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Chapter 1161 - Chapter 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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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1화

숨이 막혀오는 순간 문밖에서 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울리는 쿵쿵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주서희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서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희 씨, 문 열어요!”서유와 정가혜는 송문아의 일이 있은 후 여러 차례 주서희를 찾아왔지만 그녀는 늘 괜찮다는 핑계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주서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매일 정상적으로 일하고, 제때 집으로 돌아가 쉬는 등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주서희가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하지만 그날 밤 서유는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속에 계속 불안함이 스며들어 주서희의 지난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주서희가 겪은 것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커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인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서유는 주서희가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모든 고통을 삼키며 결국 무너지게 되어 어리석은 선택을 할까 걱정했다. 그래서 침대에서 급히 몸을 일으켜 대충 옷을 걸치고 주서희를 찾아왔다.이승하도 함께였다. 그는 차 안에서 몸을 기댄 채 서유가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유가 한참을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자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은근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그는 긴 손가락을 들어 차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주서희가 몸에 수건을 두른 채로 나타났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젖어 있었고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마치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방금 막 끝낸 사람처럼 병약해 보였다.주서희는 수건을 두른 채로 나왔고 이승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시선을 피하며 차 앞쪽만 응시했다.서유는 마침내 주서희가 문을 열자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서희 씨, 얼굴이 너무 창백해요. 어디 아픈 거예요?”주서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죽어버리자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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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2화

서유는 차에 타고 나서도 작은 불빛만 비추고 있는 저 별장을 바라보았다. 주서희는 정말 외로워 보였다. 집에는 하인도 없고 가족도 없었으니 오로지 혼자였다...어릴 적부터 자신을 극진히 아껴준 고모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결국 그녀를 어릴 때부터 이용해 온 사람이었다니...원망했던 그 남자가 가장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는 그녀를 목숨 바쳐 사랑했었다.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을 목숨처럼 사랑한 남자를 직접 죽여야 했던 그녀. 옆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걱정해 주고 있어도 그녀가 이런 절망 속에서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서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승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내일 연이랑 가혜를 데리고 서희 씨를 만나러 가도 돼요?”그녀의 손을 잡고 장난스럽게 만지던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서희 씨 상태가 조금 이상해 보여. 정신적인 부분을 잘 살펴줘.”그는 여성들과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서유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주서희가 이 세상에 그녀를 붙잡을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서유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승하의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얹으며 살짝 애교를 부리듯 물었다. “그럼 나 서희 씨 집에서 지내도 돼요?”이승하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잠시 쳐다보며 물었다. “얼마 동안?”서유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 요구하며 말했다. “한동안...!”그 ‘한동안’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상황을 봐서 결정할 일이었다.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안 돼.”서유는 억지를 부리며 이승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여보, 제발. 여보가 허락만 해주면 다음에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게요...”그러나 이승하는 허황된 약속을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 “가혜 씨나 다른 사람을 보내 주서희 씨 집에서 지내게 할 수는 있지만 당신은 절대 안 돼.”이미 결혼한 남자에게 독신 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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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3화

서유와 친구들의 곁에서 주서희를 돌봐주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소수빈과 허윤서도 자주 찾아왔다. 허윤서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주서희의 집에 와서 그녀에게 밥을 해주고 말벗이 되어주었다. 단,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피했다. 주서희가 자궁을 잃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이런 기쁜 소식이 있더라도 허윤서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주서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허윤서의 배를 만지며 아이에게 말을 걸곤 했다. 그녀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아이가 태어나면 큰 선물을 준비해 두겠다는 것이었다.그 선물이 무엇인지 주서희는 유서에 썼다. 그녀의 재산 전부를 사촌 오빠 소수빈의 아이에게 물려주겠다고 적어두었다.주서희는 변호사를 불러 재산을 유서에 명시했고 모든 준비를 끝낸 뒤 휴대폰을 꺼내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연이의 손을 잡고 외출하려던 서유는 주서희의 전화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희 씨, 무슨 일이에요?”주서희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서유 씨, 내가 갑자기 해외 파견 프로젝트를 맡게 돼서 한 달 동안 해외로 의료 봉사를 가야 해요. 오늘은 서유 씨랑 함께 놀 수 없을 것 같아요.”서유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한 달 동안 가야 한다고요?”주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다시피 의료 봉사는 대부분 시간이 오래 걸려요. 한 달은 정말 짧은 편이죠.”서유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이런 일을 맡게 된 거예요?”원래 병원장인 주서희는 관리만 하면 될 텐데 그녀는 항상 일선에 나서며 여러 가지 업무를 직접 처리했다. 이제는 의료 봉사까지 나가려 하고 있었다.주서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낫잖아요.”그 말에 서유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좋은 일을 하러 가는 걸 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같이 가는 사람은 있어요?”주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각 병과에서 의사들이 파견됐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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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4화

결국 주서희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새장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1층 거실에서 머물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소준섭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시간이 되면 주방으로 가서 돼지고기 조림을 만들었다.주서희가 요리를 할 때 소준섭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조용히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음식을 다 만들고 상에 차리면 소준섭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그때 주서희는 고기 조림을 한 점을 집어 소준섭의 그릇에 놓으며 말했다. “한번 먹어봐요, 맛이 어때요?”소준섭은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입을 벌리며 주서희에게 먹여주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주서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 지으며 그릇에서 다시 고기를 집어 소준섭의 입에 넣었다. 그가 천천히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며 주서희의 무심한 미소는 점차 애정 어린 미소로 바뀌었다.그 고기가 이미 바닥에 떨어져 더러워졌다는 사실을 주서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여전히 소준섭에게 고기를 먹여주며 마치 이런 행동이 무언가를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저녁이 되면 주서희는 소준섭의 손을 잡고 저택 밖의 정원으로 나갔다. 실제로는 잡초가 무성한 황폐한 곳이었지만 주서희의 눈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정원으로 보였다.그녀는 소준섭의 손을 잡고 산책을 했다. 정원에서 해변까지 걸어간 뒤 잔디밭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준섭과 이야기를 나눴다.밤이 깊어지면 주서희는 침실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소준섭의 허리를 안은 채 그의 품에 파고들어 잠에 들었다. 비록 그것이 단지 하나의 안고 자는 쿠션일 뿐이었지만 주서희는 소준섭의 존재를 느꼈고 그 품 안에서 큰 위로와 평안을 얻었다.그렇게 주서희는 소준섭과 함께 29일을 보냈다.마지막 날 주서희는 새장 방의 문을 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어야 할 소준섭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다만 오래된 혈흔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소준섭을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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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5화

주서희는 서유의 영상통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소리를 끄자, 순간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세상이 멈춘 듯, 오직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만이 존재했다.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서 피가 천천히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소준섭이 죽을 때 겪었을 고통을 똑같이 느끼는 듯 창백한 입술 끝이 천천히 올라갔다. ‘이렇게 피가 다 빠질 때까지는 정말 아프구나...’주서희는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몸을 이완한 채 통유리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눈동자는 천천히 창밖의 바다로 향했다. 소준섭도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유언조차 끝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위해 시신을 수습해 줄 사람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주서희의 맑은 눈동자에 점차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그녀는 지나간 인생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가장 많은 기억이 송문아와 관련된 것일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떠오르는 장면들은 모두 소준섭과 관련된 것이었다. 잊고 지냈던, 하지만 분명했던 기억들.어린 소준섭이 그녀가 넘어질 뻔할 때 작은 손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던 모습. 또, 소준섭이 그녀를 울렸을 때 몰래 집사에게 과자를 받아 그녀 책상 위에 살짝 올려두던 모습.그리고 성인이 된 소준섭이 그녀가 잠든 사이, 그녀 방으로 몰래 들어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키스하던 모습.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책상 위에 엎드린 그녀에게 살며시 입 맞추던 기억이 떠올랐다.이 순간에 이르러서야 주서희는 자신의 첫 키스가 그 폭력배들이 아닌 소준섭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희미한 시야 속에서 주서희는 검은 정장을 입은 소준섭이 찬란한 빛을 받으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소준섭은 그녀 앞에 서서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주서희, 네가 만든 장조림 정말 맛있게 먹었어.”주서희는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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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6화

매일 서유와 영상통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9일이 지난 후부터 주서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서유는 점점 불안감이 더 커졌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한 달이라는 기한은 왠지 모르게 소준섭이 정해준 기한 같았다. 그녀는 재빨리 서재를 나와 이승하를 찾아갔다. 마침 그가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그렇게 엄숙한 그의 표정을 처음 보는 듯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을까 봐 그 자리에 서서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찌 됐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구해요.”잠시 후, 전화를 마친 그가 뒤돌아서서 서유를 바라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서희 씨한테 무슨 일 생긴 거예요?”그녀는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그의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갔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서유가 마음을 졸이는 걸 원치 않았지만 이런 일은 그녀가 결국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자살했어...”현지 경찰들의 말로는 주서희가 자수를 하는 문자를 보낸 뒤 자살했다고 한다. 그들이 현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상태로 숨진 뒤였다고 한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이승하는 현지 경찰들에게 반드시 계속 구조하라고 했지만 총알이 그녀의 몸을 뚫고 지나가 유리창마저 뚫어진 상태라 구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유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져 버렸다. 카펫을 밟고 있는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외부의 온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싸늘하기만 했다. 서유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차가워지는 모습을 보고 그가 급히 손을 뻗어 서유를 품에 안았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을 끊임없이 쓰다듬었다.“이건 주서희의 선택이야.”주서희의 선택이었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듬어준 서유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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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7화

서유의 일행들은 곧장 파미란으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유리창 옆에 앉아 있는 주서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자세와 표정이 소준섭과 똑같았다. 이런 방식으로 속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방식으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자신이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소수빈은 죽은 주서희를 보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그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서희야, 모두 내 탓이야. 너한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네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오빠로서 널 지켜주지 못한 내 탓이야. 네가 이렇게 된 게 다 나 때문인 것 같구나. 널 방패막이로 만든 내 잘못이다. 죄책감이 몰려온 소수빈은 손을 뻗어 자신의 뺨을 세게 때렸다. 이때, 옆에 서 있던 허윤서가 그 모습을 보고는 이내 그를 막고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의 팔을 껴안고는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 한편, 서유가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이승하의 손을 떼고 주서희의 앞으로 다가가 한참 동안 피가 마른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연이의 손을 잡고 모래사장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던 사람이었는데... 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치마,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이리 머릿속에 생생한데 어떻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는 건지...서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숨이 멎은 지가 오래되어서 더 이상 체온은 없는 것 같았다.여기로 오는 길에 하도 많이 울어서 눈물이 마른 것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꽉 막고 있어 숨 쉴 수조차 없었다. 옆에 있던 정가혜는 주서희의 손을 잡고 악착같이 비벼댔다. 자신의 체온으로 이 뻣뻣한 몸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리 비벼도 소용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영혼이 떠났고 남은 것은 단지 차가운 이 몸뚱이뿐이었다. “연이랑 약속했잖아요. 곁에서 연이가 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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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8화

서유은 주서희가 남긴 유서를 품에 안고 흐느끼며 울었다. 그토록 괴로우면서도 구구절절 친구들을 걱정하는 주서희의 마음에 그녀는 억장이 무너졌다. 주서희에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영원히 함께하면서 가족처럼 지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들을 지키지도 못했는데 주서희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기억 속에 주서희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부때부터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의 병을 치료해 주었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늘 앞장서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그 착한 사람이 왜 이리 허망하게 떠난 것인지...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주서희의 앞으로 다가가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서희를 품에 꼭 안았다. 이렇게 꼭 안으며 주서희가 떠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주서희를 꼭 껴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차가운 주서희의 몸에 온기를 전해주었다. 그러나 주서희는 이미 죽었고 다시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서유가 이러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끝까지 그녀를 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정가혜 역시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두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면서 예전에 주서희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은행 카드를 들고 주서희의 뒤를 쫓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 당시 주서희는 정가혜에게 많은 돈을 남겨주겠다고 서유와 약속했었다. 근데 정말로 자신의 모든 걸 남겨줄 줄은 몰랐다. 정말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다. 이리 착한 사람이 이렇게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다. 이제 고작 서른밖에 안 된 나이에 한창 꽃다운 나이에 이렇게 미련 없이 떠날 줄은 몰랐다.정가혜는 이런 상황을 두 번째로 겪고 있다. 첫 번째는 서유였고 두 번째가 주서희일 줄은 몰랐다.친한 친구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또다시 겪게 하다니.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지...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은 결코 서유보다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정가혜는 그저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그녀들을 제외하고 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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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9화

가냘프고 허약한 몸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떨림을 그치지 못했고 고통은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와 몸 구석구석이 지끈지끈 쑤시는 듯 아팠다. 힘이 빠진 그는 전혀 걸을 수 없었고 손바닥을 땅에 대고는 그녀를 향해 기어갔다.그녀를 만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 차가운 촉감이 순식간에 전해졌고 의사인 윤주원은 금방 깨달았다. 주서희가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가 이젠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것을.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지고 눈물이 빗방울처럼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서유에게 주서희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손을 뻗어 보물을 끌어안듯 온 힘을 다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생기가 없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고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뗐다. 눈을 내리깔자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고 수정같이 맑은 눈물방울이 그렇게 그 위에서 굳어져 버려 그녀의 피부와 하나가 되었다.더 이상 울지 말라고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아파서 눈물샘은 마치 고삐가 풀린 것처럼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 주서희의 변호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남자가 바로 윤주원임을 확인한 뒤 그에게 다가가 손으로 쓴 유서를 건네주었다.“이건 주서희 씨가 직접 쓴 겁니다. 꼭 윤주원 씨한테 전해달라고 당부했어요.”그가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 봉투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유서가 적힌 종잇장에 손이 닿자 숨이 막혔다. 그는 편지를 바로 열지 않고 그녀와 편지를 품에 꼭 껴안았다. 마지막인 것인 것처럼 손을 쉽게 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아쉬워도 시신을 옮겨야 했다. 현지 경찰은 이승하의 체면을 생각해 함부로 시신을 옮기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윤주원은 의사니까 냉정할 줄 알았다. 근데 서유와 정가혜보다 더 미친 듯이 주서희를 안고 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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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0화

주서희가 소각장으로 들어갈 때, 서유는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승하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치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은 사람이었던 주서희는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상자에 담겨졌다. 자유를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주서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다른 세상으로 그녀만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사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의 아름다운 환상일 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영혼이 살아 있다는 건 사람들의 기대일 뿐이다.소준섭은 죽을 때까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몰랐고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그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쉬울까? 당연히 아쉽겠지.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화장을 마친 후, 윤주원은 그녀의 유골을 바다에 직접 뿌렸다. 소준섭의 유골이 뿌려진 바로 그곳이었다. 두 사람의 유골이 바람에 실려 바다로 흘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윤주원은 두 사람을 위해 무덤을 세웠다. 묘비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두 사람의 영혼이 만난다면 이곳이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살면서 환상과 기대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지...그들은 밤새도록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주서희가 친구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그들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섬을 떠났고 윤주원만 우산을 쓴 채로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빗물이 옷을 다 적셔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아픔이 조금은 덜한 것 같았다.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그는 묘비 앞에서 쓰러졌고 이승하가 사람을 보내 그를 다시 배에 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귀국행 전용기 안에 있었다. 그는 무사히 귀국했고 주서희는 영원히 그 나라 그 섬에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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