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491 - Chapt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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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1화

“속상해?”남자의 눈에는 아픔이 묻어났다.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녀의 눈꼬리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그곳에 맺힌 물기를 살짝 문질렀다.강하리는 눈앞에 서 있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말했다.“B시로 출장 왔어.”강하리는 눈가에 번지는 서글픔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억울한 건 괜찮다고 쳐요. 근데 내키지는 않아요. 내가 분명 더 잘했는데.”“맞아, 네가 백만 배는 더 잘했지.” 구승훈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까, 어때?”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며 한참 후 웃음을 터뜨렸다.“외교부 일에는 참견하지 않는 게 좋아요. 됐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구승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내가 참견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가능하지.”그렇게 말한 뒤 그는 강하리에게 옆을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그제야 강하리는 자신의 옆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교부의 중요한 임원들이었다.진태형을 비롯해 백아영과 심준호까지 왔다.심준호 옆에는 징계 위원회 직원들도 있었다.강하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다가 구승훈을 돌아보았다.구승훈이 웃었다.“모두 옆 회의실에서 너와 문연진의 대결을 지켜봤어. 누가 이기고 졌는지도 똑똑히 봤지. 진 장관님이 사적으로 해결했는지, 문씨 가문이 부당하게 힘을 썼는지 다 알고 있어. 신고한 사람도 찾았고 이미 징계 위원회로 가서 모함한 거라고 자백했어. 너와 진 장관님은 이제 결백한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밤에 제대로 정의 구현할 수 있으니까.”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코끝이 시큰해졌다.원래는 별로 억울하지도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려 진태형을 바라보았다.“삼촌, 남은 일엔 더 간섭하지 않을게요.”진태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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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그렇게 말한 후 그는 방금 결과를 발표한 직원을 차갑고 엄숙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훌륭한 통역사는 통역사다운 모습을 보여라, 누가 보면 네가 협상하러 올라간 줄 알겠다. 자, 그럼 그쪽이 올라와서 어떻게 통역해야 하는지 말해 보시죠?”방금 결과를 발표하던 심사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리고 진태형은 말을 이어갔다.“여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잊어버리고 특혜를 받았는지, 징계 위원회 분들이 전부 똑똑히 밝혀낼 겁니다, 오늘 이 대결의 결과에 대해서는...”진태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연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진 장관님, 제 실력이 강하리 씨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 오늘 밤 이 기회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문연진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당황했다.아무도 그녀가 자발적으로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정의 구현을 하려던 상황이 문연진의 말 때문에 마치 진태형이 외교부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그들에게 기회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졌고 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네 거야, 네가 양보하게?”당황한 문연진의 얼굴이 서서히 하얗게 질렸다.구승훈의 어투에는 여전히 조롱이 가득했다.“애초에 이 기회는 네가 훔친 거니까 이제 돌려준다고 하는 게 맞지, 문연진 씨, 이 정도 도리도 모르나?”문연진의 얼굴이 한층 더 하얗게 질려 있다가 한참 후 싱긋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 오해에요. 이 기회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거고 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양보하는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됐어요?”심준호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공정한 경쟁이라니요, 조금 전 대결은 우리 모두가 지켜봤어요. 문연진 씨는 이런 식으로 공정한 경쟁을 합니까? 공정한 경쟁이 무슨 뜻인지 제가 설명해 드릴까요?”문연진은 다소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심준호에게 밉보일 수 없었기에 도움을 청하듯 할아버지를 돌아보았다.문원진이 손녀를 위해 나서려는데 진태형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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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강하리가 뒤돌아보니 주해찬이 문 앞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못본 사이 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의 모습은 더 활기차 보였다.주해찬은 진태형과 함께 와서 강하리에게 인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구승훈이 강하리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이제 막 떠나려는 그녀를 보며 도저히 참지 못한 그가 불러세운 것이었다.강하리의 눈에 미소가 담겼다.“선배, 오랜만이네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렇게 말한 뒤 강하리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던 그의 가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동안 연성에 가본 적이 없고 특별히 연성에 대해 들은 것도 없었지만 구승훈과 강하리가 화해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정주현이 매일 같이 그에게 푸념을 널어놓았으니까.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그럭저럭요, 선배는요?”주해찬은 눈가의 씁쓸함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냥 그래.”강하리가 다른 말을 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았다.“주해찬 씨 요즘 맞선 본다면서요? 어때요, 잘 되어가나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제가 듣기로 구승훈 씨도 맞선을 본다던데요.”구승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주해찬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고 그녀는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좀 받을게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가 옆으로 걸어가자 구승훈의 시선은 그녀를 쫓았고 주해찬은 그런 그의 표정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구승훈 씨, 그렇게 매달리면서 손 놓지 않겠다면 앞으로 잘해주세요. 잘해주지 않으면 내가 또 데려갑니다.”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지며 주해찬을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주해찬 씨, 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는데?”주해찬의 눈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난 자격 없죠. 하지만 구승훈 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구승훈 씨, 정말 하리를 사랑해요, 아니면 그저 당신 소유욕 때문인가요?”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주해찬 씨,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주해찬은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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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주해찬 씨, 시간도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야, 애초에 너를 힘들게 한 건 우리 가족이었으니까 이별을 선택한 너를 탓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너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선배 말이 사실이에요?”구승훈은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하리야...” 강하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건 확실히 구승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구승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화났어?”“아니요.” 대답을 마친 강하리가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가자 구승훈은 서둘러 따라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웠다.차에 탄 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 화 풀어, 응?”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론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기도 하고, 오늘처럼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녀를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가끔은 그가 정말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손에 얻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차 안엔 끔찍한 적막이 감돌았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그 일 말고 또 나한테 수작 부린 거 있어요?”구승훈의 목울대가 일렁거렸다.많았다.“일부러 다쳤어. 전에 팔 다쳤을 때 피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때렸을 때도 피할 수 있었어... 교통사고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어.” 강하리는 멍하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독하게 자신이 다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강하리는 답답함이 밀려왔다.“구승훈 씨, 자기 몸으로 장난하는 게 재밌어요?”구승훈은 그녀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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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강하리가 멈칫했다.벌써 12시가 넘었는데 3시 비행기라면...적어도 두 시에는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구승훈은 축 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좀 거둬줘, 응?”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소파에서 자요.”구승훈은 서둘러 말했다.“샤워하는 거 도와줄까?”“필요 없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았다.문제는 더 진도를 나가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했다.한 시간 조금 넘게 남은 시간으로는 전희만으로도 부족했다.강하리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구승훈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그녀가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상대방에게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고 강하리는 그를 힐끗 바라본 뒤 침대로 향했다.구승훈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수건으로 하체만 감싸고 나왔다.강하리는 순간 당황했다.분명히 목욕 가운이 있었는데 왜 굳이 수건만 두르고 나왔을까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문득 그의 복부에 있는, 길지는 않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흉터에 시선이 갔고 다소 흉측하기까지 했다.순간 입가에 차오른 말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소파는 불편해. 아무 짓도 안 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적당히 해요.”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누웠다.“정말 아무것도 안 해, 하리야. 너랑 잠시만 이대로 같이 있고 싶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용한 방 안에서 귓가엔 온통 구승훈의 숨소리만 울려 퍼지자 강하리의 심장이 어느새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구승훈이 자신을 위해 힘들게 뛰어다닌다는 걸 잘 알았다.그녀는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잠깐 쉬어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했다.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옷깃 안으로 파고들며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움켜쥐었다.강하리의 몸이 심하게 굳어지며 경고하듯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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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구승훈이 보낸 건 사진 한 장이었다.비행기에서 찍은 일출, 하늘의 절반을 물들인 찬란한 아름다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강하리는 그 사진에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물렀다가 저장한 뒤 휴대폰을 베개 밑에 넣고 잠이 들었다.진태형이 데리러 올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주해찬이었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어젯밤에 잘 잤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다행이다, 잘 못 잤을까 봐 걱정했어.”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하리야, 너랑 구승훈 씨 화해한 거야?”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아직요.”아직 화해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강하리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구승훈이 다가오는 걸 점점 거절하기 힘들었다.다만 구씨 가문 사람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주해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짐을 챙겨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주해찬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하리야, 내가 잘못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고 주해찬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잘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애초에 그렇게 포기하는 게 아닌데.지금 구승훈의 상황은 그와 비슷했지만 분명한 건 구승훈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만약 자신도 그때 조금만 버텼다면 지금 그들 사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강하리는 구승훈의 전화가 왔을 때 막 차에 올라탄 상태였다.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영상통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출발했어?”말을 마친 구승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주해찬 차에 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진 장관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라고 보냈어요.”구승훈이 차갑게 웃었다.“진 장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저 사람을 보내?”“구승훈 씨, 말조심해요!”말을 가려 할 여념이 없었던 구승훈은 지금 당장 다시 날아가고 싶었다.“주해찬도 이번 일에 참여해?”강하리는 지금까지도 이번 일 구성원에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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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강하리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았다.“미안해요, 선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주해찬은 피식 웃었다.그는 개의치 않았다. 구승훈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그런 위기감은 자신도 전에 겪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엔 상황이 정반대였다.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하리야, 내가 그때 네 손 놓지 않았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메시지를 보내던 강하리의 손이 순간 멈칫하며 그녀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았다.하지만 구승훈이 옆에서 방해하는 상황에선 아무리 버텨도 그들은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선배, 지나간 일은 그냥 내려놔요.”하지만 주해찬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내려놓으라고, 그게 어디 쉽나.애초에 자신과 강하리가 헤어지게 된 원인이 구승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더욱 그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와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다.구승훈이 강하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도 기꺼이 축복해 주겠지만, 만약 그가 또다시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면 미련 없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다....외교부에서 열린 오전 회의는 주로 이번 일에 대한 설명회였다.교포 출신의 한 부유한 사업가가 Y국에서 은밀한 경로를 통해 해외에서 분실된 문화유물을 발견했는데 상대와 정보를 교환해 문화유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내에 들여오려다가 문화 유물 밀수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이번 임무는 그 부유한 사업가를 구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문화유물 일괄을 국내로 되찾아오는 것이었다.강하리를 포함한 협상팀은 총 15명으로 구성되었다.문화유적 전문가, 외교부 관계자, 고문 변호사,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국방부 관계자까지 함께했다.그리고 그 선두에는 놀랍게도 90대의 심문석이 있었다.심씨 가문의 어르신인 심문석은 아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백발의 정정한 모습이었다.심문석 옆에는 심준호가 고문 변호사 역할로 서 있었다.심문석의 시선이 모두를 훑어보다가 강하리에게 향했고 그는 잠시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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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아이고, 나이가 드니 감수성이 풍부해지나 보네.”심준호는 그가 심미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옆으로 데려가 몇 마디 위로를 건넸다.강하리는 떠나기 전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승훈은 이사회에 참석 중이었고 책상 위에 놓인 그의 휴대폰이 울리자 회의실 안에 있던 SH그룹 어르신들의 얼굴이 일제히 어두워졌다.“구승훈, 지금 이사회를 하는데 어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구승훈은 휴대폰 화면을 흘깃 쳐다보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이사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하나둘씩 얼굴이 일그러졌다.“구승훈! 우리 말이 안 들리는 거야?”구승훈의 어두운 눈빛이 번뜩이자 버럭버럭하며 날뛰던 이사들의 표정이 다시 시들해졌다.저쪽에서 강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빠요? 그럼 먼저 끊을게요.”구승훈은 짧게 대답할 뿐 끊지 않고 그대로 전화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강하리도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전화가 끊어지기도 전에 저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구승훈, 북교 땅에 관해 설명해 봐!”강하리는 잠시 멈칫하며 별안간 전화를 끊으려던 손가락이 멈췄다.곧이어 그곳에서 여러 사람의 화난 고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그래 구승훈, 그렇게 풍수 좋은 땅이 네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어. 우리 임원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듣기론 여자한테 줬다고 하던데? F대륙 시장의 3분의 1과 맞바꾼 그 땅을 여자한테 그냥 준 거야? 구승훈, 너 미쳤어?”“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여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해? F대륙 시장의 3분의 1이 무슨 뜻인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 텐데!”강하리는 잇달아 들리는 질책에 휴대폰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구승훈이 그 땅을 얻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대가가 F대륙 시장의 3분의 1인 줄은 몰랐다.F대륙 시장의 3분의 1이 고작 땅 하나와 교환하는 데 사용되었다.강하리는 마음이 복잡했다.구승훈이 일부러 그 말을 들려준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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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10시간의 비행 끝에 일행은 다음 날 드디어 Y국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막 내린 강하리는 경호팀 사이로 걸어 나오는 노진우를 보고 당황했다.“여긴 어떻게 왔어요?”노진우가 웃었다.“구 대표님께서 강하리 씨 안전이 걱정돼서 진 장관님께 저를 경호팀에 배치하라고 하셨어요.”강하리는 구승훈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이번 여행에서는 안전과 경호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국방부 요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부에서도 특별히 경호원을 배치해 줬기 때문이었다.구승훈이 노진우를 보낸 건 주해찬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개자식, 강하리는 속으로 한 마디 욕설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노진우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주해찬은 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강하리 옆으로 걸어오다가 노진우를 보고 발걸음이 살짝 멈췄다.“이분은...”노진우는 웃으며 주해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주해찬 씨, 전 강하리 씨 전담 경호원입니다.”주해찬이 강하리를 돌아보자 그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별다른 설명 없이 손에 든 짐을 노진우에게 건넸다.“가요, 여기까지 왔으니 시키는 대로 해요, 규칙 어기지 말고.”노진우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고 주해찬은 두 사람 뒤에 서서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구승훈, 되게 조심스럽네.주해찬은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걸음을 옮겨 따라갔다.대사관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체크인을 마친 강하리는 휴대폰을 꺼내 가장 아름다운 노을 사진을 골라 구승훈에게 보냈다.그런데 잠시 후 구승훈에게서 전화가 왔다.“방금 도착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노진우 씨가 다 얘기했죠?”구승훈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답했다.“난 정말 네 안전이 걱정돼서 그래.”강하리도 알면서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앞으로 한동안 아주 바쁠 것 같아요.”구승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알아, 네 일은 늘 바쁘잖아.”강하리가 피식 웃었다.“일 끝나면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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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심문석은 살짝 당황했고 강하리의 말에 협상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문연진은 시선을 내린 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뭣도 모르는 건 어딜 가나 똑같다.이런 협상에서 자기가 끼어들 생각을 한다니.하지만 심문석이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문연진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강하리를 돌아보니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체 없이 유물의 유래와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그 말을 듣던 문연진의 눈에 조롱 섞인 기색이 번쩍였다.이 상황에서 강하리가 대체 얼마나 그럴듯한 제안을 할까 싶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줄이야.이 유물들은 국내 시장에 유통된 적이 없다. 오기 전에 할아버지께도 구체적으로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조차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할아버지도, 심문석도 잘 모르는 걸 강하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그렇게 생각한 문연진은 강하리가 망신당하는 걸 지켜보려 했다.심문석을 뒤따르던 협상 팀원들도 조금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강하리 씨, 모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하지만 강하리는 조금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협상 팀원들은 불안해졌고 강하리의 말을 끊으려는 순간 심문석이 그들을 말렸다.그는 강하리가 헛소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오기 전에 미리 공부했던 그는 이 청동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봤고 심지어 이 청동기가 국내 암시장 거래에 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외로 불법 반출된 대부분의 문화재가 그렇듯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환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런데 강하리가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듣고 문득 증거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아니나 다를까, 말을 마친 강하리가 휴대폰에서 사진을 찾아냈는데 바로 오늘 회수할 청동 그릇을 찍은 것이었다.사진을 찍은 장소는 한눈에 봐도 국내 유물 거래 시장 중 하나였다.현장에서 문연진은 말할 것도 없고 심문석마저 깜짝 놀랐다.그는 사진을 건네받고 반나절 동안 살펴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얘야, 이 사진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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