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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1장

검정색 정장을 쫙 빼입은 연재준이 걸어들어온다. 옆엔 서정희와 하정은에 보디가드들까지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뽐내면서 말이다!다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연재준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나.잠시 넋이 나가있던 부회장은 습관적으로 웃음을 지어보인다.“연 사장님......연 사장님이 여긴 어떻게!”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에게로 옮겨간다. 숨이 턱 막힌 유월영은 갑작스런 연재준의 등장에 놀라워하는 눈치다.매서운 서안의 겨울에 검정색 가죽 장갑을 끼고 온 연재준이 장갑을 벗으며 입을 연다.“여기 무용 연출 있다고 해서 와 봤는데 부회장님 괜찮으면 같이 봐도 될까요?”“그럼요! 연 사장님도 보러 오셨어요?”부회장의 머리가 재빨리 굴러간다. 연재준이 유월영을 해고시키고 업계에서 압살시켜버린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연재준이 여길 온걸 보면 일부러 더 유월영을 무안하게 하려고 온게 아닐까?“테이블 위에서 춤 추는건 본 적이 없어서 흥미가 생겨서요.”부회장이 고개를 돌려 유월영을 바라본다.“연 사장님도 흥미 있으시다는데 유 비서가 안 출 이유가 없지 않나?”서정희가 연재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럽게 입을 연다.“재준 씨......”연재준은 손을 탁 올리며 서정희더러 말하지 말라는 손짓을 한다.분명 목이 다 나았지만 갑자기 또 찌를듯한 고통이 몰려오는 유월영이다.유월영이 연재준을 바라본다. 연재준은 손에 장갑을 들고는 하정은이 건네준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앉아 연출을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다.박수진이 비웃어보인다.“유 비서! 얼른 안 추고 뭐해!”연재준이 피식 웃어보인다.“내가 유 비서더러 추라고 했나?”박수진이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부회장 역시 잘못 들은 사람마냥 경직돼 버리더니 어버버거리며 말한다.“그......그럼 연 사장님은 누가 추셨으면 하세요?”큰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을 연재준이 쭉 훑어본다.연재준의 시선에 긴장한 사람들이 다들 몸에 힘을 바짝 주고 있는다.“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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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장

연재준의 등장으로 두 그룹의 계약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흘러갔고 30분이 채 되지도 않아 계약은 성황리에 종료됐다.유월영이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한다.“연 사장님과 부회장님을 위해 한 잔 바칩니다. 추후 세 그룹이 함께 협력하는 날도 있길 바랍니다.”연재준이 술잔을 가볍게 들어 톡하고 테이블을 친다.이제 유월영이 할 일은 더이상 없다. 부회장은 연재준의 심기를 건드릴까 온갖 방법으로 아첨을 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준은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마침 여유가 생긴김에 화장실에 다녀오려는 유월영이다.화장실에서 나오니 거울 앞에 서있는 서정희가 보인다.유월영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씻고는 종이로 물기를 닦아낸뒤 다시 룸으로 걸음을 옮긴다.이때 등 뒤에서 서정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월영 씨, 저한테 고맙다는 인사 안 한것 같은데요.”“네? 어떤 점에 고마워해야 할까요?”“서울에 있을때 재준 씨가 서궁 데려가서 논 적 있었거든요. 서안에도 비슷한 곳 있다면서 오늘 여기 데리고 온거예요. 방금 저희 룸에 왔던 매니저가 우연히 부회장님이랑 SK그룹 사람들도 있다고 하길래 월영 씨인줄 알고 재준 씨도 데리고 갔던거예요.”서정희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덧붙인다.“우리가 왔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월영 씨 오늘 어쩔 뻔했어요?”유월영은 그들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서정희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된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왜 나타났는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여기서 중점은 연재준이 서정희 때문에 여길 왔고 서정희 때문에 유월영의 룸에 왔으며 서정희 때문에 나서서 유월영을 도와줬다는거다.지난번 하 사모님 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이다.“그런거군요. 그럼 아가씨께도 감사인사 드리죠.”잡티 하나 없는 정교한 메이크업의 서정희가 우월감을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본 유월영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린다.“허나 연 사장님더러 절 도와주게 하고 싶었는지, 수모 당하는걸 보게 하고 싶었는진 아가씨 본인이 더 잘 아시겠죠.”“월영 씨, 방금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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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장

식사 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동료들, 그리고 연재준 무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눈치 빠른 매니저가 재빨리 입을 연다.“유 비서님, 저희는 지하철 끊기기 전에 가봐야 해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회사에 봬요.”“내일 뵙겠습니다.”세 사람이 떠난 뒤, 하정은이 연재준의 차를 가지고 온다.보디가드가 연재준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할때, 유월영이 한 발 앞서 다가가 문을 열어준다.“사장님.”해운에 있을 당시, 연재준이 외출을 할때마다 차문을 대신 열어주던 그때와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이 알수 없는 짙은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본다.방금 화장실에서의 일이 생각난 서정희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보지만 연재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내 서정희는 달려가 유월영을 밀쳐내며 말한다.“아가씨는 왜 동료들이랑 같이 안 가요? 택시 잡아서 갈거면 얼른 가요. 더 늦으면 안 되니까.”“연 사장님 저랑 같은 호텔 아니세요? 태워다 주시면 안 될까요?”서정희가 다급히 연재준을 올려다보며 말한다.“재준 씨, 이틀동안 잘 자지도 못했다면서 차라리 오늘은 저랑 힐튼 가요......”“짐이 다 이 쪽에 있어서.”그 말인 즉 서정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소리다.연재준이 보디가드에게 지시를 내린다.“서이사 힐튼까지 데려다 줘.”“서이사님, 가시죠.”“......”지금 소란을 피워봤자 연재준은 함께 가지 않을뿐더러 더우기 자신에게 반감이 생길거라는걸 잘 알고있는 서정희다.서정희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그래요, 짐 다 정리하고 내일은 제가 찾아갈게요. 조식 같이 먹어요.”연재준은 그렇다 할 대답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다.이윽고 유월영의 곁을 지날때 서정희는 전엔 보지 못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본다.역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허나 유월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연재준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차 문 앞으로 걸어가더니 유월영을 보며 코웃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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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장

그럴리가.유월영은 일단 당장이라도 연재준의 무릎에서 내려오고만 싶었다.허나 그는 손을 뻗어 유월영의 허리를 꽉 감싸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또다시 연재준에게서 나는 익숙한 향기를 맡고 입술을 꽉 깨무는 유월영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의 무릎에서 일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두 사람의 소리없는 힘 겨루기가 계속되는데.이따끔씩 들썩이는 차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있는데다 이상하게 움직이기까지 하는 차 때문에 벨보이가 천천히 다가와 창문을 두드린다.“저기요......”썬팅이 안 된 창문으로 인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고 거기엔 웬 남녀가 붙어있는게 보인다.연재준이 죽일듯한 눈빛으로 벨보이를 노려보자 그는 이내 뒷걸음질 치며 소리친다.“죄, 죄송합니다!”유월영은 그 틈을 타 연재준의 손을 뿌리치고는 재빨리 옆에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귀가 빨개진 채 반대편에 바짝 붙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유월영을 붙잡진 않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한다.“출발해.”하정은이 차에 시동을 걸었고 유월영은 안전벨트를 한 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한숨을 푹 내쉰다.“저 사장님 이용한거 아니에요. 방금 아가씨랑 충분히 같이 가시거나 제 동승 거절할수도 있으셨잖아요. 선택은 사장님이 해놓고 책임은 제가 지는건 도리에 어긋나죠.”맞는 말 아닌가?그저 문만 열어주면서 같이 데리고 가줄수 있겠냐고 물었을 뿐인데. 싫다면 얼마든지 거절할수 있었던 연재준이다.누가 거절하지 말랬나?그래놓고는 이용이니 뭐니.연재준이 고개를 돌려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유월영의 얼굴을 쳐다본다.미인은 이목구비보다도 골격이 더 중요하다고 했던가. 유월영은 바로 그런 타고난 골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마부터 콧대, 다시 콧대부터 턱까지. 그 옆선은 마치 정성들여 빚은 조각상마냥 날렵하고 차가운 느낌을 줬다.“억지 참 잘 부려.”연재준은 섬섬옥수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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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장

하정은이 움직이지 않는 앞차에 클락션을 울리는 동시에 연재준도 정신을 차린다.유월영은 아직도 쌀쌀맞은 목소리로 항변한다.“일부러 연애편지 얘기 꺼내서 사생활 문란한 사람으로 만든거잖아요.”연재준이 터무니없는 얘길 꺼낸다.“진짜 연애편지 책상 넘치게 받았어?”“그럼 뭐 어때서요. 걔네들이 저 학교 오기도 전에 책상에 집어넣어서 거절할 방법도 없었다고요.”이것도 잘못한건가?“열어는 봤어?”“아니요.”“그럼 버렸어?”알 수 없는 연재준의 의도에 유월영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아니요. 보지도 버리지도 않았어요.”내용이 뭔지는 흥미도 없었지만 상대가 건네준 성의를 버리는건 너무 무례한 행동 아닌가.유월영은 자신이 편지들을 전부 봉투 하나에 싸서 보관해뒀던 기억이 난다.쇼핑몰을 지나가는 사이 연재준의 표정이 전광판 조명에 비쳐 흐릿해진다.“어떻게 처리했는데.”“집 갖고 갔었는데 어디다 뒀는진 기억 안 나요.”빚더미에 나앉게 됐을때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언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연재준은 한참을 유월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버린다.왜 갑자기 연애편지에는 관심 주는거지? 포인트는 서정희가 박수진을 총알받이로 앞세워 유월영에게 함정을 팠다는건데.설마 서정희를 뭐라고 하는게 싫어 일부러 화제를 전환시키는걸까?그 생각에 유월영이 입꼬리를 씰룩거린다.“그래도 서 아가씨가 사장님 데리고 와서 저 도와준건 여전히 감사히 여겨야죠.”물론 서정희는 의도는 도와주려는게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연재준은 유월영을 흘겨보며 넥타이를 풀어헤친다. 어딘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이다.연재준의 기분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음대로 해라지 뭐.하정은은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더니 더는 보기 불편한 장면이 없을거라고 여겼는지 가림막을 내리며 물었다.“사장님, 호텔로 모실까요?”유월영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입을 연다.“비서님, 제가 위치 보내드릴테니까 거기고 가주세요.”하정은은 백미러를 통해 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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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장

유월영이 눈쌀을 찌푸린다. 고등학교때부터 빚졌다니? 저게 무슨 헛소리지?같은 고등학교는 맞지만 유월영은 연재준의 이름만 들어봤을뿐 얼굴도 몇번 보지 못했는데 뭘 빚졌다는거지?또 시작이다. 저 말 끝마다 빚졌다는 소리.유월영이 생각하는 그대로 연재준에게 물으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버드나무잎같이 얇고 날카로운 입꼬리를 스윽 올리던 연재준은 이내 유월영의 손을 놓아주고는 옆 차문으로 내려버린다.이윽고 유월영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는데.“......”이상하다 참.한숨을 푹 쉬고 뒤따라가는 유월영이다.밤 열시가 넘는 시간인지라 음식점엔 손님이 별로 없었고 연재준이 구석 자리에 잡자 웨이터가 바로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연재준은 메뉴판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말한다.“다 올려요.”메뉴 전부 다 주문하겠다는 뜻이다.뒤따라오던 유월영이 그 소리를 듣고는 이내 미간을 찌푸린다.“이런 식으로 복수하는거에요?”“왜? 아까워?”“너무 낭비인것 같아서 그래요.”셋이서 전 메뉴를 어찌 다 먹는단 말인가.연재준이 따뜻한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웨이터에게 말한다.“몇개만 올리고 남은건 청소부 분들한테 줘요.”연재준에게 저런 선한 구석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 유월영이다.일부러 유월영을 골탕 먹이려는거겠지.더이상 싸울 힘도 없는 유월영이다. 하고 싶은대로 하라지 뭐.정산 깨끗이 하기 싫은건 본인 일이고 어차피 유월영이 그를 여기로 데리고 와 대접하는건 빚지기 싫어서다.연재준은 유월영이 미간에 감추고 있는 귀찮음과 짜증을 읽어냈는지 별안간 입을 연다.“서정희 때문에 도와준건지, 너 때문에 도와준건지 곁에 3년이나 있었으면서도 눈치 못 채?”경직된 유월영이 고개를 번쩍 든다. 남자의 어둡고 싸늘한 두 눈은 유월영을 매서운 기세로 추궁하고 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유월영이다.그러니까 저 말은......별장에서든 룸에서든을 막론하고 전부 유월영을 도와주고 싶어 직접 나선거다?유월영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이내 그날 밤 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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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장

연재준이 콧방귀를 뀌며 유월영이 건네주는 숟가락을 건네받는다. 유월영이 들어오는 하정은에게 손을 흔든다.“비서님, 여기요.”하정은이 미소를 띠며 다가와 합석한다.더이상 사적인 애기를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연재준은 그 뒤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다.강뚝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음식점은 식사를 마친 밤 열한시가 되니 인적이 드물다.차에 올라타려는 유월영을 연재준이 붙잡는다.“산책해, 소화가 할겸.”“사장님 늦었어요. 내일 출근해야 돼요 저.”연재준이 유월영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준다.“밥 먹고 바로 자는게 어딨어?” “사장님 참 아는게 많네요.” 유월영은 손을 빼냈지만 결국 어쩔수 없이 그를 따라 나선다.연재준은 쌀쌀한 밤바람에 기다란 옷깃을 흩날리며 마침 그림자로 유월영을 가린다.“괴상하게 시비 거는거야, 아니면 사랑 싸움하는거야?”“......”윤영훈의 입에 발린 대화 스킬은 아직 습득 못했나 보지? 대답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유월영이다 .가뜩이나 서늘한 밤바람은 강뚝에선 더욱 살을 에일듯이 추워졌다. 겉옷을 입고 있었지만 여전히 추웠던 유월영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꽉 움켜쥔다. 이런 날씨에 웬 말도 안 되는 산책이야?그러자 연재준이 끼고 있던 검정색 가죽 장갑을 건네준다.유월영은 이를 덜덜 떨며 장갑을 받아쥔다.장갑은 유월영보다 한참이나 컸고 안에 있는 보들보들한 털엔 아직도 연재준이 온기가 남아있어 마치 그의 손을 잡고있는것 같은 느낌을 줬다.그 느낌에 깜짝 놀라 장갑을 냅다 빼버리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은 어느새 저기 앞에까지 가 전화를 받고 있었고 통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유월영의 귓가에 흘러들어온다.“......서안 출장, 무슨 일인데. 조 비서가 도와줄거야.보기 드문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걸 보면 한 사람 밖에 없다.백유진이다.뭔가 형체가 보일듯 말듯하던 생각이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고개를 숙이고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떨어져 걷는 유월영이다.휴대폰을 꺼내든 유월영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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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장

유월영이 다녔던 고등학교는 신주시에서도 1, 2위 자리를 다투는, 명문가 자제들이 다니기로 소문난 “귀족학교”였다. 유월영이 그런 학교에 들어갈수 있었던거 우월한 성적때문이었다.명문가 도련님, 아가씨들로 넘쳐나던 학교는 오늘 어느 도련님이 운동기재들을 새로 바꿔준다거나, 내일 어느 아가씨가 음악교실 피아노를 새로 바꿔준다거나 하며 풍요로운 생활력을 과시하기가 일쑤였다.한때는 매일마다 누군가 전교생에게 디저트와 고급 버블티를 대접한 적도 있었다.쓸데없는 물건보단 먹는게 무엇보다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던 유월영은 그들의 대접에 감사해 했고 방과시간 내내 배가 두둑해져 있곤 했다.근데 대접했던게 누구였더라?“뭘 봐? 안 탈거야?”이내 시선을 거두고 차에 올라타는 유월영이다.내내 말이 없던 두 사람이지만 호텔에 거의 다 와갈때 연재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겨우 밥 한끼로 우리 사이 얽히고 설킨 감정들 무마시키려 하지마.”역시 그를 속일순 없었던 유월영이 모른척 묻는다.“사장님 아직도 뭘 바라세요?”연재준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커녕 동문서답을 한다.“그 뒤론 왜 안 췄어? 전문적으론 안 배웠고?”배우긴 했었다.꽤나 입에 풀칠할만했던 형편에 부모님은 세 자매의 취미라면 발벗고 나서 기회를 마련해주시곤 했었다.대답없는 유월영을 연재준이 놀려댄다.“현시우 떠나서?”깜짝 놀란 유월영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를 바라본다.서안의 겨울이 제 아무리 춥다 한들 연재준의 얼음장같은 눈빛보단 덜 추울거다.“걔 없어서 안 춘다고 네가 그랬던것 같은데?”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더라면 상대가 줄곧 유월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이상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연재준이라면 타깃은 다름아닌 현시우로 바뀐다.앞서 영안에서 진작에 연재준이 현시우에게 적대심을 품고있다는걸 눈치챘었지만 한참이나 지난 사소한 일들 하나에까지 이렇게 집착하고 있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유월영이 한참 뜸을 들이다 설명한다.“고2, 고3에선 공부압력때문에 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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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장

하긴, 서정희가 이틀밤 제대로 못 잔다면서 뭐라고 했으니까 다른데로 옮겨갔겠지.신주 연씨 가문 외동아들에 해운 그룹 사장이 그럴리가 없을테니까.혼자 방으로 올라간 유월영은 쉬지도 않고 바로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간다.따뜻한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하루동안 쌓인 피로를 쓸어내려간다. 오늘 하루 일들을 되돌아보는 유월영의 머릿속엔 유독 묘하고 이상한 연재준에 생각이 더욱 피어오른다.뭔가 진짜 달라진 느낌?그 생각에 얼굴에 물을 확 끼얹어버리는 유월영이다.자연속 많은 동물들은 사냥감을 유혹해 단번에 숨통을 끊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기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호수 아래의 악어나 숲 속의 호랑이처럼.거기에 좋은 인간으로 위장한 연재준도 포함해서 말이다.유월영은 연재준이 자신을 돌려세우기 위해 미끼를 던지고 있다고 여겼다.고등학교에 관한 거의 모든 기억을 끄집어 내봤지만 거기에 연재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안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나아갔다간 그의 수에 넘어갈지도 모른다.유월영은 몸을 깨끗이 닦고 잠옷을 입은채 밖으로 나간다.......사실 유월영의 추측이 틀렸다.어젯밤 연재준은 늦게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여전히 유월영이 있는 그 호텔에 묵었다.이튿날 아침, 뷔페로 가려는 그에게 하정은이 말한다.“유 비서님 오늘 급히 출근하셔서 종신 그룹 협력건 정리하시느라 아침도 거르셨습니다.”그 말에 갈 생각이 없어진 연재준은 바로 1층으로 내려가버린다.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앞엔 서정희가 서있는다.서정희가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뽐내며 미소를 지어보인다.“재준 씨, 마침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침은 먹었어요?”“아니.”연재준이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서정희가 그의 뒤를 곧장 따라간다.“나도 안 먹었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밖에서 먹어요. 호텔 조식은 별로라서 입에도 안 맞았을거잖아요.”연재준이 덤덤하게 말한다.“입에 안 맞을것도 없어.”“하긴, 재준 씨 가끔은 입맛 완전히 바뀔때도 있더라고요. 우리 만날때 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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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장

유월영은 이틑날 오전 부회장과 약속이 잡혀있다.이른 아침부터 출근한 유월영은 법무부, 상업부와 간단한 회의를 마치곤 함께 부회장을 맞아주러 1층으로 내려간다.부회장이 더이상 계약을 파기시킬 엄두는 없다는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체면을 깎아내릴순 없으니 말이다.마침 부회장의 차량을 보고 다가가려고 하는 찰나.“유월영 씨!”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서정희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유월영이다.“할 말 있으니까 어디서 얘기라도 하죠?”“서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고객님 만나야해서 시간이 없네요.”“둘이서 얘기하기 싫으면 다 보는 앞에서 얘기할까요?”부회장은 어느새 차에서 내려있었고 유월영은 어쩔수 없이 매니저에게 먼저 가서 맞아주라는 눈짓을 해보인다. “아가씨, 첫째로 전 출근중이니 업무엔 방해되지 말아주시고요. 둘째로 저희 사이에 사적으로 나눌 대화 같은건 없으니 가주시죠.”말을 끝내고 부회장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유월영의 손을 서정희가 덥석 잡아버린다!“유월영 씨! 일 저질러놓고 발뺌하는게 어딨어요! 나 신주로 쫓아버리라고 재준 씨한테 말한거 당신이잖아!”연재준때문에 찾아왔다는걸 진작에 알고 있은 유월영이 덤덤하게 말한다.“아가씨, 둘 사이 문제는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원망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 사장님한테 가서 말씀하셔야......”“나랑 재준씨 고등학교때 만났던거도 알고! 이번에 재회하려고 들어온것도 알면서! 일부러 우리 사이 이간질한거잖아!”서정희가 갑작스레 언성을 높인다.가뜩이나 인파가 많은 회사 입구에서 그렇게 고함을 질러더니 다들 자연스레 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워낙 가정교육도 잘 받았거니와 공사구분이 확실하던 서정희는 연재준의 매정한 거절에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주위를 둘러보던 유월영은 더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싶었는지 매니저를 부른다.“매니저님, 일단 아가씨 데리고 접대실로 올라가지죠. 전 얼른 따라갈게요.”매니저가 서정희를 붙잡아 끌어당긴다.“아가씨......”서정희가 그녀의 손을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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