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아름답게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하승우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한 달 전에 계략에 걸려든 하승우는 허수영의 도움을 받아 구원됐고 그로 인해 그의 아이를 임신했으니 허수영은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몸을 일으키며 하승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잠깐 나와봐.”말을 마친 후 하승우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얼굴이 창백해진 남지수도 병실을 따라나섰다.복도에서 하승우가 말했다.“앞으로 수영이가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할 테니 너도 친구에게 더는 수영이를 모욕하지 말라고 전해줘.”남지수는 피가 날 정도로 힘껏 입술을 깨물었지만 마스크를 끼고 있어 하승우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남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괴로워진 남지수는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하승우가 물었다,“왜 그래?”남지수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나 먼저 갈래.”말을 마친 남지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떠났는데 조금만 지체했다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하승우는 어떤 사람일까?그녀에 대한 태도가 처음부터 분명했던 그는 나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위급한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액막이로 시집왔던 남지수에게 두 사람의 결혼은 거래일 뿐 사랑할 수 없으나 대신 돈으로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다.지난 3년 동안 하승우는 매달 돈을 줬고 결혼할 때도 많은 재산을 나눠줬기에 하승우는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남지수는 여전히 슬펐다.이 모든 것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만 그의 눈에는 허수영뿐이기 때문이다.병원 밖으로 나온 남지수는 가슴을 꽉 잡은채 옆 벽을 짚고서야 가까스로 서 있을 수 있었다.허수영은 잠시 숨을 고른 후 택시를 타고 별장으로 돌아갔고 같은 시각 하승우도 병실로 돌아갔다.“승우야.”허수영은 몸을 살짝 일으키며 물었다.“방금 남지수 씨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데 괜찮아?”“괜찮아.”하승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허수영은 그를 힐끗 보면서 떠보는 듯 물었다.“우리는 언제면 동거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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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반 시간 전에 하봉주는 또 남지수에게 전화해 하승우와 이혼하지 말라고 하며 한동안 하승우와 함께 고택에서 지내라고 했는데 그녀는 매우 난감했다.“할아버지께서 이혼 신고를 철회했대. 또 나더러 여기서 살라고 했는데...”머뭇거리는 남지수를 보고 하승우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일단 들어가자.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알았어.”두 사람이 나란히 고택으로 들어가다가 문을 열기 전 하승우가 갑자기 물었다.“너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깜짝 놀란 남지수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없어. 왜 그래?”‘하승우가 혹시 내가 짝사랑하는 걸 눈치챈 걸까...’“별거 아니야.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더러 데리러 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하승우의 담담한 목소리다.‘나를 위해 생각해주는 걸까?’눈을 지그시 감고 남지수는 마음속으로 ‘바보’라고 욕을 했다.2층으로 올라간 하승우는 하봉주가 있는 위치를 물어본 후 곧장 서재로 갔고 남지수는 문밖에서 잠시 기다렸다.서재의 문이 제대로 닫지 않아 남지수는 하승우가 하봉주와 인사를 나눈 후 냉랭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저는 지수와 이혼할 테니 말리지 마세요.”“너, 너는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하봉주는 단단히 화가 났다.“결혼했으면 잘 지켜야 한다는 거 몰라?”“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결혼을 왜 지켜야 하죠?”차갑고 각박하며 또 짜증스러운 듯한 하승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남지수의 덤덤하던 안색은 점차 창백해졌다.화가 난 하봉주는 큰 소리로 꾸짖었다,“너 이게 무슨 태도야! 결혼이 애들 장난 같아?”“칫. 할아버지, 어떻게 이 결혼을 했는지 잊으셨어요?”그 말에 하봉주는 말문이 막혔고 문밖에 서 있던 남지수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참다못해 하봉주는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말했다.“어쨌든 너희들은 이미 결혼했으니 잘 살아야 해...”화가 치밀어 오른 하승우는 목소리가 더욱 싸늘해졌다.“분명히 말하면 이 결혼은 처음부터 거래였어요.”거래란 팔고 사는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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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하승우의 할머니가 가신 후에 이혼하라고?’남지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얼떨떨해졌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은성시 풍습이 떠올랐다. 은성시 민간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49일이 지나야 저승길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49일, 그러니까 거의 두 달 남짓한 시간이다. 그래서 하봉주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남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하승우를 쳐다봤는데 하승우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대답했다.“전 상관없어요.”의견이 없자 하승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요.”하봉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동안 너희 둘은 먼저 고택에 살면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거라.”남지수는 아무 말 없이 생각했다. 사실 할머니는 그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가 고택에 남으면 할머니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사람이 다 죽었는데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고 또 요즘 제작진과 일을 해야 하기에 집에 있을 시간도 별로 없다는 생각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하승우도 바쁜 사람이라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니 집이나 호텔이나 하승우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하승우도 좋다고 대답했다.두 사람이 나간 후 장영자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어르신, 정말 이혼시킬 거에요?”하봉주의 두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스쳤다.“어떻게 정말로 이혼하게 할 수 있어!”하봉주가 그렇게 하는 것은 이혼을 지연시킬 생각뿐이었다.전에 하승우는 3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니 두 사람은 정이 없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이제 한 달 동안 두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내면 정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도련님, 사모님, 저녁 드실 건가요?”서재를 나왔을 때는 이미 다섯 시가 넘어서 가정부가 다가와 공손히 물었다.남지수는 배를 만지며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는데 하승우가 갑자기 말했다.“갈비탕이 먹고 싶어.”그는 남지수를 향해 이 말을 했는데 남지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내가 할게.”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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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마침 식사를 마친 하승우가 다가와 물었다.“왜 그래?”남지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녀는 말을 할 때는 하승우를 쳐다보지 않았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하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왜 저러는 거지? 아까부터 계속 넋이 나간 모습인데?’침실로 돌아온 남지수는 카톡을 열고 연락처 목록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지성이'를 찾았다.그녀는 지성의 카카오 스토리에 들어갔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을 차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이었다.어쩐지 오랫동안 그의 문자를 받지 못했더라니. 남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저녁에 회의가 잡혀 회사로 돌아가던 하승우는 가는 길에 허수영의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승우야.”허수영은 말을 할 때 목소리를 길게 빼고 애교를 부리는 버릇이 있었지만 과하지 않았다.“‘효의전'이란 프로젝트를 알아? 이 드라마를 하고 싶은데 전에 오디션을 볼 때 감독님이 오케이한 걸 작가님이 거부하셨어.”하승우는 구체적인 상황을 묻지는 않았지만 찍고 싶다고 하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이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처리할게.”“그래, 네가 최고야, 헤헷.”하승우는 전화를 끊고 주민우에게 ‘효의전' 제작진에 연락해 허수영을 넣을 수단을 취하라고 했다.‘왠지 제목이 귀에 익은 것 같은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건 내 착각인 건가?’이후 며칠간 고택으로 이사한 남지수는 매일 방에 틀어박혀 대본을 바꾸며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하승우도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와서 두 사람이 거의 만나지 못해서 하봉주는 마음이 다급해졌다.드디어 촬영이 시작되는 날, 남지수는 택시를 타고 촬영장으로 향했고 주영배는 그녀를 반겨주며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자자,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배우들이 다 왔으니 어서 와서 보세요.”박설아는 몇 년 차 된 배우였지만 몇 년 동안 그럴법한 작품이 없었다. 남지수는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지만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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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남지수는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하승우를 보았다.수작업으로 재단한 검은색 셔츠와 정장 바지에 좁은 어깨와 긴 다리를 쭉 뻗은 몸매는 세계 정상급 남성 모델들이 무색할 정도였다.잘생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연예계 어느 남자 스타도 압도할 수 있었다.그가 막 촬영장에 들어갔을 때 많은 소녀가 그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평범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자 스타들도 그의 옆에서는 무색해 보였다.남지수는 그를 보며 고3에 하승우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도 하승우의 외모에 현혹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아까 하승우의 말을 생각하면 남지수의 마음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허수영 씨는 어울리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효의와는 이미지가 아주 달라요.”“이미지는 바꿀 수 있어요.”하승우의 말투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이 일은 제작진 임원 모두가 통과했어요.”제작진 임원 전원이 통과했다는 그 말은 그녀 같은 작은 작가는 더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남지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심장이 아파 죽을 것 같았다.허수영을 얼마나 열심히 지켜주는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허수영이 이 역할을 하고 싶어 해서 여태껏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던 그가 이 드라마에 투자하다니. 그는 정말 허수영을 위해 많은 것을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그렇게 정해요.”하승우가 말했다.“다시는 바꾸지 않을 거예요.”이 말에 허수영의 입꼬리가 더 올라갔다.남지수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스크를 썼지만 주먹을 불끈 쥔 채 노기를 띤 눈빛을 짓고 있어 보는 사람들도 화가 난 것을 눈치챘다.허수영은 걸어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승우야, 나 때문에 남지수 씨랑 싸우지 마. 효의 캐릭터가 마음에 드는데 남지수 씨가 마침 작가라 나에게 불만인 건 이해해.”그녀는 또 남지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남지수 씨, 정말 하고 싶은 드라마인데 잘 찍을 테니 화내지 마세요.”주영배는 멍한 표정으로 그들 셋을 바라보았다. 그는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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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입을 꾹 다문 남지수는 그의 옆을 지나갔다.소지성은 3년 전처럼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밉살스러웠다.하지만 어릴 때 남지수는 소지성을 아주 좋아했다.둘은 짜개바지 시절부터 알고 지냈고 그 후에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하지만 3년 전 그녀가 하씨 가문에 액을 막으러 시집간다는 소식을 알게 된 소지성은 그녀가 불구덩이 뛰어드는 것이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을 고집하는 남지수를 보며 소지성은 화가 났지만 어쩔수 없이 ‘허락’했다.보답을 바라지 않은 듯 헌신적으로 하승우를 대하는 남지수가 못마땅해 소지성은 그녀와 여러 번 싸웠고 심지어 욕도 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결국 크게 한 번 싸운 후 두 사람은 사이가 틀어졌고 20년간 유지해 온 우정도 끊어졌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3년이나 만나지 않았다.남지수는 아쉬워했다. 소지성은 그녀의 중요한 친구였는데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았다.번잡한 생각을 접고 남지수는 현장에서 촬영 상황을 보며 메모했다.첫 번째는 허수영의 단독 신이다. 외모는 효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았지만 연기력이 좋아 잘 표현했다.두 번째는 허수영의 상대역 황제 캐릭터를 맡은 소지성의 신이다.두 번째 신을 찍을 때 하승우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용히 허수영의 연기를 끝까지 지켜보았는 그의 모습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투자자가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시선이 허수영에게 고정됐는데 두 사람 무슨 사이야?”“헤헤,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닐까? 허수영을 보며 잔뜩 긴장한 모습을 봐.”남지수는 마음이 아파났다.‘하승우가 허수영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남들까지도 보아냈을까.’남지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 자제했다.‘지금은 일하러 왔으니 개인감정을 개입하지 말아야 해...’차츰 남지수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허수영에게 사고가 생겼다.복잡한 액션을 찍으며 힘을 너무 많이 써 얼굴이 하얗게 질린 허수영은 몸을 휘청거리며 쓰러졌다.주영배를 비롯한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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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남지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허수영의 말에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 남지수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남지수는 허수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신경이 쓰이고 열불이 나서 도저히 못 참겠어요!”남지수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던 허수영은 멍해졌다. 그녀의 인상 속에서 남지수는 항상 약자였다.분노의 불길에 오장육부가 타버릴 것 같았던 남지수는 입술을 깨물며 진정하려고 애썼다.“허수영 씨, 하승우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여보’라고 부르면 내연녀와 다를 게 뭔가요? 감독님 앞에서 실수해서 그랬다고 하는데 배우가 NG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더군다나 몸이 불편해 NG를 낸 거면 감독님이 뭐라 안 하시는 걸 모르는 게 아니죠?”“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스태프들 앞에서 하승우를 ‘여보’라고 부른 건 당신이 이렇게 부르기 싶었기 때문이에요.”“뻔뻔한 짓을 했으면 대범하게 인정해도 되잖아요?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나한테 와서 능청스럽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허수영의 눈동자에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지만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불과 몇 초 사이에 분노가 사라진 허수영은 곧 아련한 모습으로 남지수를 스쳐지나갔다.“승우야...”깜짝 놀란 남지수가 고개를 돌려보니 허수영이 하승우의 품에 엎드려 마치 방금 괴롭힘을 당한 것처럼 힘없고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하승우는 급히 그녀의 팔을 잡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왜 그래? 아직도 불편해?”허수영은 하승우를 바라보며 괴로운 듯 말했다.“아직도 머리가 어지러운 게 불편해. 또 남지수 씨가 날 욕했어...”“너 수영이에게 뭐라했어?”남지수를 바라보는 하승우의 눈빛은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싸늘했다.남지수는 마치 얼음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차가워져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쓰라린 마음을 가까스로 달래며 남지수가 말했다.“그래요. 뭐라 했어요!”이렇게 강경한 태도는 허수영이 상상했던 것과 아주 달랐다. 그녀는 남지수가 반박할 줄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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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몸집이 우람짐 하승우가 담벼락처럼 남지수를 가로막자 그녀는 꼼짝달싹 못 했다.남지수는 하승우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눈길을 옆의 벽지에 고정했다.“무슨 얘기를 해?”남지수는 하승우가 무슨 얘기를 할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허수영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하승우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다.“나랑 수영의 일이 마음에 걸렸어?”남지수는 말문이 막혔다.불빛 아래 하승우의 피부는 백옥처럼 매끄러웠고 윤곽도 더 또렷해 보였다. 그는 그윽하지만 또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지수를 지켜봤다.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남지수의 주먹을 움켜쥔 손바닥에는 땀이 조금 났다.그녀는 절대로 하승우가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자존심마저 잃는다면 그녀는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그래서 남지수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우리는 아직 명색이 부부인데 허수영이 사람들 앞에서 ‘여보’라고 불렀을 때 나는 모욕당하는 것 같아 화냈을 뿐 다른 뜻은 없었어.”‘그래서일까?’하승우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가 이내 풀었다.“우리 일은 곧 끝날 테니 조만간 자유로워질 수 있어. 조금만 참아줘.”차분하게 말한 후 하승우는 곧 몸을 돌려 떠났는데 남지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욱신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남지수는 있어서는 안 될 생각을 애써 눌러버렸다.‘하승우가 허수영을 보호하는 태도가 분명하니 더는 착각하지 마. 아니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어...’고택을 떠난 하승우는 은성시 중심에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로 갔다.지하실에 차를 세운 후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승우야, 왔어! 지문을 입력했는데 왜 그냥 들어오지 않았어?”허수영은 기뻐하며 말했다.“익숙하지 않아.”거실에 들어간 후 허수영이 붙잡고 있는 자기 팔을 보며 하승우가 물었다.“좀 나아졌어?”“응, 많이 좋아졌어. 아이를 임신했는데 촬영을 하니 힘들어서 갑자기 쓰러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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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래서 하승우는 어떤 사람일까.허수영은 눈은 내리깔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다음날 허수영은 아침 일찍 비서 은아를 데리고 촬영장에 갔다. 은아는 동그란 안경을 쓴 통통한 여자아이로 밀크티 10여 잔을 들고 힘들어했다.선글라스를 벗은 허수영은 대범하게 입을 열었다.“어제 돌봐주셔서 고마워요. 저의 남편이 쏘는 거니까 다들 와서 한 잔씩 가져가요.”“와, 대표님 친절하게 밀크티까지 사주셨네요.”“하 대표님은 정말 언니를 예뻐하시네요. 언니를 도와줬던 사람들도 챙겨주시네요.”스태프들은 기뻐하며 밀크티를 가지러 갔는데 순식간에 혼자 남은 남지수는 홀로 대본을 들고 의자에 앉아 몸을 가늘게 떨었다.어제 자신에게 이런 일로 화내고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감정과 이성은 별개다.허수영이 공공연히 하승우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그녀는 괴로워졌다.그녀는 허수영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그 눈빛은 그녀를 바늘방석에 앉게 할 정도로 아이러니해 자기도 모르게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때 나른하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수영 씨, 하 대표님과 결혼하셨어요?”허수영은 갑자기 묻는 소지성에게 고개를 돌렸다.소지성은 잘생긴 남자로 하승우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편이지만 그래도 눈에 띄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결혼할 거예요.”“허허.”소지성이 웃자 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목소리의 조롱을 알아챘고, 허수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가 왜 이렇게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허수영 씨는 하 대표님의 여자친구인가요?”소지성은 차갑게 또 한마디 했다.“하지만 하 대표님은 아내가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허수영 씨는 내연녀가 된 거예요?”“...”이 말에 밀크티를 들고 있던 직원들은 허수영을 쳐다보며 의아해했다.이 말을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쨌든 진위는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소지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달랐다.소지성은 명문가 출신으로 분명히 상속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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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말을 마친 후 소지성이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는 걸 무시하고 남지수는 그를 밀어냈다.하씨 가문의 고택, 하봉주가 소파에 앉아 뭔가 생각하고 있었다.장영자가 차를 가져다주러 왔을 때 하봉주는 장영자를 불러세워 물었다.“요즘 승우와 지수가 여전히 그저 그래?”‘그저 그렇다'는 말은 바로 그 두 사람이 각방을 쓰고, 평소에 각자 바빠서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장영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데 며칠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이 못난 놈, 정말 쓸모없어!”장영자는 눈동자를 굴리며 다가갔다.“제가 보기에 지수 씨는 아주 좋은 아이예요. 만약 그 두 사람이 더 자주 만난다면 승우가 분명 지수 씨를 좋아하게 될 거예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남지수는 하씨 가문 고택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 채 며칠 동안 촬영장을 돌기도 하고 틈틈이 대본을 쓰며 알차게 지냈다.그러나 이날 오후 하승우가 그녀를 찾아왔다.“저녁에 시간 돼? 나랑 디너쇼에 참석해야 해.”남지수는 의아하게 물었다.“무슨 디너쇼?”하승우와 비밀결혼한 사이라 평소 하승우는 저녁 식사에 혼자 참석하거나 비서실에서 아무나 데리고 가지만 남지수에게 같이 가자고 한 적은 없다.“둘째 삼촌 쪽 파티인데 가족 몇 명만 참석해.”이 말을 들은 남지수는 이내 이해했다.하씨 가족은 모두 두 사람의 결혼 상황을 알고 있고, 그 사람들도 모두 몰래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얼굴이 망가졌다고, 결혼 3년 동안 남편을 만나지 못한다고 웃고 있다는 걸 남지수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아까 하승우와 함께 디너쇼 참석할 수 있다는 기쁨이 곧 하씨 가족을 만난다는 사실로 말끔히 사라졌다.남지수는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알았어.”하승우를 동반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직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았기에 아내의 역할은 모두 하고 있었다.그러나 마음속에서는 허수영이 남편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둔 채 남편 노릇도 못하는 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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