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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작가: 동과

제1화

“사모님, 암 말기입니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뭐라고요?”

의사는 진단서 위에 팔을 올려놓고 또박또박 말했다.

“사모님, 2년 전 유산했을 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후에 감염까지 된 바람에 자궁에 암 덩어리가...”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그럼 얼마나 남았나요?”

“암세포가 퍼져서 길어야 석 달 정도...”

그 후로 의사가 더 뭐라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윙 했다. 머릿속에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맴돌았다...

...

그날 저녁, 고씨 가문 별장.

조금 전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바로 나의 남편 고현성이다.

결혼 3년 동안 그는 매번 별장으로 돌아와 나와 관계를 가진 후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마치 더러운 뭔가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매정하게 나가버렸다.

별장으로 들어와서부터 나갈 때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후 양복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가려고 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고현성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자 고현성이 입술을 깨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무관심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 막혀 결국 이 한마디만 했다.

“조심해서 가요.”

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내려다보면서 고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현성이 전화를 받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와 고현성은 올해로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 여자의 목숨으로 고현성을 협박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강요했다.

고현성은 반항도 해봤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

3년 동안 나를 대하는 고현성의 태도는 늘 차가웠고 잔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나와 잠자리를 할 때도 그 여자의 이름 임지혜를 부르곤 했다.

고현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모욕을 줬었다.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게 됐을 때 고작 14살이었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고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두곤 했었다. 그리고 고현성은 그때 옆 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나보다 일곱 여덟 살이나 많은 낯선 남자를 좋아하게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얼굴이 잘생겨서, 말하는 말투가 다정해서, 또 혹은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처음 들었을 때 연주곡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주해줬던 곡이라서 좋아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해 나는 고현성이 피아노 수업을 끝마치고 다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달간 뒤를 쫓아다녔다. 심지어 이름조차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피아노 치던 그 남자를 계속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씨 가문의 회장이 연씨 가문으로 찾아와서 날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했다...

연씨 가문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재산이 어마어마한 재벌이었고 운성시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가문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연씨 가문의 딸이었다. 고현성을 만나기 전에 나의 부모님은 항공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난 하루아침에 운성시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외롭고 슬픔에 잠긴 그 시기에 따뜻했던 고현성을 만났다.

사실 우린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고현성은 내가 따라다닌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일반 학생이라 생각하여 나의 존재를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기에 내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간이 늦어 하늘이 어둑해졌을 무렵 다정하게 당부하곤 했다.

“얼른 집에 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

그 생각만 하면 난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때의 고현성은 참으로 다정했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3년 전 고현성 아버지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하찮게 여겼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 연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가문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현성의 아버지가 사진을 꺼내고 익숙한 얼굴을 봤을 때 난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동시에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내가 맨날 그리워하던 남자였으니까.

결국 나는 큰 모험을 하기로 했다.

고현성이 기꺼이 나와 결혼할 것이라고 기대했었고 우리의 결혼이 사랑은 없어도 서로 존경하면서 행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집 남편들처럼 날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모욕을 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2년 전에 배 속의 아이까지 지우라고 했다.

고현성은 의사 앞에서도 나의 체면과 마음속의 기대 따위는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연수아, 넌 내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어.”

고현성은 나를 무척이나 증오했다. 자신의 아이까지 지우게 할 정도로.

예전에 밤낮없이 따라다니던 어린 소녀를 이미 잊은 듯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연씨 가문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에 앉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쫓은 그런 여자였다. 고현성에게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옛날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마. 너도 알잖아. 너한테 아무 인내심이 없는 거.”

나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씁쓸함을 참으면서 가볍게 웃었다.

“현성 씨, 우리 거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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