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웨딩홀까지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30 챕터

제11화

“안녕하세요, 구 대표님.”지수혁은 먼저 인사를 건넸다.“저는 지수혁이라고 해요. 윤서 친구예요.”“친구?”구재건은 지수혁이 아닌 윤윤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윤 비서한테 이런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윤윤서는 입술이 창백해졌다. 구재건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았던 것이다.그녀는 구재건을 너무 잘 알았다. 두 사람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는 그녀 주변에 다른 남자가 나타나는 걸 싫어했다.그녀와 지수혁은 그런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설명이 오히려 반작용만 일으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보아 낸 지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구재건과 함께 온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다들 아는 사이 같은데, 만난 김에 같이 식사할까요?”윤윤서는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구재건이 당당하게 말했다.“그러죠.”윤윤서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거절의 말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미안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지수혁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구재건과의 식사 자리를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다시 자리에 앉고, 윤윤서는 대화를 나누다가 구재건과 함께 온 여자가 톱스타 임지연이라는 것을 알았다.임지연은 아주 예쁘게 생겼다. 연기 실력도 훌륭했다. 요즘에는 중요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실력도 배경도 단단한 배우였다.그러나 이걸로 구재건의 관심을 이끌기는 역부족이었다. 윤윤서는 그의 곁에 3년이나 있었다. 그가 일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여자는 그에게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전에도 협력사에서 인플루언서, 모델, 혹은 연예인을 부른 적 있었다. 물론 번마다 내쫓겼지만 말이다.임지연과는 식사도 함께하는 걸 봐서 평범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임지연은 아주 똑똑했다.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구재건의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식을 때는 그녀가 나서서 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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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백양은 밤이 더 화려한 도시다. 환한 조명은 도시 구석구석을 밝게 비췄다.선바이저도 막지 못한 빛이었다. 만약 누군가 차 바로 곁에 서 있으면 분명히 보일 것이다.윤윤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수치심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대표님 꼭 이렇게 하셔야겠어요?”자신이 그를 아직 좋아한다는 점을 이용해서 너무 심하게 괴롭힌다고 생각했다.“불만 있어?”구재건은 시선을 내리깔더니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착한 척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내가 네 속셈도 못 알아볼 줄 알아? 내 눈은 장식으로 보여?”윤윤서는 흠칫 놀랐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심장이 심하게 욱신거려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그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구재건이 지켜보고 있었다.“네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차피 결국에는 나한테서 못 벗어날 테니까.”말을 마친 구재건은 그녀의 뽀얀 얼굴을 탁탁 쳤다. 적당한 힘은 통증을 주는 것보다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그러니까 알아서 잘해.”“...”밀물처럼 밀려온 무기력함에 윤윤서의 눈가는 더욱 촉촉해졌다.그녀는 정말 들킬 줄 몰랐다. 그래도 다행히 임신 사실은 들키지 않았다. 안 그러면 더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이 상황을 슬퍼해야 하는지, 좋아해야 하는지 헷갈렸다. 그녀가 주저하고 있을 때 구재건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10분 남았어.”10분 후에도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낯선 사람 앞에서 하게 된다. 그녀가 수치스러워할수록 구재건은 더 신이 날 것이다.“...”윤윤서는 몸을 흠칫 떨었다. 눈초리까지 파르르 떨렸다. 대리 기사 앞에서 그런 짓을 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녀에게 구재건은 악몽 그 자체였다.윤윤서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다가 결국 손을 뻗어 그의 바지 벨트를 잡았다. 차 안에는 금세 야릇한 분위기가 맴돌기 시작했다.가끔 밖에서는 자동차 경적이 들렸다. 그때마다 긴장한 윤윤서는 콧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러나 구재건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힘이 빠진 손이 시큰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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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마음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윤윤서는 집에서 며칠만 쉬다가 금방 직장으로 돌아갔다.강우진은 눈치껏 그녀가 사직했던 일을 숨기고 있었다. 구재건도 신경 쓸 사람이 아니기에 대부분 사람이 모르고 있었다.심지어 강우진은 윤윤서 대신 인사팀에 휴가 신청까지 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녀의 일을 대신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윤윤서가 출근 복장으로 안경을 낀 채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그는 고생도 끝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더 이상 혼자 마음 졸일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한 고생에도 복이 뒤따랐다.“우진 씨, 저...”“흡...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저는 다 이해해요.”윤윤서가 말하기도 전에 그는 손을 들어 말렸다. 그러고는 드라마 여자주인공처럼 처량하게 눈물을 흘렸다.“돌아왔으면 됐어요. 그러면 됐어요.”“그동안 수고했어요. 저는 인사팀에 가봐야겠어요. 사직서는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네요.”회사에 돌아왔으니, 그녀는 이제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속마음은 더 깊이 숨기고 돈 버는 데만 열중할 것이다.“그러게요.”강우진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밝히지 않고 말했다.“제가 가서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에요. 오늘 일 다 할 수는 있을라나...”강우진의 암시를 알아챈 윤윤서는 호탕하게 말했다.“우진 씨 일은 제가 할게요.”“요즘 너무 무리했더니 몸이 안 좋아졌는지 머리도 어지럽네요.”“월급 받으면 크게 한턱낼게요.”“역시 윤서 씨는 최고의 동료예요!”강우진은 급 활기찬 모습으로 서류를 꺼내 윤윤서에게 건네줬다.“이건 마케팅팀, 기회팀, 그리고 영업팀이 같이 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대표님 사인 좀 받아줘요.”윤윤서는 서류를 바라보다가 강우진을 힐끗 노려보며 말했다.“제가 일까지 대신해 주기로 했는데 이러는 게 어디 있어요?”이 심부름은 듣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다른 서류와 함께 보내서 사인받으면 되는 걸 그녀에게 직접 부탁했다는 건 구재건에게 가서 혼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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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사무실 안에서는 두 사람의 말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구지오가 말했다.“그리고 지난번 같이 식사한 임지연 씨랑도 얘기 끝났어요. 예리 누나가 돌아오면 잘 도와주겠다고 했어요.”“응.”구재건의 담담한 대답을 듣자 그녀는 마음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날 밤 임지연과 비밀리에 얘기하던 것이 이런 일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요즘 연예계에서는 연기를 아무리 못하고, 외모가 아무리 딸려도, 돈만 있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재건에게 가장 차고 넘치는 것이 바로 돈이었다.그러나 그는 단순히 돈만 쓰지 않았다. 특별히 임지연을 만나 부탁까지 해가면서 인맥을 만들어줬다. 마음이 없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사무실 안에서 두 사람은 아직도 얘기하고 있었다. 구지오는 책상 앞에 서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형, 근데 내가 보기에는 예리 누나랑 공개 연애하는 게 무엇보다 잘 먹힐 것 같아.”이 말을 들은 구재건은 잠깐 멈칫했다. 그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안 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구지오는 어떻게 더 설득할지 몰랐다.그도 알고 있었다. 윤윤서가 대학교 시절의 구재건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를 말이다. 윤윤서 때문에 구재건은 친구 한 명 없이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조예리는 구재건과 같은 지역 출신이었다. 그녀는 남몰래 구재건에게 이것저것 사 줬다고 한다. 크기로는 한정판 저서, 작기로는 옷, 양말, 키링 같은 게 있었다.세심한 그녀는 응원의 편지까지 썼다. 언젠가 성공하는 날이 있으면 더 이상 윤윤서의 그늘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그녀는 구재건의 가장 고달픈 시절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다. 지금 구재건이 지극정성 도와줄 가치가 있다고, 구지오는 생각했다.구지오가 유일하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서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 것이다. 조예리가 해외로 가버린 이유 중에는 연기 공부도 있지만, 구재건에게 고백했다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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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구재건은 생각에 잠긴 윤윤서를 바라보며 물었다.“며칠 더 쉬라고 했잖아. 왜 벌써 출근했어?”“집에만 있는 것도 심심해서요.”“그래, 힘든 일은 잠시 강 비서한테 맡겨. 내가 알아서 보너스 챙겨줄 테니까.”이렇게 말하며 구재건은 블랙 카드를 꺼내 건네줬다.“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지금 당장.”“말씀하세요.”“내 옷장 정리 좀 해야겠어. 백화점에 가서 옷이나 사줘. 간 김에 네 것도 좀 사고.”구재건은 아직도 조예리가 몰래 사줬던 옷을 기억했다. 형편이 어려운 그에게 그 옷들은 가장 예쁘고 편한 것들이었다.그때부터 구재건은 비슷한 디자인의 옷에 빠지게 되었다. 유명해진 다음에도 똑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골라도 비슷한 느낌을 내지 못했다. 조예리가 고른 것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다가 몇 년 전, 윤윤서가 잘 보이겠다고 옷 몇 벌 선물한 적 있다. 그 옷들은 놀랍게도 마음에 꼭 들었다. 그 뒤로 구재건의 옷장은 그녀가 책임지기 시작했다.“...”블랙 카드를 바라보는 윤윤서의 심장은 자꾸만 욱신거렸다. 옷이든 뭐든 주는 대로 입고 쓰던 구재건이 첫사랑을 위해 꾸민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속으로도 겉으로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그녀는 애써 괜찮은 척하면서 카드를 받아 들었다.“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윤윤서는 사인을 받지 못한 서류를 들고 강우진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모델은 무조건 바꿀 것이라는 말도 전했다.“도대체 누군데 그러는 거예요! 으악!”비서가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그녀는 자신의 추측을 발설하지 않았다.“때가 되면 알게 될 거예요.”강우진은 여전히 궁금한 듯 윤윤서를 잡아당겼다. 그런데도 윤윤서는 입을 닫았다.“아무튼 모델 교체는 불가능할 것 같으니까, 팀장님들한테 전해줘요. 그리고 저 오후에 대표님 대신 백화점에 다녀와야 해요. 일은 또 우진 씨한테 맡겨야 할 것 같네요.”“네? 네에?!”강우진은 머리를 감싸고 절규했다. 윤윤서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보탰다.“대신 대표님이 보너스 챙겨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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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이전의 세대들 사이에 그런 말이 돌기도 했다.세 살을 넘기지 않은 아이들은 영혼이 너무도 깨끗하여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도 볼 수 있다고 말이다.예시를 들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성별을 알 수 있다고 했다.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말이었던지라 정확도가 꽤 높을 것이다.윤윤서는 비록 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그녀는 자신의 배를 만지며 물었다.“아가야, 정말로 이 안에 여동생이 있는 거야?”다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여운 목소리로 답했다.“네, 아주 예쁜 동생이에요. 예쁜 동생이 이모가 엄청 좋대요!”아이의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원래 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아이는 그녀가 좋다고 말했다.그녀의 딸은 정말이지 불쌍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지수연은 슬퍼하면서도 기뻐하는 듯한 윤윤서의 표정을 보곤 갈피를 잡지 못했다.“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그런 거 아니에요.”윤윤서는 고개를 저었다.줄곧 숨겨오던 비밀이었지만 다온이는 그녀의 딸이 그녀를 아주 좋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않는가.그녀도 이기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나쁜 마음을 먹지 말았어야 했다.아기에게 세상에 태어날 권리조차 주지 않는 것은 정말로 나쁜 짓이었다.그 순간 윤윤서는 그간의 망설임을 그만두었다.아기를 낳기로 했다.나중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신경 쓰지 않고 반드시 낳을 생각이다.윤윤서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지수연에게 말했다.“저 정말로 임신했어요.”하지만 아기의 성별을 몰랐다.그래도 다온이가 예쁜 여동생이라고 했으니 분명 딸일 거로 생각했다.지수연은 멍하니 서 있었다.며칠 전에 지수혁에게서 윤윤서의 근황을 들은 적 있었다.재원 그룹 대표의 전담 비서로 잘 지내고 있으며 여전히 솔로라고 말이다.그런데 윤윤서는 지금 그녀에게 임신했다고 말한다.충격적인 소식에 머리가 멍해진 지수연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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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윤윤서의 얼굴에 치욕의 감정이 드러났지만, 아내 빠르게 표정 관리를 했다.“전 지금 파트너로서 20억을 빌리겠다는 게 아니에요. 대표님 비서로서 빌리겠다는 거예요.”윤윤서는 구재건의 곁에서 꼬박 3년이나 일했다.그녀의 공로가 많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힘들었던 건 사실이었다.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이 점을 구재건도 잘 알고 있었다.특히 윤윤서가 사직서를 내고 출근하지 않은 그 며칠 동안 강우진 혼자서는 확실히 전부 처리할 수 없었던지라 구재건은 하마터면 일정에 문제가 생길 뻔했다.업무 처리 능력만 따져보면 윤윤서에게 20억 빌려주는 것은 문제가 될 것 없었다.구재건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으로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빌리는 건 돼. 하지만 그건 네 하기에 달렸어.”윤윤서는 입술을 짓이겼다.몰래 멀리 떠나려면 반드시 그녀가 주동적으로 구재건에게 키스해야 했다.여자의 입술은 부드럽고 달콤했다.구재건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붙잡으며 그녀를 더 깊이 탐하려고 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흥이 깨진 구재건은 짜증을 내며 힐끗 보았다.그러나 그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그는 윤윤서를 밀친 후 핸드폰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윤윤서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게 하곤 벗겨진 잠옷을 올렸다. 방으로 구재건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이미 준비 다 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시간을 앞당겼다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비록 어투는 친절하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선 다소 걱정이 묻어났다.윤윤서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구재건은 비록 그녀를 싫어했지만 침대 위에서만큼 그녀를 밀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대체 구재건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일까?'‘어떤 일이 벌어졌기에...'‘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밀어내게 할 수 있었던 걸까?'‘그리고, 20억 빌려주기로 한 약속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끝인가?'‘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난 어떻게 멀리 떠나지?'윤윤서는 머리가 복잡했지만 잠자코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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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구재건이 문자를 보냈다.윤윤서는 그 문자를 확인했다.[오후에 나랑 함께 주얼리 앰버서더 촬영장으로 가. 네가 처리해야 할 임시로 변경된 계약서들이 있거든.]목구멍에 솜 덩어리가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주얼리 앰버서더는 조예리였다.그리고 변경된 계약서를 그녀에게 처리하라고 한다.윤윤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오후에 구재건을 따라 촬영장을 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첫사랑도 만나면서 최선을 다해 첫사랑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정말이지 행운의 여신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하얀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몇 번 누르던 그녀는 답장을 보냈다.[네.]강우진은 그녀의 창백한 안색을 보며 물었다.“왜 그래요?”윤윤서는 웃음을 지으려 노력했다.“사형장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몇 시간 뒤 벌어질 일을 예상하였던지라 기다림마저 그녀에겐 소리 없는 고문이었다.그녀는 배가 살살 아픈 듯한 느낌에 배를 감싸 안았다. 이 통증은 오후까지 지속하였다.출발할 때 구재건은 차 안에서 시선을 내리깐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윤윤서가 운전석에 앉자 그는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았다.구재건은 커다란 손을 익숙하게 그녀의 옷 속으로 넣으며 손끝으로 보드라운 그녀의 살결을 쓸어 만졌다.그는 장시간 동안 펜을 잡고 있었던지라 가끔 손가락이 아팠다.그때마다 윤윤서의 허리를 만지고 있으면 빠르게 뻐근했던 손가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이것도 그가 모르는 사이에 생긴 작은 습관이었다.윤윤서는 담담한 얼굴로 능숙하게 시동을 걸었다.두 사람이 촬영장에 도착했을 때 촬영은 이미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윤윤서는 촬영장 밖에서 수많은 조명을 받는 조예리를 보았다. 행성들이 지구를 에워싸고 도는 것처럼 그녀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조예리는 실버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메이크업도 완벽해 꼭 흩날리는 머리카락마저 일부러 만든 것 같았다.해외에서 3년 동안 지냈다고 하더니 확실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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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구재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넌 내가 보답해야 하는 사람이야.”그는 조예리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조예리는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유일하게 곁에 있어 주며 그를 달래주고 응원해준 사람이었던지라 꽁꽁 얼어붙은 그의 마음을 녹인 유일한 사람이었다.예전에 그는 조예리를 짝사랑하면서 그 마음을 일기에도 끄적인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날, 윤윤서를 안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다.처음에 그는 치욕스러웠다. 자신이 조예리에게 더욱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면서 화가 났다.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그의 꿈속에 하얀 치마를 입은 조예리가 아닌 윤윤서가 어김없이 나타났다.윤윤서는 꼭 예쁜 요괴처럼 그의 몸에 들러붙어 그를 무한의 쾌락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구재건은 원망스러웠지만, 그 방법이 없었다.나중에 그는 부단히 노력하여 끝내 성공하게 되었다.구재건이 조예리를 찾은 건 고마워서, 어떻게든 보답하기 위함이었다.조예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구재건은 그때 아주 기뻤다.그는 드디어 윤윤서에게서 벗어나 걱정할 것 없이 조예리와 잘 될 줄 알았다.하지만 조예리를 향한 마음을 전부 표현하기도 전에 그 마음은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점차 옅어졌다.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그럼에도 구재건은 조예리에게 잘해주었다. 마음속 1순위 자리도 조예리로 했다.다만 조예리에게 잘해주는 행동엔 더 이상 그녀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지 않았다.그의 말에 조예리는 흥분했다.“난 너의 보답도, 고마운 마음도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건 나한테만 관심이 있고, 나한테만 신경 쓰는 거야!”구재건은 조예리의 손을 꼭 잡으며 달랬다.“난 너한테만 관심이 있고 너만 신경 쓰고 있어.”조예리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계속 물었다.“그러면 나 좋아해? 날 좋아해 줄 수는 없어?”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구재건이 얼마나 냉철한 사람인지. 그런데 유독 조예리에게만 다정하고 인내심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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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초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었다.조예리와 구재건에게 버려진 윤윤서는 길가에 서서 한참 기다렸다.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갔다.따듯한 물로 샤워한 뒤 침대에 누웠다.이불을 몸에 꽁꽁 두른 후 텅 빈 옆자리를 보았다. 구재건이 오늘은 조예리와 밤을 보낼 것이니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은행에서 보내온 알림 문자였다.구지오가 그녀의 계좌로 46.6억을 입금했다.뒤로 가득한 0의 개수를 보며 윤윤서는 순간 멍해졌다.곧이어 병원에서도 문자가 왔다. 어머니 병원비로 2억이 입금되었다는 알림 문자였다.그녀는 그저 20억을 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구재건은 그녀에게 이렇듯 많은 돈을 주었다.윤윤서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기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두 사람의 원한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구재건이 보여준 행동은 확실히 설렐 만했다.잘생기고, 몸매도 좋고 체력도 좋았다.돈도 많았을 뿐 아니라 권력도 있었고 씀씀이도 컸다.대부분 그는 냉철한 사람이었지만 조금만 잘해주면 그녀는 정신을 잃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만약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윤윤서는 아직 평평한 배를 만졌다.다시 한번 확신했다.구재건의 곁을 떠나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그녀는 반드시 자신의 딸을 지킬 생각이었다.윤윤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에 숨겨둔 태아 도플러를 꺼냈다.날짜를 계산하니 임신한 지 어느덧 6주가 되었다. 태아의 심박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최근 구재건이 자주 집으로 들어왔기에 그녀는 병원에 가서 검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오늘 마침 들어오지 않았으니 전에 사둔 태아 도플러를 사용해보려고 했다.윤윤서는 설명서대로 배에 젤을 바른 뒤 기계를 꺼내 천천히 배 위에 올려놓았다.“두근, 두근, 두근...”아기의 심장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순간 윤윤서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이 심장 소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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