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의 모든 챕터: 챕터 1101 - 챕터 1110

1130 챕터

제1101화

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배남준의 팔을 잡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유리 회전문이 돌아가며 두 사람의 모습은 이준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식사 중 윤혜인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배남준은 신사적으로 그녀의 스테이크를 잘라서 건넸지만 윤혜인이 많이 먹지 않자 물어보았다.“입맛에 안 맞아?”“아니요.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배남준은 근처에서 혼자 식사 중인 이준혁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윤혜인을 불렀다.“혜인아.”“네?”곧 배남준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혹시... 아직 마음 정리가 안 된 거야?”포크를 놓은 손을 잠시 멈칫했지만 윤혜인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배남준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안타깝게 여겼다.“정말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억지로 참을 필요 없어. 시간이 지나면 분명 치유될 거야.”곽경천과 친구라 배남준은 윤혜인에 대한 감정이 미묘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여동생처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고 어떤 감정이 좋아한다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다만 배남준이 원하는 것은 윤혜인이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 행복 속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윤혜인은 배남준의 위로에 감사했다.때로는 오빠인 곽경천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배남준에게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배남준은 언제나 윤혜인의 생각을 헤아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대해주었다.“알겠어요. 남준 오빠.”그녀도 그의 생각과 같았다. 억지로 마음을 차갑게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자는 것이다.지금처럼 이준혁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했다.평생 피해 다닐 수는 없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결국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윤혜인은 믿었다.저녁 식사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자리에서 일어난 윤혜인의 눈에 멀리 이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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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2화

윤혜인은 택시를 기다리며 홀로 문 앞에서 서성였지만 오늘따라 차를 부르기가 쉽지 않았다.20분이 지나도 차는 오지 않았고 오히려 술에 취한 몇몇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윤혜인이 예쁘다고 하며 연락처를 요구했다.윤혜인은 대꾸하지 않고 찡그린 채로 경비실 쪽으로 걸어가며 그들을 피하려 했다.하지만 술에 취해 무모해진 남자들은 경비실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경비원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상황이 심상치 않자 경비원은 무전기를 꺼내 로비에 있던 경비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그러나 경비가 도착하기도 전에 갑자기 날카로운 경적 소리와 함께 검은색 마이바흐가 엄청난 속도로 그 술 취한 남자들을 향해 돌진했다.술에 취한 남자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고 그중 두 명은 바닥에 주저앉아 몇 바퀴 굴렀다.엄청난 속도의 차에 이 작은 경비실이 차에 밀려 뒤집힐까 봐 경비원은 겁에 질려 있었다.윤혜인 역시 크게 놀라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손으로 복부를 감쌌다.다행히도 마이바흐는 경비실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멈췄다.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미안하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들은 술 취한 남자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운전 기사에게 덤벼들려 했으나 바로 그때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도착해 그들을 막아섰다.그렇게 경비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술 취한 남자들은 소란 혐의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경비실에서 나온 윤혜인은 자신이 부른 택시가 도착한 것을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의 옆을 지나칠 때 윤혜인은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등 뒤로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차를 확인할 필요도 없이 번호판을 보고 안에 그녀는 누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하지만 방금 본 운전기사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니 단순히 실수로 브레이크를 잘못 밟았을 수도 있었다.어쨌든 윤혜인은 이준혁이 자신을 구해주려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차에 타고나서 운전기사는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바로 앞에 있는 체육관에서 유명 연예인의 공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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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3화

밤이 깊어지면서 이슬이 내려 윤혜인은 얇게 입고 나온 탓에 코끝이 빨갛게 얼었다.옥빛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아 그녀를 더욱 가냘파 보이게 했다.“괜찮아요.”윤혜인은 그를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몇 발짝 앞으로 걸었다. 앞쪽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지만 이미 버스 운행은 끝난 상태였다.그래도 버스 정류장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곳에 앉아 있으면 안전할 것 같았다.마이바흐는 그녀를 뒤따라 정류장까지 천천히 움직였다.윤혜인이 앉자 이준혁은 차에서 내려 그녀 앞까지 걸어왔다.“차에 타. 내가 직접 모셔야 하겠어?”‘지난번에 만났을 땐 한마디도 안 하더니... 오늘은 원지민이 없다고 몇 마디 더 하려는 건가?’하지만 윤혜인은 이준혁의 냉담한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의 관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이미 기사가 오고 있어요.”이준혁은 포기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이곳에서는 차를 잡기 힘들어.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릴 생각이지?”“괜찮아요. 얼마 안 걸릴 거...”그러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혜인은 갑작스런 팔의 통증을 느꼈다. 이준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강하게 끌어올린 것이었다.그가 잡은 위치는 하필이면 배남준의 팔짱을 끼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뭐 하는 거예요...”윤혜인은 어이가 없었다.‘나한테서 먼저 등 돌린 게 누군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곧 이준혁은 몇 발짝을 끌어가다가 불편하다는 듯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들어 올려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리고 자신도 뒷좌석에 올라탔다.하지만 이준혁이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윤혜인은 가방을 들어 던졌다.“쾅!”가방은 남자가 피하는 바람에 차 창문에 부딪혔다.차가 이미 출발한 상태에서 윤혜인은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이 대표님, 당장 차에서 내려주세요.”그들 사이는 이미 끝난 사이였고 이준혁은 곧 결혼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윤혜인은 더 이상 이런 모호한 상황에 얽히고 싶지 않았다.약혼자가 있는 남자의 차를 타는 것 자체가 잘못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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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4화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이준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는 부부였잖아. 네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야.”윤혜인은 그 말이 너무나도 비꼬는 듯 들려 웃음이 나왔다.“이 대표님,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전 대표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전 성인이고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전 제가 선택한 상대를 믿을 거예요.”그러면서 덧붙였다.“잘못된 길이라면 대표님이야말로 제가 만난 가장 큰 잘못된 길이었어요.”그녀는 이준혁에게 여러 번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충분한 고통을 겪었다.때문에 다시는 다른 어떤 남자도 자신에게 그 정도로 상처를 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그 말에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이준혁은 강한 소유욕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배남준이 꼭 네가 선택할 사람이어야만 해?”윤혜인은 더 이상 이준혁과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제 일에 신경 끄세요. 제발 저를 내려주시고요. 더 이상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이미 이준혁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그가 곧 결혼할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여 더 이상 이준혁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준혁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그 사람이 품위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야만적인 가문에서 살아왔는데 손이 깨끗할 리가 없지. 그 사람이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배씨 가문 사람인 데다가 그런 일을 겪었던 사람이 과연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배남준도 언젠가는 세 명, 네 명의 아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 거야. 그런 상황에서 넌 남편을 여러 여자들과 나눠 갖는 걸 참을 수 있겠어?”윤혜인은 이준혁이 이렇게까지 길게 말할 줄 몰랐다.남을 험담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며 이준혁은 항상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었다.“그건 제 문제예요.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 결과는 제가 감당하면 됩니다.”이준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윤혜인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예전에 자신을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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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5화

“차 멈춰!”이준혁은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곧바로 손을 뻗어 윤혜인의 목덜미를 잡아챘고 강제로 그녀를 차 안으로 다시 끌어당겼다.차는 급하게 멈췄고 두 사람은 앞으로 기울어졌다. 윤혜인이 차의 단단한 등받이에 부딪힐 뻔했지만 이준혁이 먼저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아 쿠션처럼 막아주었다.윤혜인은 차 좌석에 부딪히지 않았지만 미리 예상했던 대로 팔로 얼굴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래도 충격이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밖으로 이준혁이 자신을 보호해주었기에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방금 들렸던 쿵 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가 다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잠시 생각하다가 이 정도로 이준혁이 충격을 못 버틸 리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게다가 급정거였지 차가 부딪힌 건 아니니 치명적인 상처는 없을 거라 여기며 말이다.물론 윤혜인은 진짜로 차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준혁 같은 사람은 절대 차를 멈추지 않았을 테니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다.차가 완전히 멈춘 후에도 그는 여전히 윤혜인의 팔을 세게 잡고 있었다.이준혁의 눈에는 드문 긴장감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미쳤어?”그 세 글자는 이를 악물고 내뱉는 듯한 말투였다.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이준혁은 혀끝으로 어금니를 밀며 말했다.“고속도로에서 차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진짜로 죽고 싶어?”윤혜인은 그의 손에 붙잡힌 팔을 흔들며 화가 나서 말했다.“죽고 싶지 않아요. 그쪽 때문에 죽을만한 가치는 없거든요.”이 말에 얼굴이 순간 굳어지며 이준혁의 손가락 마디는 하얗게 질렸다.한참을 침묵하더니 마침내 그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고.”이루 말할 수 없는 서글픔에 휩싸여 있었지만 윤혜인은 입술을 깨물며 차갑게 웃어 보였다.“이준혁 씨, 난 이미 오래전에 다 정리했어요. 지난번 이후로 난 그쪽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왜 그쪽은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원지민 씨와의 결혼에 대해 내가 한마디라도 했어요? 이준혁 씨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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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6화

찬바람이 불어오자 이준혁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었다.‘지금 내가 무슨 자격으로 혜인이에게 잘해주려고 한 거지?’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윤혜인의 앞길을 깨끗하게 정리해주는 것뿐이었다.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게 말이다.순간적으로 이준혁은 얼굴에 다시 차가운 가면을 썼다.무섭게 굳은 얼굴로 그는 낮게 말했다.“내가 너무 참견했군.”윤혜인은 손끝을 꽉 움켜쥐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너무도 지쳐 있었다.다시금 희망을 품을 때마다 이준혁은 직접 그 희망을 짓밟았다.가장 웃긴 건 조금 전까지 윤혜인은 이준혁이 아직 자신을 신경 쓰고 있는지, 혹시 그가 자신을 아직 놓지 못한 건 아닌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건 다 허상에 불과했다.그저 윤혜인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했던 것뿐이었다.윤혜인은 입술을 악물며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서러움을 억눌렀다.그리고 천천히 말했다.“이 대표님, 제발 다음부터는 이렇게 참견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필요 없고 매우 불편해요. 만약 다음에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쳐주세요. 그게 우리가 합의한 규칙이잖아요.”윤혜인은 곽경천이 말해준 사실을 떠올렸다.이준혁이 바로 어렸을 때 자신이 구해준 그 오빠였다는 것.임세희의 부모는 그저 정원에 초대된 손님이었고 이준혁 역시 부모를 따라 그곳에 왔다.그러던 이준혁은 얼음판에서 실수로 빠졌고 어렸던 윤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얼음을 깨고 그를 구해낸 것이다.그녀 자신도 물에 빠져 거의 익사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그를 물 위로 끌어 올렸다.그때 임세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그 공을 가로챘고 이준혁을 자신의 하인들에게 데려가게 했다.남자의 이름조차 몰랐던 윤혜인은 곽경천과 엄마에게 한 오빠를 구했다고만 말했었다.엄마는 그녀가 너무 무모하게 물에 뛰어들었다며 꾸짖었지만 윤혜인은 그저 사람을 구하려 했을 뿐이었다.그 후로 다시 이준혁을 볼 기회는 없었고 그는 가족들과 함께 떠났다.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이미 명확했다.깨어난 후,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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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7화

윤혜인은 비웃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이렇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더 빨리 식어갈 거야. 오히려 좋은 거 아니겠어? 이제 그 남자를 완전히 내 삶에서 지워낼 수 있는 건데...’...구지윤은 아침에 일어나 방안에 흩어진 옷가지들과 침대 위에 반쯤 옷을 벗은 곽경천을 보고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이런 일은 한 번 있으면 두 번도 생기는 법이다.어젯밤 곽경천은 구지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커피를 마시러 올라왔다.그리고는 피곤하다며 그냥 그녀의 집에서 자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구지윤은 곽경천이 불쌍해 보여서 한밤중에 얇은 이불을 덮어주러 갔다가 그에게 그대로 끌려가 입맞춤을 받으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었다.결국 어찌저찌 곽경천은 구지윤을 침대로 데리고 갔다.성숙한 남녀라면 서로 뜨거운 감정 속에 잠길 수밖에 없었지만 곽경천은 마지막 순간에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대신하자고 했다.구지윤이 어리둥절해 있던 차에 곽경천은 이렇게 말했다.“너 생리 중 아니야?”‘생리...’구지윤은 한참 생각한 끝에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첫날 밤 그녀의 반응을 보고 곽경천이 생리 중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사실, 그녀는 그동안 두 번밖에 그런 경험이 없었고 그나마도 꽤 오랜 시간 차이가 있었다. 그로 인해 갑작스러운 ‘침입’에 몸이 반응한 것일 뿐이었다.구지윤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한번 이혼한 여자가 순결할 거라는 생각을 할 리 없지.’게다가 그녀는 악명 높은 육선재와 결혼했었으니 말이다.육선재는 공공연하게 친구들 앞에서 구지윤과 함께 얼마나 많은 이상한 짓을 했는지 또 그녀가 얼마나 순순히 협조했는지 떠벌렸었다.이혼 후에도 육선재는 구지윤을 비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녀를 추악한 여자로 만들었다.마치 그녀가 남자보다 더 욕망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육선재를 떠올리기만 하면 구지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마치 건조한 종이처럼 손만 대도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한밤중에 깨어나면 항상 육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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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8화

곽경천은 구지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솔직하게 물었다.“1008, 너희 집 도어락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야?”의심하던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고 그는 구지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빠졌다.아버지 앞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구지윤이 한번 결혼한 적이 없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주먹을 꼭 쥔 채, 구지윤은 곽경천의 시선을 느끼며 작게 대답했다.“육선재의 생일이에요.”곽경천은 순간 멍해졌다.그는 자신과 육선재가 같은 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 사실 때문에 둘의 관계가 다른 가문의 자제들보다 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곽경천은 구지윤을 그렇게 몰아붙인 사람이 육선재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특히나 육선재가 먼저 구지윤에게 결혼을 청했을 때, 곽경천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기까지 했었다.자신은 절대 육선재처럼 대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가문에서는 결혼이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가문 간의 관계를 위한 도구였다.하지만 곽경천은 이제서야 육선재가 그저 인간 말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더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학대받았던 구지윤이 아직도 육선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눈빛은 구지윤의 어깨에 남은 상처 자국으로 옮겨지며 점점 어두워졌다.“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도망갔어? 응?”구지윤은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느끼고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그녀는 다른 여성들처럼 자신감 있게 등을 드러낼 수 없었다.등에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고개를 젓던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사랑하지 않았어요.”곽경천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그 말이 주는 기쁨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구지윤은 곧바로 덧붙였다.“그저 2년 동안 그 사람의 아내로 있었기 때문에... 익숙해졌을 뿐이에요.”육선재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몸이 오싹해지듯이 구지윤은 단지 그와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사랑이 아닌, 육선재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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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9화

실내는 너무 조용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베개 위에 남아 있는 은은한 나무 향기만이 곽경천이 잠시 머물렀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구지윤은 천천히 몸을 돌려 두 손을 곽경천이 자고 간 자리 위에 놓았다.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맞잡자 마치 그를 껴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바닥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며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슬픔이 서서히 번져갔다.그리고 그 슬픔은 결국 온몸을 휘감았다.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기억을 뒤덮은 것처럼 말이다.어린 시절, 구지윤에게도 한때는 평온한 삶이 있었다.부유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중산층 가정에서 그녀는 자랐다.아버지 구철욱은 대기업의 임원이었고 어머니 홍승희도 같은 회사의 재무팀에서 일하고 있었다.구지윤이 태어난 후, 홍승희는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까 걱정되어 베이비 시터를 고용했다.당시 부모님의 능력으로는 월급이 몇백만 원은 되는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는 것이 전혀 부담이 없었다.하지만 좋은 날들은 오래가지 않았다.홍승희는 회사의 한 고위 임원에게 눈에 띄었고 그 임원은 자주 일 핑계를 대며 그녀에게 추근댔다.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라 홍승희는 그가 상사인 탓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애써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나 그 고위 임원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결국 그녀를 회식 자리에 불러 술에 취하게 한 후에 나쁜 의도를 드러냈다.홍승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화장실에서 구철욱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철욱은 즉시 달려와 그 임원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사건은 크게 번졌고 구철욱은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호텔에 CCTV가 없었고, 그 임원과 홍승희는 상하 관계라는 이유로 그런 회식 자리가 흔하다고 여겨졌다.또한 그 임원이 실질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홍승희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기에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회사 측은 구철욱과 홍승희를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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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0화

일찍 철이 든 구지윤은 엄마가 일할 때 항상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그러던 어느 날, 구철욱이 술에 취해 강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구철욱이 죽은 후, 홍승희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구철욱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술로 모든 돈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홍승희는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 빚을 갚아야 했고 구철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임원은 또다시 홍승희에게 각가지 방법으로 괴롭힘을 가했다.그 무렵, 홍승희는 윤혜인의 어머니 윤아름이 줬던 명함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윤아름은 홍승희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는 그녀와 구지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구지윤이 윤혜인과 함께 놀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그렇게 구지윤은 윤아름과 함께 곽씨 가문에 들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곽씨 가문의 가족들은 매우 친절했고 구지윤과 어린 윤혜인은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구지윤은 그때만 해도 이렇게 행복한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어느 날, 윤혜인의 어머니와 동생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곽씨 가문은 큰 슬픔에 빠졌다.홍승희는 윤아름이 데리고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곽경천의 아버지인 곽진명은 그녀를 곁에 두고 계속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홍승희는 일을 성실하게 처리했고 곽진명은 그녀에게 집안의 일부 관리 업무를 맡겼다.구지윤과 홍승희는 곽씨 가문에서 관리인으로 살았고 곽경천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실종 이후로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다.그러다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곽경천은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강해지기로 결심했다.그래야 어머니와 여동생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구지윤은 어릴 때부터 곽경천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눈에 곽경천은 하늘의 신처럼 위대한 존재였다.게다가 그는 구지윤과 홍승희에게도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하지만 당시 구지윤은 곽경천이 자신을 여동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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