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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3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명이 끝나가는데도 나는 제대로 된 연애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소원은 고현성과 뜨거운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고현성이 나를 조금만 달래줘도 나는 아마 날뛰듯이 기뻐할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평생 귀한 대접과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여 임지혜를 자주 질투했고 미친 것처럼 고현성을 욕심냈다.

고현성이 나를 괴롭히고 모욕해도 기꺼이 당해주었다. 그의 앞에서 나는 한없이 보잘것없고 비굴한 존재였다.

나는 항상 자신을 낮추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

...

고현성은 평소처럼 그냥 휙 가버린 게 아니라 샤워를 마친 후 소파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회사 서류를 처리했다.

나는 잠옷을 입고 가볍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려고요?”

나는 시력이 좋아 그의 노트북 화면에 나타난 서류를 정확히 보았다. 전부 예전에 선양 그룹과 체결했던 계약이었다.

최근 선양 그룹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 거래처들이 줄줄이 계약을 파기하면서 주가가 뚝뚝 떨어졌다. 이 모든 게 다 고현성이 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까발리지 않았다. 그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길 바랐다.

고현성이 무시하자 나도 더는 방해하지 않고 서랍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혼에 관해 그와 상의하려는데 임지혜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임지혜의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현성아, 살려줘. 그 여자가 사람을 시켜서 날 납치했어. 내 몸을 더럽혀서 너랑 어울리지 않는 여자로 만들겠대.”

고현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네가 시킨 거야?”

나는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웃었다.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거예요?”

고현성이 나가려고 하자 나는 달려가서 그를 잡았다. 그러고는 용기 있게 그의 얼굴을 만지면서 물었다.

“현성 씨는 왜 그 여자 말을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요? 자작극일 수도 있잖아요.”

“난 지혜를 잘 알아. 걔는 너 같은 사람이 아니야.”

나는 순간 멈칫했다.

‘너 같은 사람이 아니야...’

고현성이 나를 밀쳐내고 나가려 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애걸복걸했다.

“가지 말아요. 오늘은 내 옆에 있어 줘요.”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의 따귀였다. 나는 바닥에 넘어진 채 문을 나서는 그를 쳐다보았다. 입안에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참을 수가 없어 하얀 카펫에 뱉어버렸다. 시뻘건 피가 마치 활짝 핀 장미처럼 퍼져나갔다.

고현성이 나에게 손을 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작극을 펼친 그 여자 때문에 나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버렸다.

‘나 방금 뭘 한 거야? 나랑 임지혜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니... 정말 점점 내 주제를 모르는구나.’

나는 아픈 배를 잡고 일어나서 밝은색의 오프숄더 롱원피스로 갈아입었고 겉에는 누드 톤의 롱코트를 입었다. 그다음 메이크업도 정교하게 했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펌을 넣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실버 하이힐을 갈아신은 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지혜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

나는 침대 위에 놓인 이혼 합의서를 가방 안에 넣고 직접 운전하여 병원으로 갔다. 비서가 병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옷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비서는 나의 차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달려와 차 문을 열고는 깍듯하게 말했다.

“대표님, 고현성 씨와 임지혜 씨 지금 이 병원에 있어요. 임지혜 씨한테 몹쓸 짓을 하려던 사람들은 제가 사람을 풀어서 잡았어요. 대표님의 예상대로 임지혜 씨의 자작극이었어요.”

차에서 내린 나는 허리를 살짝 굽혀 유리창을 보면서 립스틱을 발랐다.

“고승철 회장님께 연락했어? 언제 도착한대?”

이혼을 하더라도 억울한 일을 당해선 안 되었다.

“회장님은 15분 후에 도착하십니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예쁜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귀티가 흐르는 얼굴이었고 날 아는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시원시원한 게 하늘이 빚어준 조각 같다고 했었다.

나는 립스틱을 가방에 넣고 비서와 함께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임지혜의 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임지혜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조건 연수아 짓이야. 내가 귀국했다는 거 아는 사람이 너랑 연수아밖에 없어. 그리고 그 여자 말고 나랑 원수 진 사람도 없고. 현성아, 이게 다 네가 날 사랑해서 질투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고현성은 다정한 말투로 임지혜를 다독였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몸부터 챙겨. 내가 직접 조사할 테니까 걱정 마. 만약 진짜 연수아라면 꼭 너한테 사과하게 할게.”

‘허. 대체 뭘 믿고 저런 소리를 해? 설령 내가 했더라도 사과했을 것 같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거야, 아니면 내가 계속 약한 모습만 보여서 만만하다고 생각한 거야?’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 당당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 일 내가 한 거 맞아요. 어떻게 사과하면 성의가 있을까요? 현성 씨,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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