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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운성시의 하늘에 흰 눈이 흩날리고 있었고 대지를 하얀색으로 뒤덮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나는 안에 금색 롱원피스를 입었고 밖에는 하얀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거기에 예쁜 실버 귀걸이를 매치했고 메이크업까지 한 채 길거리를 목적 없이 걸어 다녔다.

운성시는 아주 시끌벅적했지만 나는 외톨이처럼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방황하듯 사람들 사이에 서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찬바람이 스치면서 눈꽃이 얼굴에 내려앉아도 전혀 춥지 않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평범하고 키도 평범한 한 사람을 따라갔다.

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던 그때 나는 용기 내어 다가가 은행 카드를 건네면서 부탁했다.

“내가 10억 원 줄 테니까 나랑 3개월만 연애할래요?”

그는 마치 바보를 쳐다보듯 나를 보았다.

“미안해요. 난 여자 친구가 있어요.”

혼자 걸어 다니는 걸 보고 용기 내서 다가간 것이었는데...

“알겠어요. 괜찮아요.”

나는 실망한 얼굴로 발걸음을 돌리다가 또 다른 평범한 남자를 찾았다. 사실 나 정도 얼굴이라면 남자들이 거절할 리가 없었고 게다가 10억으로 유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그들은 되레 날 미친 사람 취급했다.

“나랑 연애할래요?”

“머리가 어떻게 됐어요? 가족한테 연락해 줄까요?”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닙니다. 다른 사람 찾아볼게요.”

또 다른 사람을 잡고 물었다.

“나랑 연애할래요?”

“미안해요...”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대로 된 연애가 하고 싶었고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왜냐하면 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느낌이 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행복이라는 게 대체 어떤 걸까?

내가 해본 거라곤 임지혜를 미친 듯이 질투한 것뿐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나랑 연애할래요?”

그런데 그때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진짜 언니였어요?”

내가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고씨 가문 사람 고민영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고현성이 싸늘하게 서 있었다.

나는 민망함이 극에 달했고 고민영이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

“언니, 나랑 현성이 오빠 아까부터 언니를 봤었어요. 남자들한테 고개 숙이고 뭘 하나 했더니...”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현성이 손목을 잡은 바람에 그도 같이 끌고 나갔다. 고민영이 다급하게 부르자 고현성이 짜증을 내며 대답했다.

“알아서 집에 가. 오늘 본 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말고.”

고민영이 물었다.

“그럼 오늘 저녁 음악 콘서트는...”

고현성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이거 놔요!”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욱신거리는 손목을 어루만졌다. 고현성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냉랭하게 물었다.

“연수아,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전에 그에게 상처받은 일이 하도 많아서 이젠 참고 싶지 않았다.

“다 봤잖아요. 아무 남자가 만나서 연애하려고요.”

“이렇게 막 나갈 거야?”

“막 나가다니요?”

고현성은 말문이 턱 박혀버렸다. 잠시 후 담배꽁초를 버리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차가 고장 났는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나에게 물었다.

“차 가져왔어?”

그의 두 눈에 나에 대한 증오가 조금 사라진 듯했고 잔뜩 찌푸렸던 미간도 누그러들었다.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요. 버스 타고 왔어요.”

고현성은 차에서 내리고 차 문을 닫은 후 전화를 걸어 견인하게 한 다음 나를 끌고 버스 타러 갔다. 잔돈이 없었던 그는 가죽 지갑에서 5만 원짜리를 꺼내 지불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마치 돈 많은 사람을 보듯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버스에 사람이 많아 무척이나 붐볐다. 나는 유리창 쪽에 서 있었고 고현성은 나를 품에 가둔 채 든든한 벽이 돼주었다. 서글픈 표정으로 창밖의 흰 눈을 쳐다보던 내가 덤덤하게 물었다.

“현성 씨, 우리 이혼했어요. 지금 이거 무슨 뜻이에요?”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옆에 있던 고현성과 부딪치고 말았다. 심장이 저도 모르게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그를 꽉 잡은 채 낮게 말했다.

“하이힐 신어서 넘어질 것 같으니까 조금만 안고 있을게요. 조금만.”

자세히 들어보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고현성을 좋아했다. 이건 이혼 후에도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고현성만 나타나면 나의 세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옷을 꽉 잡은 채 품에 머리를 파고들었다가 한참 후에 고개를 들었다. 고현성의 맑고 투명한 두 눈과 마주한 순간 가볍게 물었다.

“요즘 임지혜 씨랑 잘 만나고 있어요?”

고현성이 흠칫했다.

“뭐?”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낮게 물었다.

“결혼할 거예요?”

갑자기 아무 말이 없어졌고 옅은 숨소리만 들렸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고현성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혜한테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했어.”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내려놓았다.

“언제 결혼해요?”

고현성은 나를 가만히 보다가 대답했다.

“설날 다음날에.”

‘설날 다음날이면 음력 새해의 두 번째 날이네. 그땐 내가 이 세상에 없겠지.’

나는 진심으로 웃으면서 축복했다.

“축하해요, 고현성 씨.”

고현성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내 팔을 꽉 잡고 머리를 가까이했다. 그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들려왔다.

“아까 왜 연애할 남자를 여기저기 찾아다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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