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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1화

다행히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급히 달려 나온 여은을 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열쇠 가져와!”열쇠가 오자 문을 열었지만 가볍게 밀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곽경천은 문 틈새로 보이는 손을 보자마자 놀라서 소리쳤다.“혜인아!”이준혁의 표정도 굳어졌지만 그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이럴 때일수록 당황하지 않아야 했다.그는 틈새를 살짝 밀어 몸을 구겨 넣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는 바닥에 젖은 물 자국이 크게 남아 있었다.분명 윤혜인의 양수가 터진 것이었다.이준혁은 의식을 잃은 윤혜인을 안아 급히 밖으로 나왔고 그 뒤를 따라 나오던 곽경천은 이준혁의 다리가 불편해 보이자 다가가 말했다.“제가 안고 가겠습니다.”하지만 이준혁이 냉랭하게 그를 한번 쳐다보자 곽경천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이준혁은 다리가 불편했으나 자신은 팔이 불편했기에 만약 놓쳐버리면 큰일이었다.게다가 이준혁의 표정을 보니 넘어진다 해도 윤혜인만큼은 무사히 보호할 각오인 듯했다.곧 이준혁은 차에 오르면서 곽경천을 부르지도 않고 문을 닫은 채 떠나버렸다.“이봐요!”당황한 곽경천은 급히 운전 기사에게 차를 준비시켜 병원으로 따라갔다.차 안에서 윤혜인은 이준혁의 품에 기댄 채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고 의식이 없으면서도 극도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꿈속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배가 아파... 너무 아파...’두려운 나머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윤혜인은 쉰 목소리로 외쳤다.“우리 아이... 우리 아이 구해줘요...”그때 누군가가 팔을 꼭 잡아주자 추락하는 듯한 불안감이 그나마 조금 누그러졌지만 윤혜인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린 채였다.이준혁은 젖어버린 코트를 벗어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얇은 셔츠와 안에 입은 검은 스웨터 차림으로 윤혜인을 부드럽게 안고 있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불렀다.“혜인아... 혜인아...”가면서 이준혁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혜인아, 잠들면 안 돼... 조금만 참아. 곧 병원에 도착해... 내가 널 아무 일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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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2화

문밖에는 이제 이준혁과 곽경천만 남았다.독이 서린 눈빛으로 곧 이준혁이 곽경천을 바라보며 말했다.“배남준 씨는 어디 있죠? 이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할 짓입니까?”그러자 곽경천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그는 이 두 사람이 가짜 결혼을 했고 함께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어떻게 핑계를 대야 할지 고민하는 그때, 배남준이 온몸에 빗물을 뒤집어쓴 채 급히 다가와 초조하게 말했다.“혜인이는 어디 있어?”하지만 곽경천이 대답할 틈도 없이 이준혁의 주먹이 배남준의 얼굴에 강하게 꽂혔다.그러자 배남준은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불같은 분노가 서린 눈으로 이준혁은 한마디씩 또렷하게 말했다.“말해 보세요. 무슨 일로 임신한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나올 수 있었는지!”온몸에 살기를 가득 띤 채 이준혁은 위협적으로 다가갔다.“그쪽이 맞아 죽지 않을 만큼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한번 말해 보세요!”배남준은 목소리가 잠긴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고 그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모든 게 그의 잘못이었다. 경험이 부족해 윤혜인이 아무거나 먹게 한 것이 화근이었다.그게 아니었더라면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일찍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이준혁이 배남준을 때리는 건 당연했고 그 역시 자신을 때리고 싶었다.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에게 이준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곽경천은 이준혁이 배남준을 때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그러나 가짜 결혼 사실을 밝힐 수 없었고 배남준이 윤혜인 곁에 없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하여 곽경천은 이준혁의 팔을 잡고 외쳤다.“이준혁 씨, 진정해요!”그러자 이준혁이 매서운 눈빛으로 곽경천을 밀쳐냈다.“뭐요? 이 남자가 곽경천 씨 여동생을 신경도 안 썼는데 그냥 넘어가겠다는 겁니까?”“아니, 그런 게 아니라...”말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고 사실 배남준이 윤혜인 곁을 지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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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3화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세 명의 남자는 분만실 문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고 아무도 아이들을 데리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러자 의사가 재차 물었다.“어느 보호자분이 아이들을 데리러 오시겠어요?”이준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윤혜인이 나올 때까지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의사는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귀여운 쌍둥이 아기들을 데려가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니 말이다.곽경천은 이준혁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제가 가겠습니다.”어차피 이준혁이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그도 안심이었다.얼마 후 곽경천이 아이들의 유모차를 밀고 나왔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윤혜인이 나오기 전까지 그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오히려 곽경천이 진지하게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참, 저 남자랑 똑 닮았네. 완전 붕어빵이야.’아이들의 일에 대해 정리한 뒤 곽경천은 여은과 도지훈에게 철저히 지키게 하고는 배남준에게 다가가 말했다.“남준아, 얼굴에 있는 상처 좀 치료하러 같이 가자.”배남준도 떠나기를 꺼려했다. 전의 일로 이미 잔뜩 후회하는 중이었기에 윤혜인이 나오기 전에는 떠날 생각이 없었다.그러자 곽경천이 설득했다.“걱정 마. 여긴 이준혁 씨가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네 상태를 보면 혜인이가 좋아하겠어?”배남준은 이준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곽경천을 따라가 얼굴의 상처를 처리하기로 했다.그들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몇 명의 의사가 급히 분만실로 뛰어 들어갔다.표정이 굳어지더니 이준혁은 한 의사를 붙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 산모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의사는 대답했다.“산모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요...”남자의 손이 순간 힘없이 축 처졌다.의사들은 다시 급히 분만실로 뛰어 들어갔다.곽경천과 배남준도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와 경악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이런 일이!”아무도 그에게 답을 해주지 않았다.잠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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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4화

의사는 잠시 멈칫했다.‘방금 뽑아낸 혈액에 왜 질병 검사를 해야 하지?’그녀는 답했다.“가장 빠르면 40분, 인원이 많아지면 90분 이상, 또는 그 이상이 걸릴 수 있습니다.”“그럴 시간이 없습니다.”이준혁의 단호한 말에 옆에 있던 두 남자도 정신을 차렸다.‘그래. 혜인이를 해치려는 사람이 아직 있을 수 있잖아. 바이러스를 의료진 중 누군가에게 주입했을 가능성도 있어.’때문에 질병 검사 없이 혈액을 바로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누구도 윤혜인의 목숨을 두고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의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하지만 가장 가까운 병원에서 혈액을 헬기로 긴급 수송한다 해도 4시간 이상 걸릴 겁니다. 지금은 눈보라가 심해 날씨 조건도 좋지 않아 하룻밤이 지나도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산모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어요...”곽경천은 초조했다. 그는 물론이고 배남준도 윤혜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았다.그때 이준혁이 말했다.“제 피를 사용하세요.”의사가 물었다.“B형 혈액형인가요?”이준혁은 답했다.“제 혈액형은 RH NULL입니다.”의사는 깜짝 놀랐다. 이는 흔히 초희귀 혈액형으로 알려졌으며 어떤 혈액형에게나 수혈이 가능했다.곽경천도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이준혁의 혈액형이 공개 자료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이렇게 희귀한 혈액형이 적에게 알려진다면 큰 위험이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적당한 함정만 설치해도 이준혁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이었다.“하지만...”의사는 망설이며 말했다.“혼자서 산모에게 필요한 혈액량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지금 출혈량을 감안하면 최소 다섯 명이 수혈해야 산모의 피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어요.”그러나 이준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매를 풀어헤치며 말했다.“그럼 충분해질 때까지 뽑으세요!”당황한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곽경천 또한 이 상황이 무리라고 느꼈다. 다섯 명이 최대한 헌혈해야 할 양을 한 사람에게서 뽑는 것은 말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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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5화

산모가 더 많은 혈액이 필요하더라도 이제는 이준혁의 피를 뽑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이준혁이었다.밖에 있는 곽경천에게서 안전한 RH NULL 혈액과 B형 혈액이 긴급 수급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나 아무리 빨라도 도착까지 두 시간이 걸릴 예정이었다.그러나 두 시간은 현재 산모의 상태로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었고 이준혁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심박 수가 불안정한 윤혜인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속해요!”그러자 난감해진 의사가 말했다.“더 이상 수혈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이준혁의 목소리는 더욱 냉랭했다.“계속하라고 했습니다.”의사는 이렇게 무모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 게다가 이준혁의 경호원들도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압박하고 있었다.만약 산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은 병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었다.결국 의사는 다시 800mL의 혈액을 채취했다.이 피를 수혈한 후 윤혜인의 심박 수가 잠시 상승하여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수술실 안에서 다시 의사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다.“산모의 출혈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피가 엄청난 속도로 흐르기 시작했고 막 회복했던 심박수는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상황이 심각해지자 이준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뽑으세요! 1500mL를!”의사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이제는 이성을 좀 찾으세요. 지금까지 이미 2600mL를 뽑았습니다. 더 뽑아 1500mL를 추가하면 몸에 남은 혈액이 거의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RH NULL 혈액 팩이 모두 오염된 상태에서 무리한 채취는 산모뿐 아니라 보호자분의 생명도 위험해지는 거예요.”의사는 부담을 견디기 힘들어 단호히 수혈을 거부했다.그러나 이준혁은 침묵 대신 수술용 메스를 손에 들고 자신의 손목 동맥을 향해 들이밀며 말했다.“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직접 할까요?”의사는 완전히 겁에 질려 그를 설득했다.“우선 메스를 내려놓으세요.”“뽑을 거예요 안 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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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6화

이 말을 꺼내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곽경천은 결국 힘겹게 입을 떼야만 했다.배남준이 나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만약 배남준이 초희귀 혈액형이라면 그 역시 윤혜인을 위해 주저 없이 헌혈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곽경천은 알고 있었다.윤혜인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배남준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윤혜인은 똑같이 그를 위해 그랬을 것이다.하지만 감정이란 건 시간의 흐름을 따라 바뀌는 것도, 나중에 더 깊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곽경천은 제삼자로서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곽경천은 제삼자로서 윤혜인의 마음이 사실 겉과 같이 이준혁에게 완전히 냉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는 그들끼리의 오해가 더 이상 깊어지지 않길 바랬는데 서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없이 더 많은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곽경천이 먼저 배남준에게 말했다. “내 동생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그 두사람을 갈라놓고 싶지 않아.” 배남준은 곽경천의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곽경천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때로는 사람이라는 게 스스로를 세뇌하고 속이고 싶어하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곽경천의 말에 대답했다.“경천아, 네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해.”...윤혜인은 자신이 오랜 시간 잠에 들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꿈속에서 누군가 계속해서 그녀를 격려하고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있었다.곧 눈을 뜬 윤혜인의 시야에 침대 옆을 지키고 있던 곽경천이 들어왔다.그의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가도 촉촉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다독인 사람이 바로 곽경천이라고 생각했다.“오빠...” 윤혜인은 온 몸에 힘이 없었고 곽경천의 무거운 표정을 보고 자신이 위태로운 상황을 겪었음을 짐작했다.“깨어났구나.” 곽경천이 깨어난 윤혜인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힘이 없어 기운이 나지 않는 것 말고는 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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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7화

말하지 않아도 곽경천은 윤혜인이 누구를 말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아이를 그렇게 아낀다면서 왜 내가 아이를 낳은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한번을 보러 오지 않는 거지? 혹시 그날 공원에서 했던 말 때문에 상처받았나?’윤혜인은 믿지 않았다.‘그렇게 나약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그날 공원에서의 일은 내가 아니라 준혁 씨가 먼저 잘못한 거잖아.’곽경천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렸다.“아마 요즘 일 때문에 일 때문에 바쁘지 않을까 싶은데? 곧 최종 확정이 난다더라고.”윤혜인은 눈살을 찌푸렸다.‘아무리 바빠도 아이를 보러 올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게 말이 되나?’“너도 이준혁 씨 너무 나무라지 마. 요즘 정말 정신없을 거야.”자꾸만 해명하려 드는 곽경천에 윤혜인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오빠,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선물이라도 줬어?”‘이젠 오빠마저 그 사람 편을 드는 건가...’그러자 곽경천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야. 사실 이준혁 씨는 너한테 관심이 참 많거든.”뭔가 이상한 낌새에 윤혜인은 잠시 침묵했다.곽경천은 그동안 누구보다도 이준혁을 강하게 반대해 온 사람이었는데 설령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고 해도 이렇게 갑자기 태도가 바뀌는 건 낯설었다.“오빠,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면 그 사람이 정말 무슨 좋은 거 줬어?”윤혜인의 물음에 곽경천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 말했다.“아니라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어. 단지 그냥 이준혁 씨도 아이의 아빠이니까... 너랑 조금 가까워지는 게 너와 아이에게도 나쁘지는 않잖아.”“그리고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너희를 더 신경 쓸 거야.”한동안 말이 없다가 윤혜인은 곽경천의 팔을 덥석 잡았다.“오빠, 솔직히 말해줘. 우리 집 파산이라도 한 거야? 나랑 아기를 부양할 수 없어서 빨리 우리를 떠나게 하려는 거야?”그러자 잠시 말을 잃더니 곽경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집 사업은 잘되고 있어. 네가 아이 열 명을 더 낳아도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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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8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제정신이야?”윤혜인은 엿듣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녀의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이때 여자가 다시 말했다.“이하진, 미리 말해두는 데 난 그냥 남자 만나서 널 열받게 하려는 게 아니야. 나 진짜 다른 남자랑 자서 네 자존심을 짓밟아 줄 거야!”윤혜인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분홍색 모피 코트를 입고 버릇없게 말하는 여자, 그녀는 바로 정유미였다.이하진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정유미,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못 알아듣겠어? 난 너 안 좋아해. 예전에 캠핑 때 텐트에서 네가 술 취해서 나한테 매달려 키스한 거 기억나지? 그게 내 첫 키스였어. 난 그 일 문제 삼지도 않았는데 네가 나한테 들러붙은 거잖아!”화가 난 정유미는 울먹이며 소리쳤다.“이하진, 너 진짜 남자 맞아?”“내가 왜 남자가 아닌데?”이하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남자라면 다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네가 다른 남자들이랑 잔다고 해서 나한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해가 되냐?”정유미는 화가 나서 발을 쿵쿵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알았어. 지금 당장 가서 잘 거야!”그러더니 이내 돌아서며 말했다.“팔백 명이 아니라 팔천 명이랑 잘 거야. 지금 바로 가서 남자 찾을 거라고!”하지만 이하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말했다.“어서 가봐. 근데 이 근처에선 팔천 명 찾기 좀 힘들걸.”그러자 정유미는 울음을 멈추고 살짝 뿌듯해하며 물었다.“나한테 미련 남은 거 아니야?”이 말에 이하진은 어이없어하며 팔짱을 낀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 그냥 너가 여러 클럽을 돌아다녀야 될 거 같아서 하는 말이야. 한 군데로는 부족하겠지.”정유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얼굴을 감싸고 도망치듯 울며 사라졌다.윤혜인 옆을 지나갈 때도 정유미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이하진 역시 망설임 없이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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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9화

윤혜인을 구하던 그날 밤, 이준혁은 그녀를 안고 오랜 시간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관절에 손상이 발생했지만 그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이후 또다시 과도한 출혈로 인해 온몸의 기능이 약해지며 무릎 상처 부위에 심각한 병변이 생겼다.이렇게 여러 상황이 겹쳐지면서 이준혁은 결국 다리를 절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곽경천은 이 사실을 윤혜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현재 윤혜인은 이 사실을 모르는 상태라 기분이 좋아 보이지만 만약 그녀가 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자책할지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곽경천은 이준혁이 깨어나 진단 결과를 들었을 때 한동안 침묵했던 모습을 떠올렸다.이준혁은 여러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그런데 갑자기 다리를 절게 된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곽경천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만약 자신이 윤혜인의 출산 상황을 조금만 더 일찍 예측하고 준비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생각하면서 말이다.결국 이준혁은 담담하게 윤혜인에게는 자신이 헌혈한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미 잘 마무리되었으니 굳이 그녀에게 알려서 걱정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준혁은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그러나 죄책감에 사로잡힌 곽경천은 며칠 전 기회를 내어 두 아기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갔다.당시 윤혜인을 구하기 위해 아기들을 볼 새도 없었던 이준혁은 이번에야 비로소 자신의 아이들을 보게 되었고 죽어 있던 그의 눈빛에도 미소가 스며들었다.자신의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이준혁은 아이들보다 윤혜인의 안전이 더 중요했으며 그렇게 많은 피를 헌혈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는 모든 걸 감수하고 윤혜인을 살리는 것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잠시 아이들을 안고 있다가 이준혁은 아기들을 다시 곽경천에게 건네며 담담하게 말했다.“혜인이는 제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주장할까 봐 걱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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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0화

곽경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 생각했다.두 사람의 문제는 결국 그들이 직접 마주하고 해결할 일이다.윤혜인이 죄책감이나 동정심 때문에 돌아오기를 이준혁이 원하지 않는다면 곽경천은 잠시 사실을 숨기고 윤혜인의 진심을 지켜보기로 했다.만약 윤혜인이 그의 상태를 보고 마음을 놓지 못한다면 그 마음속에 아직 이준혁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그때가 되면 상황을 설명하고 곽경천은 윤혜인이 스스로 선택하게 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윤혜인의 마음속에 이미 이준혁이 없다면 설령 동정심을 느끼더라도 함께할 일은 없을 테 그때는 이 일을 끝까지 비밀로 하고 가슴속에 묻을 작정이었다.곽경천은 윤혜인이 다른 감정 때문에 얽매여 억지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곽경천이 떠난 후, 윤혜인은 한참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오빠가 말한 ‘조금 좋지 않다’는 말이 얼마나 나쁜 상태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녀가 너무 깊이 개입할 일이 아닌 듯했다.하루 동안 고민하던 윤혜인은 결국 다음 날 작은 정원으로 산책을 나섰다.산책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발걸음은 2층 VIP 병동 구역으로 향해 있었다.작은 정원과는 전혀 다른 길로 걸어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이왕 온 김에 살짝 이준혁의 상태를 엿보고 싶었다.그렇게 병실 안을 살펴보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그때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 씨?”주훈이 그녀를 불렀다.“대표님 보러 오셨나요?”윤혜인은 당황하며 얼굴이 붉어졌다.“전... 그냥 지나가다가...”주훈은 VIP 병동이 사생활 보호가 철저해 지나가다 우연히 올 만한 곳이 아니었음을 알았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그는 친절하게 말했다.“대표님은 방금 옆 정원으로 산책 가셨습니다. 그쪽에서 찾아보실 수 있을 거예요.”이준혁의 현재 상태를 잘 아는 주훈은 윤혜인이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하지만 윤혜인이 망설이자 주훈은 한 번 더 물었다.“제가 안내해 드릴까요?”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혜인이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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