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107화

작가: 이한나
윤혜인은 비웃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더 빨리 식어갈 거야. 오히려 좋은 거 아니겠어? 이제 그 남자를 완전히 내 삶에서 지워낼 수 있는 건데...’

...

구지윤은 아침에 일어나 방안에 흩어진 옷가지들과 침대 위에 반쯤 옷을 벗은 곽경천을 보고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이런 일은 한 번 있으면 두 번도 생기는 법이다.

어젯밤 곽경천은 구지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서 커피를 마시러 올라왔다.

그리고는 피곤하다며 그냥 그녀의 집에서 자겠다고 버티더니 결국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구지윤은 곽경천이 불쌍해 보여서 한밤중에 얇은 이불을 덮어주러 갔다가 그에게 그대로 끌려가 입맞춤을 받으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어찌저찌 곽경천은 구지윤을 침대로 데리고 갔다.

성숙한 남녀라면 서로 뜨거운 감정 속에 잠길 수밖에 없었지만 곽경천은 마지막 순간에 멈추고 다른 방식으로 대신하자고 했다.

구지윤이 어리둥절해 있던 차에 곽경천은 이렇게 말했다.

“너 생리 중 아니야?”

‘생리...’

구지윤은 한참 생각한 끝에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

첫날 밤 그녀의 반응을 보고 곽경천이 생리 중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사실, 그녀는 그동안 두 번밖에 그런 경험이 없었고 그나마도 꽤 오랜 시간 차이가 있었다. 그로 인해 갑작스러운 ‘침입’에 몸이 반응한 것일 뿐이었다.

구지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한번 이혼한 여자가 순결할 거라는 생각을 할 리 없지.’

게다가 그녀는 악명 높은 육선재와 결혼했었으니 말이다.

육선재는 공공연하게 친구들 앞에서 구지윤과 함께 얼마나 많은 이상한 짓을 했는지 또 그녀가 얼마나 순순히 협조했는지 떠벌렸었다.

이혼 후에도 육선재는 구지윤을 비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녀를 추악한 여자로 만들었다.

마치 그녀가 남자보다 더 욕망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육선재를 떠올리기만 하면 구지윤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마치 건조한 종이처럼 손만 대도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밤중에 깨어나면 항상 육선재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08화

    곽경천은 구지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솔직하게 물었다.“1008, 너희 집 도어락 비밀번호가 내 생일이야?”의심하던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고 그는 구지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에 빠졌다.아버지 앞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절대 용납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구지윤이 한번 결혼한 적이 없었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주먹을 꼭 쥔 채, 구지윤은 곽경천의 시선을 느끼며 작게 대답했다.“육선재의 생일이에요.”곽경천은 순간 멍해졌다.그는 자신과 육선재가 같은 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 사실 때문에 둘의 관계가 다른 가문의 자제들보다 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곽경천은 구지윤을 그렇게 몰아붙인 사람이 육선재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특히나 육선재가 먼저 구지윤에게 결혼을 청했을 때, 곽경천은 오히려 그를 부러워하기까지 했었다.자신은 절대 육선재처럼 대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의 가문에서는 결혼이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가문 간의 관계를 위한 도구였다.하지만 곽경천은 이제서야 육선재가 그저 인간 말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더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학대받았던 구지윤이 아직도 육선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그의 눈빛은 구지윤의 어깨에 남은 상처 자국으로 옮겨지며 점점 어두워졌다.“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도망갔어? 응?”구지윤은 그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느끼고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그녀는 다른 여성들처럼 자신감 있게 등을 드러낼 수 없었다.등에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고개를 젓던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사랑하지 않았어요.”곽경천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그 말이 주는 기쁨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구지윤은 곧바로 덧붙였다.“그저 2년 동안 그 사람의 아내로 있었기 때문에... 익숙해졌을 뿐이에요.”육선재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몸이 오싹해지듯이 구지윤은 단지 그와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사랑이 아닌, 육선재의 앞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09화

    실내는 너무 조용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베개 위에 남아 있는 은은한 나무 향기만이 곽경천이 잠시 머물렀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구지윤은 천천히 몸을 돌려 두 손을 곽경천이 자고 간 자리 위에 놓았다.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맞잡자 마치 그를 껴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바닥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며 그녀의 마음속에 깊은 슬픔이 서서히 번져갔다.그리고 그 슬픔은 결국 온몸을 휘감았다.과거의 기억들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마치 헤어나올 수 없는 차가운 바닷물이 그녀의 기억을 뒤덮은 것처럼 말이다.어린 시절, 구지윤에게도 한때는 평온한 삶이 있었다.부유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던 중산층 가정에서 그녀는 자랐다.아버지 구철욱은 대기업의 임원이었고 어머니 홍승희도 같은 회사의 재무팀에서 일하고 있었다.구지윤이 태어난 후, 홍승희는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할까 걱정되어 베이비 시터를 고용했다.당시 부모님의 능력으로는 월급이 몇백만 원은 되는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는 것이 전혀 부담이 없었다.하지만 좋은 날들은 오래가지 않았다.홍승희는 회사의 한 고위 임원에게 눈에 띄었고 그 임원은 자주 일 핑계를 대며 그녀에게 추근댔다.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관계라 홍승희는 그가 상사인 탓에 어쩔 수 없이 그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애써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러나 그 고위 임원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결국 그녀를 회식 자리에 불러 술에 취하게 한 후에 나쁜 의도를 드러냈다.홍승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화장실에서 구철욱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철욱은 즉시 달려와 그 임원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사건은 크게 번졌고 구철욱은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호텔에 CCTV가 없었고, 그 임원과 홍승희는 상하 관계라는 이유로 그런 회식 자리가 흔하다고 여겨졌다.또한 그 임원이 실질적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홍승희가 크게 다친 것도 아니었기에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회사 측은 구철욱과 홍승희를 따로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0화

    일찍 철이 든 구지윤은 엄마가 일할 때 항상 조용히 옆에서 기다렸다.그러던 어느 날, 구철욱이 술에 취해 강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구철욱이 죽은 후, 홍승희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구철욱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술로 모든 돈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다.홍승희는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아 빚을 갚아야 했고 구철욱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임원은 또다시 홍승희에게 각가지 방법으로 괴롭힘을 가했다.그 무렵, 홍승희는 윤혜인의 어머니 윤아름이 줬던 명함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윤아름은 홍승희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는 그녀와 구지윤을 데리고 해외로 나가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구지윤이 윤혜인과 함께 놀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그렇게 구지윤은 윤아름과 함께 곽씨 가문에 들어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곽씨 가문의 가족들은 매우 친절했고 구지윤과 어린 윤혜인은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구지윤은 그때만 해도 이렇게 행복한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어느 날, 윤혜인의 어머니와 동생이 갑자기 실종되면서 곽씨 가문은 큰 슬픔에 빠졌다.홍승희는 윤아름이 데리고 온 사람이었기 때문에 곽경천의 아버지인 곽진명은 그녀를 곁에 두고 계속 일하도록 배려해 주었다.홍승희는 일을 성실하게 처리했고 곽진명은 그녀에게 집안의 일부 관리 업무를 맡겼다.구지윤과 홍승희는 곽씨 가문에서 관리인으로 살았고 곽경천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실종 이후로 한동안 무기력하게 지냈다.그러다 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곽경천은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강해지기로 결심했다.그래야 어머니와 여동생을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구지윤은 어릴 때부터 곽경천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눈에 곽경천은 하늘의 신처럼 위대한 존재였다.게다가 그는 구지윤과 홍승희에게도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하지만 당시 구지윤은 곽경천이 자신을 여동생처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1화

    실내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희미한 조명이 구지윤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곽경천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오랜만에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그는 몸을 조금 일으켜 구지윤과 눈높이를 맞춘 후,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지윤이 정말 많이 컸네. 하지만 나는 네가 네 인생을 살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길 바라. 남을 위해 짐을 지지 말고, 알겠지?”구지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 흐릿한 조명 속에서 보이는 곽경천의 잘생긴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심쿵이라는 감정을 일으켰다.곽경천은 다시 의자에 기대며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서 가서 자. 안 그러면 키 안 큰다?”하지만 구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서다가 다시 돌아보았다.단추가 풀려 있는 셔츠 사이로 그의 목과 쇄골이 살짝 보였다.어떤 모습이든 곽경천은 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구지윤은 자신이 곽경천을 향한 단순한 존경심이 변질되고 있음을 깨달았다.점점 더 탐욕스러운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구지윤은 자꾸만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책 속에 숨겨둔 별 모양의 종이가 떨어졌고 그것을 홍승희가 발견했다.종이에 적힌 내용을 본 홍승희는 크게 놀랐고 처음으로 구지윤과 심하게 다투었다.감정이 폭발한 홍승희는 결국 구지윤에게 뺨을 때렸다.홍승희는 자신이 한 행동에 놀랐고 그 후로는 더 큰 슬픔이 밀려왔다.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그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지윤아, 우리는 깨끗하게 살아야 해. 사모님께서 우리를 거둬주셨고 회장님께서 네 학비를 내주셨잖니. 절대 곽경천 도련님께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면 안 돼. 알겠니?”얼굴이 붉게 부어오른 채 구지윤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왜 안 돼요? 전 그저 도련님을 좋아하는 건데... 좋아하는 게 왜 잘못이에요?”그러자 홍승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힘겹게 말했다.“너 우리 집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2화

    남자의 손이 어깨로 스윽 올라오자 구지윤은 두려워서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도망쳤다.그러나 그 레게 머리를 한 남자는 구지윤을 놓친 게 아쉬운지 뒤에서 한참을 쫓아다녔다.구지윤은 마침 빈방 하나에 들어가 몸을 숨기며 겨우 그를 따돌릴 수 있었다.그 방의 인테리어를 살펴보던 구지윤은 문득 생각났다.구지윤에게 답장할 수 없을 떄, 곽경천은 종종 이곳 룸과 같은 사진을 찍어 보내며 손님을 접대 중이라고 알리곤 했었다.그리고 이 방은 그가 보냈던 사진 속의 방과 매우 비슷했다.구지윤은 문틈을 하나씩 기울여 살피기 시작했다.그러다 마침내 한 방에서 소파에 누워 있는 곽경천을 발견했다.구지윤은 서둘러 문을 밀고 들어갔다.정말로 누군가와 싸웠는지 그의 이마가 찢어져 있었다.구지윤은 불안에 떨며 곽경천의 손을 붙잡았다.“도련님, 도련님 왜 이러세요...”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경천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술에 취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는지 그의 눈은 충혈되고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마치 사탄의 눈처럼 보였다.구지윤은 놀라서 얼어붙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도련님...”그러나 곽경천은 구지윤을 거칠게 끌어당겨 그녀를 자신의 품에 파묻었다.곧이어 뜨거운 그의 입술이 구지윤의 입술에 내려앉았다.구지윤은 크게 눈을 뜬 채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18살이 될 때까지 그녀는 남자의 손도 한 번 잡아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키스 같은 건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하지만 구지윤은 곽경천이 술에 취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가 지금 하는 행동은 술의 영향이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홍승희의 말이 떠올라 황급히 손을 뻗어 그를 밀며 웅얼거렸다.“도련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그제야 곽경천은 살짝 몸을 떼고 찡그린 얼굴로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구지윤?”그가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숨이 가빠진 채 구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도련님, 우리 집으로 가요.”정신을 차렸는지 아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3화

    곽경천의 의심 섞인 질문에 구지윤은 그의 어두운 눈빛 속에서 짙은 짜증을 읽을 수 있었다.‘내가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걸까?’구지윤은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천둥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충격적이었다.곽경천은 분명 이 상황을 처리하는 데 몹시 곤란해하고 있었고 특히나 동생처럼 여기던 사람이 옆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그런 감정은 끔찍하다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였다.그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도대체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구지윤은 그의 날카로운 말투에 움찔하며 당황한 기색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그래서 손가락을 꼬며 작게 말했다.“도련님께서 다치셨다고 해서 기사 아저씨께 부탁드려서 왔어요...”구지윤의 이런 말을 듣고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는지 곽경천의 목소리는 한층 더 거칠어졌다.“구지윤, 너 대체 생각이 있긴 해? 술집 같은 데는 네가 마음대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이름 석 자를 똑바로 부르며 곽경천이 구지윤을 꾸짖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말투와 표정은 매우 엄격했다.구지윤은 이미 홍승희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 몰래 이곳까지 찾아온 터였다.이토록 끔찍한 첫 경험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곽경천에게까지 차갑게 혼나고 있었다.그 순간 구지윤의 가슴은 마치 쓴 감귤처럼 쓰라렸다.곽경천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그의 존재는 구지윤에게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서러움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구지윤은 고개를 숙여 조용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곽경천은 그녀의 희고 가녀린 목에 남은 붉은 자국들을 보며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그와 마주쳐서 다행이지 만약 다른 낯선 사람이 구지윤을 건드렸다면 어땠을까?그러나 자신과의 일이었다고 해도 상황이 좋을 리 없었다. 그는 인간관계를 다루는 데 능숙했지만 이런 종류의 상황은 완전히 초보였다.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였다.구지윤이 허락 없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였다.원래 그는 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4화

    곽경천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기사에게 전화를 걸고는 일어나 구지윤에게 걸치라고 소파 위에 놓인 자신의 재킷을 던졌다.그 행동은 마치 시혜를 베푸는 듯했다.누가 봐도 그는 이 상황을 처리하고 싶지 않은, 원치 않은 문제로 여기고 있었다.구지윤은 마치 영혼 없는 사람처럼 그 재킷을 걸쳤다. 이 상황에서 그녀는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맨몸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어머니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절대로 품어선 안 될 꿈을 꾸었던 것이다.곽경천의 말이 정확했다.구지윤에게는 그를 걱정할 자격조차 없었다.그는 곽씨 가문의 도련님이었고 그녀는 도우미의 딸일 뿐이었다. 그들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그녀는 주인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표현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더 나아가 그를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곽경천의 냉정한 말이 구지윤을 깨어나게 했다.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구지윤은 누구인가?그녀는 그저 곽씨 가문에서 하인 방에 기거하는 도우미의 딸에 불과했다.곽경천은 고개를 돌려 구지윤을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고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모든 기운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구지윤이 걸친 곽경천의 재킷은 너무 커서 무릎까지 내려왔고 그 안에서 그녀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약해 보였다.평소에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언제나 반짝이는 별과 달을 품고 있는 듯했지만 지금은 얼음물에 담긴 것처럼 빛을 잃고 차가워 보였다.그와 함께 완전히 생기를 잃은 구지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곽경천은 잠시 멈칫하며 방금 자신의 말투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생각했다.그녀는 이제 겨우 18살에 불과했다. 그저 남녀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나이였을 뿐이다.조심스럽게 곽경천이 말을 꺼냈다.“오늘 일은...”“괜찮아요.”구지윤은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저 정말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115화

    기사 아저씨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대답했다.“알겠어.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네.”그때 곽경천이 다가오며 구지윤이 여전히 차가운 바람 속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왜 아직 차에 안 타고 있어?”그러자 구지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도련님 먼저 타세요.”곽경천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가 차에 오르자 구지윤은 조수석 옆으로 돌아갔지만 문을 열기 직전 곽경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뒤로 와서 앉아.”구지윤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뒷좌석으로 올라탔고 최대한 작게 몸을 움츠리며 한쪽 끝에 앉았다.온몸의 찢어지는 통증 때문에 그녀는 허리를 구부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곽경천은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불편해?”평소처럼 곽경천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려 했지만 구지윤은 재빨리 창문 쪽으로 몸을 더 멀리 옮기며 거리를 두었다.그렇게 손이 허공에 머무르다 그는 결국 천천히 거두었다.“괜찮아요.”구지윤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곽경천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밤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그에게 약을 탄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차는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고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머리도 아프고 숙취도 남아서인지 곽경천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잠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구지윤은 재킷 속에 몸을 숨기고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줄이려 애쓰며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않으려 했다.차가 한 약국 앞을 지나갈 때 곽경천이 차를 멈추라고 지시했다.기사는 급히 물었다.“도련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무엇을 사 오면 될까요?”그러자 곽경천은 구지윤을 한 번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제가 다녀오겠습니다.”뒤이어 차에서 내려 약국에 들어갔다 다시 차에 오를 때, 곽경천의 손에는 약 봉투가 들려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구지윤은 도망치듯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곽경천이 그녀를

최신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92화

    이지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생트집을 잡았다.그러나 사건의 경과를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무작정 소원을 내연녀라고 생각했다.하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시간이라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소원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이를 본 이지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오늘 기필코 소원을 짓밟으리라 다짐했다.그녀는 계속하여 소리쳤다.“빈말이 아니라 여러분은 남편 간수 잘해요. 한동네 살다가는 이 여자한테 홀랑 넘어갈 수도 있다니까요?”소원은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말조심하세요. 계속 이런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고소할 겁니다.”소원이 경찰에게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꺼내자 이지애는 단번에 핸드폰을 쳐냈다. 소원을 모욕하려고 찾아온 만큼 절대 경찰에 신고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핸드폰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화가 났던 소원은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그 타이밍에 이지애가 손을 들어 그녀를 밀었다.계단에 서 있던 소원은 이지애가 손을 뻗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허리를 짚었다.그러고선 자신의 본능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다,‘내가 왜... 이 아이를 신경 쓰는 거지...’그녀의 몸은 이미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 같다.비록 소원은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지만 본능이 이렇게 행동하게끔 그녀를 이끌었다.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건 타고난 모성애일까?이지애는 죄책감을 느낀 소원이 겁을 먹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착각했다.아니나 다를까 더욱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다.“다들 봤죠? 겁먹었잖아요. 잘못한 게 있으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겠어요?”“이 여우 같은 계집애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세요. 남자에 환장한 X이에요. 천박한 것.”주변 사람들은 이지애의 말을 듣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우리 동네에 이런 여자가 살고 있었다니. 정말 몰랐네요.”“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저 예쁜 얼굴로 이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남의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91화

    “우리 연주를 그렇게 괴롭혀놓고 뻔뻔스럽게 무슨 일로 왔냐는 말이 나와요?”이지애의 눈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밝은 미래를 가진 그녀의 딸은 구타 사건으로 인해 30일간의 구속 처분을 받았고 석방된 후에는 정신 상태에 큰 타격을 입었다.소문에 의하면 구치소 동기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늘 부잣집 아가씨로만 살아왔던 육연주는 구치소에 들어가도 모든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만한 태도로 구치소에 수감됐던 사람들을 무시했고 그러다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말았다.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혔다는 소문도 있다. 밖에서는 경호원들이 지켜주니 제멋대로 행동해도 아무 일 없었지만 그 버릇을 구치소에서 똑같이 하는 건 죽자고 덤비는 거나 다름없다.게다가 이미 구치소에 갇힌 사람들인데 누굴 무서워하겠는가?육경한은 이것만으로도 부족한지 기어코 육연주를 해외로 보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이지애는 모든 자원이 국내에 있다. 해외로 나간다해서 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세상에 그녀보다 잘나가고 부유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해외로 나가면 횡포를 부릴 수 없을 텐데, 엄마와 딸이 억울함을 당하고만 있겠는가?하지만 육경한은 그녀의 하소연을 듣지 않았고 이혼도 혼자서 처리했다. 서한 그룹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곧바로 두 사람의 이혼을 결정지었다.게다가 이혼했음에도 육연주를 해외로 보냈기에 이지애는 분노와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모든 걸 알게 된 소원은 그저 이 상황이 우스웠다.그녀는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말은 똑바로 하세요. 그쪽 따님이 저를 때렸습니다. 제가 괴롭혔다면 구치소에 들어간 사람은 저였겠죠.”이지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우리 사위한테 치근덕거리지 않았다면 연주가 때렸겠어요? 당신 같은 인간은 맞아도 싸죠. 얌치도 모르는 천박한 주제에.”소원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증거 있으세요? 제가 서현재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90화

    소원이 이야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다.육경한은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요양원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자세히 말해줬다.전화를 끊은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임신중절 약은 소원의 손에 있었기에 그녀가 약을 먹는 순간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봐 걱정하고 불안했다.비록 위협을 한 거나 다름없지만 그 속에 섞인 두려움을 소원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고 고작 이런 협박으로 겁을 먹을 사람이 아니다.어쩌면 더욱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을 수 있다.이러한 끈기가 보통 사람에게 나타난다면 분명 빛날 테지만, 소원은 육경한에 의해 거듭 억압당해 모든 자존심이 닳아 없어졌다.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오래전에 시들었을 텐데도 소원은 여전히 끝없는 황야에서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애를 썼다.육경한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 후회하냐고 물으면 당연하다고 대답할 것이다.그러니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지키는것 뿐이다.한편으로는 전미영이 빨리 호전되길 원했다. 어머님의 호전이 소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마음을 약하게 하고 이로부터 순진한 아이를 지켜내길 바랐다....소원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 한 통을 받았다.지난번 진찰받았던 의사였다.“선생님, 안녕하세요.”“소원 씨, 오늘 병원에 안 오셔서 연락드린 거예요. 3일 동안 약 다 먹으면 병원에 검사받으러 오셔야 해요. 안 그러면 위험할 거예요.”의사의 말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환자를 마주하는데 약을 먹은 후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집에서 출혈이 발생하고서야 병원으로 찾아온 환자들이 많았다.“아직 약을 안 먹었어요.”소원이 말했다.“안 먹었다면 다행이네요.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하셨나요?”의사가 물었다.“아직 고민 중이에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민 중이라면 검사를 받는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9화

    전미영은 소원의 행동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녀는 소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점점 멍한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그러고는 손을 들어 소원의 복부를 가리키며 여전히 더듬거리는 어조로 말했다.“꽃이야... 꽃이 피었어...”소원은 회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고 셔츠 단추에는 하얀 데이지 한송이가 있었다.전미영은 복부 쪽 단추에 달린 작은 데이지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꽃...”소원의 외침은 간병인의 주의를 끌었고, 부랴부랴 달려온 간병인은 말하는 진미영을 보고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그들은 재빨리 달려가 요양원의 의사를 모셔 왔다.소원은 의사가 살펴볼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피했고 진찰을 마친 의사가 다가와 소식을 전했다.“검사를 해보니 어머니는 여전히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금 그런 반응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좋은 징조이기도 합니다. 만약 간단한 요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말한다면 점점 더 좋아질 겁니다.”“다만 기억 회복에 대해서는 강요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때때로 많은 기억이 환자의 뇌에 부담을 주어 과부하를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환자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겠죠?”의사는 전미영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해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남아있는 기억 또한 부담일 수 있으니 간단하게 사는 게 최고다.소원은 검사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이 상태가 만신창이된 그들에게는 최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전미영이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만족했다.병실로 돌아온 소원은 전미영의 곁을 지켰지만 처음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점심시간이 되었다. 소원은 전미영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병실에서 나왔다.밖으로 나온 그녀는 택시를 잡는 게 아니라 주차된 은색의 승용차로 향했다.창문을 두드리자 차장이 내려가며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는데 다름 아닌 육경한이다.육경한은 놀라지 않은듯하다. 비서의 차를 타고 있다 한들 예민하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8화

    택시의 이동 동선만 봐도 육경한은 소원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챘다.그는 소원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앞차와의 거리를 넓혔다.역시나 택시는 소원의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 앞에 멈췄고 소원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갔다.자주 온 덕분에 간병인들은 소원을 알아봤다.“소원 씨, 오셨어요?”소원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요즘 달라진 건 없죠?”이건 소원이 매번 묻는 말인데, 그녀는 자신이 오지 않은 2, 3일 동안 엄마한테 일어난 일들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하지만 다른 일을 전부 다 제쳐두고 요양원에서 매일 엄마를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참 답답했다.엄마를 집으로 모셔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육경한이 절대 동의할 리가 없다. 게다가 요양원은 의료기기가 잘 갖춰져 있어 치료에 굉장히 도움이 됐기에 집에 이런 걸 놓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간병인이 입을 열었다.“전이랑 비슷해요. 달라진 건 없어요.”매번 똑같은 답이 돌아왔지만 소원은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사실 변화가 없다는 게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차라리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살고 있는 게 행복일 수도 있다. 만약 깨어난다면 무너져가는 이 현실을 직면할 수 있을까?가능하다면 그녀는 혼자서 이 고통을 감당하고 싶었다.소원은 간병인에게 물었다.“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당연하죠. 전 밖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벨 눌러요.”“알겠습니다.”간병인이 나간 후 소원은 침대에 앉아 창틀에 놓인 꽃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엄마를 보고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엄마...”전미영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눈을 깜빡이며 꽃들을 바라봤다.소원은 더 가까이 다가가 앉아 전미영을 껴안았다.“엄마...”하고 싶은 말이 수천 개가 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이곳에서 모든 감정과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게 소원에게는 일종의 해방이었다.“엄마... 엄마...”소원은 결국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7화

    육경한은 소원이라는 독에 중독되어 이미 구제 불능의 상태였다.게다가 무곡산의 일은 소원이 그에게 아무 사랑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생사가 달린 일이라도 다시 육경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소원의 눈빛은 이미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줬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알려줬다.육경한은 처음으로 삶에 대한 절망감을 처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소원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싶었는데 하느님은 장난이라도 치는 듯 아이를 선물해 줬다.육경한은 소원의 변호사에게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사진이 없었다면 아마 평생 알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진실을 알게 된 순간 죽어있던 심장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왔고 어쩌면 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기쁨 뒤에는 늘 그렇듯 두려움이 찾아온다.육경한은 아이를 놓칠까 봐 두려웠고 그 아이가 유진과 같은 고통을 겪을까 봐 무서웠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두려워했다.손에 넣기도 전에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를 고통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소원이 죽었다고 생각하던 그때의 경험한 두려움이 다시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육경한은 간절히 기도했다.‘소원아, 제발 잔인한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한테 기회를 줘. 나한테도...’저녁.퇴근한 육경한은 소원이네 집 아래에 머물며 위층에 켜져 있는 불빛을 오랫동안 바라봤다.밤새 잠을 못 잤고 낮에 눈을 붙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3일 연속으로 육경한은 감시를 붙여놓은 사람을 찾아와 교대했다. 지금껏 보고받은 행적을 보면 지난 3일 동안 소원은 유난히 조용했고 누굴 만나기는커녕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아무도 모르겠지만 지난 3일간의 육경한의 삶은 그저 고문이었다. 마치 칼이 머리 위에 걸려있는 듯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몰랐고 매 순간 목숨을 걸고 답을 기다리고 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6화

    생각할 것도 없다. 소원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으니까..하지만 육경한이 제안한 조건은 너무 유혹적이었다.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진을 만날 수도 있고 아이와 함께 살 수도 있다.거절하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조건을 생각해 보면 삼킬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어길 일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만 있다면 임신 중에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아. 내가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인 건 알지?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지만...”육경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아이를 지우겠다고 고집한다면 우리에게 협상의 여지는 없어. 너도 알다시피 소송을 진행하면 아이랑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이 줄어들 거야.”소원은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육경한은 그의 스타일대로 이런 결정을 내렸고 의외는 아니었다.“육경한, 아이를 꼭 낳으라고 하는 이유는 뭐야?”육경한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너랑 나 사이의 아이니까.”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육경한이 이번에는 명확하게 의견을 표현했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그는 임신한 소원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이러면 예전에 유진을 임신했을 때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이 달래질 것만 같았다.그러니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꼭 이 아이를 지키고 싶었다.자리에서 일어난 소원은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생각해 보고 연락할게.”그 말에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황 비서가 데려다 줄거야.”육경한은 소원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아무리 걱정되어도 직접 배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었다.물론 거절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지금 이 순간 소원은 혼자 있고 싶었다.“괜찮아. 혼자 가면 돼.”육경한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강요하지 않고 그녀의 뜻을 따랐다.“그래.”소원이 문에 다다르자 육경한도 그녀를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5화

    “육경한, 네가 무슨 자격으로 안 된다고 하는 거야? 잘 들어, 난 반드시 아이를 지울 거야.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24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날 감시할 수 있어? 내가 화장실에 갈 때는 어떻게 할 건데? 난 아이를 지울 방법이 백 가지나 있어. 아이로 날 통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소원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제발 현실을 직시해. 아이를 낳으라고? 네가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육경한은 얼굴에 붉은 손바닥 자국이 있었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매우 차분했다.“소원아, 네가 내 곁을 떠나고 싶은 건 알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이혼하지 않을 거야. 이혼하고 나서도 유진을 보고 싶으면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낳으면 돼.”차분한 표정과 달리 육경한의 마음속에는 이미 거센 파도가 일었다.원래는 정말 놓아주려고 했다. 이준혁의 말대로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지 않는 여자를 억지로 묶어두는 건 두 사람에게 모두 상처가 되니까.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런 충동적인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하지만... 소원이 아이를 임신한 이상 절대 지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육경한은 알고 있다. 이 아이가 그들의 관계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소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꿈 깨라고.”다만 절대로 이 아이를 낳지 않을 거란 확신은 변함없었다.육경한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비서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시켰다.“흥분하지 말고 진정해. 일단 이것 좀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소원은 위에 적힌 조항을 주의 깊게 읽어봤다.아이를 낳으면 두 사람은 혼인 관계를 끊을 수 있다. 그 후에도 양측 모두 아이를 만날 수 있으며 누구랑 함께 살지는 아이의 결정에 맡긴다고 되어 있었다.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조건이다. 육경한은 강제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아닌 함께 키우는 것을 택했다.그러나 상대는 교활함이 몸에 배인 육경한이니 소원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거지? 협박하려고 이러는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784화

    이건 소원에 대한 시험이다. 육경한은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아이를 볼 수 있게 허락한 것도 이미 큰 양보를 한 거나 다름없다.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만약 소원이 결혼할 계획이 있다면 아이를 못 보게 할 생각이었다.그는 절대 다른 남자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그리고...육경한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고 소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건에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그렇게 할게.”어차피 처음부터 재혼할 생각이 없었다. 육경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 결혼에 대한 마음은 진작에 접었다.육경한은 흔쾌히 승낙하는 소원을 보고선 마음속의 불편한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이때 소원이 물었다.“또 있어?”“응.”육경한은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청천벽력 같은 그의 말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들었는데 그녀의 눈빛은 초점이 약간 흐려져 있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육경한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소원의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 아이를 낳으라고.”“나... 임신 안 했어.”누군가가 가슴을 움켜쥐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던 소원은 힘겹게 답했다.유진은 처음부터 우연이었다. 아이를 지킬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는데 기적처럼 꿋꿋하게 살아남았다.하지만 그 뒤로 육경한과 얽혔고 그들의 관계는 소원을 극도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아이가 그녀의 약점이라는 걸 육경한은 분명히 알고 있다.그러므로 소원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육경한은 진료 기록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고선 소원에게 다가가 두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소원아, 난 아무런 조사 없이 막연한 추측으로 단정 짓는 사람이 아니야.”그 위에는 소원의 검사 기록과 약 처방 기록이 명확하게 쓰여있었다.육경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아이를 지우는 건 절대 안 돼.”그는 진료 기록을 받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