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대표님 출장 가셔서 지금 집에 안 계세요.”도우미 아주머니가 정중하게 말했다.“금방 떠났죠? 식탁 위에 놓인 차가 아직 따뜻하네요.”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시연은 냉장고 앞에 서서 바짝 긴장했다.아주머니가 황급히 말했다.“제가 마신 겁니다.”김세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여기서 아주 편한가 봐요.”아주머니는 비위를 맞추려는 듯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임유정 씨, 앉으세요. 제가 차를 내오겠습니다.”안시연은 그 말을 들었고 곧이어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안시연이 입술을 달싹이는데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나가시면 안 돼요. 임유정 씨는 사모님께서 몹시 마음에 들어 하는 분이라 아마도 안시연 씨를 상대하려고 온 걸 거예요.”안시연의 표정이 굳었다.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가 임자 있는 남자를 빼앗은 나쁜 여자인 듯했다.비록 이곳에서 잔 것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찾아오면 마치 쥐새끼처럼 주방에만 숨어있어야 했다.아주머니는 그녀의 난감해하는 기색을 알아채고 한숨을 쉰 뒤 간식과 차를 준비하러 갔다.밖에서 김세연과 임유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길 보니까 혼자 사는 것 같지는 않네요. 다른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임유정이 말했다.“정훈이 걔가 또 즐길 건 잘 즐기는 편이라서 집안이 그렇게 썰렁하지는 않아.”김세연은 덤덤히 대꾸한 뒤 곧바로 화제를 바꿨다.“그런데 걔가 워낙 바빠서 집안일에는 크게 신경을 못 써. 규칙이라고는 전혀 없어. 집안에 둔 도우미 아주머니도 그래. 감히 주인집 컵을 쓰고 주인이 식사하는 식탁에서 밥을 먹잖아. 참나, 어이가 없어.”임유정은 웃었다.“남자니까 집안일 같은 거 못하는 것도 당연하죠.”“집안일 못하는 건 그렇다 쳐. 그래도 혹시 집에 도둑이라도 들면 어쩐다니? 오늘은 그냥 컵이었겠지만 다음에는 서재에 들어갈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안방 물건도 사라질 수 있는데 말이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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