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프고 허약한 몸은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떨림을 그치지 못했고 고통은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와 몸 구석구석이 지끈지끈 쑤시는 듯 아팠다. 힘이 빠진 그는 전혀 걸을 수 없었고 손바닥을 땅에 대고는 그녀를 향해 기어갔다.그녀를 만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졌다. 차가운 촉감이 순식간에 전해졌고 의사인 윤주원은 금방 깨달았다. 주서희가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가 이젠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것을. 안색이 조금씩 창백해지고 눈물이 빗방울처럼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다. 자신의 낭패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인 채 서유에게 주서희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다. 손을 뻗어 보물을 끌어안듯 온 힘을 다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생기가 없는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 대고는 조심스럽게 얼굴을 뗐다. 눈을 내리깔자 눈물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고 수정같이 맑은 눈물방울이 그렇게 그 위에서 굳어져 버려 그녀의 피부와 하나가 되었다.더 이상 울지 말라고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심장이 너무 아파서 눈물샘은 마치 고삐가 풀린 것처럼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 주서희의 변호사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남자가 바로 윤주원임을 확인한 뒤 그에게 다가가 손으로 쓴 유서를 건네주었다.“이건 주서희 씨가 직접 쓴 겁니다. 꼭 윤주원 씨한테 전해달라고 당부했어요.”그가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 봉투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유서가 적힌 종잇장에 손이 닿자 숨이 막혔다. 그는 편지를 바로 열지 않고 그녀와 편지를 품에 꼭 껴안았다. 마지막인 것인 것처럼 손을 쉽게 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아쉬워도 시신을 옮겨야 했다. 현지 경찰은 이승하의 체면을 생각해 함부로 시신을 옮기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윤주원은 의사니까 냉정할 줄 알았다. 근데 서유와 정가혜보다 더 미친 듯이 주서희를 안고 한사
주서희가 소각장으로 들어갈 때, 서유는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승하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치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은 사람이었던 주서희는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상자에 담겨졌다. 자유를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주서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다른 세상으로 그녀만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사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의 아름다운 환상일 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영혼이 살아 있다는 건 사람들의 기대일 뿐이다.소준섭은 죽을 때까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몰랐고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그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쉬울까? 당연히 아쉽겠지.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화장을 마친 후, 윤주원은 그녀의 유골을 바다에 직접 뿌렸다. 소준섭의 유골이 뿌려진 바로 그곳이었다. 두 사람의 유골이 바람에 실려 바다로 흘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윤주원은 두 사람을 위해 무덤을 세웠다. 묘비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두 사람의 영혼이 만난다면 이곳이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살면서 환상과 기대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지...그들은 밤새도록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주서희가 친구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그들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섬을 떠났고 윤주원만 우산을 쓴 채로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빗물이 옷을 다 적셔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아픔이 조금은 덜한 것 같았다.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그는 묘비 앞에서 쓰러졌고 이승하가 사람을 보내 그를 다시 배에 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귀국행 전용기 안에 있었다. 그는 무사히 귀국했고 주서희는 영원히 그 나라 그 섬에 남아 있
방금 서재에서 나온 소찬우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소준섭을 해결하고 나니 소수빈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왜 그의 인생은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을 걸까?소찬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소수빈을 쳐다보았다.“네가 서희한테 소준섭의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고 한 거야?”별다른 표정이 없이 소찬우가 입을 열었다.“형, 누나한테 그걸 알려준 건 별다른 뜻 없었어요. 큰형이 있는 곳을 제대로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것도 잘못이에요?”소수빈은 소파에 꽂힌 칼을 뽑아 들고는 칼날을 만졌다.“잘못이 없다? 네가 서희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서희는 죽지 않았을 거야.”그 말에 소찬우는 눈치껏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더니 천진난만한 얼굴로 소정의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둘째 형이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면 전 이제부터 후계자 수업 안 받아도 되는 거죠?”급한 마음에 소정의는 소찬우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을 불러 7살짜리 소찬우에게 경엉 수업을 하게 하였다.“저놈이 오고 싶다고 올 수 있을 것 같아?”한마디 내뱉던 소정의가 빚 독촉을 하러 온 소수빈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그 당시 내가 직접 널 데리러 갔을 때도 넌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 다시는 이 소씨 가문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지. 죽어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더니 왜 지금은 돌아오겠다고 하는 거야?”소수빈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소씨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후계자 자리만 갖고 싶을 뿐입니다.”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소씨 가문의 주식을 모두 팔아서 사회에 기부할 생각이다. 송문아는 자신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하였고 감옥에서 나온 뒤 잘 먹고 잘살 속셈이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감옥에서 나오면 집도 없게 만들어버릴 작정이다. 소정의가 만약 여자에 미치지 않았다면 송문아한테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통보를 마친 뒤, 소수빈은 사람들을 데리고 소씨 가문의 주식들을 끌어모았다. 어차피 소씨
소수빈이 미친 듯이 복수하는 가운데 서유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한 달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깊은 밤이면 주서희의 환한 얼굴, 엄숙한 얼굴, 웃는 얼굴, 우는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라 그녀의 머릿속에 생생히 새겨질 것 같았다. 사람이 죽어서 그 사람의 흔적과 머릿속에 있는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면 잊혀지는 순간이라고 했는데...서유는 주서희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주서희의 사진을 보며 꿈속에서 그녀를 떠올렸다. 결국은 우울함 때문에 서유는 침대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이승하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당신 몸이 망가지면 난 어떡하라고?”얼마 후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러 루드웰로 떠나야 했다. 근데 서유가 이러니 어찌 마음이 놓이겠는가?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말아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초췌한 얼굴을 어루만졌다.“당신이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서유는 갑자기 주서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녀도 그를 따라갈 것이다. 죽을 만큼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그녀는 손을 뻗어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미안해요. 당신 걱정하게 만들어서.”이승하는 고개를 젓고는 죽 그릇을 가져왔다.“주 집사님한테 부탁한 거야. 좀 먹어.”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한입 받아먹었다.“하 박사님이 링거 놔주신다고 했는데. 오후에 잠깐 오시라고 해요.”마침내 그녀가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보고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당신은 푹 쉬어. 이런 일은 나한테 맡기고.”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주서희의 죽음에서 벗어나야만 이승하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주서희의 죽음은 그들에게 곁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쳐준 것이었다. 슬픔에 빠져 허망하게 살아가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이승하가 귀국했다. 그의 베일에 싸인 애인으로서, 서유는 곧바로 8호 맨션으로 보내졌다.계약의 규정에 따라 그를 만나기 전엔 티 없이 깨끗하게 몸을 씻어야 했고 향수나 화장품 냄새를 절대 풍겨선 안 됐다.그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그녀는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2층 침실로 왔다.컴퓨터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승하는 그녀가 들어오는 기척에 그녀를 흘긋 바라봤다.“이리 와.”별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하면서도 차가운 말투가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서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평소에 무덤덤한 것 같으면서도 종잡기 어려운 성격을 가진 그가 혹시나 화가 나기라도 할까 봐 그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그의 앞에 제대로 서기도 전에 이승하가 그녀를 와락 안아버렸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키스하는 이승하.항상 그런 식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부드러움도 없었다. 그녀를 만나면 그저 함께 자고 싶을 뿐이었다.이번에 외국으로 출장 가게 되면서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자를 만지지 못했으니 오늘 밤은 쉽게 그녀를 놓아줄 리가 없어 보였다.그녀가 잠에 곯아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남자는 끝날 기미가 보였다.다시 잠에서 깨어난 서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간유리 너머로 흐릿하게 귀의 기다란 그림자가 보였다. 매번 검사를 마치고 나면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린 적이 없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 떠나지 않은 걸까?서유는 가까스로 피곤한 몸을 이끌어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착한 고양이 마냥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몇 분 뒤,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추고 남자가 샤워 타워를 두른 채 걸어 나왔다. 머리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그의 넓은 어깨로부터 쇄골 언저리를 타고 흘러내리다가, 가슴골을 따라 부드럽고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복근 위로 미끄러졌다. 치명적일 만큼 유혹적이다. 그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
방을 떠나는 이승하 뒤로 그의 개인 비서 소수빈이 쟁반 위에 올린 약을 들고 나타났다. “서유 씨, 부탁드립니다.”공손한 태도로 약을 건네주며 그가 입을 열었다.피임약이었다.서유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길 허락하지 않는 이승하였다. 그래서 매번 일이 끝나면 소수빈을 시켜 약을 건네주었고 그가 보는 앞에서 먹게 했었다.하얀 알약을 바라보며 서유의 마음이 다시 아려왔다.심장이 허약해져서인지 아니면 이승하의 무정함에 마음이 아파서인지 숨쉬기가 가빠졌다.“서유 씨…”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가 혹여나 약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 봐 소수빈이 다그치듯 그녀를 불렀다.그런 그를 흘긋 보던 서유는 조용히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켜버렸다.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짝 풀며 소수빈은 가방에서 집문서와 수표들을 꺼내 테이블에 배열했다.“서유 씨, 대표님께서 드리는 보상입니다. 부동산과 고급 자동차 외, 현금 백억 원을 준비하셨습니다.”실로 놀라운 액수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돈이었던 적은 없었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소수빈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이런 거 필요 없어요.”약간 놀란 듯,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듯이 소수빈이 고개를 갸웃했다.“혹시 성에 차시지 않은 겁니까?”그 말에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소수빈마저 내가 돈을 위해서 승하 옆에 있는 거로 생각하니 이승하는 오죽할까. 이렇게 많은 이별 비용을 내는 건 앞으로 더는 돈 때문에 들러붙지 말라는 뜻이겠지?’“이건 승하 씨가 줬던 건데 다시 전해주실래요? 그리고 카드에 있는 돈은 건드린 적이 없다고 알려주세요. 지금 주신 돈과 부동산 모두, 전 받지 않을 거예요.”자리에서 일어나 가방 안에 있던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며 서유가 말했다.‘5년 동안 대표님께서 주신 돈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건가?’믿을 수 없다는 듯, 소수빈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그가 믿든 말든 서유는 블랙 카드를 집문서와 수표들
서유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곳은 친구 정가혜가 사는 곳이었다.그녀는 가볍게 문을 두드리곤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렸다.둘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고 고아라는 슬픔을 공유한 자매 같은 사이었다.과거 이승하가 서유를 데려갈 때, 정가혜가 그녀에게 말했었다.“서유야, 앞으로 갈 데가 없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 잊지 마.”바로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서유는 이승하가 준 집을 돌려줄 용기가 생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고 서유를 본 정가혜가 활짝 웃으며 따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우와, 오랜만이네!”하지만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감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가혜야, 나 너한테 얹혀살려고 왔어.”그제야 가혜는 서유가 캐리어를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미소가 차츰 굳어졌다.“무슨 일이야?”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유가 멋쩍게 웃었다.“그 사람이랑 헤어졌어.”그 미소가 억지로 쥐어짠 미소임이 가혜는 너무 눈에 선했다.서유의 작은 얼굴은 찬찬히 뜯어보면 야위어서 눈이 움푹 꺼져 보였으며 안색이 창백했다.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유의 몸은 얄팍한 종잇장처럼 불안해 보였다.가혜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순간 서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도 두 손으로 가혜를 끌어안고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나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그 말이 그저 위로일 뿐이라는 걸 가혜가 모를 수 없었다. 서유에게 있어 이승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똑똑히 보아왔으니까.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승하에게 돌려줄 2억이라는 돈을 모으기 위해 서유는 몸이 부서지라 일했다.멍청하게도 그리하면 이승하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결국엔 무정하게 버림받았다.가혜의 기억이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5년 전 그날 밤으로 돌아갔다…만약 그때, 서유가 송사월을 위해 몸을 팔지만 않았어도 이승하를 만날 수 없었을 테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서유는 훨씬 행복했을 것이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엄청난 비밀을 들은 것처럼 원영이 두 팔로 최민지를 흔들며 흥분해서 물었다.“JS 그룹의 그분,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 하던데, 아니에요? 어떻게 여신이 있을 수가 있죠? 게다가 그 여신이 우리 회사에 곧 임명될 CEO란 말이에요?“최민지가 씩 웃으며 원영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저런, 정보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시겠어요? 재벌가에서 돌아가는 일에 무지하면 대표님 사무실에서 어떻게 일하시려고 그래요.”그러자 최민지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민지 언니가 한 수 가르쳐 주세요~”그제야 최민지가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이 대표님이랑 우리 이사장님 따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 사이였대요. 찌라시긴 하지만, 5년 전에 이 대표님께서 청혼하셨는데 아씨가 학업 때문에 거절했대요. 그 일로 둘 사이에 문제가 약간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5년 동안 연락을 끊었대요. 하지만 아씨가 귀국하자마자 이 대표님께서 직접 공항으로 마중 나갔어요. 그럼 이 대표님께서 아씨를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이걸로 설명 끝 아닌가요?”원영은 과장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고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세상에나! 완전 로맨스 드라마 같아요!”하지만 듣고 있던 서유는 가슴이 턱 막히며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이승하가 애인 계약을 앞당겨 끝냈던 이유는 그의 여신님께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서 왜 5년 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던 것일까?심지어 하룻밤 자고 나서는 애인 계약을 맺자고 강압적으로 나오기까지 했었다.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잘 믿기지 않았다. 최민지에게 어디에서 들은 소문이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대표님 전속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열렸다.이사장의 비서 허민과 몇 명의 고위층들이 먼저 내렸고 깍듯한 태도로 허리를 숙여 엘리베이터 안을 향해 말했다.“이 대표님, 연 대표님, 대표님 사무 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말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