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성시에 눈이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내린 바람에 도시 전체가 흰 눈으로 뒤덮였다. 우리 둘은 좁고 긴 골목에 마주하여 서 있었고 옅은 가로등 불빛이 그를 비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으며 마치 만화에서 나온 남자 같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살짝 놀라는가 싶더니 빤히 보면서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꼬마 아가씨, 어디 살아?”“연씨 별장...”고현성이 연씨 별장에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허둥지둥 주소를 말했다. 그러자 고현성은 환하게 웃으면서 목도리를 풀어 나에게 둘러주었다. 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었다.고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자. 집에 데려다줄게.”‘웃을 때 참 예쁘네...’그림을 찢고 나온 듯한 얼굴이었고 또 무척이나 다정했다.나는 그의 옆에서 걸으면서 손을 살며시 잡았다. 고현성이 살짝 멈칫했지만 거절하지 않고 내 손을 더 꽉 잡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가는 길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별장 문 앞에 도착해서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현성 씨, 들어가서 차 한잔하고 갈래요?”고현성이 웃으면서 거절했다.“시간이 늦었어.”밤이 늦은 건 사실이었다. 나는 발끝을 들어 고현성의 옷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그럼 다음에 봐요.”그는 약속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순간 오늘 저녁의 모든 게 다 나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 이 사람은 임지혜의 신랑이 될 텐데.고현성은 임지혜에게 결혼식을 올려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리고 난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이고.‘난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나는 어두운 얼굴로 별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고 통유리 쪽으로 다가가 아래층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변함없는 자세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무심한 듯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나는 얼굴을 창문에 기댄 채 나지막하게 인사를 건넸다.‘잘 가요, 현성 씨. 다신 보지 말아요. 이번 생에 당신이 원하는 걸 다 이루길 바랄게요
나는 연애를 하고 싶었고 사랑받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었다. 설령 그게 진심이 아니더라도.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런 속상한 일 같은 건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차를 몰고 가려는데 고현성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에 나는 차를 멈추고 욕했다.“미쳤어요?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요!”고현성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곤 없었고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냥 쫓아내려는데 그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아직도 날 사랑해?”질문이면서도 긍정의 한마디였다.3개월 후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다는 사람이 지금 이런 소리를 했다. 자신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따지고 보면 그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도 나였다. 나의 나약한 모습을 그에게 완전히 보여주고 말았다.‘굳이 탓하려면 확고한 내 사랑을 탓해야지. 내가 현성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확고하니까.’“그래요. 사랑해요. 그래서 싫어요?”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홧김에 한 말인 것도 사실이었다. 고현성은 실눈을 뜬 채 운전에 집중하라고 했다.“연씨 별장으로 가.”“현성 씨는?”나의 질문에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나도 같이 가야지.”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됐어요. 난 현성 씨를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요.”“그럼 고씨 별장으로 가.”나는 차를 운전하여 고씨 별장에 도착했다. 고현성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 손목을 잡고 별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가 정리했는지 매우 깨끗했고 소파도 흰 천으로 뒤덮어놓은 게 사람 사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현성은 손목을 내려놓고 흰 천을 치웠다. 나는 소파에 앉았고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떠다 주었다.따뜻한 물을 들고 있는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오후 시간이라 창밖의 햇살이 나의 몸을 비춰 너무도 따뜻했다. 고현성은 아무
고현성이 나를 보면서 끈질기게 답을 원했다. 가끔 그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혼까지 한 마당에 왜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는 건지...나는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빼내고 최대한 진정하려 애를 썼다.“딱히 이유는 없어요. 그냥 애정 결핍이라 그런가 봐요. 그래서 돈을 줘서라도 사랑을 받고 싶은 거고. 어차피 이런 짓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요, 뭐.”잠시 후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보면서 말했다.“그때 연씨 가문으로 당신과의 결혼을 바꿨잖아요. 이젠 사랑을 바꾸는 거죠.”“그럼 나랑 연애하자.”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리면서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뭐라고요?”“너랑 연애하겠다고. 사랑하는 척, 아끼는 척하면서 행복을 느끼게 해줄게. 그리고 네 말에 거역하지도 않고 완벽한 남자 친구가 되어줄게.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그 한마디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고현성은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해도, 거리에서 아무 남자를 찾는 한이 있더라도 고현성과 연애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이혼 전에 이미 기회를 주기도 했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말투는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나에 대한 연민처럼 느껴졌다.나는 그를 뼛속까지 사랑했지만 끝내는 거절했다. 아무래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보다.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고씨 별장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방 안에만 갇혀 있었고 고현성이 문자를 보내도 못 본 척 무시해버렸다.[왜 도망쳤어?]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현성이 사랑하는 여자는 임지혜였고 임지혜의 남편이었다. 만약 이혼 전에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라면 나는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다 끝난 마당에 그의 동정과 은혜는 받고 싶지 않았다.죽을 때까지 외로운 한이 있더라도 필요가 없었다.그 후 일주일 동안 나는 연씨 별장에만 틀어박혀 어디도 가지 않았다. 병이 점점 악화되어 힘없는 날이 더 많았고 한 번 침대에 누우면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그렇게 흐리멍덩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
나와 최희연은 고현성을 만나기 전부터 친구였다. 하여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는 마음도 알고 있었고 모든 비밀번호가 고현성을 만난 그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바로 2009년 12월 27일, 첫눈이 내리던 그날이었다.“수아야, 안색이 너무 창백해.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그래?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나는 카페에서 최희연과 잠깐 얘기를 나눈 후 나왔다. 별장으로 돌아가 계속 틀어박혀 있으려던 그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받고 물었다.“누구세요?”“고씨 가문 사모님 임지혜입니다.”내가 피식 웃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임지혜는 잠깐 멈칫하다가 집념을 버리지 않고 말했다.“알아요. 근데 수아 씨한테 알려주고 싶었어요. 내가 바로 고현성의 아내고 당신 때문에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를 3년이나 놓친 임지혜라고요. 연수아 씨, 난 현성이를 3년 기다렸고 당신을 3년 참았어요. 지금은 그때 잘못된 걸 바로잡았을 뿐이에요. 난 드디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고현성의 아내가 되었어요.”고현성의 아내 자리가 남들의 존경의 받아야 한다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아끼면 모를까.나는 딱히 관심 없는 말투로 말했다.“네.”그런데 임지혜가 말하다가 갑자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사실 난 수아 씨를 탓한 적이 없어요. 그때 수아 씨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재벌 집 딸이 사모님이 되었을 테니까요.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수아 씨처럼 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 사람을 상대하느라 몇 년 동안 편히 살지도 못했을 거예요. 어찌 보면 수아 씨한테 내가 고마워해야 해요.”나는 차분하게 물었다.“그래요?”‘난 착한 게 아니라 싸우기 싫었을 뿐인데.’“네.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현성이랑 오래전부터 결혼하고 싶었거든요.”잠깐 멈칫하다가 임지혜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이제 난 현성이의 아내 임지혜예요.”나는 싸늘하게 그녀에게 귀띔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 아버님이 허락하지도
요즘은 운성시에 눈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다.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자 고현성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까 폭우가 쏟아져서 옷이 다 젖었는데 계속 문 열어주지 않을 거야?”말투에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속상함이 살짝 묻어있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물었다.“무슨 일로 왔어요?”“연수아, 내가 지금 네 남자 친구라는 거 잊은 건 아니지?”‘기억하고 있었구나...’“난 당신이 후회한 줄 알았어요.”내가 말했다.“며칠 동안 연락 안 해서?”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말투에 속상함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이 바보야, 내가 말했잖아. 회사 일 처리해야 한다고. 앞으로 두 달 동안 회사에 급한 일이 없는 이상 쭉 네 옆에 있을 거야.”고현성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옆에 데리고 다닐게.”그의 말에 나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고현성이 나에게 이토록 다정하고 친절할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그에게 매달리기만 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들었어?”내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물었다.“현성 씨.”“응?”“문 열어줄게요.”나는 전화를 끊은 후 안방에 뒀던 진통제를 숨겼다. 그리고 전에 바닥에 넘어지면서 생긴 흉터를 가리려고 메이크업도 했다.얼굴에 상처가 났을 때 손톱으로 세게 긁은 적이 있었다. 분풀이이자 고현성이 나에게 준 상처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신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됐었는데...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자마자 고현성은 손가락으로 이마에 딱밤을 때리면서 장난을 쳤다. 화들짝 놀란 나를 보며 고현성이 덤덤하게 웃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얼어 죽을 뻔했다고.”나는 아무 거짓말이나 했다.“화장실 다녀왔어요.”고현성이 나를 힐끗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방금 화장했어?”나는 무심코 부인했다.“아니요.”그런데 고현성이 끈질기게 캐물었다.“날 위해 일
고현성도 참 웃긴 남자였다. 단 두 달만 연애하기로 했고 또 두 달 후면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 텐데 지금 물어봤자 의미가 있을까?그리고 두 달의 연애는 그저 연기에 불과했고 그가 나에게 베푸는 은혜와 보상이었다.나는 고현성의 목을 끌어안고 웃었다.“사랑하죠, 당연히. 현성 씨도 알잖아요. 연씨 가문 딸인 내가 고씨 가문에 시집간 건 현성 씨를 사랑해서라는 거.”예전이든 지금이든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나의 말에 고현성은 피식 웃더니 품에 꼭 끌어안고 따뜻한 손으로 등을 어루만졌다.“수아야, 사랑해.”그 순간 나는 경악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한참이 지난 후 정신을 차렸다. 나와 연애할 때 사랑하는 척, 아끼는 척해주겠다고 했었고 거역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행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었다.지금 그는 그때의 약속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진심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진심인지 물어봐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내 옆에 딱 두 달만 있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아는 고현성은 절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었다.임지혜와 결혼하기로 약속한 이상 무조건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마치 지금 날 싫어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나는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현성이 나를 꽉 끌어안고 물었다.“넌 언제부터 날 사랑했어?”내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아주 오래전에.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요.”...저녁에 고현성은 우리 집에서 잤다. 잠자리를 해선 안 된다는 나의 조건 때문에 그냥 품에 안기만 했다. 고현성이 내 침대에서 밤을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욕실로 들어갔다. 고현성이 깨기 전에 진통제를 먹었고 화장도 했다. 옅은 화장이었지만 창백한 안색은 가릴 수 있었다.화장을 마치자마자 고현성이 잠에서 깼다. 그는 비몽사몽 나를 보다가 한참 후에 말했다.“나 어젯밤에 여기서 잤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
고현성이 밖에서 2분 정도 전화를 받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고 달리 방법이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내가 가볍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고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이따가 나가야 하는데 너도 같이 갈래?”나는 알면서도 물었다.“임지혜 씨 때문이에요?”고현성이 두 눈을 감았다.“교통사고 당해서 다쳤대.”나는 계속하여 인내심 있게 물었다.“그래서 지금 보살펴주러 가려고요?”고현성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떠나기 전 나는 그에게 귀띔했다.“우리 전에 했던 약속 기억해요? 연애하는 동안에는 임지혜 씨를 만나선 안 된다고 했었어요.”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기억해. 그래서...”‘내 의견을 물으려고? 뭘 믿고 내가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현성 씨, 지금 가면 이 게임 중지할 겁니다.”나는 영화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현성 씨가 가겠다고 하면 막지는 않을게요. 가면 약속을 어긴 거로 생각하겠어요. 현성 씨, 사실 난 현성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해심 많은 여자가 아니에요.”고현성은 날 묵묵히 바라보다가 결국 나가버렸다. 창문 앞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내려다보았는데 아주 단호했다.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초저녁쯤 고현성의 어머니가 밥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자 나는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캐리어를 끌면서 거실로 내려갔다.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다.고현성의 어머니는 나를 보고 다정하게 물었다.“가려고?”“네. 비행기 시간이 곧 돼서요. 그동안 실례 많았습니다.”“실례는 무슨. 내 며느리인데 뭘 그런 예의를 차리고 그래.”“어머님, 저랑 현성 씨 이혼한 지 좀 됐어요.”고현성의 어머니가 아무 말이 없자 내가 웃으며 물었다.“눈사람 만들어도 돼요?”“당연하지. 내가 도와줄까?”“괜찮아요. 다 만들면 갈게요.”나는 눈이 두껍게 쌓인 곳을 찾아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부모님과 만들어본 적이 있어 그리
고현성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2년 전 낙태 수술이 뭘 빼앗아 갔다고?”그가 정확히 들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시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희연이 풀어줘요. 사랑하는 사람이 희연이를 기다리고 있다고요. 굳이 탓하겠다면 사고나 치고 다니는 임지혜 씨를 탓해요. 조사해보면 임지혜 씨가 8년 전에 뭔 짓을 했는지 알 거예요. 그 사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쳤어요. 희연이는 지금 그때 당한 거 그대로 갚아줬을 뿐이고 차로 친 것도 임지혜 씨가 모진 말을 해서 홧김에 그런 거예요. 현성 씨 그 약혼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요.”나는 말하다가 잠시 멈칫하고 비웃었다.“아, 내가 잘못 말했네요. 당신은 못 하는 게 없는 고현성이죠, 정말. 남이 무슨 짓을 하든 다 아는데. 지금은 단지 임지혜 씨의 잘못도 눈감아주고 있는 거고요.”고현성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이 일은 내가 제대로 조사할 거야. 근데 2년 전 그 일은 제대로 설명해. 아이를 지운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무슨 일? 다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의사가 수술을 했지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자궁이 감염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고현성과 관계를 가졌다.내가 싸늘하게 말했다.“별일 아니에요.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 아이를 지운 후에 몸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어요. 의사가 내가 앞으로 아이를 가지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라고요. 안 그러면 내가 왜 선양 그룹을 현성 씨한테 줬겠어요? 그동안 선양 그룹을 혼자서 경영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후계자도 없어서 준 거죠.”한참이 지나서야 고현성이 말했다.“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현성아,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병실 안의 임지혜가 고현성을 부르자 나는 싸늘하게 웃고는 다시 경찰서로 갔다.최희연을 보석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지만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권력을 내 손으로 직접 고현성에게 갖다 바쳤고 고현성은 그걸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