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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고현성은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발견하고는 소파에 편하게 앉아 내가 저녁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 동안 내버려 둔 탓에 음식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입맛이 없어서 맛도 잘 느껴지지 않았던 나는 밥을 천천히 먹었다. 그런데 기다리다가 인내심이 바닥난 고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연수아, 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나는 그릇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때 고현성의 시선이 음식 쪽으로 향했다.

“다 네가 한 거야?”

고현성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나는 설거지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낮에 현성 씨한테 저녁에 집에 와서 밥 먹겠냐고 물어봤었잖아요. 들어오겠다고 해서 현성 씨가 좋아하는 요리들로 한상 차렸죠.”

고현성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수작인 거야?”

나는 수저를 치우던 동작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두 눈 사이에 예전에 느꼈던 따뜻함은 이제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침묵을 택했다. 아무 말 없이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나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위층을 올려다보며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안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어보니 고현성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다리 위에 얇은 금색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나는 잠옷을 챙기고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욕조에 앉아 있다가 욕실 문을 연 순간 짙은 기운이 날 감싸 안았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침대까지 끌려갔다. 마지막에 고현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혜가 그러는데 3년 전에 네가 강요해서 미국으로 간 거래.”

고현성은 이미 내가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는 3년 전에 그와 6억 원 사이에서 고민도 없이 6억 원을 선택했다.

그렇다. 3년 전에 내가 임지혜에게 선택을 하라고 한 건 사실이었다.

만약 임지혜가 고현성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고씨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포기했을 것이고 임지혜가 고현성을 포기했더라면 6억 원을 주기로 했었다.

그때 내가 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앉지 않아도 다른 재벌 딸이 앉을 거라는 걸 임지혜는 알고 있었다. 아무튼 아무 배경도 없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녀는 절대 아니었다.

하여 임지혜는 깔끔하게 물러섰고 6억 원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지금 귀국했다는 건 희망이라도 봤다는 건가?

이젠 아무도 고현성을 억누를 수 없다는 걸 임지혜는 잘 알고 있었다. 고현성만 원한다면 무조건 이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갑자기 나를 꼬집었다. 귓가에 고현성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좋아한다면서 그때 왜 나한테 강요했어?”

나의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았다. 고현성은 나의 머리를 잡고 매정하게 말했다.

“3년 전 연씨 가문은 운성시에서 아무도 덤빌 수 없었고 모든 걸 네가 쥐고 흔들었어. 근데 지금은 어때? 연수아, 그때 너한테 든든한 백이 됐던 가문, 이젠 점점 쇠퇴의 길로 가고 있어.”

입술을 꽉 깨물자 피비린내가 천천히 전해졌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참으면서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낯선 사람을 대하듯 했다. 아니,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더 매정하고 차가웠다.

결국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현성 씨는 내가 미워서 우리 연씨 가문과 맞선 거잖아요. 근데 연씨 가문이 뭘 잘못했는데요? 3년 동안 고씨 가문을 계속 도와줬고 심지어 우리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윤을 내도록 도와줬어요. 근데 어떻게 연씨 가문에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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