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희가 소각장으로 들어갈 때, 서유는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승하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치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내렸다.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좋은 사람이었던 주서희는 결국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상자에 담겨졌다. 자유를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시 자유를 얻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주서희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다른 세상으로 그녀만의 행복을 찾아 나섰다. 사실 이것은 단지 사람들의 아름다운 환상일 뿐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영혼이 살아 있다는 건 사람들의 기대일 뿐이다.소준섭은 죽을 때까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몰랐고 그녀는 죽기 전에 자신이 그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쉬울까? 당연히 아쉽겠지.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 화장을 마친 후, 윤주원은 그녀의 유골을 바다에 직접 뿌렸다. 소준섭의 유골이 뿌려진 바로 그곳이었다. 두 사람의 유골이 바람에 실려 바다로 흘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윤주원은 두 사람을 위해 무덤을 세웠다. 묘비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두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두 사람의 영혼이 만난다면 이곳이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살면서 환상과 기대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지...그들은 밤새도록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광풍이 불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주서희가 친구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라며 그들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섬을 떠났고 윤주원만 우산을 쓴 채로 묘비 앞에 서 있었다. 빗물이 옷을 다 적셔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아픔이 조금은 덜한 것 같았다. 결국 몸에 무리가 온 그는 묘비 앞에서 쓰러졌고 이승하가 사람을 보내 그를 다시 배에 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귀국행 전용기 안에 있었다. 그는 무사히 귀국했고 주서희는 영원히 그 나라 그 섬에 남아 있
방금 서재에서 나온 소찬우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다.소준섭을 해결하고 나니 소수빈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왜 그의 인생은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을 걸까?소찬우는 차가운 시선으로 소수빈을 쳐다보았다.“네가 서희한테 소준섭의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고 한 거야?”별다른 표정이 없이 소찬우가 입을 열었다.“형, 누나한테 그걸 알려준 건 별다른 뜻 없었어요. 큰형이 있는 곳을 제대로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것도 잘못이에요?”소수빈은 소파에 꽂힌 칼을 뽑아 들고는 칼날을 만졌다.“잘못이 없다? 네가 서희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서희는 죽지 않았을 거야.”그 말에 소찬우는 눈치껏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더니 천진난만한 얼굴로 소정의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버지, 둘째 형이 돌아와서 후계자가 되면 전 이제부터 후계자 수업 안 받아도 되는 거죠?”급한 마음에 소정의는 소찬우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을 불러 7살짜리 소찬우에게 경엉 수업을 하게 하였다.“저놈이 오고 싶다고 올 수 있을 것 같아?”한마디 내뱉던 소정의가 빚 독촉을 하러 온 소수빈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그 당시 내가 직접 널 데리러 갔을 때도 넌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 다시는 이 소씨 가문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지. 죽어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더니 왜 지금은 돌아오겠다고 하는 거야?”소수빈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소씨 가문으로 돌아올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후계자 자리만 갖고 싶을 뿐입니다.”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소씨 가문의 주식을 모두 팔아서 사회에 기부할 생각이다. 송문아는 자신의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하였고 감옥에서 나온 뒤 잘 먹고 잘살 속셈이었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감옥에서 나오면 집도 없게 만들어버릴 작정이다. 소정의가 만약 여자에 미치지 않았다면 송문아한테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한다. 통보를 마친 뒤, 소수빈은 사람들을 데리고 소씨 가문의 주식들을 끌어모았다. 어차피 소씨
소수빈이 미친 듯이 복수하는 가운데 서유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한 달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깊은 밤이면 주서희의 환한 얼굴, 엄숙한 얼굴, 웃는 얼굴, 우는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라 그녀의 머릿속에 생생히 새겨질 것 같았다. 사람이 죽어서 그 사람의 흔적과 머릿속에 있는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면 잊혀지는 순간이라고 했는데...서유는 주서희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주서희의 사진을 보며 꿈속에서 그녀를 떠올렸다. 결국은 우울함 때문에 서유는 침대에서 쓰러지게 되었다. 이승하는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당신 몸이 망가지면 난 어떡하라고?”얼마 후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러 루드웰로 떠나야 했다. 근데 서유가 이러니 어찌 마음이 놓이겠는가?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고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말아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초췌한 얼굴을 어루만졌다.“당신이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서유는 갑자기 주서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녀도 그를 따라갈 것이다. 죽을 만큼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그녀는 손을 뻗어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미안해요. 당신 걱정하게 만들어서.”이승하는 고개를 젓고는 죽 그릇을 가져왔다.“주 집사님한테 부탁한 거야. 좀 먹어.”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한입 받아먹었다.“하 박사님이 링거 놔주신다고 했는데. 오후에 잠깐 오시라고 해요.”마침내 그녀가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보고 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당신은 푹 쉬어. 이런 일은 나한테 맡기고.”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주서희의 죽음에서 벗어나야만 이승하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주서희의 죽음은 그들에게 곁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쳐준 것이었다. 슬픔에 빠져 허망하게 살아가라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턱을 살짝 쳐들고 가까이 다가갔다.“어떻게요?”그녀의 몸에서 나는 상쾌하고 편안한 바디 향과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원래는 꿍꿍이가 있었는데 그녀가 정말 가까이 다가오자 놀라서 약간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얼굴을 피했다. 그의 품에 안긴 정가혜는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올라왔고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아 그의 팔을 잡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그녀가 가까이 오자 그는 피하지 않고 뻣뻣한 등을 곧게 펴고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가슴에 닿자 심장이 철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손을 뻗어 그의 하얀 셔츠를 잡고 살짝 힘을 주어 눈앞의 사람을 가까이 끌어당겼다.“어떻게요? 뭘 원하는 거예요?”그녀의 붉은 입술은 그의 얇은 입술에 거의 다 닿았고 조금만 더 가까우면 입술이 부딪혔을 것이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빨간 입술을 쳐다보면서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말하면 그대로 해줄 거예요?”웬일인지 그녀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술에 취했을 뿐이고 전혀 경계심이 없이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었다. 반쯤 취한 그녀를 쳐다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담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뽀뽀해 줘요.”가까이 다가온 그의 하얀 얼굴을 보고 그녀는 셔츠를 잡았던 손을 떼고는 그의 얼굴을 움켜쥐고 입을 맞추었다. 가벼운 입맞춤이었지만 그의 심장에 각인되었고 찌릿찌릿한 느낌이 갑자기 온몸을 엄습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그녀의 허리춤에 감쌌다. 살짝 힘을 주니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겼다. 자세가 불편했는지 그녀는 발버둥을 쳤고 그런 그녀를 한참 동안 노려보던 그가 갑자기 그녀를 덥석 안아 올렸다. 술을 많이 마신 그녀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빙빙 돌았다. 괴로워 죽을 것만 같아서 그의 목에 걸쳤던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고
그녀는 얌전해졌지만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는 손은 끝내 놓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변태 놈을 방비하는 비밀 무기인 것처럼 말이다.손은 경계하고 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고 안심이 되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그녀는 순순히 손을 떼고 그의 목을 감싼 채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덩치가 큰 이연석의 품에 안겨 있으니 왜소한 편인 그녀는 마치 매달려 있는 인형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그녀를 조수석에 태운 뒤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운전하면서 가끔 그녀를 쳐다보았고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덮은 줄도 모르고 달콤하게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그녀 얼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얼굴을 어루만졌다. 가볍게 어루만진 것뿐인데 그녀가 손을 뻗어 마치 쿠션을 잡듯 그의 손을 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손가락이 그녀의 봉긋한 가슴에 닿자 그는 무의식중에 손을 움츠렸다. 간신히 다 잡은 마음이 또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신호등과 그녀를 번갈아 보면서 차라리 그녀가 깨어나서 머리카락이라도 뽑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한 손으로 차를 몰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손을 빼려고 하는데 곤히 잠든 여자는 한사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이거 놔요. 안 놓으면 나 무슨 짓 할지 몰라요.”그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그녀는 힘을 뺐다. 그 틈을 타 손을 뺀 그가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차에서 내린 그가 조수석으로 가서 다시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았다.그녀를 안고 별장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노현정과 마주쳤다.지난 한 달 동안 그는 매일과 같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매번 노현정에게 그녀를 맡기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오늘 밤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럴 줄 알았다.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괴로워서 미친 듯이 토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토사물을 참으며 노현정을 차갑게 바라보았다.“그만 나가 봐요.”노현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걱정이 되었지만 눈치껏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문이 닫힌 후 이연석은 입고 있던 옷과 바지를 벗었다. 샤워를 하려는데 그녀의 머리가 쓰레기통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다.뜨거운 살결이 그녀의 옷에 닿았고 불편함을 느낀 그녀는 발버둥 치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그가 그녀를 덥석 안아 욕조에 넣었다. 따뜻한 물이 사방으로 퍼졌고 편안함을 느낀 그녀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그는 클렌징 용품들을 가져와 그녀의 입술과 얼굴을 깨끗이 씻어준 후, 샤워하러 갈 생각이었다. 근데 그녀가 갑자기 그의 허리를 껴안고는 그의 복근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허리를 반쯤 굽힌 남자는 젖어 있는 여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욕조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으며 그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내가 누군지 알아요?”깨끗하게 토하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는지 그녀가 고개를 살짝 들고는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희미한 시선 아래 기억 속에 새겨진 그 얼굴이 떠오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연석 씨...”당신이 왜 여기에 있냐고 묻고 싶은 찰나 남자가 그녀의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그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숙이며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기억해요. 오늘 밤은 당신이 먼저 유혹했다는 걸.”뭐? 의문이 채 풀기도 전에 붉은 입술이 부딪혀왔고 그가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이 피부 위를 스쳐 지나갔고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뜨거운 손길이 느껴져 온몸이 활활 타올랐다. 눈앞의 잘생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건지 그녀는 그를 밀쳐내지 않고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정신이 들어 그를 밀어내려고
머릿속은 아직도 흐리멍덩하지만 몸의 감각은 자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귓가에서 전해진 그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열기는 식었지만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몸이 가볍게 떨렸고 얼굴빛의 홍조는 사그라지지 않았으며 눈빛은 여전히 흐리멍덩하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는 그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다시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는 그녀를 자신의 몸 위에 엎드리게 하였다. “제대로 못 느낀 거 같은데. 다시 한번 해요.”섹스할 때 그녀가 위에 있는 자세가 좋았다. 그러나 지금 술에 취한 그녀한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키스를 퍼부었고 잠시 후 욕조에 누워있던 그녀를 끌어올려 수건으로 마구 감싼 뒤 그녀를 끌어안고 욕실을 나섰다. 푹신한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혈기 왕성한 그가 그녀의 볼을 잡고는 똑바로 눈을 떠보라고 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그녀는 눈을 들어 눈앞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알아봤다는 말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도 없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한 손을 그녀의 머리 위로 올리고는 익숙하게 그녀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기억해요. 나 이연석이에요.”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약탈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압박해 왔고 물러설 수 없었던 그녀는 온전히 그를 받아들였다. 이런 쪽으로는 참 능숙한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또다시 온몸이 뜨거워졌고 그의 아래에 깔린 몸은 떨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의 목덜미를 감싼 채 상처 입은 토끼처럼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듯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가 세게 몰아붙이면 자신을 구렁텅이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조금만 망설이면 죽을 만큼 괴로운 것 같았다. 미친 듯이 그를 원했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그는 연을 날리듯 그녀를 묶은 줄을 잡고는 힘껏 조였다가 부드럽게 풀어주었고 그녀가 먼
새벽에 되어서야 잠이 든 두 사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 질 무렵이었다.술기운이 가신 그녀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참으며 노현정을 부르려다가 실수로 입술이 남자의 딱딱한 가슴에 닿았다. 따뜻한 감촉에 놀라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희미한 시선 속에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해 보던 그녀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때,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들어와 그의 매끄럽고 하얀 피부에 내려앉았다. 옅은 붉은빛이 그를 비추자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은 천사 같아 보였고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얼굴을 따라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선명한 복근과 우뚝 솟은 남자의 그것 그리고 늘씬한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고 있었고 남자의 큰 손은 그녀의 허리에 얹혀 있었고 남자의 그것은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끼어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린 뒤 다른 한 손으로 허리에 놓여있는 그의 손을 떼고는 날렵하게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 순간 옆에 놓인 타월을 집어 들어 재빨리 몸을 감싼 뒤 다시 고개를 돌려 단잠에 빠져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어젯밤은 꿈이 아니었다. 정말 그와 잠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게 몇 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아랫배와 다리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미친 듯이 서로를 탐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욕실로 뛰어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는 머리를 물속에 파묻었다.찬물의 온도를 빌려 자신을 진정시킨 후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렸다.그러게 술은 왜 마셨어? 이제 어떡할 거야? 결국은 사고를 치고 말았잖아.물방울이 잔뜩 묻은 얼굴을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온몸에 울긋불긋한 흔적들로 가득했고 목덜미 아래로는 온전한 곳이 없었다. 어젯밤 두 사람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 비록 몸은 온통 붉게 묻들었지만 얼굴은 광채가 났다. 역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