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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Author: 동과

제1화

Author: 동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30 10:31:49
“사모님, 암 말기입니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뭐라고요?”

의사는 진단서 위에 팔을 올려놓고 또박또박 말했다.

“사모님, 2년 전 유산했을 때 자궁 소파술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후에 감염까지 된 바람에 자궁에 암 덩어리가...”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의 말을 가로챘다.

“그럼 얼마나 남았나요?”

“암세포가 퍼져서 길어야 석 달 정도...”

그 후로 의사가 더 뭐라 말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머리가 윙 했다. 머릿속에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만 계속 반복해서 맴돌았다...

...

그날 저녁, 고씨 가문 별장.

조금 전 나와 뜨거운 잠자리를 가진 남자가 바로 나의 남편 고현성이다.

결혼 3년 동안 그는 매번 별장으로 돌아와 나와 관계를 가진 후 욕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마치 더러운 뭔가를 만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매정하게 나가버렸다.

별장으로 들어와서부터 나갈 때까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그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후 양복을 갈아입고 또다시 나가려고 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고현성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그러자 고현성이 입술을 깨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무관심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전부 목구멍에 막혀 결국 이 한마디만 했다.

“조심해서 가요.”

아래층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래층의 검은색 마이바흐를 내려다보면서 고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현성이 전화를 받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와 고현성은 올해로 결혼한 지 3년 되었다. 고현성과 결혼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 여자의 목숨으로 고현성을 협박하면서 나와의 결혼을 강요했다.

고현성은 반항도 해봤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

3년 동안 나를 대하는 고현성의 태도는 늘 차가웠고 잔인하기만 했다. 심지어 나와 잠자리를 할 때도 그 여자의 이름 임지혜를 부르곤 했다.

고현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에게 모욕을 줬었다.

내가 고현성을 좋아하게 됐을 때 고작 14살이었다. 한창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고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두곤 했었다. 그리고 고현성은 그때 옆 반의 피아노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나보다 일곱 여덟 살이나 많은 낯선 남자를 좋아하게 됐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얼굴이 잘생겨서, 말하는 말투가 다정해서, 또 혹은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처음 들었을 때 연주곡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주해줬던 곡이라서 좋아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나조차도 몰랐다. 그해 나는 고현성이 피아노 수업을 끝마치고 다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달간 뒤를 쫓아다녔다. 심지어 이름조차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피아노 치던 그 남자를 계속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씨 가문의 회장이 연씨 가문으로 찾아와서 날 며느리로 들이겠다고 했다...

연씨 가문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재산이 어마어마한 재벌이었고 운성시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가문이었다. 그리고 난 그런 연씨 가문의 딸이었다. 고현성을 만나기 전에 나의 부모님은 항공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난 하루아침에 운성시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외롭고 슬픔에 잠긴 그 시기에 따뜻했던 고현성을 만났다.

사실 우린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고현성은 내가 따라다닌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일반 학생이라 생각하여 나의 존재를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기에 내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시간이 늦어 하늘이 어둑해졌을 무렵 다정하게 당부하곤 했다.

“얼른 집에 가.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어. 어두운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

그 생각만 하면 난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때의 고현성은 참으로 다정했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3년 전 고현성 아버지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하찮게 여겼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 연씨 가문과 정략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가문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현성의 아버지가 사진을 꺼내고 익숙한 얼굴을 봤을 때 난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고 동시에 무척이나 기대했었다. 내가 맨날 그리워하던 남자였으니까.

결국 나는 큰 모험을 하기로 했다.

고현성이 기꺼이 나와 결혼할 것이라고 기대했었고 우리의 결혼이 사랑은 없어도 서로 존경하면서 행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다른 집 남편들처럼 날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모욕을 주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2년 전에 배 속의 아이까지 지우라고 했다.

고현성은 의사 앞에서도 나의 체면과 마음속의 기대 따위는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연수아, 넌 내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어.”

고현성은 나를 무척이나 증오했다. 자신의 아이까지 지우게 할 정도로.

예전에 밤낮없이 따라다니던 어린 소녀를 이미 잊은 듯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연씨 가문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를 협박해서 고씨 가문 사모님의 자리에 앉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내쫓은 그런 여자였다. 고현성에게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머릿속에 옛날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고현성이 어두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내 인내심 테스트하지 마. 너도 알잖아. 너한테 아무 인내심이 없는 거.”

나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씁쓸함을 참으면서 가볍게 웃었다.

“현성 씨, 우리 거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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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면 지금 최현욱은 나를 데리고 이 얼어붙은 설원을 벗어나고 있었다.대략 두세 시간을 더 걸었을까 최현욱은 지친 기색으로 나를 눈밭에 내려놓으며 투덜댔다.“너 진짜 무거워.”나는 고집스럽게 말했다.“나 진짜 50킬로도 안 돼.”나의 몸무게는 50킬로가 안 되긴 했지만 최현욱이 나를 업고 이렇게 오래 걸었으니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나는 일어나며 말했다.“내가 조금 더 걸어볼게.”그러자 최현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그쳤다.“서둘러야 해. 우리 지금 떠난 지 네다섯 시간이나 됐어. 저들이 네가 도망친 걸 눈치챘을 거야. 빨리 도시로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둘 다 붙잡힐 거라고.”최현욱의 말투는 상당히 긴박했다. 나는 얼른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최현욱은 뒤에서 웃으며 쫓아왔다.“빨리 좀 가. 꾸물거리지 말고.”우리는 그렇게 거의 뛰는 수준으로 걸었다. 나는 30분도 채 못 가 기운이 빠졌지만 억지로 버티며 30분을 더 걸었다.그러다 결국 나머지 거리는 최현욱이 다시 나를 업고 걸었다.새벽 12시가 가까워졌을 때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나는 얼른 최현욱의 등에서 뛰어내려 그 불빛을 향해 달려갔다.최현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넘어지지 마.”“얼른 핸드폰부터 구해서 전화해야 해.”지금 최희연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어 나는 마음이 초조했다.우리는 마침내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도시는 번화했고 작은 상점들이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길가의 큰 가게들도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나는 놀란 얼굴로 최현욱에게 물었다.“다들 아직 문을 안 닫았네?”최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아마 너를 위해 열어둔 걸지도 모르지.”당시 나는 방금 큰 저택 안의 사람들도 이 도시의 사람들도 전부 최현욱이 거액을 써서 매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몰랐다.이유는 아주 간단했다.최현욱은 나를 알고 싶어 했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말이다.하지만 그 외국인은 석지훈에게 진짜 원한이 있었고 최현욱은 그 복수심을 교묘히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4화

    “난 너한테 기대한 적 없거든?”“네가 나한테 기대 안 하면 누구한테 기대할 건데?”최현욱은 잠시 멈추더니 물었다.“네 남편?”“나 남편 없어.”“석지훈이 네 남편 아니야?”“우린 아직 결혼 안 했어.”최현욱의 정교한 알굴이 밤하늘 아래에서 바로 내 앞에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나는 숨이 멎는 듯해 고개를 돌렸다. 최현욱은 이내 매력적으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거네?”“네가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무슨 헛소리야.”최현욱은 추궁하듯 물었다.“설마 내가 널 좋아하면 기회가 있는 거야?”나는 살짝 두통이 오는 듯한 기분에 서둘러 설명했다.“내 뜻은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데 굳이 분위기를 망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야. 게다가 네가 날 좋아한다고 해도 소용없어. 난 널 안 좋아할 테니까.”최현욱은 비꼬듯이 말했다.“자기 잘난 멋에 사는구나.”나는 이 순간 우리 대화가 다소 애매한 분위기를 풍기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몸이 추위에 너무 굳어버려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결국 나는 최현욱이 나를 등에 업도록 내버려두었다. 그가 나를 업자 내가 품에 안고 있던 사과가 땅에 떨어져 버렸다.최현욱은 떨어진 사과를 주워 내게 건네며 말했다.“배고프면 먹어.”나는 배고프지 않았지만 그냥 지쳤을 뿐이다.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최현욱은 겉보기엔 연약해 보였지만 몸이 꽤 단단했다. 등에 업히니 최현욱의 옷 아래로 느껴지는 근육에 나는 무심코 그를 칭찬했다.“평소에 운동 많이 했나 보네.”최현욱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당연하지. 나 어릴 땐 몸이 약했지만 힘은 꽤 있었어. 커서는 운동을 더 열심히 했고.”나는 그냥 아하고 감탄하며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최현욱은 갑자기 흥미로운 듯 물었다.“너랑 석지훈은 사이가 깊어?”나와 석지훈의 사이는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했다.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세상에 있을까?“내가 지훈 오빠를 정말 사랑해. 가끔 무섭기도 하지만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3화

    최현욱의 표정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최현욱을 노려보며 말했다.“아까 하녀한테 물어봤는데 여기서 도시까지 70에서 80킬로미터는 된다던데요. 우리 이렇게 걸어가면 며칠이나 걸려?”게다가 지금 날씨는 이렇게 춥고 언제든 눈이 내릴 것 같은 징조가 보였다.밤이 다가오면 기온이 더 떨어질 텐데 이런 얼어붙은 눈밭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다.순간 나는 저택을 떠나온 걸 후회했다. 차라리 돌아가고 싶었지만 석지훈에게까지 피해를 줄까 봐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빨라 가자.”“꼬마 아가씨, 왜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래?”최현욱은 내 옆으로 다가오며 짓궂게 웃더니 말했다.“겨우 70에서 80킬로미터잖아. 난 걸어서 반나절이면 가. 그리고 마침 네 몸도 좀 단련할 수 있겠네.”나는 최현욱을 무시하고 무거운 유럽식 전통 드레스를 질질 끌며 앞으로 걸어갔다. 대략 30분쯤 걸었을 때 최현욱이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참,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나는 속으로 울분을 참으며 물었다.“뭔데?”“우리 길을 잘못 들었어.”최현욱의 말은 맑은 하늘에 벼락이 내리치는 듯했다. 나는 귀가 멍해져서 최현욱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추위에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꼬마 아가씨, 우리 원래 길로 돌아가야 해.”그런데 최현욱은 여전히 장난스러운 태도로 귀엽게 말했다.이에 나는 돌아서서 최현욱의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었지만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손을 거둬들이고 속에서 울컥하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앞장서서 길 안내 좀 제대로 해.”이번에는 최현욱이 앞장섰다.최현욱은 내가 추워하는 걸 느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했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30분이면 돌아올게.”비록 최현욱이 답답하게 굴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 눈밭에 나 혼자 남겨질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최현욱을 바라보며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가 떠나지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2화

    나와 최현욱의 거리는 약 3미터 정도였다. 솔직히 뛰어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복잡한 전통 드레스 때문에 움직이기도 불편했다.만약 아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석지훈이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석지훈이라는 걸 깨달았다.석지훈이 떠난 8개월 동안 그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만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걸 이제는 이해했다. 내가 그를 모른 척해선 안 됐다.실망과 죄책감에 휩싸여 그를 멀리했던 나의 잘못이었다.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나는 어떻게 토라질 수 있었던 걸까?내가 한숨을 쉬자 최현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뛰어내릴 거야, 말 거야?”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드디어 뛰어내렸다. 충격이 꽤 컸는지 최현욱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나를 안전하게 받아냈다.나는 순간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손으로 두드렸다. 이를 보고 최현욱은 내 귓가에 감미롭게 속삭였다.“언제까지 내 품에 안겨 있을 거야?”나는 재빨리 최현욱의 품에서 뛰어나왔다. 최현욱은 옷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보기엔 마른 것 같더니 은근히 무겁네.”“나 몸무게 50킬로도 안 돼.”“몸무게 50킬로 안 넘는 애들은 대부분 가슴이 없거나 키가 작더라.”최현욱은 내가 입은 드레스를 힐끗 보며 말했다.“옷은 정말 예쁘네. 영화 속 디즈니 공주 같아. 근데 너 머리가 너무 길어.”내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나도 너무 길다는 느낌이 들어 언젠가 잘라야겠다고 늘 마음먹었지만 매번 까먹었다.나는 최현욱을 흘겨보며 말했다.“그쪽 머리도 아닌데 왜 신경 써요?”“꼬마 아가씨가 입이 왜 이렇게 독해?”최현욱은 말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최현욱은 내 손목을 붙자고 화단 뒤로 날 숨었다.“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고양이들이 낸 소리겠지.”“그럼 가자. 너무 춥네.”발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최현욱은 내 손목을 잡고 당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1화

    최현욱은 순순히 대답했다.“그러면 여기서 기다릴게.”최현욱은 아래에서 들킬까 봐 걱정도 안 하는 듯 여유롭게 고양이와 놀고 있었다. 잠시 후 하녀가 방으로 들어왔다.그녀가 창가로 다가오며 나를 부르려 하자 나는 다급히 그녀를 막으며 물었다.“내 친구는 어떻게 됐어요?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나요?”“네, 이제 막 떠나려는 중이에요.”하녀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했다. 나는 일부러 무심한 척하며 그녀에게 물었다.“여기서 시내까지 얼마나 멀어요?”하녀는 영어로 천천히 대답했다.“여긴 아주 외진 곳이에요. 시내까지는 70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될 거예요. 아마 더 멀지도 몰라요. 사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이 저택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이 여자가 나를 부러워했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나는 외부에서 온 사람이고 그녀는 이 안에 갇힌 사람이다. 이 저택은 마치 그녀를 평생 가둔 감옥 같았다.나는 궁금해서 물었다.“왜 여길 떠나지 않는 거예요?”“이 저택을 지키는 게 내 사명이에요.”그녀의 말에서 엄청난 신념이 느껴졌다. 그녀를 설득해 이곳을 떠나라고 하는 건 허황한 꿈일 것이다.나는 굳이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이 저택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만큼 아마 이곳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해 많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최현욱을 알아요?”그녀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죠.”“그 사람은 누구예요?”그녀는 순진했기에 숨기지 않고 말했다.“우리 업계 사람들은 그를 최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최현욱은 나이가 많지 않지만 일 처리는 아주 냉혹하죠.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안젤리나, 보스가 널 찾는다.”밖에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말을 멈추고서는 서둘러 떠났다.나는 창가로 가서 아래를 보았다. 최현욱은 여전히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자 아까 헬기 안에서 최현욱의 동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최현욱, 너 또 착한 척하려고 그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90화

    “꼬마 아가씨, 내가 구하러 왔지.”그는 해맑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장본임이 그인 것을 몰랐다면 그의 말을 믿을 뻔했다.나는 냉소적으로 말했다.“난 널 못 믿겠어.”창밖은 끝없이 펼쳐진 얼음과 눈의 세계가 펼쳐졌고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정원에는 몇 마리 고양이가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옆에 미소를 띤 채 나를 올려다보는 최현욱이 서 있었다.최현욱은 내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걸 보더니 분석하듯 설명했다.“나는 이런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 그들이 널 원했으니 어쩔 수 없이 잡아 왔지만 지금 이렇게 그 사람들이 없을 때 몰래 구해줄 수도 있잖아.”“그 사람들이 없다고?”최현욱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뒷마당에는 없지.”최현욱은 아까 나에게 코트를 벗어줬기에 지금은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최현욱이 계속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치 콘서트 가수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핑크빛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이어폰이었는데 최현욱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나는 걱정스레 물었다.“내 친구는 어딨어?”“네 친구는 약간의 뇌진탕 증상이 있는 것 같아. 아까 또다시 기절했어. 그 사람들이 네 친구를 병원으로 따로 데려가려는 모양이야.”최현욱의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의심이 드러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쪽은 어떻게 아는 거야?”최현욱은 솔직하게 말했다.“방금 엿들었지.”나는 말문이 막혔다.창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최현욱의 얇은 가죽 코트를 집어 창문 밖으로 던졌다. 최현욱은 민첩하게 몇 발짝 움직여 코트를 받았다.최현욱은 코트를 입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랑 같이 떠날래? 병원에서 네 친구를 찾는 게 탈출하기 훨씬 쉬울 거야.”최현욱은 아무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위험한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나는 의심스레 물었다.“왜 날 돕는 거야?”“너도 나처럼 예쁘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89화

    최현욱의 표정은 마치 나와 역할이 바뀐 것 같았고 오히려 내가 그를 납치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스스로에게 침착하라고 경고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서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최희연을 바라보았다. 최희연의 관자놀이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내 친구 괜찮겠지?”“걱정하지 마.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야.”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최현욱은 갑자기 일어나 앞으로 가더니 아까 그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세 시간이 지나 우리는 러국 국경에 도착했다. 헬기에서 내린 나는 추위에 온몸이 떨렸다.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이때 최현욱이 이를 눈치채고서는 자기가 입고 있던 안감이 부드러운 가죽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내가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건 인정하지?”“최현욱, 또 아무 데서나 끼 부리지 마.”최현욱은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 곁으로 돌아갔다.우리는 약 5분 정도 걸었고 눈앞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20명에서 30명 정도의 무장한 외국인들이 서 있었다.최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을 데려왔습니다.”반대편에 있던 보스 격의 인물은 최현욱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농담을 건넸다.“그 유명한 최현욱이 이렇게 젊을 줄이야.”그는 외국인이었지만 완벽한 한국어를 사용했다.최현욱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칭찬할 거면 잘생겼다고 해줘.”“좋아, 여기 황금 두 상자다.”최현욱은 황금을 받은 뒤 떠나려 했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다 낮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난 이제 떠나야 해. 우리 집 어르신 생일 파티에 가야 하거든. 걱정하지 마. 내가 석지훈에게 연락해서 너희를 구하러 오게 할 테니까.”최현욱은 정말 채찍질하고 나서 사탕을 주는 사람 같았다.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최현욱은 단호하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나는 마음속으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88화

    “어머나. 이건 완전 뜨거운 감자잖아. 윗선에선 우리한테 사람만 잡으라고 했지 누구를 잡는지는 말도 없었잖아. 윗선에서 이 두 여자만 데려가면 운성에는 우리만 남게 될 텐데. 이러다간 우리가 희생양이 되는 거 아니야?”귀 옆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빨리 사람들을 넘기자. 가는 길에 신호를 남기면 그 사람들이 따라올 거야. 안 그럼 두 남자가 사람을 못 찾으면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 거야. 윗선이 우리를 이용해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을 이용해야지.”“두 남자? 왜 갑자기 두 남자야?”한 남자가 대답했다.“석지훈과 진유겸.”나와 최희연은 순식간에 차로 옮겨졌다. 연주회는 한참 동안 끝나지 않을 테니 경호원들은 우리가 납치된 걸 금방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이 사람들이 가는 길에 신호를 남긴다고 했으니 희망은 있었다.게다가 내가 늘 사용하는 건 석씨 가문의 핸드폰이었다. 경호원들이 우리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 금방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몇 분 뒤 나는 헬기 소리를 들었다. 나와 최희연은 헬기로 옮겨졌고 잠시 후 누군가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하더니 내 핸드폰을 가져가는 것이 느껴졌다.“하, 위치 추적이 켜져 있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우리는 이미 들켰어.”“일단 국경으로 가자.”헬기는 그렇게 이륙했고 나는 차가운 손이 내 복부를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그 순간 싸늘한 혐오감이 들었다.나는 눈을 번쩍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봐, 내가 이 여자가 기절한 척하는 거라고 말했지? 넌 안 믿더라?”내 앞에 있는 남자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잘생겼다. 느낌상 한민수보다 더 매력적이었다.그는 긴 눈꼬리가 특징인 한 쌍의 또렷한 눈매를 가졌는데 마치 영혼을 사로잡는 요정 같았다.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침착하게 물었다.“당신들은 누구죠?”지난 1년 반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나는 이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강철 같은 심장을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제387화

    고정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다.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서 앞으로 걸어가더니 무대 위로 올라갔다.고정재는 피아노 앞에 앉아 우아하게 연주를 시작했고 나는 다시 바람이 머무는 거리라는 곡을 들을 수 있었다.정말 오랜만이었다.고정재는 왜 또 이 곡을 연주하는 걸까?담현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유치한 아저씨예요.”나는 놀라며 물었다.“왜?”담현아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한참 후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정재가 바람이 머무는 거리를 연주한 건 담현아를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정재는 이 어린 소녀가 질투하길 바란 것이다.이전에 나와 고정재가 함께 찍힌 영상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적이 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고정재가 이 곡을 연주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담현아는 단번에 고정재의 의도를 간파했다.담현안는 고정재가 이 곡을 자신에게 들려주려고 일부러 연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능이 높은 사람과 함께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심지어 작은 속마음까지 전부 들켜버리니 말이다.예를 들어 담현아가 방금 말했던 유치한 아저씨라는 말처럼 말이다.최희연이 도착했을 때 고정재의 솔로 연주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최희연은 내 옆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수아야, 네가 갑자기 고정재의 연주회를 보러 오다니. 웬일이야?”나는 낮은 목소리로 최희연에게 설명했다.“내 옆에 있는 소녀가 보고 싶어 해서. 현아는 고정재의 음악을 좋아해. 나름 충성한 팬이야.”최희연은 아무렇게나 추측하며 말했다.“저 소녀가 고정재를 좋아하나 보네?”담현아가 들을까 봐 나는 최희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아니야,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최희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너, 나한테 장난치는 거지?”나는 웃으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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