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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Penulis: 라오
주지혁이 돈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자, 안시연은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한발 한발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안시연은 샤워하고 나온 후부터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다. 샤워장에서 나온 후 생수 한 병을 사서 복도에 앉아 있었다.

“안시연 씨?”

어디선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승우와 부승원이었다.

“이승우 씨, 변호사님!”

안시연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고 이승우가 먼저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테니스 경기 때 무리했던 거 아니에요?”

안시연은 지금 컨디션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다.

“더위 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더위? 더위 먹은 거라고 해도 방심하지 마세요.”

이승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건네주었다.

“이거 가지고 3층 A1 라운지로 올라가시면 제가 의사를 불러올게요.”

“아닙니다.”

안시연이 괜찮다고 했음에도 이승우는 카드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 사이에 뭘 사양해요. 한번 친구는 평생 친구죠.”

“...”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부승원도 입을 열었다.

“A1 라운지는 개인 라운지가 아니고 프라이빗한 공간도 아닙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거기서 푹 쉬고 나오세요. 카드는 프런트에 반납하면 돼요.”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얼굴을 보니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지칠 대로 지쳤던 안시연은 개인 라운지가 아니라면 마음 놓고 쉬다가 내려와도 된다는 생각에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승우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어서 가서 쉬세요.”

안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그런데 안시연이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자마자 이승우가 부승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 부승원 변호사님, 멀쩡한 얼굴로 진지하게 헛소리하면 되나요?”

부승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에 놓인 이승우의 손을 아래로 내려놨지만, 이승우는 또다시 올려놓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기를 하자, 연정훈이 저 여자한테 과연 넘어갈까?”

부승원은 대꾸하기 귀찮았다. 그리고 이내 이승우를 도와 안시연을 속인 것을 후회했다.

‘정말 싱거운 녀석이라니까...’

안시연은 3층에 도착한 후 A1 라운지를 찾아갔지만 작은 룸이었다. 카드키를 대면서 안내 문구를 확인했더니, 동시에 네 명이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있었다. 조금 전 두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프라이빗한 공간은 아닌것 같았다.

‘치익...’

알림음이 울리고 방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은은한 향기가 전해져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안시연은 온몸에 힘을 빼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닫으려고 할 때, 앞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든 안시연은 어안이 벙벙했다. 연정훈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허리춤에 목욕 타올 한 장 두른 채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게 분명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연정훈이 문 쪽으로 바라보았다.

안시연은 연정훈이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연 대표님, 저는...”

안시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횡설수설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문고리에 손을 얹은 채로 안절부절못했다. 이 상황에서 문을 닫을 수도 닫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주 대표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연 대표님이 쉬고 있는 방이 어디예요?”

‘주지혁!’

안시연은 만약 주지혁에게 자기가 연정훈의 방에 있는 것을 들킨다거나, 여기에서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안정시켰는데...’

조금씩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떨렸다.

주지혁이 등 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안시연은 문을 홱 닫아걸고 온 힘을 다해 문에 기댔다.

이때, 연정훈이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문을 사이에 두고 안시연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연정훈이 그녀 앞에 도착했을 때, 주지혁도 막 문을 사이에 둔 그녀 뒤에 도착했다.

안시연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목욕타월 한 장만 두른 연정훈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연정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긴 남자 휴게실인데.”

‘남자 휴게실?'

안시연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카드키에 적힌 안내 문구를 보지 못했다.

“이승우 씨가 장난...”

‘똑똑똑.’

안시연이 미처 다 해명하기도 전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주지혁이 문을 한 번씩 두드릴 때마다, 안시연은 마치 망치로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이 고통스러웠다.

연정훈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덤덤하게 말했다.

“손님이 있어요.”

안시연은 잠시 얼떨떨했다.

그런데 연정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의 옆에 있던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안시연은 깜짝 놀라며 그의 팔뚝을 움켜잡았다.

“교수님!”

주지혁이 문밖에 서 있는 것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안시연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고, 말투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연정훈은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멈칫하더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가까이에 서자, 안시연은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쟈스민 향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엔 부드러움이 전혀 없었고 한없이 차가웠다.

안시연의 손은 아직도 연정훈의 단단한 팔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시선은 노출된 다부진 몸에 놓였다.

안시연은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숙이더니 눈을 감았다. 2초간의 대치 후, 연정훈은 손을 내려놓았다.

안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고 할 때, 옆에 있던 월패드가 켜졌다.

안시연은 옆으로 얼굴을 돌려보고 깜짝 놀랐다. 방 안 곳곳에 편리한 룸서비스를 위해 월패드가 설치돼 있었다.

안시연이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연정훈은 통화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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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24화

    양혁수는 멍하니 셔터가 떨어지는 걸 지켜보았다. 작은 문부터 셔터까지 거리가 있었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달리지 않는 이상 탈출하는 건 불가능했다.솔직히 말해 양혁수는 그렇게 전력 질주하는 게 귀찮았다.그리고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셔터가 고장으로 인해 오작동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딸깍.셔터가 아예 닫히고 차고의 전등도 모조리 꺼졌다.순식간에 차고 안은 암흑이 되었다.‘허.’‘역시. 그러면 그렇지.’‘나를 먼저 만나자고 한 건 다 이유가 있겠어.’7년 전이었다면 양혁수는 바로 작은 문을 걷어차고 내키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그러나 나이를 먹고 나니 인내심이 는 건지 어린아이의 수작에 그렇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침착하게 핸드폰을 찾아 손전등을 켰고 켜자마자 작은 문의 손잡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양혁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문 뒤의 사람도 그 자리 그대로 멈췄다.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양혁수는 쯧 하고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그리고 예상대로 문이 열렸다.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양혁수의 뒤로 들려왔다.“이게 네가 날 만나자고 한 이유야?”말을 마치자마자 등 뒤로 다가온 소녀는 바로 양혁수를 덥석 안았다. 자연스러운 손놀림이 마치 몇 번이고 시물레이션을 해본 것 같았다.“...”양혁수는 핸드폰을 들어 주변을 환하게 비추려 했다.그러나 등 뒤의 사람이 한 발 더 빨랐고 양혁수의 손을 잡고 핸드폰을 빼앗았다.양혁수는 당연히 핸드폰을 뺏기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순순히 핸드폰을 내어준 건, 차에서 내리며 외투를 걸치지 않아 얇은 셔츠만 입은 상태에서 등 뒤로 소녀의 말랑한 볼이 느껴져 반항할 의지가 사라진 것이었다.핸드폰을 뺏기고 2초 뒤 주변은 다시 캄캄해졌다.보통 캄캄한 게 아니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양혁수는 차라리 두 눈을 감았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하. 미치겠네.’“손 풀어.”그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변여름은 고분고분 손을 풀고 망설임 없이 양혁수의 앞으로 다가갔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23화

    [내가 뭘 어떻게 도왔으면 하는데?]변여름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말 본인이 허예나가 되어 당장이라도 양혁수를 만나고 싶었다.[정말 저를 도우실 건가요?]변여름이 다시 묻자 양혁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봐서.]변여름이 재빨리 타자하는데 양혁수가 말을 보탰다.[살인, 방화는 안 돼.]변여름은 핸드폰을 꼭 쥐었다.‘그러니까 돕는다는 거네. 살인, 방화만 아니면.’변여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계속 질문을 이었다.[벌써 저택 정원에 추모식까지 마련해 뒀는데 내일 조문하러 올 거예요?][오전에 시간 되면 갈게.][오기 전에 꼭 연락해야 해요. 제가 마중 갈게요.]먼저 만나자고 하는 허예나에 양혁수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사진으로 얼굴을 확인했으니 허예나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저도 모르게 내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양혁수는 이런 기대를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하였다. 온라인으로 만난 친구를 만나면 설레는 마음과 같은 거로 생각했다.[그래.]양혁수의 대답에 변여름은 입꼬리를 올렸다.[오늘은 더는 연락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셔서 곁을 지켜드려야 할 것 같아요.][응. 너도 일찍 쉬어.]평소와 다름없는 안녕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양혁수가 일정을 앞당겨 돌아온 건 허씨 가문에 조문하러 가기 위함이 맞았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허예나의 처지를 생각하니 가문에서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비행기에 오르면서도 양혁수는 이런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여자에게 이렇게 마음을 쓰다니.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하지만 주선으로 만난 사이이고 그동안 그렇게 많은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으니 정이 든 것도 당연했다.다른 한편, 변여름은 핸드폰을 내려두고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잠에 들 수 없었다.두근거리는 이유를 굳이 꼽자면, 양혁수의 마음속에 허예나가 들어선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22화

    변여름은 사람을 시켜 허예나 모녀를 집 안으로 데려가 줬고 차에서 내리던 허예나는 걱정이 가득했다.그러나 5분 뒤, 허예나는 아주 기뻐하는 목소리로 변여름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름 씨, 저 지금 들어왔는데 큰어머니가 저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네.”변여름은 아주 침착했다.“지금 밖으로 조용히 나오셔서 저를 마중 오세요. 다른 사람이 저에 관해 묻는다면 어머님의 도우미라고 말해주세요.”“네. 알겠습니다.”밖은 어느새 굵은 빗줄기가 뚝뚝 떨어졌고 날이 어느새 어두워졌다.허예나는 우산을 쓴 채로 변여름과 함께 뒷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허예나는 변여름을 지민영의 작은 방으로 데려가 줬다.“여름 씨, 죄송하지만 잠시만 여기에 계세요.”변여름은 창가 자리에 서서 커튼을 살짝 든 채로 정원 쪽 상황을 살폈다. 머릿속엔 방금 들어오던 경로와 저택 구조를 되짚었다.“저는 괜찮아요. 혹시 다른 사람이 예나 씨가 이곳에 온 걸 알고 있나요?”“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얼굴을 자주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꼭 외출해야 한다면 마스크 착용하세요.”허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그전에도 늘 그래왔어요.”변여름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현정임은 정원에 작은 추모식을 마련했고 허현무의 유골함도 곧 집으로 이송이 될 것이다. 이르면 오늘 저녁, 늦으면 내일 점심까지도 추모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변여름은 작은 방에 머물며 양혁수의 일정을 살폈다.그런데!한 시간 전에 양혁수가 벌써 일정을 바꿔 비행기에 탑승한 게 아니겠는가! 사실을 알아차린 변여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허현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변여름은 양혁수가 행여나 허현무의 생일 연회에 참석할까 전전긍긍하며 몰래 양혁수에게 한가득 프로젝트를 떠안겼었다. 그래서 예정대로라면 적어도 3일 뒤에나 한강시에 돌아올 수 있는 일정이었다.그러니 양혁수가 지금 돌아온다는 게 뭘 의미하겠는가?변여름은 침묵했고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21화

    변여름은 병원에서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변백호와 먼저 한바탕 말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전까지는 변백호가 설령 자신이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더라도 양혁수에게 알리지는 않을 거라 확신했지만, 지금 보니 변백호는 확실히 양혁수를 남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정말로 변여름의 만행을 폭로할 태세였다.일이 틀어지려는 순간, 허예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여름 씨,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변여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허현무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변여름의 계획에 변수가 생겼다.양혁수가 ‘허예나’에게 얼마나 빠져든 건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장례식에 직접 조문을 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허예나와 마주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게다가 이 시점에서 허현무의 아내는 아마 유산을 독차지하는 데만 신경을 쏟고 있을 것이며 허예나 모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게 뻔했다.그러니 양혁수가 허예나를 위해 나선다면, 두 사람이 만나는 건 필연적이었다.변여름은 여러 상황을 저울질하며 물었다.[집에서 장례는 어떻게 치른대요?][큰어머니가 한강시에서 장례식하고, 유골은 화서시에 있는 선산에 묻겠다고 하세요.][그럼 큰어머니는 예나 씨와 어머님께 어떤 태도인가요? 허씨 가문에 와도 좋다고 하셨나요?]이 질문이야말로 허예나가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양혁수와의 만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직 변여름의 계획이 중요했다.[병원에 있을 때부터 큰어머니가 우릴 대하는 태도는 별로 좋지 않았어요. 원래부터 우리 모녀를 경계했으니 이번엔 재산 문제로 저를 집에 못 들어오게 막을 겁니다.]변여름은 단번에 결정을 내렸다.[짐 챙기세요. 어머니 짐도 챙기시고 두 시간 후에 데리러 갈 테니까 직접 가서 조문하세요.][그래도...][예나 씨 몫의 재산은 제가 챙겨줄게요. 그리고 따로 100억 더 챙겨줄 테니까 수고비라고 생각하세요.]허예나는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 바로 승낙했다.다시 핸드폰을 확인하니 변백호가 계속 메시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20화

    양혁수는 오후에 세운에 도착했다. 거래처 대표와 함께 점심을 나눈 뒤 저녁에는 테니스 약속이 있었다.아직 시간이 남아 그는 양지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청했다.양지원과 양혁수는 자주 통화했지만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반년 전이었다. 두 사람 모두 바빴고 최근 두 달간 양석진이 중요한 업무를 맡으면서 양지원 역시 여러 차례 귀빈을 접대하느라 자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네가 올 수는 없어? 꼭 내가 네 사무실까지 가야 해?”“양지원이 전화 너머로 투덜거리자 양혁수는 의자에 기대어 느긋하게 말했다.”“내가 거기로 가서 양석진 씨를 만나면 어떻게 해요?”“뭐가?”“양석진 씨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아빠라고 해야 하나요?”양지원이 말했다.“...아빠라고 부르면 뭐 어때?”“내가 낯가려서 못 부르겠어요.”“그냥 핑계 대는 거잖아.”양지원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그만 해요. 할머니도 됐고 엄마도 이제 성격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변해야죠. 좀 더 성숙해지고 혼자 운전해서 나를 만나러 와요.”양혁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내가 신선한 코코넛 두 개도 가져왔어요.”양지원은 다시 한번 황당하다는 듯 침묵했다.“...정말 효자네.”‘그 먼 곳에서 코코넛을 가져오다니.’양혁수가 웃으며 덧붙였다.“감동이죠? 감동했으면 빨리 와요. 늦으면 난 집에 갈 거예요.”“집에 가. 몇 달만 더 안 보면 넌 다른 사람 아들 될 거야. 어차피 내게는 아들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양혁수는 피식 웃었다.결혼 후 오히려 더 어려지고 젊어진 듯한 양지원을 보며 그는 새삼 그녀가 마음 편히 잘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보다 말투는 부드러워졌고 차가운 기운 대신 애교스러움이 묻어났다.‘참 좋네.’가벼운 대화가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양시연이 둘째를 임신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 문득 양혁수는 양시연과 닮은 그 얼굴을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입을 열었지만 허예나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올 뻔한 걸 깨닫고 곧바로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19화

    변여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홱 들었다.“오빠, 저는 괜찮아요. 오빠도 일찍 쉬세요.”“갑자기 로봇처럼 변했네?”변여름이 말했다.“네. 충전 완료됐어요.”양혁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가자. 일찍 자. 잘 자.”“잘 자요.”변여름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서야 천천히 베개에 기대앉았다.불편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자고 싶지 않아서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휴대폰을 꺼내 허예나와 양혁수의 통화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그들의 대화 하나하나를 떠올렸다.그녀는 생각에 잠기면서 한때는 기쁨을 느꼈고 그에게 더 가까워진 것 같았지만 곧 질투심에 휩싸였다. 만약 진실이 밝혀지면 그가 너무 화를 내서 영원히 자신을 무시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다른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계속 다가가는 것이라고 결심했다.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가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그가 만난 적 없는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을 것이며 그녀를 더 이상 여동생처럼 대할 수 없을 것이다.결심을 굳힌 변여름은 컴퓨터를 켜고 다시 불안한 생각에 잠겼다.계획표를 열고 양시연과 닮은 사진을 보자 잠시 멈칫하며 생각에 잠겼다.‘맞아. 방금 느꼈던 질투는 헛된 감정이었어. 허예나는 혁수 오빠와 아직 아무런 관계도 아니잖아. 시연 언니야말로 오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람이야.’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몸을 곧게 펴고 머릿속으로 논리적인 해석을 하며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다음 날 아침 양혁수는 출장을 떠났고 변여름은 허현무의 생일 잔치에 차질이 없도록 특별히 휴가를 내어 그날 하루를 바짝 신경 써 보냈다.그녀는 길가의 카페에 앉아 심심풀이로 유치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노지혜가 추천한 게임이었고 변태가 정상인이 되려면 정상인의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며 요즘 연구실 사람 중 절반이 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그 생각을 하며 변여름은 노지혜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변백호 씨가 어젯밤에 나한테 너에 대해 물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18화

    양혁수는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변여름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멍하니 있었고 그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의사를 불러줄까?”“아니요.”변여름은 눈을 떴다.“숙취 해소제 한 잔만 마시면 돼요.”양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가 매우 불편해 보이자 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옆 소파에 앉으려 했다. 그러나 변여름은 가방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찾아 그에게 건넸다.“뭐야?”“먹는 거예요.”양혁수는 그녀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았고 상자 안에 꽃 모양의 송편 네 개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변여름이 말했다.“녹두 송편이에요.”“그런데 왜 빨간색이야?”“색소를 넣었어요.”양혁수는 웃으며 송편을 받아 들었다.“어디서 난 거야?”변여름은 가방을 내려놓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연구실에 있는 언니 고향 특산품인데 두 상자나 받았어요.”“하나는 나 주려고 남겨둔 거야?”“아니요. 두 상자 다 제가 먹었고 이건 염치 불고하고 따로 얻어낸 거예요.”양혁수는 침묵했다.“...”그는 상자를 열고 웃으며 말했다.“어떤 녹두 송편이길래 그렇게 맛있어?”“자스민 향이 나고 속도 꽉 차 있어요.”양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를 입에 넣었다.달콤한 작은 송편 안에는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 차 있었다.“정말 맛있네.”그는 감탄하며 고개를 들었다.“차 안에서 했던 말 취소할게. 네가 네 형보다 훨씬 낫네.”변여름은 그가 먹지 않은 송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행히 그와 대화했던 허예나는 가상의 인물이라 얼굴도 없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그에게 준 것을 허예나에게 넘겼을지도 몰랐다.그녀는 조용히 안도하며 눈을 들었다.“오빠, 괜히 우리 오빠 얘기 꺼내지 말고 그냥 칭찬만 해주세요. 우리 오빠, 혁수 오빠한테 연락한 지 오래됐잖아요. 우애도 없는데 우리 오빠는 신경 쓰지 마세요.”양혁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집에서 너희 오빠한테 학대라도 받았어? 너 이간질하는 거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변여름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17화

    변여름은 정답을 맞힌 것처럼 자신감 있게 문제를 풀었다.양혁수는 속으로 의아해하며 변여름이 너무 영리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대화가 끝난 후 변여름은 모든 것을 간파한 듯 코웃음을 치며 말을 마무리했다.양혁수는 웃으며 변여름을 쳐다보았다.“나이도 어린데 생각이 참 많네.”변여름이 말했다.“제가 생각하는 건 거의 다 맞아요.”“됐어. 자. 더 이상 말하지 마. 너랑 얘기하면 머리 아파.”변여름은 침묵했다.‘...’‘흥. 얼굴도 못 본 사람이랑 얘기할 때는 머리 안 아픈가?’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심한 질투를 느꼈다. 전에는 스스로 위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수 없었다. 양혁수가 너무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그 생각에 그녀는 가방을 꽉 끌어안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양혁수는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이상하네. 참 드문 일이야. 이 꼬맹이도 짜증을 낼 때가 있네.’“집에 가면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수정과를 끓여 달라고 할게.”그가 말했다.“유 아주머니가 수정과를 정말 맛있게 만들어.”변여름은 고양이가 아니었고 만약 고양이라면 지금쯤 귀가 쫑긋 섰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마침내 대답했다.“네.”양혁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달래기 쉽네.’그는 에어컨 온도를 조절한 후 아무 말 없이 집까지 운전했다.차에서 내리려던 변여름은 원래 혼자 내리려고 했으나 고개를 돌려 보니 그가 휴대폰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누웠다.양혁수는 역시나 그녀가 차에서 내리지 않자 다가가 문을 열어주고 몸을 숙여 차 안을 들여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여름아, 몸이 안 좋아?”변여름은 고개를 끄덕였다.“좀 힘이 없어요.”속으로는 양혁수가 자신을 안아줄 거로 생각했지만 그는 몸을 돌려 허리를 굽혔다.“자, 내가 업어줄게.”변여름은 어이없었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16화

    “여름아.”“네.”‘쯧.’“어지러우면 그렇게 크게 고개를 흔들지 마.”“네.”‘젠장, 다 소용없었군.’그는 속도를 조금 줄이며 변여름에게 의자를 더 낮추라고 말했다.변여름은 머리를 굴렸다. 버튼을 못 찾았다고 하면 차를 세워줄 테고 직접 조절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하지만 버튼이 너무 눈에 띄어 모른 척할 수 없었다.‘에휴. 디자이너가 너무 성실했네.’결국 그녀는 스스로 의자를 조절하고 얌전히 몸을 기댔다. 어차피 그가 잔소리할 거란 걸 알았고 아직 한 번도 혼난 적이 없어서 은근히 기대되기도 했다.“오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양혁수는 어이없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왠지 변여름은 혼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그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네가 혼자 한강시에 왔으니 네 오빠가 널 내게 맡긴 이상 내가 책임져야 해.”변여름은 눈을 깜빡이며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양혁수는 이어서 말했다.“교수님과 저녁을 먹는 건 괜찮지만 술을 마실 거라면 미리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거나 어디로 와야 할지 알려줘야 해.”그는 운전대 위로 시선을 두며 덧붙였다.“네가 천재라는 건 알지만 머리가 좋다고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변여름은 정신을 가다듬고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끄덕였다.양혁수는 그녀가 집중해서 듣는 듯한 모습에 피식 웃었다.“됐어. 그냥 누워 있어. 곧 도착할 거야.”변여름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최근 일이 많아 활력이 넘쳤지만 버거운 나날이 이어져 그녀는 피곤했다. 거기에 술까지 더해지니 몸이 더 무거워졌고, 깊은 피로가 스며들었다.그런데도 머리는 여전히 깨어 있었고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고 싶었다.양혁수는 동생을 타이르는 일에는 서툴렀고 할 말을 마친 뒤엔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그러다 몇 번 시간을 확인했다. 허예나가 요양센터에 도착했을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선 아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겉으로는 아무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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