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독점적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536 챕터

제11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안시연 쪽으로 쏠렸다. 다만 연정훈은 관심 없다는 듯이 생수병 마개를 비틀고 물 한 모금 마셨다.안시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가 연정훈을 오해했던 것이었다.“안시연 씨?”한우빈의 파트너가 다시 한번 부르자, 안시연은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아니요.”안시연과 주지혁은 진작에 헤어졌으니, 주지혁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니었다.안시연의 대답을 듣고 나서 주지혁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정훈의 앞에서 안시연이 자기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주지혁이 원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안시연의 거침없는 말투에 주지혁의 눈빛은 다시 어두워졌다.“남자친구도 없는데 왜 우리 연 대표님을 보는 척도 안 해요?”이승우가 짓궂게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예요?”안시연은 뜸을 들이다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주지혁의 눈빛을 보고 생각을 바꾸었다.예전엔 주지혁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면, 지금의 안시연은 주지혁이라는 사람을 철저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고상하고 도도한 그의 얼굴 뒤에 숨겨진 자격지심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 부인하면 오히려 주지혁의 자격지심을 건드릴 수 있어. 할머니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으니...’쩔쩔매며 망설이는 안시연의 모습은 마치 묵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주지혁의 눈빛도 많이 누그러졌다.이승우는 그제야 곁에 있던 연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어휴, 이번엔 물 건너갔네...”연정훈은 손에 든 생수를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의 작은 행동에도 안시연은 가슴이 뜨끔했다.이때, 연정훈이 씁쓸하게 말했다.“상대가 일편단심이라면 어쩔 수 없지 뭐.”연정훈은 말을 마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안시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이승우와 부승원이 경기하러 경기장으로 나가자, 자리에는 몇 사람만 남게 되었다. 안시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땀이 많이 나서 잠시 샤워만 하고 오겠다며 조이현에게 양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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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주지혁이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자, 안시연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한발 한발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안시연은 샤워하고 나온 후부터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샤워장에서 나온 후 생수 한 병을 사서 복도에 앉아 있었다.“안시연 씨?”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승우와 부승원이었다.“이승우 씨, 변호사님!”안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고 이승우가 먼저 물었다.“어디 아프세요? 테니스 경기 때 무리했던 거 아니에요?”안시연은 지금 컨디션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다.“더위 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더위? 더위 먹은 거라고 해도 방심하지 마세요.”이승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건네주었다.“이거 가지고 3층 A1 라운지로 올라가시면 제가 의사를 불러올게요.”“아닙니다.”안시연이 괜찮다고 했음에도 이승우는 카드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우리 사이에 뭘 사양해요. 한번 친구는 평생 친구죠.”“...”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부승원도 입을 열었다.“A1 라운지는 개인 라운지가 아니고 프라이빗한 공간도 아닙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거기서 푹 쉬고 나오세요. 카드는 프런트에 반납하면 돼요.”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얼굴을 보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지칠 대로 지쳤던 안시연은 개인 라운지가 아니라면 마음 놓고 쉬다가 내려와도 된다는 생각에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이승우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어서 가서 쉬세요.”안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그런데 안시연이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자마자 이승우가 부승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우리 부승원 변호사님, 멀쩡한 얼굴로 진지하게 헛소리하면 되나요?”부승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에 놓인 이승우의 손을 아래로 내려놨지만, 이승우는 또다시 올려놓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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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연정훈이 말을 잇기도 전에 주지혁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연 교수님?”연정훈은 고개를 숙이고 빨갛게 달아오른 안시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데요?”“아까 너무 바빠서 미처 감사하다고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요. 지난번 성진대학교 동문회에서 교수님 덕분에 조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안시연은 조금 놀라웠다. 주지혁이 먼저 연정훈에게 동문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걸까?’안시연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연정훈이 스위치를 누르고 나서 아까보다 더 가까이 밀착했다. 안시연은 고개를 들면 연정훈과 닿을 것 같았다.연정훈은 주지혁에게 대답하지 않았고 기분이 언짢아진 것 같았다.주지혁은 대답을 들으려고 기다리지 않았고 할 말을 이어갔다.“바쁘신 분이라 잊으셨나 봐요. 지난번에 제가 후배와 함께 인사드렸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안시연이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제야 주지혁의 의도가 이해됐다. 주지혁은 연정훈의 태도를 떠보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연정훈이 그들의 관계를 폭로할까 봐 두려워했다.‘후배? 정말 웃기지도 않네... 이렇게 선을 긋는 건가?’연정훈도 주지혁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시선은 안시연의 빨간 입술 위에 떨어졌다. 연정훈은 다시 한번 반복했다.“후배?”안시연은 그 두 글자를 듣고 조롱받는 기분이 들었다.연정훈이 말을 이었다.“그날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연정훈이 이렇게 말하자, 주지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말한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연정훈이 기억 안 난다고 말했다는 건 그들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이어서 두 사람은 본론으로 들어가 잠깐 대화를 나눴다. 안시연은 두 사람의 대화에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통화가 끝나자, 방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연정훈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지만, 안시연은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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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연정훈은 마지막 한 마디만 내던지고 돌아서서 안방으로 들어갔다.안시연은 약간 넋을 잃고 라운지에서 걸어 나왔다.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 때문에 현기증마저 사라졌다.30분 전까지 건물 아래에서 바람피운 전 남자친구와 서로 애틋하게 마음을 표현하더니, 30분 후엔 그의 방에 무턱대고 나타나다니... 안시연의 입장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었다.연정훈이 안시연에게 양다리를 걸친다고 비아냥거린다고 해도, 그녀는 아니라고 설명하기 어려웠다.안시연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 아무 데나 으슥한 곳을 찾았다. 그녀는 잠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지만, 주지혁이 입금하기를 기다려야 했다.아이러니하게도 안시연은 분명히 자기 돈으로 외할머니의 병원비를 납부하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알랑거리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막 자리에 앉으려는데 멀리서 낯익은 그림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얼마 전, 바로 이 사람, 유태호가 안시연에게 나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주효진도 잔꾀를 부렸던 것이었다. 만약 그날 밤 도망가서 연정훈을 만나지 못했다면, 안시연은 아마 이미 이 남자의 노리개로 됐을 것이다.안시연은 더이상 순순히 수모를 당하지 않았다. 유태호가 가까이 다가오자, 안시연은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서 가버렸다.“안시연 씨?”유태호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지만, 안시연은 고개도 돌아보지 않았다.조이현이 아래로 내려와 주지혁을 찾다가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안시연이 황급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았다. 그리고 그 뒤로 뚱뚱한 늑대 같은 남자가 따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조이현도 유태호를 잘 알고 있었다. 출신은 별로지만, 장사에 이골이 나 벌여놓은 일은 꽤 된다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됨됨이가 덜됐다고 악명이 높았다.‘이렇게 되면 안시연은...’오늘 조이현이 안시연을 데리고 나온 것은 그녀를 연정훈의 품에 안겨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연정훈은 욕정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성공할 거라고 희망을 품지 않았다. 심지어 조이현은 차라리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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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폐쇄된 공간은 안시연의 절망적인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다.안시연은 손에 휴대전화를 꽉 움켜쥔 채 최대한 몸을 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유태호는 안시연의 눈가가 촉촉한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며 위로하는 척 한마디 했다.“두려워할 거 없어요. 금방 끝나니까. 그건 기분을 좋게 해주는 향수일 뿐이에요.”안시연은 자기를 어루만지는 뜨거운 남자의 손길에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저... 저 숨이 안 쉬어져요.”“숨이 안 쉬어진다고요?”“가슴이 너무 답답해요...”유태호는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안시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의 두 볼은 확실히 심상치 않게 빨갰다.안시연이 애원하는 듯 유태호를 보며 물었다.“창문 좀 열어주시겠어요?”창문 좀 여는 건 큰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주위에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었으니까... 조금 이따 안시연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내려면 그녀의 말을 어느 정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유태호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그래요. 열어드릴게요.”운전기사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안시연이 앉아 있는 쪽의 도어를 열었다.순간 스치는 뜨거운 바람에 안시연은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재빨리 주위를 탐색한 그녀는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틈을 타 주위 차량에 도움을 청하려 했다.하지만 주변 환경이 워낙 조용한 데다 지나가는 차들도 적어 연속 두 개의 교차로를 지났지만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태호는 절대 이 창문을 계속 열지 않을 것이다.이제 막 다음 교차로에 다다르려 할 때 가장 가까운 한 차로에 대형 화물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운전기사가 앉아 있는 위치가 너무 높아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려웠다.“괜찮아요?”유태호는 귀찮은 듯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바로 그의 절박함을 알아챈 안시연은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차창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이제 막 밖으로 손을 내밀어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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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순간 안시연의 머릿속에는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날 주지혁과 함께했던 소소한 추억, 주지혁에게 배신당해 버림받았을 때 느꼈던 절망, 그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힘들었던 시간들...안시연은 분명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 괴롭히고 있는 것 같았다.큰 절망에 빠진 안시연의 눈물은 두 볼을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렸고 귓가에는 윙윙거리는 이명까지 들렸다.그때 밝은 빛이 차 안에 비치더니 뜨거운 바람이 차 안으로 불어들었다.순간 안시연은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멈췄다. 두려움에 온몸을 덜덜 떨고 있던 그녀는 옆에 있는 유태호의 깜짝 놀라는 목소리를 들었다.“연... 연 대표님.”연정훈?어쩌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시연은 눈을 번쩍 떴다.조금 전, 질식해 죽을 것 같았던 속의 울렁거림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안시연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열리는 차 문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불빛이 나뭇잎 사이로 비춰들어 그녀의 시선을 어지럽게 했다.차 밖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굵직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내려.”그 말에 안시연은 유체이탈했던 영혼이 다시 자기 몸으로 돌아온 듯 온몸이 저려났지만 이내 긴 숨을 몰아쉬고는 차 밖으로 다리를 뻗었다.하지만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바로 앞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앞으로 고꾸라져 다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번 식당에서처럼 연정훈이 넘어지려는 그녀를 잡아줬다.정면으로 연정훈의 품에 안긴 안시연은 순간 그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상쾌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는 그녀가 얼마 전에도 그에게서 맡았던 그 독특한 향이었다.“걸을 수 있겠어?”나지막한 연정훈의 목소리였지만 마치 가슴을 뚫고 귓가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걸을 수 있어요...”안시연은 겨우 한 마디 내뱉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가누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풀린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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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안시연은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처음에는 횡설수설했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생각했던 말을 겨우 꺼냈다.“외할머니가 아파서 수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돈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제 돈은 주지혁 씨가 공동계좌에 묶어놔서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어요.”안시연은 말을 하면서도 연정훈의 눈치를 살폈다.연정훈이 아무 대꾸가 없자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결혼하신 줄 알고 그때... 제가 실례했습니다.”연정훈은 계속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굳이 말하자면 안시연이 무례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저 좀 태도가 차가웠을 뿐이었다.“내가 반지에 대해 설명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연정훈은 계속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조금 전보다 덜 차가웠다.안시연은 연속 고개를 끄덕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저를 속이는 줄 알았어요.”“내가 여학생이나 속이는 그런 쓰레기처럼 보이나?”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안시연은 연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몇 초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연정훈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안시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습니다.”안시연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연정훈의 눈을 바라보았다.“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오해할 수 있잖아요. 마치... 마치 저보고 착하다고 하셨지만 또 생각도 많다고 하셨던 것처럼요.”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안시연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 갔고 고개도 점차 아래로 숙여졌다. 연정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억지도 유분수지.”말문이 막힌 안시연은 그저 입술만 깨물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그때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잠깐 멈칫한 안시연은 위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숨을 참아 보려 했다. 하지만 오후 내내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라 위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꼬르륵. 꼬르륵. 조용한 방안에서 그녀의 ‘꼬르륵’ 소리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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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안시연은 침대에서 내려와 밥을 먹으려 했지만 손에 아직 수액 바늘이 꽂혀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연정훈은 그녀가 침대에서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을 올려 주었다.“고마워요.”처음부터 끝까지 안시연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국수를 먹고 있는 안시연은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사실 연정훈은 그녀의 친척도 친구도 아니었기에 굳이 나서서 그녀를 도울 필요가 없었다.순간 안시연은 며칠 전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날 연정훈이 자기를 도운 게 진작부터 무언가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었다.밖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그렇게 저녁 식사는 안시연 혼자 침대에서 먹는 것으로 끝났다. 옆에 있던 연정훈은 한 입도 대지 않았다.안시연이 밥을 다 먹었을 쯤 링거도 거의 다 맞았다.“좀 쉬시다가 몸이 괜찮아지시면 내일 아침에 퇴원하세요.”간호사의 말에 안시연이 고개를 끄덕였고 간호사가 나가자 병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바깥에서는 연정훈이 통화하는 목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안시연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병상 침대 시트의 한쪽을 붙잡고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섰다.방문을 열어보니 작지만 탁 트인 거실이 보였다. 마치 호텔 스위트룸 같은 느낌이었다.창가에 서서 전화통화 중인 연정훈은 손에 쥔 사인펜을 창턱에 대고 볼펜의 뒤를 딸깍딸깍 누르고 있었다.순간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연정훈은 종이를 찾으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안시연은 어렸을 때 어른들이 전화하면서 전화번호를 받아 적기 위해 황급히 종이를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손바닥에 적었던 기억이 떠올랐다.여기까지 생각한 안시연은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눈앞에 하얀 손바닥이 놓여진 것을 본 연정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순간 정신을 차린 안시연은 자신의 행동이 미련하다는 것을 깨닫고 약간 주춤하며 손을 거두려 했다.하지만 이때 연정훈이 사인펜의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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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리드미컬한 연정훈의 눈빛에 안시연은 당장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안시연은 순순히 손을 내밀어 연정훈에게 보여 주었다.손바닥의 글씨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내일 아침이면 없어질 거예요.”안시연의 나지막한 말에 연정훈은 아무 말 없이 테이블 옆 서랍에서 알코올 솜을 꺼냈다.“이리 와봐.”연정훈은 차가운 알코올 솜으로 그녀의 손바닥을 꾹꾹 누르며 닦아주었다.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기운이 또다시 안시연을 감쌌다.순간 안시연의 심장은 사정없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었다. 그녀는 손을 거두고 싶은 충동을 최대한 억누르며 연정훈을 힐끗 바라봤다.연정훈과 눈이 마주친 안시연은 얼굴이 달아오르고 귀가 빨개져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정훈도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일회용 핀셋과 함께 다 쓴 알코올 솜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개를 숙여 자기 손바닥을 바라본 안시연은 조금 전의 볼펜 자국이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지워진 것을 발견했다.“알코올을 이런 데에 쓰기도 하네요.”안시연은 혼자 중얼거렸고 연정훈도 그녀의 말에 뭐라고 답하지 않았다.그때 시계를 올려다본 안시연은 시간이 너무 늦어 연정훈이 곧 갈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갑자기 연정훈이 그녀를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아까 자는 사이에 핸드폰의 진동이 계속 울렸어.”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스팸 문자예요. 방금 차단했어요.”안시연의 말에 연정훈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그 문자들이 주지혁이 보낸 것임을 연정훈도 분명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그날 호텔에서 연정훈이 갑자기 다가와 약을 발라주던 것이 떠올랐다.그날도 오늘처럼 마치 한 방울의 물이 뜨거운 기름에 튄 것처럼 모든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났었다.아니나 다를까 연정훈이 바로 물었다.“할머니의 수술비는 받았어?”안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어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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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안시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리로 거짓말했다.“욕한 적 없어요.”“욕을 안 했다고? 그래...?”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농담 섞인 말투로 한마디 덧붙였다.“너 되게 쉬운 여자네.”사실 첫 번째의 황당한 만남에서 안시연은 이미 연정훈의 진짜 모습이 그리 점잖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로 만나 보니 안시연의 이런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연정훈은 사람을 희롱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안시연의 빨개진 얼굴을 본 연정훈은 그제야 조금 진지해지는 듯했다. “8천만 원, 빌려주면 어떻게 갚을 건데?”순간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한 안시연은 바로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제가 차용증을 써드릴게요.”정말 순진하고 유치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그녀가 갚지 않는다고 연정훈이 두려워하기는 할까?연정훈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이자가 붙어.”안시연은 연정훈의 말뜻을 단번에 깨닫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그에게 이자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을 안시연도 잘 알고 있었다.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연정훈의 표정은 그 어떤 것도 암시하는 기색이 없이 무덤덤하기만 했다.안시연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그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설마 그날 호텔처럼 갚으라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한 안시연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화끈 달아올랐다.설령 지난번에는 연정훈을 유혹할 용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럴 체면이 없다.그녀는 지금 오직 할머니의 근심걱정뿐이었다. 게다가 방금 링거까지 맞아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와 거리를 두려고 무의식적으로 반걸음 뒤로 물러난 안시연은 발뒤꿈치 뒤에 무언가 있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고개를 뒤로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앞에서 그녀를 잡아당겼다.안시연은 가까스로 몸을 지탱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몸 절반은 이미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귀에서 울리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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