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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동과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은 끝까지 계속 빤히 쳐다보았다.

버스가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고 고현성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아까 그곳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

커다란 별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머릿속에 고현성이 했던 그 한마디가 계속 맴돌았다.

“지혜한테 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했어.”

자세히 생각해보면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빚진 건 사실이었다. 3년 전에 임지혜가 고현성을 포기했고 고현성도 임지혜를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임지혜가 6억 원을 받지 않고 운성시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고현성은 그녀와 헤어지려 했을 것이다.

사랑 속에서 누가 옳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성대한 결혼식을 3년 전에 임지혜에게 줬어야 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기회가 생겨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내가 한창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최희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희연은 몇 안 되는 나의 절친이었고 운성시에서 고양이 카페를 운영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걸어 다녔다. 그나저나 카페는 항상 적자 상태였고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덕에 겨우 살아남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최희연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에 음악 센터가 있잖아. 저녁에 피아노 공연이 있는데 미국에서 온 연주가래. 너 피아노 좋아하지? 지금 이리 와. 저녁에 같이 공연 보러 가자.”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공연은 단지 고현성이 연주하는 피아노였다.

고개를 살짝 수그리자 테이블 위에 놓인 10억짜리 은행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를 거닐며 사랑을 사려 한 바람에 미친 사람 취급당했고 고현성에게 초라한 모습마저 보여주고 말았다.

돈이 있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최희연에게 카페 운영 자금으로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최희연과 공연을 보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해.”

나는 방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욕실로 가서 메이크업을 지운 다음 다시 정교하게 메이크업했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파란 코트를 입고 택시를 타고 카페로 향했다. 밖에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아무렇지 않은 척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최희연은 나를 보자마자 재빨리 찻잔을 내려놓고 달려와서 끌어안았다.

“요즘 뭐 했길래 통 가게로 오지 않았어?”

나는 아무 거짓말이나 지어냈다.

“일 때문에 바빴어.”

설명을 듣고서야 최희연이 풀어주었다.

“커피 한잔 가져다주라고 할 테니까 먼저 앉아 있어. 일 끝나고 올게.”

나는 조용한 창가 쪽 자리를 찾아 하얀색 고양이를 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차들을 멍하니 보았다. 이보다 더 평온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훤칠한 키의 누군가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고 뒷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외로워 보였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웬일인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렸을 적 그를 따라다녔던 때처럼 모든 게 익숙했고 나의 추억을 끌어냈다.

내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바람에 고양이도 놀라서 도망갔다. 커피숍을 뛰쳐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인파 속에서 그 뒷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달려 나온 나를 본 최희연이 다급하게 따라 나왔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엉엉 울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수아야, 왜 울어?”

그 사람을 본 것 같았다...

처음으로 그 뒷모습이 이렇게도 인상이 깊었다. 드디어 그때 그 따뜻했던 남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짜 고현성이었을까? 근데 고현성 말고 나한테 이런 느낌을 줬던 남자는 없었어. 고현성이 아니면 누구지?’

문득 고민영이 말했던 음악 콘서트가 떠올랐다.

‘여길 말하던 거였나? 고현성도 지금 여기 있다고?’

나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최희연도 울고 있었다.

“희연아, 넌 왜 울어?”

“넌 왜 항상 그리 슬퍼 보여?”

최희연은 두 팔을 벌려 나를 꽉 껴안고 울먹거렸다.

“넌 자꾸 아무 이유 없이 울어. 근데 그 사람 3년 전에 네 것이 됐잖아.”

그녀가 말한 그는 바로 고현성이었다. 아직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최희연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눈이 너무 차가워서 그랬나 봐.”

그녀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온 나는 조금 전 놀라서 도망친 그 하얀색 고양이를 찾아 품에 안았다.

“미안. 아까 많이 놀랐지?”

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는 머리를 나의 손등에 비볐다. 너무도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 예뻐.”

그렇게 저녁까지 카페에 있었다. 최희연은 갑자기 일이 생겨 공연에 갈 수가 없다면서 티켓을 나에게 건넨 후 휙 가버렸다.

나는 은행 카드를 컴퓨터 옆에 놓고 옆의 음악 센터로 향했다.

음악 센터가 사람들로 붐볐고 나는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옆에 커플이 앉았는데 두 사람은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언제 나랑 결혼할 거야?”

그러자 남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른이 되면.”

고개를 돌려 보니 고작 열네 살, 열다섯 살쯤 돼 보였다.

이 나이쯤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예를 들어 최희연이 그러했다.

최희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불량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남자는 가진 게 없어 그녀에게 안정된 삶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최희연은 그 남자를 미친 듯이 사랑했었고 그 남자 때문에 자살까지 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서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몇 년 전에 최희연이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남자... 겉으로는 건달 같아도 영혼은 참 맑았어. 나약하고 예민할 때도 있었고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도 있는 남자였어. 수아야, 그 사람 그때 네가 알던 고현성보다 부족하지 않아. 심지어 자기 생각이 있고 패기가 있어.”

그렇다. 그 남자애는 목숨 말고 가진 게 없었다. 그런데 최희연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바치는 그런 남자였다.

최희연이 고3 때 남자애는 그녀 대신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남자애는 세상을 떠났고 최희연의 마음도 그와 함께 떠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녀는 쭉 혼자 살아왔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이 나이 때의 소년 소녀들이 원하는 바가 다 뜻대로 되길 축복했다.

...

시간이 1분 1초 지나갔지만 공연은 여전히 너무 지루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다.

나의 눈가가 순식간에 촉촉해졌고 경악한 눈빛으로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피아노 건반 위에 예쁜 손 한 쌍이 놓여있었다.

‘바람이 사는 거리... 현성 씨는 기억하고 있을까?’

고현성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 참으로 부드럽고 멋졌다. 몇 년 전 따뜻했던 고현성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듯했다.

곡이 끝나고 나는 황급히 무대 뒤로 달려가 그를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 사람이 떠날까 봐, 내일이 지나면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내가 누군지 알려주고 싶었다.

무대 뒤에서 한참이나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 가득한 얼굴로 음악 센터를 나왔다.

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눈이 더 세게 내렸다.

나는 하이힐을 신은 채 길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가로등이 눈길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런데 그때 앞에 비스듬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네이비색 롱코트에 안에는 검은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베이지색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 봤던 그 뒷모습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까 카페에서 봤던 남자가 진짜 이 사람이었구나...’

그에게 왜 하필 ‘바람이 사는 거리’를 연주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기도 전에 그가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물었다.

“꼬마 아가씨, 또 날 따라오네?”

나는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꼬마 아가씨... 날 기억하나?’

그러고는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현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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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성이 밖에서 2분 정도 전화를 받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내가 가볍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고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따가 나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나는 알면서도 물었다.“임지혜 씨 때문이에요?”고현성이 두 눈을 감았다.“교통사고 당해서 다쳤대.”나는 계속하여 인내심 있게 물었다.“그래서 지금 보살펴주러 가려고요?”고현성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귀띔했다.“우리 전에 했던 약속 기억해요? 연애하는 동안에는 임지혜 씨를 만나선 안 된다고 했었어요.”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기억해. 그래서...”‘내 의견을 물으려고? 뭘 믿고 내가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현성 씨, 지금 가면 이 게임 중지할 겁니다.”나는 영화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현성 씨가 가겠다고 하면 막지는 않을게요. 가면 약속을 어긴 거로 생각하겠어요. 현성 씨, 사실 난 현성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해심 많은 여자가 아니에요.”고현성은 날 묵묵히 바라보다가 결국 나가버렸다. 창문 앞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는데 아주 단호했다.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초저녁쯤 고현성의 어머니가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자 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캐리어를 끌면서 거실로 내려갔다.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고현성의 어머니는 나를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가려고?”“네. 비행기 시간이 곧 돼서요.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실례는 무슨. 내 며느리인데 뭘 그런 예의를 차리고 그래.”“어머님, 저랑 현성 씨 이혼한 지 좀 됐어요.”고현성의 어머니가 아무 말이 없자 내가 웃으며 물었다.“눈사람 만들어도 돼요?”“당연하지. 내가 도와줄까?”“괜찮아요. 다 만들면 갈게요.”나는 눈이 두껍게 쌓인 곳을 찾아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만들어본 적이 있어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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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성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2년 전 낙태 수술이 뭘 빼앗아 갔다고?”그가 정확히 들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희연이 풀어줘요. 사랑하는 사람이 희연이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굳이 탓하겠다면 사고나 치고 다니는 임지혜 씨를 탓해요. 조사해보면 임지혜 씨가 8년 전에 뭔 짓을 했는지 알 거예요. 그 사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쳤어요. 희연이는 지금 그때 당한 거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고 차로 친 것도 임지혜 씨가 모진 말을 해서 홧김에 그런 거예요. 현성 씨 그 약혼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요.”나는 말하다가 잠시 멈칫하고 비웃었다.“아, 내가 잘못 말했네요. 당신은 못 하는 게 없는 고현성이죠, 정말. 남이 무슨 짓을 하든 다 아는데. 지금은 단지 임지혜 씨의 잘못도 눈감아주고 있는 거고요.”고현성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이 일은 내가 제대로 조사할 거야. 근데 2년 전 그 일은 제대로 설명해. 아이를 지운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무슨 일? 다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의사가 수술을 했지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궁이 감염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고현성과 관계를 가졌다.내가 싸늘하게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 아이를 지운 후에 몸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어요. 의사가 내가 앞으로 아이를 가지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내가 왜 선양 그룹을 현성 씨한테 줬겠어요? 그동안 선양 그룹을 혼자서 경영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후계자도 없어서 준 거죠.”한참이 지나서야 고현성이 말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현성아,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병실 안의 임지혜가 고현성을 부르자 나는 싸늘하게 웃고는 다시 경찰서로 갔다.최희연을 보석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권력을 내 손으로 직접 고현성에게 갖다 바쳤고 고현성은 그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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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30화

    그녀를 사랑할 기회...그녀의 삶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사랑이었다. 나는 평생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확실히 난 그녀를 사랑해야 했다.감정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그녀를 사랑해야 했다.“네. 며칠 뒤에 F 국으로 갈게요.”운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아이들을 볼 기력이 없어서 연 씨 저택 근처에 예전에 미리 사둔 별장으로 갔다. 이곳에 내 집이 있는 것을 보고 석지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는 나를 놀리듯 말했다.“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더니.”연 씨 별장을 제외하고 운성에 내 집은 마침 세 채가 있었다.나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그럼 여기서 살 거예요 말거예요?”내 말투에 석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버릇없다고 잔소리하려는 것 같아서 나는 그의 팔을 잡아끌며 먼저 말했다.“나 피곤하고 배도 고파요. 오빠 뭐 먹고 싶어요?”내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아까 나의 무례함은 넘어가 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뭐 먹고 싶어?”나는 웃으며 말했다.“오빠를 먹고 싶어요.”석지훈: “...”그는 침묵으로 답했다.석지훈은 눈치가 빨랐다. 별장에 오자마자 그는 양복을 벗어 놓고는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흰 잠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러고는 휴대폰을 들고 아래층 주방으로 내려가 분주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채소를 준비하고 있었고 냄비에는 죽이 끓고 있었다.주방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석지훈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작은 냄비에 데운 후 컵에 따라 건네주었다. 컵을 쥔 내 손은 마치 그의 마음처럼 따뜻했다.석지훈은 항상 아무 불평 없이 나를 위해 요리하고 말없이 나를 예뻐했다. 정말 완벽한 남자였다.과거의 그 전남편과는 완전히 달랐다.이번 생에 그를 만난 건 정말 다행이었다.나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사랑해요. 지훈 씨.”뜬금없는 내 고백에 석지훈은 늘 그렇듯 침착한 모습으로 나지막이 응수하고는 온화한 눈빛으로 말했다.“알고 있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9화

    나는 원태웅에게 쪽지를 보냈다.[오빠, 적당히 하세요.]원태웅은 인터넷을 하고 있었는지 장미꽃 이모티콘을 보내며 말했다.[윤아야, 나 아이디어가 고갈됐어. 내일 이야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연재를 멈출 수는 없잖아!]그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나에게 영감을 구하고 있었다.나는 잠깐 생각한 후 답장했다.[생각해 볼게요.]사실 나는 원태웅의 이야기들을 꽤 좋아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전부 읽어볼 생각이었다.원태웅이 답장을 보냈다.[역시 윤아가 눈치가 빠르네. 많이 생각해 줘. 형에게는 절대 말 안 할게.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 내가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면 맛있는 거 사줄게.]한창 원태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석지훈이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운전 기사에게서 우산을 받아 들고 내 머리 위로 씌워 주었다.석지훈의 다리는 길고 곧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길고 하얀 손이었다.하지만 너무 가볍게 보이긴 싫었다.나는 차에 탄 뒤,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는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피곤해?”“네. 졸려요.”내가 대답했다.“내 품에서 잠깐 눈 붙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무릎에 누웠다. 그의 손바닥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자, 내가 여기 있을게.”얼마 자지 못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친엄마의 전화였다. “너를 만나고 싶구나.”나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대답했다.“알겠어요. 하지만 장례식에는 참석하고 싶지 않아요. 며칠 후에 F 국에 찾아뵐게요.”엄마는 내 뜻을 알아들었을 것이다.나는 공작 작위를 원하지 않았다.“수아야, 이건 내 마음이야.”“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제 것이 아니에요.”이 말에 엄마는 따졌다.“석씨 가문도 네 것이 아니었지만 받아들였잖아. 아빠가 준 건 받으면서 왜 엄마가 주는 건 안 받아? 수아야, 내가 아빠보다 뭐가 부족해? 왜 자꾸 날 거절하는 거야?”나: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8화

    공작이 죽었으니 당연히 후계자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왕실에서 나를 초대했다는 것은 내가 그 상속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F 국 공작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함승윤에게 말했다.“일단 보류해 두세요.”그 노인은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으니 아마 며칠 더 걸릴 것이다. 아마도 내가 F 국에 갈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를 F 국으로 초대하는 것은 엄마의 생각인 것 같았다.어쨌든 이것은 엄마가 나한테 물려주려고 만든 자리니까.나는 엄마가 의식을 되찾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알겠습니다, 가주님.”“일보세요. 나는 아래로 내려가서 지훈 씨 기다릴 테니.”함승윤은 공손하게 말했다.“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가주님.”나는 기쁜 마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석지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아래층에 서서 휴대폰을 꺼내 트위터의 실시간 검색어를 훑어보았다.모두 현재 유행하는 내용으로 별로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나는 석지훈의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다. 그가 올린 게시물은 약혼식 날 올린 단 하나의 게시물뿐이었다...수백만 개의 ‘좋아요’는 그의 인기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나는 원대감이라는 아이디의 트위터에도 들어가 보았다. 그는 매일 게시물을 올리고 있었다.이를테면...[석 대표님은 연수아를 아주 예뻐한답니다~]예뻐한다고는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팬들의 눈에 그는 그저 인터넷 서핑이나 하는 사람이었고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그저 심각한 커플 팬으로 보일 뿐이었다.그는 직접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다.예를 들어...[몇 년 몇 월 며칠, 연수아는 옆에 있는 잘생기고 차가운 석 대표님에게 물었다.‘지훈 오빠, 나의 어떤 점이 좋아요?'그러자 석 대표님이 되물었다.‘그럼 넌 내 어떤 점이 좋아?'‘나는 오빠가 잘생기고 돈이 많아서 좋아요.'석 대표님의 몸이 굳어졌다.‘그것뿐이야?'연수아는 남자의 차가워진 말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리고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7화

    “피곤하지는 않은데 앞으로 매일 동성과 운성을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무겁네요.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운성에 정착하려고 하니 석씨 가문의 본거지는 동성에 있었다.어떤 일들은 말로는 쉬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웠다.더군다나 석지훈의 본거지는 유럽에 있었다.“함승윤에게 지시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운성으로 보내 달라고 해. 동성에서 운성까지 몇 시간 안 걸리니까 매일 한 번씩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야. 급한 일 있으면 그때 동성에 가면 되고 최악의 경우엔 내가 뒤에서 도와줄게.”잠시 말이 없다가 석지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윤아야, 석씨 가문은 석씨 가문 나름대로 돌아가는 방식이 있어. 너무 힘들게 할 필요 없어.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조금씩 놓아 봐.”나는 호기심에 물었다.“어떻게 놓아요?”과거 석지훈은 석씨 가문을 장악하는 동시에 유럽의 권력까지 쥐고 있었다. 규모는 컸지만 그는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했고 자주 외부에서 활동했기에 석씨 가문의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원태웅은 그가 위험 속을 오가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었다.“착하지, 저녁에 집에 가서 석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이제 그는 ‘착하지’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했다.“네. 오빠는 어디에요?”내가 물었다.“너 데리러 가는 중이야. 널 데리고 운성으로 가야지.”나는 전화를 끊고 창밖의 아름다운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모든 것이 보기 좋았다.나는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와 함승윤을 찾아갔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 그는 곧바로 일어서서 불렀다.“가주님.”나는 웃으며 물었다.“뭐 해요?”“회사의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나는 방금 석지훈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동의하며 말했다.“분명 가능한 방법입니다. 운성에도 석씨 가문의 지사가 있으니 가주님께서 운성에 머무르시고 싶으시다면 강 비서를 그곳에 파견하여 보좌하도록 하겠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6화

    석지훈이 갑자기 연 씨 별장을 언급하자 나는 그가 두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속으로는 아쉬움과 망설임이 교차했다. 석지훈은 내 주저함을 알아채고는 차분히 설명했다.“아이들을 우리 곁에 두더라도 유모만 시간을 내어 돌볼 수 있을 테니 차라리 아이들을 연 씨 별장에 보내는 게 낫지 않겠어. 부모님 두 분 다 별장에서 쓸쓸하게 계시는데 애들 키우면서 시간도 보내시고 손주들 재롱 보면서 즐겁게 지내실 수 있잖아.”나는 여전히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석지훈은 허리를 숙여 내 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안했다.“아가야, 우리 집을 운성에 정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연 씨 저택에 가서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 곁에 두고 키우는 것과 다름없을 거야.”집을 운성에 정한다라...하지만 석지훈이 좋아하는 건 핀란드였다.그런데 나를 위해 운성에 집을 정하려 한다니.게다가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와 그에게는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부모님께 맡기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였다.더군다나 바로 가까이에 계시니 저녁에는 집으로 데려와 직접 돌볼 수도 있었다. 이 제안은 여러모로 좋은 방법이었다.당시 이 제안을 하는 석지훈은 매우 다정했기에 나는 순진하게도 그가 나를 위해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내가 아이들에게만 신경 쓰는 모습에 석지훈은 묘한 감정을 느꼈고 아이들을 곁에 두고 키우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곡하게 나를 설득하여 아이들을 연 씨 저택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다.그는 그녀의 사랑이 두 아이에게 너무 많이 분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적어도 요 이틀처럼 완전히 무시당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네. 이틀 더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부모님께 맡길게요. 한 번에 두 명의 외손주를 얻으시니 부모님께서는 정말 기뻐하시겠죠.”석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 나도 같이 있어 줄게.”그 후 이틀 동안 운산에 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5화

    나는 성인이었고 석지훈을 만나기 전 3년간의 결혼 생활을 경험했기에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그는 나를 안아 주며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고 내가 그의 품에서 무슨 말을 하든 부드럽게 대답해 주었다.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뭔가 비밀을 알아낸 것 같았던 것이다.국내에 도착하여 시차에 적응하고 나니 정오였다. 나와 석지훈은 몇 시간 더 차를 타고 운산 별장에 도착했다. 그때 석만호와 낯선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두 아이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었다. 아이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아직 아기였기에 나는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왠지 모를 떨림이 느껴져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석지훈은 내 모습을 보고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안아 봐.”석지훈은 손을 뻗어 내 눈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내가 다가가자 석만호가 나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일어나 공손하게 불렀다.“가주님.”눈치 빠른 그 아주머니는 재빨리 아이 하나를 안아 나에게 건네주며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이렇게 안아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도련님이 불편해하실 거예요.”아주머니가 안고 있던 아이는 석윤민이었다.내 아들.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안았다. 그를 품에 안는 순간 마음속에 따스함이 가득 차올랐고 문득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심지어 내 목숨까지도 그에게 주고 싶었고 그가 이 세상에서 조금의 고통도 겪지 않기를 바랐다.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오빠.”내 뒤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어?”“나 윤민이 너무 사랑해요.”사랑한다.아주아주 많이.물론 석윤아도 사랑했다.난 내 두 아이를 모두 사랑했다.그들은 내 생명의 연장선이었다.석지훈은 내 어깨를 감싸 안아 나에게 힘을 주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고개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4화

    의외로 그는 나를 꺼리지 않았다...게다가 차 안에는 현정우와 운전기사도 있었다.그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민망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생각해 보니 그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키스한 것은 처음이었다.석지훈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손가락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놀리듯 말했다.“나는 윤아의 얼굴이 성벽처럼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줄 알았잖아.”나: “...”조금 전의 역겨운 일은 잊어버렸고 마음속에는 오로지 석지훈뿐이었다.나중에야 나는 석지훈이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조금 전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그의 방식이란...그는 내가 자기 얼굴에 환장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석지훈은 언제부터 자기 매력을 무기로 쓰는 걸 배운 거지?...우린 헬기 대신 전용기를 타고 F 국을 떠났다. 넓은 기내에는 나와 석지훈 단둘이 있었다.그리고 작지 않은 침대 하나가 있었다.침대는 매우 호화로웠고 그 위에는 비단 이불이 깔려 있었다.나는 비행기에 탑승한 후 입을 헹구고 석지훈의 품에 안겨 창밖의 야경을 감상했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지만 뭔가 기분 좋았다. 아마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석지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내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했다.석지훈은 내 귀밑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의 질문을 들었다.“이게 뭐지?”나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는 부드럽게 물었다.“다쳤어?”나는 거짓말했다.“작은 상처예요.”나는 그에게 내 병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다.석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 알고 있는 듯 내가 먼저 솔직하게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나는 얼굴을 그의 품에 묻고 거짓말했다.“실수로 다친 거예요. 자꾸 묻지 마세요. 오빠도 자주 다치잖아요? 그나저나 오빠 상처는 다 나았나요?”내가 화제를 돌리자 석지훈은 더 이상 캐묻지 않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3화

    엄마는 결국 목숨을 건지셨다. 최욱현은 일어서서 내 옆으로 와 노인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또 장례식 치러줘야 하잖아.”그의 웃음은 차가웠고 소름 끼쳤다.나는 그에게 말했다.“어쨌든 네 친척이고 너도 어릴 때부터 이 사람의 보호 아래 자랐잖아. 좀 착하게 굴어.”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수아 넌 내가 착하지 않다고 생각해?”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적어도 난 그렇다고 생각해.”내 가방 속 휴대폰은 아직 연결되어 있었다. 전화 너머에 석지훈이 있었기에 나는 최욱현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그는 변태적이고 잔인하지만 나를 해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어머니뿐이었다.그는 어머니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내 신장을 보관해두었다고 했다.하지만 그런 마음은 역겹고 두려웠다.내 말을 듣고 최욱현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창밖의 야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난 착한 사람이야. 근데 내 착한 면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수아야, 언젠가 네가 날 이해하는 날이 오면 좋겠어. 그럼 넌 날 이해하게 될 거야.”그를 이해한다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백한 얼굴의 엄마에게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방금 왜 거짓말 했어? 엄마가...”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네가 어머니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잃었다가 되찾는 기쁨을 느끼기를 바랐어. 수아야, 어머니는 널 사랑해. 진짜 많이. 그걸 꼭 알았으면 좋겠어.”나는 차갑게 말했다.“네가 말 안 해도 알아.”그때 집사 같은 사람이 와서 보고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욱현은 눈을 들어 말했다.“석지훈이 도착했어.”웬일로 그는 나에게 숨기지 않았다.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최욱현이 나를 내쫓는 소리가 들렸다.“가 봐. 어머니가 널 보고 싶어 하면 내가 다시 연락할게.”내가 물었다.“나 엄마 옆에 있으면 안 돼?”“수아야, 어머니는 네가 슬퍼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522화

    편지를 읽고 나니 나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었다. 나는 엄마가 말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네가 내 딸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 사이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모르겠구나.”사실 그 말은 나에게 일부러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몸 상태를 이미 알고 계셨기에...그녀는 나와 친해져서 서로 얽히는 걸 싫어했다. 이 세상을 떠난 후 내가 슬퍼할까 봐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나를 멀리하셨고 조금 전까지도 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나는 엄마의 깊은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녀의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나는 급히 아까 방으로 돌아갔다.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한 그 노인에게 나는 영어로 물었다.“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아세요? 아시면 제가 지금 당장 모시고 나갈게요!”나는 엄마를 만나러 가야 했다.지금 당장.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로 대답했다.“알아요.”나는 썩은 냄새를 참으면서 휠체어를 밀고 그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말린에 담긴 10년 전에 망가졌어야 할 내 신장 두 개는 쳐다보지 않았다.최욱현은 정말 변태였다.노인의 정신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는 영어로 나를 재촉했다.“아가씨, 빨리 나를 데리고 나가 주세요. 난 그녀를 만나고 싶어요... 내가 제때 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그녀를 잃을까 봐...”그는 아마도 나의 엄마를 말하는 것 같았다.나는 의아한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욱현이는 당신이 예전에 우리 엄마를 항상 때렸다고 했는데 지금 엄마를 잃을까 봐 두렵다고 할 자격 있어요?”그는 놀라며 물었다.“아가씨가 그녀의 딸이라고?”“네, 저는 그녀의 딸입니다.”이번 생에 하나뿐인 그녀의 딸이었다.노인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설명했다.“나는 그녀가 내 후계자를 낳아 주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항상 거절했어요. 나는 당시 젊어서 화를 참지 못했죠! 게다가 부부 사이에 다툼은 흔한 일이 아니겠어요? 나는 당신 어머니를 때린 적이 있지만 당신 어머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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