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131 - 챕터 140

571 챕터

제131화

송석석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털털한 모습에 사여묵은 눈썹을 들썩이며 키득거렸다.“그나저나 서경 태자가 녹분성에 왜 왔어요?” 서경 태자는 현명하고 용맹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로 유명했다.그런 사람이 녹분성에 나타났으니, 송석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하물며 태자는 무장이 아니다. 직접 전쟁에 나올 만큼 싸움 실력이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여러모로 태자의 행보는 수상했다.“서경 황실에 내란이 일어났고 2황자가 꾸민 모략에 의해 어쩔 수없이 전쟁에 나오게 됐소. 수란키는 태자를 위험천만한 곳에 차마 보낼 수 없어 안전한 녹분성에서 몸을 피신하게 했지. 헌데 그곳에서 이방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2황자가요?” 송석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자가 죽었으니 남은 황자들끼리 자리 쟁탈을 하겠네요. 2황자가 차기 태자로 선발되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예요.”서경의 2황자는 상국을 향한 적대감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송석석은 2황자가 서경의 다음 태자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수란키는 3황자쪽에 섰소. 3황자와 돌아가신 태자는 태황후의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이기에 명분이 확실하오. 그러나 3황자는 아직 태자가 될 정도로 뛰어나지 않소. 황제도 병세가 심해져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 같소만...”송석석은 그제야 태자의 신분으로 위험한 전쟁에 나온 상황이 이해되었다.“2황자와 수란키에게 이번 기회는 전환점이 되겠군요. 그들은 태자의 복수를 한 뒤 신속히 철수하여 내란에 맞설 생각으로 여기 온 거였어요. 그간 태자의 죽음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게 바로 명분을 만드는 것 때문이었네요. 이제 서경으로 돌아가 태자의 부고를 온 세상에 알리고 자신들이 추대한 3황자가 친형인 태자의 복수를 한 사실을 알려 민심을 달래고 3황자의 입지를 굳건히 만드는 게 수란키의 계획이었네요.”“무수한 이유들 중 하나겠지오. 한 나라의 내정을 우리가 어찌 다 파악하겠소? 서경 같은 대국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사여묵의 말에 그녀
더 보기

제132화

남강을 수복했다는 승전보가 진성 곳곳에 퍼졌다. 승전보를 들은 황제는 눈물을 주룩 흘렸다. 황제는 만조 문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온 나라가 흥에 겨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어느 나라나 그러하듯, 마을에는 황실이나 민간의 소문을 전하는 설화 선생이 존재한다. 진성의 설화 선생도 인맥이 넓었다. 벼슬아치 댁에서 일하고 있는 몸종들은 설화 선생에게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팔아넘겼다.이번에도 사람들은 공을 세운 게 북명왕, 사여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리와 시몬을 수복한 여장군이 있다는 소문도 순식간에 퍼졌다.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를 모아 사국인을 내쫓았다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되었다.설화 선생은 영웅 서사를 가장 좋아했다. 이번에도 송석석을 천하의 여전사로 만들어 이야기를 팔았다.고난 속에서 사여묵 휘하의 여전사가 용맹스럽고 지혜롭게 적군 수장의 목을 베냈다는 소문은 진성 곳곳에 퍼졌다.설화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전사는 아주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백성에게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다방(茶房)이나 주막(酒館), 시장 거리,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이 여장군의 출신 배경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여장군을 이방으로 추측했다. 이방은 일찍이 성릉관에서 공을 세웠고 전북망과 함께 원군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기 때문이다.현갑군을 이끌고 성을 무너뜨린 여장군은 이방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그러나 명문 세가나 정5품의 관료들은 이런 민간설화를 믿지 않았다.다방이나 주막에서 나온 소리 중 절반은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장군부의 사람들은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헛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이방이 큰 공을 세운 줄 알았다.전북망의 어머니, 김순희는 아들 내외가 출정한 뒤로 줄곧 염불을 올리며 그들이 군공을 세워 금의 귀환하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아들 내
더 보기

제133화

김순희는 병부 시랑(侍郎)의 두 부인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병부의 상서(尚書) 부인에게도 보냈지만, 상서 부인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랑 부인은 무조건 올 것이다. 김순희는 부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부인들이 모이면 전쟁의 대략적인 상황과 병부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 어떤 상을 내리는지에 관해 물어볼 계획이었다.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됐음에도 부인들은 오지 않았다. 심지어 품계가 높은 관료의 부인들은 하나같이 오지 않았다. 제 시간에 모인 사람들은 정5품, 정6품, 정7품의 부인들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초대 명단에도 없었지만, 기어코 온 바람에 김순희는 기가 차면서도 배가 아팠다. 그녀는 이번 차례를 위해 집안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아들 내외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병부의 여러 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산을 거덜냈다. 집으로 돌아간 부인들이 아들 내외에 관한 칭찬을 부군들에게 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값진 물건을 전부 팔아 성대한 차례를 준비했다.조정은 여러 관료와 백성들의 외침을 무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다행히 차례에 참석한 부인들 사이 여장군을 찬양하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덕분에 높은 관료의 부인들이 오지 않아 기분이 안 좋았던 김순희는 조금씩 평정을 찾았다. 자기 아들과 이혼한 송석석이, 국공부의 아씨가 된 게 배 아팠던 그녀는 이방과 전북망이 공을 세웠단 소리를 듣게 되자마자 국공부보다 잘 나가게 될 장군부의 창창한 앞날이 기대되었다.유일하게 살아남은 국공부와 실권을 가진 장군부 중,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은자를 쏟아부어 준비한 차례에 낮은 품계의 관료 부인들만 온 탓에 손님들과 같이 있기 싫었던 김순희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며 민씨에게 자리를 맡겼다.‘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밖에 소문이 파다하거늘, 어찌 다른 부인들이 오지 않은 걸까?’자기가 부른 정2품 상서 부인들이 오지 않은 이유가 급이 안 맞아서인 것을 몰랐다.설령 전북망과
더 보기

제134화

설화 선생이 말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라고 짐작하던 사람들은 김순희가 주최한 차례에 높으신 분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고 의심을 했다.장군부의 소식을 알게 된 설화 선생은 입맛을 다시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장군부의 노부인이 연 차례에 병부의 두 시랑 부인께서 참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 것 같소? 병부의 다른 관료 부인들도 참석하지 않았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오?” “바로 대단한 여장군이 이방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오.”다방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사람들의 토론 주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장군에 관한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 사이에 전북망의 현 부인과 전 부인이 함께 전쟁에 나갔다는 소문도 퍼졌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전북망의 전 부인이 남강에서 희생된 진국공 송회안의 딸 송석석인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사람들은 아직도 송석석의 얘기가 나오면 숙연해졌다. 진국공 송회안의 일가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백성은 송씨 일가의 얘기만 나와도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송씨 가문의 모든 사내가 전쟁에서 희생되었다. 송씨 가문에 있던 노약자와 여인, 그리고 어린 아이들까지 몰살 당했다. 국공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송석석이다. 송석석은 7, 8살이 되었을 때부터 매산의 만종문에 가 무예를 배웠었다. 송석석은 무공이 있었고 무장 출신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잃은 남강 전쟁에서 그들의 복수를 했다. 동시에 자기가 남편을 빼앗아간 이방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여러모로 송석석이 돋보였다.이 소문은 삽시에 장군부까지 전해졌다.이 말을 들은 김순희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났다. “송석석이 전쟁에서 공을 세워?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전쟁터에 나가 싸웠을 것이지, 장군부에 시집와 나 같은 늙은이 시중을 왜 들어?” 가노(家奴)의 입단속을 못한 탓에 노부인의 말은 자연스레 밖으로 퍼졌다.어떤 사람들은 노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가 정
더 보기

제135화

진성의 다방에서 설화 선생은 송석석이 군을 이끌고 성지를 뚫은 사적(事迹)을 아주 경이롭게 설명하고 있었다. 백성은 송석석을 숭배했다. 전북망과 헤어지던 그때, 송석석에게 했던 악독한 말들은 전부 잊은 듯 진심으로 그녀를 찬양했다.곧이어 회 왕비가 송석석을 근처에 얼씬 못하게 했다는 사실도 퍼졌다.회 왕비의 딸이 시집갈 때, 송석석은 사람을 보내 혼례를 도우려 했으나 왕비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주변인들은 송석석이 철이 없다고 꾸중했다. 이혼한 아녀자가 새각시의 혼례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날, 새각시가 그녀 때문에 액운이 붙을까 두려웠다.이 일을 알게 된 회왕은 화를 내며 왕비의 뺨을 때렸다. “당신의 조카요. 하늘에 계신 언니가 원망하는 게 두렵지도 않소? 이모가 되어서 어찌 친조카를….”회왕은 한량처럼 지내는 친왕이다. 그는 유약하고 가진 권력이 없었던 탓에 다른 곳으로 쫓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진성에서 머물 수 있었다.송석석과 전북망이 헤어졌을 때, 회왕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감히 둘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혼례를 하사받아 강제로 부부가 되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전부 황제의 성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왕은 감히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회왕은 송석석이 자기 딸의 혼례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송석석의 호의를 내치는 게 아니라 받았을 것이다. 다만 딸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뺨을 맞은 회 왕비가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송석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왕야께서 심기 불편해할까 봐 그런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전쟁에 나가는 것조차 몰랐지 않소. 이모라는 작자가 조카가 먼 길 떠나는데 배웅은커녕, 생각이 짧아 내쳤다는 것이오? 그건 무자비한 것이오.”회 왕비가 억울해하며 말했다. “저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잖아요.”“아랫사람을 보내도 되지 않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아니잖소.”
더 보기

제136화

송석석은 진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몰랐다.전쟁이 끝난 지 꽤 되었지만 아직 군을 완전히 철수할 수 없었다.너무 추웠던 날씨 탓에 전군이 행군하는 것은 위험했다.게다가 다년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남강의 여러 곳을 재건해야 했다. 그들이 철수하면 일손이 부족해진다.이방이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했단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이방이 아무리 부인을 하더라도 오두막의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이방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비밀이 아니었고 숨길 수도 없었다.이방은 사촌인 이진흥을 찾아가 증언해달라고 했지만 이진흥은 아무런 증언도 할 수 없었다. 이진흥도 폭행과 거세를 당했다. 오두막에서 죽다 살아났던 그는 이방이 어떤 처지인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이방에게 마음이 돌아선 그는 그녀와 말 섞기도 싫었다.오두막에 갇혀 있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공을 세우고 상을 받을 땐 둘도 없는 형제였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이방이 아군을 배신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언젠간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방은 남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텼다. 상처를 잘 치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다. 정신력이 너무 강해 오히려 감탄스러웠다. 이방이 자결할거라고 생각했던 수란키의 짐작과는 달리 그녀는 아주 끈질기게 버텨냈다. 수란키가 그녀를 과소평가한 셈이다.수란키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극노할 것이다. 서경의 태자는 그녀에게 모욕을 당해 자결을 했으나, 이방은 끈질기게 목숨줄을 붙잡고 있다.병사들은 이방의 면전에서 그녀와 관련된 소문을 떠들었다.처음엔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의 몸은 깨끗하다며 얼굴만 망가졌을 뿐이라고 변명했다.그러나 날이 지나도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줄어들지 않았다. 게다가 전북망이 줄곧 그녀를 냉대했다.자신을 둘러싼 억측이 끊이질 않자, 이방은 언제부터인가 변명하기를 포기했다.이방은 오히려 송석석을 찾아가 비아냥거
더 보기

제137화

봄이 오면서 쌓였던 얼음과 눈이 녹았다. 장병 일부를 남긴 뒤, 나머지 병사들은 진성으로 돌아가는 행군길에 오르기로 했다.시만자는 진성으로 갈 것인지, 매산으로 갈 것인지 한참이나 고민했다.몽동이가 말했다. “매산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진성에 금의 귀환하는 건 이번 생에 다시 없을 기회야. 사람들이 환호하며 우리를 반겨줄 거라고.”그들은 큰 뜻이 없었다. 평생 바라는 게 있다면 무공을 잘 연마해 적수를 만나면 제대로 혼내주는 것뿐이다. 천하무적은 바라지도 않았다.하루아침에 남강을 수복한 전쟁 영웅이 되었다. 갑자기 모든 이들에게 칭송을 받자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다.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이방은 곤장을 맞아야 했다.전북망은 이방을 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그녀를 도왔다.이방이 곤장을 맞아야 한다는 소식에, 전북망은 사여묵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간청을 올렸다. 그러나 사여묵은 전북망을 만나주지 않았다.전북망은 어쩔 수 없이 송석석을 찾아가 사여묵에게 잘 말해달라고 청했다.“내 부탁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모두 진성으로 돌아가야 할 몸 아니오? 이방이 곤장을 맞은 채로 돌아간다면 행군의 고난을 견디지 못할 것이오. 전부 내 잘못이오, 내가 송 장군을 저버린 것이니….”송석석이 차갑게 그의 말을 끊었다. “무례한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어요? 내 가족이 누구 때문에 몰살당했는데?” “세상에서 누구보다 이방이 죽기를 바란 게 나입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한테 누굴 살려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제정신이세요?”그녀의 반박에 전북망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말문이 막힌 전북망을 송석석이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전북망의 뇌리로 초야를 치르던 날, 붉은 천 뒤로 드러난 송석석의 불그스름한 얼굴이 떠올랐다. 복숭아꽃처럼 붉고 밝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는 여인이 아니었다.전북망은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내가 잘못했소. 당신을 저버린 건 순
더 보기

제138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장대성이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여묵이 차가운 눈빛으로 장대성을 째려보자, 장대성이 넉살 좋게 웃었다. “소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밖으로 나간 장대성은 멀리 가지 않고 근처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앉으시게!”사여묵이 송석석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여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입구를 힐끔 쳐다보았다. 밖에서 엿듣고 있는 장대성에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송석석도 장대성이 밖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으며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사여묵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시오. 무슨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송석석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진성에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희생된 곳에 다녀와도 될까요?” “우리와 함께 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그녀의 아버지와 오라비의 유골은 이미 진성으로 돌려보내졌다.그러나 그들의 영이 아직 이 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던 그녀는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 가족들을 만나고 알려주고 싶었다.사여묵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가능은 하다만, 송 장군이 직접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이미 내가 다녀왔소. 그곳에서 가장 큰 나무를 베어와 위패(牌位)를 조각했소. 이 위패를 가지고 진성에 돌아가시게.”사여묵은 조금 전 천으로 가렸던 물건을 꺼냈다. 그곳엔 이미 조각된 위패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아버지, 송회안의 위패다.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지만 그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이미 오래전, 송씨 가문의 신루(神樓)에 송회안의 위패를 모셔뒀음에도 그녀는 제사를 지낼 때면, 감히 고개를 들어 위패를 볼 수 없었다. 그 위패를 마주하는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진정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 차마 볼 수 없었다. 송석석이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손
더 보기

제139화

다음날, 전북망이 이방을 대신해 곤장을 맞았다는 사실이 영지에 퍼졌다.이방이 포로로 잡힌 이후로, 두 사람에 관한 일은 언제나 화젯거리였고 남강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이방은 상처가 나은 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며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소문은 나날이 무성해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이상해지자, 이방은 결국 상처를 치유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숨어버렸다.전북망도 묵묵히 모든 것을 견디었다. 그도 영지에 돌고 있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대답이나 설명을 하지 못했다.성릉관 전쟁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방이 서경인들을 학살하는 바람에…그러나 전북망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수록 사태만 더 심각해질 뿐이다.병사들은 이 장군이 군령을 준수하지 않고 몰래 주력부대를 이탈해 적군을 따라가다가 되려 포로로 잡힌 것만 알고 있었다.성을 공격할 때, 이방이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든 탓에 현갑군의 계획에 방해되었고 하마터면 작전에 실패할 뻔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병사 중 아무도 그녀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자업자득이라고 여겼다.전북망이 이방 대신 곤장을 맞은 것 때문에 그나마 전북망을 따르던 부하들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다만 북명군과 남강에 있던 장병은 여전히 그를 무시했다. 남자라면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고, 국가를 지키고 강토를 지키는 게 그들의 대의였다. 물론 그들도 자신의 가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북망을 용서할 수 없었다.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북망이 집에서 일 년 동안 부모님을 모셨던 부인을 버렸다는 사실에 그를 존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전북망은 가정을 버린, 부인을 버린 남자였다.더군다나 남강에 주둔했던 여러 장군들은 모두 송회안과 함께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 송석석에게 마음이 더 쏠리는 수밖에 없었다.5월 초에 이르러서야 사여묵은
더 보기

제140화

‘장군령’이라는 노래는 모든 사람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게 했다.북소리가 강하게 울리자 모든 이가 숙연해졌다.사여묵은 송회안의 위패를 안고 성에 들어갈 때, 위패를 높게 들었다. 위패가 먼저 들어간 뒤에 사여묵이 들어갔고, 이에 다른 사람들이 뒤따랐다. 손에 위패를 든 사람들은 숙연해졌다.진성에 들어서자마자 사여묵이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신, 송회안 장군이 이끌던 장병과 함께 남강을 수복했사옵니다. 상국과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서 승리했사옵니다.” 성문에서 울려 퍼진 우렁찬 목소리는 진성 도시 전체에 떠다녔고, 백성의 환호성과 감격 어린 눈물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눈시울이 붉어진 황제는 직접 사여묵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황제는 사여묵의 품에 안긴 송회안의 위패를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몇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성지를 받들라! 짐은 고생한 세 군에게 상을 하사하느니라!”“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여묵이 말했다.황제는 송석석의 앞으로 걸어갔다. 허리를 펴고 곧게 선 그녀의 품 안에 오라비의 위패가 있었다. 송석석은 눈을 내리깔고 감히 황제를 쳐다보지 못했다. “송 장군!” 황제가 불렀다.“예, 폐하!” 송석석이 큰소리로 답했다.행군하며 비바람을 맞은 그녀는 얼굴이 거뭇거뭇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감출 수 없었고, 두 눈은 검은 진주처럼 밝게 빛났다.황제는 송석석을 마주하자 죄책감이 들었다. 전에 그녀가 입궁해 원군이 되겠다고 청할 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송석석이 사여묵의 마음을 이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여겼다.그러나 전쟁에 나간 송석석의 실력은 뛰어났다. ‘송회안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았구나. 의연함과 오만한 태도마저 그를 똑 닮았으니.’ “그대의 가문도, 그대도 정말 잘했다!” 황제는 여러 관료들과 백성 앞에서 선포했다. “송 장군과 북명왕은
더 보기
이전
1
...
1213141516
...
58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