 그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아직도 날 사랑해?”질문이면서도 긍정의 한마디였다.3개월 후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다는 사람이 지금 이런 소리를 했다. 자신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따지고 보면 그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도 나였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그에게 완전히 보여주고 말았다.‘굳이 탓하려면 확고한 내 사랑을 탓해야지. 내가 현성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확고하니까.’“그래요. 사랑해요. 그래서 싫어요?”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홧김에 한 말인 것도 사실이었다. 고현성은 실눈을 뜬 채 운전에 집중하라고 했다.“연씨 별장으로 가.”“현성 씨는?”나의 질문에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나도 같이 가야지.”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됐어요. 난 현성 씨를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그럼 고씨 별장으로 가.”나는 차를 운전하여 고씨 별장에 도착했다. 고현성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별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가 정리했는지 매우 깨끗했고 소파도 흰 천으로 뒤덮어놓은 게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현성은 손목을 내려놓고 흰 천을 치웠다. 나는 소파에 앉았고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떠다 주었다.따뜻한 물을 들고 있는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오후 시간이라 창밖의 햇살이 나의 몸을 비춰 너무도 따뜻했다. 고현성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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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5화

    나는 이해했다. 누구보다 그의 고통을 이해했다.석지훈의 어머니가 그런 식으로 아들을 협박하는 것이 나 역시 혐오스러웠다.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한쪽에는 사랑이, 다른 한쪽에는 가족이라는 굴레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데.그건 마치 어느 쪽으로도 기울일 수 없는 천칭 같았다.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지훈은 차가운 입술로 내 손바닥을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윤아야, 나와 결혼해 줄래? 석지훈의 아내가 되어 줘. 그리고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줘. 나중에 꼭 당당하게 결혼식을 올려 줄 테니 지금은 잠시만 억울해도 참아줘.”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었다.“괜찮겠어?”괜찮겠냐고?마음이 갑자기 내키지 않았다.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 그의 어머니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그때의 결말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나는 갑자기 딜레마에 빠졌다.석지훈과 나는 결코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예유진이 했던 말도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나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석지훈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표정이 굳어졌다.“왜 아무 말도 안 해?”그는 조용히 물었다.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물을 참았다. 내 모습을 본 석지훈의 눈에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왜 그래?”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듯 조심스러웠다.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석지훈은 나를 품에 꼭 안았다. 그 순간, 나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당신과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나는 석지훈을 너무 잘 알았다. 그는 어머니의 협박 때문에 망설이겠지만 그는 말과 행동이 매우 단호한 남자였다. 결혼하자고 하면 정말 결혼할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발각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석지훈은 누군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성범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내가 전부였으니까.하지만 나는 그런 그가 두려웠다.나는 석지훈의 어머니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4화

    석지훈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특히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서 확실한 태도를 보고 싶었다.나는 그의 곁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격을 원했다.하지만 그건 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았다.그의 친어머니가 목숨을 담보로 그를 압박하고 있었으니까.나는 갑작스러운 무력감에 휩싸여 석지훈의 품에서 벗어났다.그는 내 마음속 거부감을 읽었는지 더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나는 그의 품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짧고 얇은 시폰 원피스가 앉은 자세에서 더 올라가 새하얗고 곧은 긴 다리가 석지훈의 시선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남자는 매혹된 듯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이 천천히 내 무릎을 감싸 쥐었다.“아직도 화났어?”마치 설명을 들었으니 이제 용서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한 말투였다.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야, 그날 밤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은 건 내 잘못이야. 그리고 기억이 돌아온 걸 바로 말하지 않은 것도 잘못했어. 사과할게. 어떻게 하면 날 용서해 줄 거야?”이렇게 거듭해서 사과하는 석지훈에게 어떻게 매정하게 굴 수 있겠는가?나는 입술을 깨물며 서글프게 말했다.“화내려는 게 아니에요.”나는 그의 세계에서 무력감을 느꼈다.나는 결코 그의 진정한 아내가 될 수 없었다.예유진도 나를 '둘째 형수'라고 부르면서도 늘 남처럼 대하지 않았던가.그가 다시 물었다.“그럼 용서해 줄 거지?”내가 아무 대답도 주지 않은 상황에서 석지훈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지훈 씨.”오빠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아직 앙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밀어낼 수는 없었다.사랑하는 남자에게 나는 언제나 이랬다.마음이 약해서 차갑게 대할 수 없었다.석지훈은 몸을 숙여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3화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나는 그를 무시하고 그의 몸을 밀쳐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단숨에 품에 안아 버렸다.“놔요!”나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침묵으로 일관하며 내가 마음이 약해지고 다시 그에게 의지하기를 기다렸다.나는 그의 품 안에서 계속 버둥거렸다. 그때, 석지훈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아가야, 가만히 있어 봐.”순간 마음속에서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결국 나는 그에게 진정으로 화를 낼 수 없었고 그를 향한 분노를 쏟아낼 수 없었다.나는 석지훈을 사랑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사랑했다.나는 언제나 너무나 쉽게 그를 용서했다.그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응어리는 더욱 깊어졌다.그가 기억상실증 연기를 해서도, 그가 했던 말 때문도 아니었다.나는 그저 그의 세계를 공유하고 싶었다.아주 단순한 바람이었다.나는 정상적인 가정을 원했고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예유진에게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곁에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그것뿐이었다.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마음속에 천근 무거운 돌덩이가 얹힌 듯 숨이 막혔다. 그때 석지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야, 그날 밤에 했던 말, 미안해.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이혼한 여자가 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나는 무심히 물었다.“답은요?”그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있어.”“지훈 씨, 그런 감언이설은 그만둬요.”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잘못을 만회하는 중이야.”“하지만 진심이었잖아요.”내가 말했다.“그래. 내가 한 말이니까.”석지훈은 부드러운 입술로 내 따뜻한 뺨을 스치며 나직이 속삭였다.“하지만 그건 다른 여자에게 한 말이야. 우리 윤아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윤아야, 난 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2화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나는 수건을 두르고 온천을 나와 방으로 향했다. 남자는 천천히 내 뒤를 따라왔다. 진유겸이 그에게 전화를 건 지 두세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아이스랜드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놀랐다.그건 진유겸이 그에게 전화했을 때 이미 아이스랜드로 오는 중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나의 행적을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기억상실인 척하는 것인가?!내가 아직 그가 기억상실인 척하는 걸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계속 기억상실인 척할 셈인가?나는 방에 들어가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고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남녀가 한 방에 있는 건 안 좋아요.”석지훈이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나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 그는 나타난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내 담담한 눈빛으로 나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탐색하는듯 했다.나는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낫지 않은 감기 때문인지 정신은 계속해서 몽롱했다.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문득 석지훈이 떠올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얇은 종이로 된 문 너머로 그의 모습이 비쳤다. 크고 단단한 그의 실루엣은 마치 나를 지켜주는 굳건한 산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그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태도는 나를 서럽게 만들었다.화를 내거나 투정을 부리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속의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그는 내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불안감을 안겨주었다.현정우의 말대로 석지훈의 세계는 영광과 재난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걸 이해하지만 나는 그 세계에서 배척당하는 기분이었다.나는 한 번도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고 그도 나를 자신의 세계로 이끌어 준 적이 없었다.게다가 우리 사이에는...아이가 있었다. 즉, 가정이 생겼다는 뜻이다.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내가 꿈꿔왔던 가정과는 너무나도 달랐다.그는 여전히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내가 몇 번이나 이야기한 후에야 겨우 자신의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1화

    나는 머리를 흔들며 더 이상 그 짜증 나는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순간적으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잠시 후, 최희연이 과일 접시를 들고 들어오더니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나 흉터 제거 수술을 하면서 몸도 같이 받았어. 그래서 온천에는 못 들어가겠다.”나는 농담을 던졌다.“그럼 넌 내가 즐기는 걸 구경만 해야겠네.”최희연은 웃으면서 말했다.“괜찮아. 근데 나 먼저 통나무 집에 가서 자현 씨 만나고 싶어. 두 시간 후에 다시 올게. 괜찮겠지?”나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물었다.“그 사람은 왜?”내 표정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최희연은 입술을 깨물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좀 전에 그가 유겸 씨를 봤거든. 내가 이혼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그에게 설명하고 싶어. 수아야, 난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여.”나는 솔직하게 물었다.“뭘 설명하려는 건데? 이혼 안 했다고 설명하려고? 희연아, 네가 그의 생각을 신경 쓰는 건... 이 기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이번에 최희연은 재빨리 부인했다.“그를 사랑하지 않아. 유겸 씨를 미워하는 건 사실이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아직 그가 남아 있어. 그래서 더 괴로운 거야.”나는 제안했다.“그럼 자현 씨에게 설명할 필요 없어. 설명하면 오히려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잖아...”최희연은 의아한 듯이 물었다.“무슨 착각?”“네가 그를 신경 쓰고 있고 그가 힘들어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착각. 하지만 네 마음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착각을 심어주면 오히려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어.”최희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상처?”“그가 너와 결혼한 게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한 거라고 생각해?”이런 일은 당사자보다 주변 사람이 더 잘 알았다.최희연은 불안한 듯이 물었다.“그럼 그가 나한테 바라는 게 뭐라는 거야?”나는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대담한 추측을 했다. 지금의 왕자현은 꼭 예전의 나 같았다.그렇지 않고서야 집안도 크고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50화

    그는 방금 일어난 소동을 눈여겨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다정하게 물었다.“집에 갈래요?”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런데 먼저 친구랑 놀다가 저녁쯤에 돌아갈게요.”왕자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조심하고.”그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또 갑자기 사라졌다.그녀가 무사하면 안심이 된 듯했다.최희연은 공항을 나가면서 차 안에서 걱정하듯 물었다.“왜 갑자기 아이스랜드에 왔어? 무슨 일이 있어?”나를 잘 아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최희연 역시 공감하며 말했다.“유겸 씨도 성격이 차갑고 말이 없는 편이잖아. 근데 지훈 씨는 성격이 차가울 뿐 절대로 널 배신하지 않을 거야. 아까도 봤지? 유겸 씨는 나한테 이렇게까지 상처 주잖아”최근 뭔가를 깨달은 듯 최희연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마음이 따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정말 치유받는 기분이야. 이제는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마음 상할 일도 없어. 예전처럼 불안하게 살지 않아도 되 유겸 씨가 언제 나를 떠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왜냐하면 진유겸은 이미 그녀를 떠나버렸고그녀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쉬며 나를 위로했다.“지금은 지훈 씨 생각하지 마. 나랑 아이슬란드에서 재밌게 놀다 가자. 그리고 저녁에는 온천에 몸도 담그고, 그나저나 3월 초라 오로라를 보기에 딱 좋은 시기야.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오두막에서 자자.”나는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응, 네 말대로 하자.”그녀는 나를 시내로 데려가서 옷 한 벌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차를 렌트해 근처 온천회관으로 데려갔다.그녀는 옷을 벗자 내 배에 드러난 상처를 보고는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최희연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살며시 배의 흉터를 만졌다. 나는 조금 간지러워서 이내 뒤로 물러섰다.“자궁을 절제했어.”그녀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언제 한 거야?”“반 달 전 일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49화

    나는 아파트로 돌아가 두툼한 패딩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직접 F국으로 가서 석윤민을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결국 아이스랜드로 가서 최희연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어디를 가든 운성시를 떠나면 그만이었고 석지훈을 보고 싶지 않았다.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다. 비서에게도 비밀로 했고 비행기 티켓도 혼자서 예매했다. 비행기 탑승 전, 최희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녀는 놀라서 답장을 보내왔다.[공항에서 기다릴게!]공항에 도착했을 때 진유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미간을 띠푸린 채 핸드폰을 꺼내 석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여자는 이제 안 챙길 거야?”전화 너머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딘데?”“아이스랜드.”진유겸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스랜드에 도착한 순간 진유겸이 석지훈에게 내 행방을 알려준 것이다.석지훈의 말투를 듣는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기억을 되찾은 게 분명했다. 나는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은 채 진유겸을 향해 소리쳤다.“왜 쓸데없이 간섭하고 그러세요?”그는 성격이 급해서인지 나를 쏘아보더니 곧바로 최희연을 향해 물었다.“희연아, 지금 너한테 두 가지 선택이 있어. 나랑 순순히 따라갈래? 아니면 널 기절시켜서 데려갈까?” 이게 선택이라고? 협박이나 다름없지.그녀는 평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덤덤하게 한마디를 뱉었다.“얼굴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요. 지금 떠날 수 없어요. 그리고 유겸 씨랑 떠날 일도 절대 없을 거예요.”그녀는 더없이 단호했다. 순간 진유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녀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는 내 팔을 잡고 한 발짝 물러서며 침착하게 말했다.“유겸 씨가 왜 여기까지 와서 저한테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제가 유겸 씨만 순순히 따르던 최희연인 것 같으세요? 다시 절 유겸 씨 곁에 두고 싶은 거예요? 됐어요. 이제 상관없어요. 궁금하지도 않고. 앞으로 우리 사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48화

    “그냥 머리를 다쳐서 기억이 혼란스러워졌을 뿐 최근 2년 간에 있었던 일만 잊었다고 했어요. 아마 한두 달 정도면 회복될 거예요.”즉 언제든지 기억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인가?석지훈이 기억이 돌아온 걸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혹시 우리를 놀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나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석지훈이 절대 말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분명했다.그는 기억을 회복한 게 틀림없었다.그렇다면 전날 밤 석지훈이 했던 말은...그때 이미 기억을 회복한 걸까?나는 석지훈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민수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전화 너머로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먼저 끊을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가슴이 답답하며 조금씩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결론이 났다. 나는 그와 함께한 2년을 떠올렸다. 그는 항상 완벽한 사람이었고 나를 배려하며 이해해 줬지만 내 곁에는 없었다.아무 설명도 없이 한두 달씩 떠났고 물어볼 때마다 항상 핀란드에서의 권력을 지켜야 한다고만 했다.그는 늘 위험에 처해 있다는 말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나는 항상 불안했다.그런데 그는?항상 태연하다 못해 하늘이 무너져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마치 이 사랑의 게임에서 나만 혼자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우리 아이에게는 차갑게 대하고 나에게는 침묵을 지키는 것에 대해 나는 늘 다양한 핑계를 대며 나 자신을 속여왔다.그가 조금씩 변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감쌌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지쳐버렸다.게다가 그는 지금 기억을 회복했으면서 나를 놀리고 있었다.그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내가 먼저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건 맞지만 내 마음속에는 풀지 못한 억울함이 쌓여 있었다.그냥 단순하게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에게 화가 났을 뿐이다.특히 전날 밤 한성범을 그렇게까지 옹호하면서 내 반대편에 서는 게 너무 화가 났다.그때 이미 기억을 회복한 걸까?어쩌면 회복했을지도 모른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647화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그리고 다들 장식품이라고도 해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나는 농담처럼 물었다. “여자가 장식품인 게 장점인가요?”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예쁜 건 장점이죠.”나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혼한 여자에게도 이쁜 게 장점인가요? 누군가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요. 어떡해요? 이혼한 여자랑 키스하다니, 제가 너무 죄송하네요.”그는 약간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은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합니다.”“괜찮아요. 그게 진심이었잖아요.”그는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을 지켰다.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인내심 있는 그의 모습이 과연 기억을 잃은 석지훈일까?나는 혹시 또 농락당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그래도 지훈 씨가 저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걸로 이번에는 용서할게요. 하지만 다음은 없어요.”그는 평가하듯 말했다. “화가 좀 크신가 봐요.”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 영어 문장은 무슨 뜻이에요?”그는 잠시 침묵한 뒤 특유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조용히 읽어 내려갔다. “너를 만났을 때 나는 이렇게까지 사랑에 빠지게 될 줄 몰랐어. 나는 너의 유일한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다행히 너는 내게 유일한 사람이야. 나는 너에게 정복당할 수 있는 맹수처럼 단단한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너를 내 품에 안을 거야.”뜻은 알고 있었지만 석지훈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느낌이 전혀 달랐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속에 달콤함이 가득 차올랐다.하지만 예전의 석지훈이라면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이 남자는 너무 차갑다 못해 누구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한 마디, 한 글자도 귀찮아서 대답하지 않을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나에게 인내심 있게 번역을 해주고 있었다.뭔가 이상했다.나는 여전히 마음속 의문을 억누르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 있어요?”그는 되레 반문했다. “제가 관심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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