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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는 꿈을 꾸었다. 그곳은 연씨 가문 별장이었고 집에 부모님과 고현성이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23살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할까 상의하고 있었다.

내가 소파 옆에 서 있는데 고현성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아 빨간색 좋아하니까 빨간 장미꽃을 세팅하는 건 어때요? 제가 피아노도 직접 연주할게요.”

고현성의 표정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창밖의 햇살이 그에게 비추면서 더욱 멋있어 보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미간을 어루만지려 했다. 그런데 손가락은 그를 뚫고 허공에 머물렀다. 당황한 내가 계속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내가 목놓아 울부짖던 그때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병실에 누워있었고 낮에 입었던 밝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며 옆에는 싸늘한 표정의 고현성이 서 있었다.

꿈속에서 다정했던 고현성을 봤던 탓인지 차가운 그를 차마 볼 수가 없어 두 눈을 감았다.

“아까 무슨 일 있었어요?”

고현성은 시선을 늘어뜨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고승철이 갑자기 병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고현성을 째려보면서 화를 냈다.

“방금 넘어져서 얼굴이 피범벅이 됐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 여자만 아니었더라도 병원에 와서 이런 일 당하지 않았을 텐데. 수아야, 너 평소에 현성이를 너무 풀어줬어. 남편을 잘 단속했어야지.”

‘남편이라... 방금 이혼하자고 했는데.’

나는 고현성을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었고 아버지의 얘기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승철에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이혼했어요.”

그 소리에 고현성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고승철도 놀란 눈치였다. 다행히 내가 낮에 귀띔이라도 한 덕에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낮에 그 얘기를 꺼내더니 벌써 이렇게 빨리...”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빠른가요? 현성 씨는 3년 전에 이미 이혼하고 싶어 했어요. 지금까지 끌어도 아무도 득을 본 사람이 없고요. 아 참, 전 사업 머리가 없어서 선양 그룹이 내 손에 있으면 언젠가는 망하니까 고씨 가문에 다 줄게요. 진화 그룹과 융자한다고 해도 난 아무 의견 없어요.”

고승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갖다 바치겠다는 거네.”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병원을 나섰고 고현성이 뒤따라왔다. 내가 혼자 운전하여 가려던 그때 고현성이 검은색 마이바흐를 몰고 내 앞에 멈춰 섰다.

내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타. 집에 데려다줄게.”

고현성은 전에 단 한 번도 그의 차에 나를 태운 적이 없었다. 이혼한 마당에 앉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내 차도 여기 있는데요, 뭐. 여기에 두고 갈 순 없잖아요. 현성 씨, 우리 그냥 좋게 좋게 헤어져요. 예전에 낯선 사람을 대하던 태도 그대로 날 대하면 돼요.”

나는 고현성이 떠난 후 운전하여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습관적으로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런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뜨거운 물이 붉게 물들었다.

자궁암에 걸리면 출혈은 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고현성 때문에 자궁암에 걸렸다. 그가 잔인하게 내 아이를 죽였고 몸이 채 회복하기도 전에 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렇게 된 게 다 자초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원망할 수가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욕조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땐 이미 새벽이었고 냉기가 뼛속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벌겋게 변한 욕조를 뒤로한 채 샤워가운을 입고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쪽으로 와서 이혼 합의서를 가져간 후 저녁에 다시 와서 이혼 절차가 모두 끝났다고 했다.

나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물었다.

“현성 씨한테도 알려줬어?”

비서가 대답했다.

“네. 제가 직접 알려줬어요.”

“알았어. 오늘부터 회사 일은 모두 그 사람한테 맡겨. 이 별장도 네가 사람 불러서 정리하고. 3개월 후에 다시 그 사람한테 돌려줘.”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재무팀에 내 계좌로 10억 원 이체하라고 해. 이제부터 난 연씨 가문과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러자 비서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 지금 대체...”

“시키는 대로 해. 아무것도 묻지 말고.”

비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계좌에 10억 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옷과 화장품을 챙긴 후 고씨 별장에서 나와 직접 운전하여 연씨 별장으로 왔다.

어젯밤 꿈에서 연씨 별장을 보았다. 나는 거실에 한참 동안 서서 그 꿈을 돌이켜보았는데 너무도 현실 같은 꿈이었다. 고현성은 내가 빨간색 장미꽃을 좋아한다고 했었고 직접 피아노를 연주해주겠다고 했었다.

왜 꿈속의 그는 이토록 다정한 걸까?

나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았다. 아랫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진규만에게 전화하여 진통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렇게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별장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외로움이 나를 거의 뒤덮으려 할 때 10억 원이 들어있는 은행 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아무도 날 사랑해주지 않으니 내가 직접 찾는 수밖에. 나에게 거짓말을 해도 괜찮았다. 난 단지 10억 원으로 날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 싶었고 3개월만 사랑해주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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