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찬 씨, 시간도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하리야, 애초에 너를 힘들게 한 건 우리 가족이었으니까 이별을 선택한 너를 탓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너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물었다.“선배 말이 사실이에요?”구승훈은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하리야...” 강하리는 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건 확실히 구승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구승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화났어?”“아니요.” 대답을 마친 강하리가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가자 구승훈은 서둘러 따라가 그녀를 안고 차에 태웠다.차에 탄 그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 화 풀어, 응?”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론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난감한 상황에 밀어 넣기도 하고, 오늘처럼 여기까지 달려와서 그녀를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가끔은 그가 정말 자신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손에 얻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차 안엔 끔찍한 적막이 감돌았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그 일 말고 또 나한테 수작 부린 거 있어요?”구승훈의 목울대가 일렁거렸다.많았다.“일부러 다쳤어. 전에 팔 다쳤을 때 피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가 때렸을 때도 피할 수 있었어... 교통사고도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어.” 강하리는 멍하니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계산된 행동이었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이 남자는 독하게 자신이 다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강하리는 답답함이 밀려왔다.“구승훈 씨, 자기 몸으로 장난하는 게 재밌어요?”구승훈은 그녀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하
강하리가 멈칫했다.벌써 12시가 넘었는데 3시 비행기라면...적어도 두 시에는 공항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구승훈은 축 처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좀 거둬줘, 응?”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말했다. “소파에서 자요.”구승훈은 서둘러 말했다.“샤워하는 거 도와줄까?”“필요 없어요!”구승훈은 웃으며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았다.문제는 더 진도를 나가고 싶어도 시간이 부족했다.한 시간 조금 넘게 남은 시간으로는 전희만으로도 부족했다.강하리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구승훈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그녀가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상대방에게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고 강하리는 그를 힐끗 바라본 뒤 침대로 향했다.구승훈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수건으로 하체만 감싸고 나왔다.강하리는 순간 당황했다.분명히 목욕 가운이 있었는데 왜 굳이 수건만 두르고 나왔을까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문득 그의 복부에 있는, 길지는 않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흉터에 시선이 갔고 다소 흉측하기까지 했다.순간 입가에 차오른 말을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소파는 불편해. 아무 짓도 안 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적당히 해요.”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누웠다.“정말 아무것도 안 해, 하리야. 너랑 잠시만 이대로 같이 있고 싶어.”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용한 방 안에서 귓가엔 온통 구승훈의 숨소리만 울려 퍼지자 강하리의 심장이 어느새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속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구승훈이 자신을 위해 힘들게 뛰어다닌다는 걸 잘 알았다.그녀는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잠깐 쉬어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갑자기 그녀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했다.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옷깃 안으로 파고들며 부드러운 그녀의 몸을 움켜쥐었다.강하리의 몸이 심하게 굳어지며 경고하듯 그를 불렀다.“
구승훈이 보낸 건 사진 한 장이었다.비행기에서 찍은 일출, 하늘의 절반을 물들인 찬란한 아름다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강하리는 그 사진에 한참 동안 시선이 머물렀다가 저장한 뒤 휴대폰을 베개 밑에 넣고 잠이 들었다.진태형이 데리러 올 사람을 보낸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주해찬이었고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어젯밤에 잘 잤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요.”주해찬이 싱긋 웃었다.“다행이다, 잘 못 잤을까 봐 걱정했어.”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물었다.“하리야, 너랑 구승훈 씨 화해한 거야?”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아직요.”아직 화해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강하리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구승훈이 다가오는 걸 점점 거절하기 힘들었다.다만 구씨 가문 사람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주해찬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짐을 챙겨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주해찬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하리야, 내가 잘못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고 주해찬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잘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애초에 그렇게 포기하는 게 아닌데.지금 구승훈의 상황은 그와 비슷했지만 분명한 건 구승훈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만약 자신도 그때 조금만 버텼다면 지금 그들 사이가 달라지지 않았을까?강하리는 구승훈의 전화가 왔을 때 막 차에 올라탄 상태였다.그녀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영상통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출발했어?”말을 마친 구승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주해찬 차에 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진 장관님께서 저를 데리러 오라고 보냈어요.”구승훈이 차갑게 웃었다.“진 장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저 사람을 보내?”“구승훈 씨, 말조심해요!”말을 가려 할 여념이 없었던 구승훈은 지금 당장 다시 날아가고 싶었다.“주해찬도 이번 일에 참여해?”강하리는 지금까지도 이번 일 구성원에 누
강하리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았다.“미안해요, 선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주해찬은 피식 웃었다.그는 개의치 않았다. 구승훈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그런 위기감은 자신도 전에 겪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엔 상황이 정반대였다.주해찬은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하리야, 내가 그때 네 손 놓지 않았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메시지를 보내던 강하리의 손이 순간 멈칫하며 그녀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았다.하지만 구승훈이 옆에서 방해하는 상황에선 아무리 버텨도 그들은 결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선배, 지나간 일은 그냥 내려놔요.”하지만 주해찬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내려놓으라고, 그게 어디 쉽나.애초에 자신과 강하리가 헤어지게 된 원인이 구승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더욱 그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제 와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는 않을 것이다.구승훈이 강하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도 기꺼이 축복해 주겠지만, 만약 그가 또다시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면 미련 없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다....외교부에서 열린 오전 회의는 주로 이번 일에 대한 설명회였다.교포 출신의 한 부유한 사업가가 Y국에서 은밀한 경로를 통해 해외에서 분실된 문화유물을 발견했는데 상대와 정보를 교환해 문화유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내에 들여오려다가 문화 유물 밀수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이번 임무는 그 부유한 사업가를 구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문화유물 일괄을 국내로 되찾아오는 것이었다.강하리를 포함한 협상팀은 총 15명으로 구성되었다.문화유적 전문가, 외교부 관계자, 고문 변호사,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국방부 관계자까지 함께했다.그리고 그 선두에는 놀랍게도 90대의 심문석이 있었다.심씨 가문의 어르신인 심문석은 아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백발의 정정한 모습이었다.심문석 옆에는 심준호가 고문 변호사 역할로 서 있었다.심문석의 시선이 모두를 훑어보다가 강하리에게 향했고 그는 잠시 멈칫
“아이고, 나이가 드니 감수성이 풍부해지나 보네.”심준호는 그가 심미현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옆으로 데려가 몇 마디 위로를 건넸다.강하리는 떠나기 전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승훈은 이사회에 참석 중이었고 책상 위에 놓인 그의 휴대폰이 울리자 회의실 안에 있던 SH그룹 어르신들의 얼굴이 일제히 어두워졌다.“구승훈, 지금 이사회를 하는데 어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지.”구승훈은 휴대폰 화면을 흘깃 쳐다보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이사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하나둘씩 얼굴이 일그러졌다.“구승훈! 우리 말이 안 들리는 거야?”구승훈의 어두운 눈빛이 번뜩이자 버럭버럭하며 날뛰던 이사들의 표정이 다시 시들해졌다.저쪽에서 강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빠요? 그럼 먼저 끊을게요.”구승훈은 짧게 대답할 뿐 끊지 않고 그대로 전화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강하리도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전화가 끊어지기도 전에 저쪽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구승훈, 북교 땅에 관해 설명해 봐!”강하리는 잠시 멈칫하며 별안간 전화를 끊으려던 손가락이 멈췄다.곧이어 그곳에서 여러 사람의 화난 고함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그래 구승훈, 그렇게 풍수 좋은 땅이 네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한테 넘어갔어. 우리 임원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듣기론 여자한테 줬다고 하던데? F대륙 시장의 3분의 1과 맞바꾼 그 땅을 여자한테 그냥 준 거야? 구승훈, 너 미쳤어?”“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까짓 여자 하나 때문에 그렇게 해? F대륙 시장의 3분의 1이 무슨 뜻인지 네가 누구보다 잘 알 텐데!”강하리는 잇달아 들리는 질책에 휴대폰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구승훈이 그 땅을 얻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렀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대가가 F대륙 시장의 3분의 1인 줄은 몰랐다.F대륙 시장의 3분의 1이 고작 땅 하나와 교환하는 데 사용되었다.강하리는 마음이 복잡했다.구승훈이 일부러 그 말을 들려준 건 아닌지
10시간의 비행 끝에 일행은 다음 날 드디어 Y국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막 내린 강하리는 경호팀 사이로 걸어 나오는 노진우를 보고 당황했다.“여긴 어떻게 왔어요?”노진우가 웃었다.“구 대표님께서 강하리 씨 안전이 걱정돼서 진 장관님께 저를 경호팀에 배치하라고 하셨어요.”강하리는 구승훈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이번 여행에서는 안전과 경호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국방부 요원들이 따라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부에서도 특별히 경호원을 배치해 줬기 때문이었다.구승훈이 노진우를 보낸 건 주해찬과 함께 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개자식, 강하리는 속으로 한 마디 욕설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노진우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주해찬은 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강하리 옆으로 걸어오다가 노진우를 보고 발걸음이 살짝 멈췄다.“이분은...”노진우는 웃으며 주해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주해찬 씨, 전 강하리 씨 전담 경호원입니다.”주해찬이 강하리를 돌아보자 그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별다른 설명 없이 손에 든 짐을 노진우에게 건넸다.“가요, 여기까지 왔으니 시키는 대로 해요, 규칙 어기지 말고.”노진우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고 주해찬은 두 사람 뒤에 서서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구승훈, 되게 조심스럽네.주해찬은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걸음을 옮겨 따라갔다.대사관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체크인을 마친 강하리는 휴대폰을 꺼내 가장 아름다운 노을 사진을 골라 구승훈에게 보냈다.그런데 잠시 후 구승훈에게서 전화가 왔다.“방금 도착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노진우 씨가 다 얘기했죠?”구승훈은 망설이는 기색 없이 답했다.“난 정말 네 안전이 걱정돼서 그래.”강하리도 알면서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앞으로 한동안 아주 바쁠 것 같아요.”구승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알아, 네 일은 늘 바쁘잖아.”강하리가 피식 웃었다.“일 끝나면 며칠
심문석은 살짝 당황했고 강하리의 말에 협상팀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문연진은 시선을 내린 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뭣도 모르는 건 어딜 가나 똑같다.이런 협상에서 자기가 끼어들 생각을 한다니.하지만 심문석이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문연진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강하리를 돌아보니 그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체 없이 유물의 유래와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그 말을 듣던 문연진의 눈에 조롱 섞인 기색이 번쩍였다.이 상황에서 강하리가 대체 얼마나 그럴듯한 제안을 할까 싶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일 줄이야.이 유물들은 국내 시장에 유통된 적이 없다. 오기 전에 할아버지께도 구체적으로 물어봤지만 안타깝게도 할아버지조차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할아버지도, 심문석도 잘 모르는 걸 강하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그렇게 생각한 문연진은 강하리가 망신당하는 걸 지켜보려 했다.심문석을 뒤따르던 협상 팀원들도 조금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강하리 씨, 모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하지만 강하리는 조금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협상 팀원들은 불안해졌고 강하리의 말을 끊으려는 순간 심문석이 그들을 말렸다.그는 강하리가 헛소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오기 전에 미리 공부했던 그는 이 청동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봤고 심지어 이 청동기가 국내 암시장 거래에 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외로 불법 반출된 대부분의 문화재가 그렇듯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환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런데 강하리가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듣고 문득 증거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아니나 다를까, 말을 마친 강하리가 휴대폰에서 사진을 찾아냈는데 바로 오늘 회수할 청동 그릇을 찍은 것이었다.사진을 찍은 장소는 한눈에 봐도 국내 유물 거래 시장 중 하나였다.현장에서 문연진은 말할 것도 없고 심문석마저 깜짝 놀랐다.그는 사진을 건네받고 반나절 동안 살펴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얘야, 이 사진은 어
협상이 끝난 후 외교부와 박물관은 공동으로 협상 과정을 온라인에 공개했고 협상 회의에서 큰 성과를 거둔 강하리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미녀 통역사'가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인기 검색어에 ‘미녀 통역사’와 함께 ‘강국의 기세’, ‘웰컴 백홈’ 등 말들이 나타났는데 전부 강하리와 관련된 것들이었다.또한 이번 문화 유물 회수 과정은 국내 문화 유물 회수 협상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강하리는 그날 밤 백아영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 백아영은 한바탕 그녀를 칭찬하기 바빴다.문연진은 높아지는 강하리의 인기에 점점 더 화가 났다.애초에 그녀의 눈에 강하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놀잇감에 불과했고 자신은 집안도, 재능도 뛰어나고 구동근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도 있으니 강하리가 구승훈의 곁에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구승훈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녀는 구씨 가문에 들어가는 동시에 구승훈의 마음도 얻고 싶었다.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줄 기회를 찾으며 강하리보다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하지만 거듭해서 강하리의 들러리가 되자 문연진은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했다.특히 심씨 가문 어르신까지 강하리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 문연진은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문씨 가문은 B시에서나 대단했지 심씨 가문에 비하면 여전히 한 발 뒤처져 있었다.그동안 문씨 가문에선 여러 번 그녀를 백아영의 밑으로 보내려 했지만 백아영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백아영이 강하리를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고 심문석마저 강하리를 편애하는 것이 분명했다.자신이 열망하던 모든 건 강하리가 전부 차지한 것 같았다.문연진은 이를 악물고 구동근에게 전화를 걸었다.“할아버지, 전에 승훈 오빠가 Y국에 온다고 한 거 사실인가요? 정확히 몇 시예요? 데리러 가고 싶어요.”그날 저녁 구승훈이 탄 비행기가 Y국 공항에 착륙했고 그는 밖으로 나가기 전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