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1051 - 챕터 1060

1198 챕터

제1051화

사진 속, 한 외국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아이는 한 살쯤 되어 보였다. 사진들을 보면서 누가 잘못 보낸 줄 알았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아래의 사진 속에 심형진의 모습이 나타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내려는 찰나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심형진의 전 여자 친구 스칼렛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하나 있고요.]심형진한테 전 여자 친구도 있고 아이도 있다고?충격에 빠져 있을 때 상대방이 녹음 파일을 하나 보내왔다. 그녀는 녹음 파일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일을 클릭했다.이내 심형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가혜가 깨끗하지 않다면 어머니의 눈을 속이지도 못했겠죠. 뭘 의심하세요?”이내 정선월의 경멸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얼굴이나 몸매 좀 봐봐. 걸음걸이까지 여성스럽고 섹시해. 저런 매력적인 여자가 깨끗하다고 한다면 난 죽어도 안 믿어.”심형진의 아버지인 심범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남자를 홀리게 생겼더구나. 웬만한 남자도 넘어갈 것 같은데 하물며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남자들이라면 더 그렇겠지. 권력이 있고 힘이 있는 남자라면 얼마든지 굴복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하다.”대화 중에 색소폰 배경 음악이 들리는 걸 보면 그날 심형진을 부모님을 만나러 간 식당 안인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화장실을 간 뒤 가족들끼리 그녀에 대해 평가를 한 것 같다. 사실 심형진의 부모가 뭐라 하든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심형진의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내 여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요.”“어머니, 가혜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실 때 제가 가만있었던 건 어머니를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가혜 앞에서 위엄을 떨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죠.”점점 어두워지는 핸드폰 화면을 응시하며 멍때리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꼭대기 층의 야외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부드러운 붉은 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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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2화

손에 든 잔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들어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 전에 선배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 있어요.”“뭐?”그도 술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아까 그 녹음 파일을 그에게 들려주었다.그걸 듣자마자 그의 온화한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네가 녹음한 거야?”화장실에 가지 전에 녹음 기능을 켠 건가?정말 그런 거라면 정가혜 너도 보통이 아니구나...그의 첫 반응이 자신을 의심할 줄은 몰랐다. 그가 잘못을 깨달을 줄 알았은데...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는 미소였다.“어떤 좋은 분이 날 도와주셨는지 모르겠어요. 감사하게도 선배와 선배 부모님이 나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네요.”그 말에 마음이 조급해진 그가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녀가 그의 손길을 피했다. “날 가지지 못하면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 무슨 뜻이에요?”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를 보고 그는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대답하면 그녀가 자신에게 이별 통보를 하게 될 거라는 걸 눈치챘다.그는 더 이상 이 녹음이 가짜라고 변명하지 않았고 테이블 위의 스테이크를 자르는 가위를 들어 디퓨저 안의 심지를 잘랐다.이내 테이블 위의 빛은 더욱 밝아졌고 향긋한 아로마 향기도 더욱 짙어졌다.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잠시 바라보고는 그가 시선을 거두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널 좋아하니까 널 갖고 싶은 건 본능인 거야. 이연석도 같은 생각이겠지.”이 상황에서 이연석의 얘기를 꺼내는 건 그녀의 의심을 이연석에게 돌리기 위해서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의 이런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나와 이연석 씨는 이미 깨끗이 끝났어요. 왜 아직도 그 사람 얘기 하는 거예요?”“정말 끝났다면 왜 네가 그런 녹음 파일을 받은 걸까?”그의 질문에 그녀는 흠칫했다.“지금 이연석 씨를 의심하는 거예요?”그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술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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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3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계속해서 물었다.“선배 어머니가 날 괴롭히도록 내버려둔 건 내가 힘없는 고아라서 그런 거예요?”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어머니이고 아무리 좋아하는 여자라도 어머니보다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녹음을 들었으면 너도 알 텐데. 내가 어머니한테 한소리 한 거.”“그래요.”그녀는 피식 웃었다.“선배는 늘 이런 식이었어요. 저번에 선배의 친구들이 내 험담을 할 때도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고 변명했었죠.”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변명하려는 찰나 그녀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처음 선배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냥 두고만 봤다는 건 선배도 선배 어머니와 똑같이 날 그리 생각한다는 뜻이겠죠.”정선월처럼 그녀는 깨끗하지도 않고 배경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결혼까지 한 여자이니 그한테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고 생각한 것이다.“선배랑 사귀기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똑똑히 말했었어요. 선배는 개의치 않는다고 했었고요. 근데 왜 뒤에서는 그래요?”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찬 그녀의 얼굴을 보며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난 상관없어. 다만 내 어머니니까...”잘못했다는 듯이 그가 고개를 숙였다.“이 일은 내 잘못이야. 미안해.”결국 그는 사과했지만 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사실 선배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상관없어요. 선배한테 물어본 건 그냥 똑똑히 말해주고 싶어서예요.”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난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선배가 나타나서 고등학교 때부터 날 짝사랑했다고 했을 때 많이 감동했었어요. 이 세상 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구나 라는 그 생각에요.”“늦게 찾아온 이 사랑을 난 소중히 여겼어요. 그래서... 선배가 꼼수를 쓰고 소심한 모습을 보여도 그냥 넘어갔었죠.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선배한테 이런저런 결함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선배가 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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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4화

그녀는 손을 빼내고 담담하게 그를 쳐다보았다.“내가 신경 쓰이는 건 선배가 여자를 만났다는 게 아니라 날 속였다는 사실이에요.”그녀의 전남편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었고 위장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이번에 만난 이 사람은 강은우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이 그녀에게 이런 사진과 녹음을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직도 심형진이 깨끗하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이젠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된 듯하다. 남자 보는 눈이 없고 머리도 안 좋아서 자꾸만 남자의 겉모습에 쉽게 속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다행인 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고 나면 과감히 정리한다는 것이다. “선배, 전 여자 친구가 선배의 아이까지 낳았어요. 무슨 일이었어도 그 여자를 책임져야죠. 그리고 선배의 어머니도 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고요. 어린 시절 날 갖지 못한 거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있는 건 날 정말 좋아해서가 아니에요. 우리 여기까지만 해요.”그녀는 그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모진 말도 하지 않았고 강은우와 소송했던 그때처럼 발악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말을 마친 후 그를 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챙겨 뒤돌아섰다.엘리베이터에 다가가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는데 갑자기 그가 달려와서 뒤에서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가혜야, 이러지 마. 스칼렛한테는 원하는 만큼 양육비를 주고 완전히 정리할게. 우리 부모님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에 끼어드는 일도 없게 할게. 결혼하면 국내에서 살자. 나랑 같이 해외로 가자는 말도 하지 않을게. 네가 걱정하는 문제들 내가 다 해결할게. 그러니까 제발 나 떠나지 마.”심형진은 역시 대단했다. 단순한 여자였다면 그가 내놓은 해결책에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게 된 그녀는 그가 잔인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자신을 위해 묵묵히 아이까지 낳은 여자와 깨끗하게 정리하겠다니. 아이한테 양육비만 주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니... 그의 모습은 그녀를 버린 그녀의 부모님과 다를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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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5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곳에 있는 그를 쳐다보았고 눈 밑의 흐려진 시선 때문에 그의 안색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선배...”술도 마시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 왜 심형진이 잘 보이지 않는 걸까?시선이 갈수록 흐려질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몸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여름이니 밖의 날씨가 더워서 그런 줄 알았다.아래쪽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낀 그녀는 이게 단순히 날씨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그녀는 여전히 심형진을 의심하기 싫었지만 이를 악물고 그에게 따져 물었다.“선배,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얼른 품에 꼭 안았다.“겁먹지 마. 약을 아주 조금 탄 것뿐이니까.”약이라니...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그러니까 방금 그 디퓨저의 향에...“왜 그런 거예요?”그의 과거와 그가 했던 행동들이 충격적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다. 두려움에 가득 찬 그녀를 보고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오늘 우리 100일이잖아. 그래서 내가 특별히 준비했어. 이젠 자연스럽게 잘 때도 됐잖아 .”그러니까 오늘 밤 그의 목적은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것도 아니었고 100일 기념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실 나도 쓸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네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마음을 독하게 먹은 거야.”말을 마친 그가 그녀를 벽에 밀치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미안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근데 나 정말 너 안고 싶어.”나쁜 짓을 하면서까지도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안하다는 말을 신사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에 대해 완전히 실망했고 깨끗이 마음이 정리되었고 연민조차 없어졌다. “당장 나 놔주면 고소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선배가 강제로 뭘 한다면 그땐 반드시 소송 걸 거예요.”그가 입꼬리를 잡아당기며 은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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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6화

그의 손이 얼굴에 닿자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놔줘요. 선배가 무슨 조건을 제시해도 다 들어줄게요.”말을 하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잡고 미친 듯이 지문을 눌렀다.비상경보를 켜거나 화면을 열어 숫자 1을 입력하려고 했다.바로 서유한테 전화가 가기 때문에 1만 누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심형진이 그녀의 생각을 눈치채고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핸드폰을 빼앗았다. “이연석한테 전화라도 하게?”그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정가혜, 그 사람은 이미 너 포기했어. 널 구하러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헛된 꿈 버려.”그가 그녀의 핸드폰을 집어 옆에 있는 아이스박스에 던져버렸다.그 아이스박스에는 술도 있고 얼음도 있고 물도 있었다. 핸드폰은 그 안으로 떨어지자마자 이내 화면이 어두워졌다.어두워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잃었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연석 씨를 찾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어요. 이 모든 건 선배의 열등감 때문에 생긴 착각이에요.”스스로 이연석을 이길 수 없다는 열등감에 계속해서 이연석을 언급한 것이다.“마음대로 생각해. 결국 그 인간의 여자가 지금 내 아래 누워있으니까.”말을 마친 그가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는 그녀를 덥석 잡았다.“착하지, 말 들어. 움직이지 마...”그는 몸이 나른한 그녀를 밑에 깔고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옷을 풀어 주었다.온몬이 뜨거워지고 정신이 흐릿해진 그녀는 이성을 끝까지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힘으로는 그를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있다고 해도 그녀한테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녀는 흐릿한 눈동자를 굴리며 방안의 환경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정원의 중심에 있는 유리방이었고 창문도 없고 전체가 밀폐되어 있는 곳이었으며 밖에서는 안을 볼 수가 없었다.이곳에서 탈출하려면 정문으로 나가야 하지만 그가 있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는 아이스박스를 한 번 쳐다본 후 시선을 다시 심형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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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7화

“너...”그가 한마디 내뱉자마자 그녀가 손에 닿은 술병을 들어 그의 이마를 내리쳤다.유리가 깨지는 순간 그의 얼굴에 술이 쏟아졌고 술병을 든 그녀의 손등에도 상처가 났다. 붉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이마에 방울방울 떨어졌고 그의 피와 섞여서 침대로 굴러떨어졌다. 새빨간 피가 새하얀 침대 시트를 붉게 물들였고 그의 눈도 점차 빨갛게 변해버렸다.정가혜가 가녀린 여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사나운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정가혜,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말했잖아요.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거라고. 선배가 본 건 내 모습의 일부일 뿐이에요.”말을 마친 그녀는 침대 시트의 술병 조각을 주워 그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그런 그녀의 행동에 놀란 그는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머리가 빙빙 돌고 시선이 흐려졌다.술병에 머리를 맞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이를 악문 채 자신의 위에 앉아 있는 그녀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날 죽이려는 거야?”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우리 사이가 끝났다는 걸 말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만약 선배가 또다시 나한테 못된 짓을 한다면 내 손에 있는 유리 조각이 선배의 목을 찌르게 될 거예요.”그녀가 그의 목숨을 걸고 협박할 줄은 몰랐다. 이때, 그녀가 몸을 숙이더니 새빨간 눈으로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난 고아예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어서 죽으면 그만이에요. 두려울 게 없다는 뜻이죠.”그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독설을 내뱉고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스박스에 있던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쥐고 간신히 몸을 겨누며 유리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심형진이 머리를 감싼 채 뒤쫓아왔다. “정가혜, 나랑 있는 100일 동안 넌 나한테 한 번도 설렜던 적 없어?”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심형진은 벽을 짚고 몇 발짝 걸어오다가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자세를 바로잡고 그녀를 쫓아오려는 순간 엘리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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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8화

한편, 배하린이 허리를 감싸자 이연석의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변하였다.그가 있는 힘껏 그녀를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분명히 얘기했지. 다시는 나 찾아 오지 말라고.”어렵게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아당기며 어리광을 부렸다.“너무 그러지 마. 어찌 됐든 내가 너 첫사랑이고 네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그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날 이렇게 버리는 거야?”그가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배하린, 네가 날 구해준 건 고마워. 하지만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이미 충분히 했어. 너한테 더 이상 빚진 거 없다고. 그리고 첫사랑이라는 거...”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혐오가 가득 찬 눈빛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그 당시 네가 우리 둘째 형한테 꼬리 친 거 나 다 알고 있어.”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래전의 일을 이연석이 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그녀는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그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고 그랜드 호텔의 꼭대기 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에 누워 의식을 잃은 심형진의 모습만 보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그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단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떻게 됐어? 심형진이 가혜 씨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단이수가 먼저 물었다.그 녹음 파일과 사진들은 모두 단이수가 보낸 것이었다. 정가혜의 성격으로는 분명 그것들을 보고 심형진과 헤어질 것이라고 짐작했다.다만 심형진의 말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정가혜한테 나쁜 일이라도 벌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 생각에 그는 바로 자신이 한 일을 이연석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얼른 위치를 파악해서 정가혜를 구하러 가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로 다시 들어온 이연석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단이수를 나무랐다.“내가 몇 번을 말해. 전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한 여자라 이런 사진들 보면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 했잖아. 끝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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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9화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어렴풋이 가시덤불이 움푹 패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가시덤불에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떨리는 손으로 푸른 풀이 무성한 가시덤불을 헤집었다.남루한 옷차림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있는 그녀를 발견한 순간 그는 멍해졌다.지금껏 두려운 게 없었던 그는 그 순간, 온몸의 피까지 차가워질 정도로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깊은 골짜기에 떨어진 것처럼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가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저 떨리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만졌다.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고 움직이려 하였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핏물과 함께 섞여 천천히 흘러내렸다. “제발, 다치지 말아요. 부탁이에요.”자존심이 강한 그녀가 이렇게 애원하는 것을 보고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가혜 씨, 나예요.”그녀는 메마른 눈동자를 굴리며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피가 눈 앞을 가려 희미하고 잘 보이지 않았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당신이 누구든 나 건드리지 말아요. 부탁이에요.”애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나예요. 이연석.”당신인 거 알아요. 그래서 이런 내 모습을 더 보여주기 싫은 거예요.그녀는 낭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의 몸에는 피를 제외하고도 가시덤불에 베인 상처가 곳곳에 있었다. 상처를 살펴보던 그는 가슴이 아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그녀를 안아 올렸고 목덜미에 흐르는 핏물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가혜 씨, 겁먹지 말아요. 우리 이제 집에 가요.”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어안는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다정하고 애틋한 모습이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그한테 보여주기 싫었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그녀는 몸부림칠 힘이 없었다.그녀는 꽉 쥐고 있던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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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0화

자신을 믿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한편, 이연석은 자신이 왜 대답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심형진을 믿는 그녀한테 화가 났고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 그녀에게 화가 났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가진 채 그녀를 안고 응급실로 뛰쳐 갔다.“얼른 이 여자 좀 구해줘요.”의사들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급히 간호사들을 배치하여 그녀를 진료실로 보냈다.진료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이연석은 피곤한 얼굴을 한 채 벽에 기대었다. 손에 가득 찬 피를 보면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어디를 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온전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지금까지 여자 때문에 이렇게 아파해본 적이 없다. 그녀가 처음이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싫었지만 그녀를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한편,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주서희가 그에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지나쳐 진료실로 바로 들어갔고 의사가 해독제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양이 많은 건가요?”여의사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대답했다.“아니요. 다만 시간이 좀 오래돼서 독소를 제거하기가 쉽지 않네요. 외상이 많은 걸 보니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인 것 같아요.”정가혜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얼굴에 묻은 핏물이 간호사에 의해 깨끗하게 처리되자 뺨을 여러 대 맞은 것 같은 부은 얼굴이 드러냈다.얼굴 양쪽이 다 부어있었고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으며 가느다란 목덜미에도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그녀의 목을 심하게 조른 것 같았다. 그 상처들을 보고 주서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정가혜의 몸을 감싼 외투를 벗겼다. 안의 옷은 찢길 대로 찢어져 맨살이 훤히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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