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서정희가 이틀밤 제대로 못 잔다면서 뭐라고 했으니까 다른데로 옮겨갔겠지.신주 연씨 가문 외동아들에 해운 그룹 사장이 그럴리가 없을테니까.혼자 방으로 올라간 유월영은 쉬지도 않고 바로 옷을 가지고 욕실로 들어간다.따뜻한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하루동안 쌓인 피로를 쓸어내려간다. 오늘 하루 일들을 되돌아보는 유월영의 머릿속엔 유독 묘하고 이상한 연재준에 생각이 더욱 피어오른다.뭔가 진짜 달라진 느낌?그 생각에 얼굴에 물을 확 끼얹어버리는 유월영이다.자연속 많은 동물들은 사냥감을 유혹해 단번에 숨통을 끊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위장하기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호수 아래의 악어나 숲 속의 호랑이처럼.거기에 좋은 인간으로 위장한 연재준도 포함해서 말이다.유월영은 연재준이 자신을 돌려세우기 위해 미끼를 던지고 있다고 여겼다.고등학교에 관한 거의 모든 기억을 끄집어 내봤지만 거기에 연재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안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나아갔다간 그의 수에 넘어갈지도 모른다.유월영은 몸을 깨끗이 닦고 잠옷을 입은채 밖으로 나간다.......사실 유월영의 추측이 틀렸다.어젯밤 연재준은 늦게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여전히 유월영이 있는 그 호텔에 묵었다.이튿날 아침, 뷔페로 가려는 그에게 하정은이 말한다.“유 비서님 오늘 급히 출근하셔서 종신 그룹 협력건 정리하시느라 아침도 거르셨습니다.”그 말에 갈 생각이 없어진 연재준은 바로 1층으로 내려가버린다.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앞엔 서정희가 서있는다.서정희가 이국적인 이목구비를 뽐내며 미소를 지어보인다.“재준 씨, 마침 올라가려고 했는데. 아침은 먹었어요?”“아니.”연재준이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서정희가 그의 뒤를 곧장 따라간다.“나도 안 먹었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 밖에서 먹어요. 호텔 조식은 별로라서 입에도 안 맞았을거잖아요.”연재준이 덤덤하게 말한다.“입에 안 맞을것도 없어.”“하긴, 재준 씨 가끔은 입맛 완전히 바뀔때도 있더라고요. 우리 만날때 길거리
유월영은 이틑날 오전 부회장과 약속이 잡혀있다.이른 아침부터 출근한 유월영은 법무부, 상업부와 간단한 회의를 마치곤 함께 부회장을 맞아주러 1층으로 내려간다.부회장이 더이상 계약을 파기시킬 엄두는 없다는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체면을 깎아내릴순 없으니 말이다.마침 부회장의 차량을 보고 다가가려고 하는 찰나.“유월영 씨!”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서정희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유월영이다.“할 말 있으니까 어디서 얘기라도 하죠?”“서 아가씨,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고객님 만나야해서 시간이 없네요.”“둘이서 얘기하기 싫으면 다 보는 앞에서 얘기할까요?”부회장은 어느새 차에서 내려있었고 유월영은 어쩔수 없이 매니저에게 먼저 가서 맞아주라는 눈짓을 해보인다. “아가씨, 첫째로 전 출근중이니 업무엔 방해되지 말아주시고요. 둘째로 저희 사이에 사적으로 나눌 대화 같은건 없으니 가주시죠.”말을 끝내고 부회장에게로 다시 돌아가려는 유월영의 손을 서정희가 덥석 잡아버린다!“유월영 씨! 일 저질러놓고 발뺌하는게 어딨어요! 나 신주로 쫓아버리라고 재준 씨한테 말한거 당신이잖아!”연재준때문에 찾아왔다는걸 진작에 알고 있은 유월영이 덤덤하게 말한다.“아가씨, 둘 사이 문제는 저랑은 상관없습니다. 원망할 사람은 따로 있으니 사장님한테 가서 말씀하셔야......”“나랑 재준씨 고등학교때 만났던거도 알고! 이번에 재회하려고 들어온것도 알면서! 일부러 우리 사이 이간질한거잖아!”서정희가 갑작스레 언성을 높인다.가뜩이나 인파가 많은 회사 입구에서 그렇게 고함을 질러더니 다들 자연스레 둘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워낙 가정교육도 잘 받았거니와 공사구분이 확실하던 서정희는 연재준의 매정한 거절에 이미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주위를 둘러보던 유월영은 더는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싶었는지 매니저를 부른다.“매니저님, 일단 아가씨 데리고 접대실로 올라가지죠. 전 얼른 따라갈게요.”매니저가 서정희를 붙잡아 끌어당긴다.“아가씨......”서정희가 그녀의 손을 딱
“......제가 계속 협상해서 빠른 시일내로 사인 받아내겠습니다.”할수 있는 약속이 이것밖에 없는 유월영이다.신현우가 잠시 유월영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하루 빨리 해내요.”“네.”뒤돌아 나가려는 유월영의 뒤통수에 신현우가 한마디 더 보탠다.“이번달 보너스는 없어요.”’“......”속으로 서정희를 미친년이라고 욕해대는 유월영이다.사무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가서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몇년동안 한번도 보너스를 깎인적도 없거니와 이번달은 SK그룹에 입사한 첫 달인데 계약도 못 따낸건 물론이오, 회사의 가십거리로 등극했으니 앞으로의 길이 순탄할리가 없었다!겨우 진정을 시킨채 목을 축이려 하지만 보온병은 텅 비어있었고 어쩔수 없이 탕비실로 걸음을 옮기는 유월영이다.자고로 탕비실, 화장실은 수군수군 가십을 떨기 가장 좋은 곳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탕비실로 다가가니 두 동료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방금 그 분 해운 서대리님 맞지? 대리님이 거짓말 할리는 없지 않나?”“그러니까 그 말은 유 비서님이 해운에서 나온게 연 사장님이랑 헤어져서다?”“헤어졌다고? 그건 남자친구 한테나 쓰는 말이지. 연 사장님은 여자친구라고 공개했던 사람이 없다고 들었는데?”“그럼 설마 공개적으로 알려지진 않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건가?”“박수진이 그랬잖아. 신씨 가문 넷째 도련님 추천으로 바로 들어온거라고. 거기다가 윤 사장님까지. 쯧쯧, 우리 수석 비서님 쉽지 않으시겠네~”“......”윤영훈이 집쩍댔을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해왔던 유월영이지만 역시나였다.유월영은 또다시 도마에 오르는걸 막기 위해 탕비실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한참 뒤, 유월영이 연재준에게 문자를 보낸다.“사장님, 사장님 사람들 잘 관리하세요. 서대리 다시 한번 여기 와서 소란 피우면 신고할겁니다.”답장이 없는 연재준 대신 윤영훈의 메시지가 튀어나온다.“유 비서, 오늘 점심식사 어때요? 마침 유 비서 회사 근처라.”잠시 고민하던 유월영이
윤영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당연하지, 내 동생인데.”“오늘 한 말 잊지 마.”이내 서정희는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리고 윤영훈은 화가 나면서도 어이 없었는지 웃음을 터뜨린다. 누가 서정희를 괴롭힐수 있기라도 할까?이모부, 이모 사이의 보물 같은 외동딸인데, 그런 살점과도 같은 딸을 감히 누가 생각없이 괴롭힐수 있단 말인가.......퇴근 뒤, 유월영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지하철 역으로 걸어간다.조서희가 요즘 일은 어떻냐며 메시지를 보내왔던거다.기분이 별로였던 유월영이 그녀에게 오늘 일들을 하소연한다. 한 성깔하는 조서희는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서정희를 신랄하게 욕해대더니 이내 이런 결론을 내린다.“연재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제정신이 아닌것 같아.”이를테면 백유진이나 서정희나......어?갑자기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 조서희가 다급히 입을 막는다.“읍, 넌 빼고.”“나 뺄 필요 없어. 나도 전엔 정상은 아니었지 뭐.”“젊었을때 쓰레기 같은 남자 안 만나는 여자들이 어딨냐. 넌 이미 빠져나왔으니까 포함시키면 안 되지.”유월영도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이내 코너를 돌때 갑자기 앞을 막아선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에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꽉 움켜쥐며 경계심을 곤두세우는 유월영이다.허나 그들은 그저 길을 물으려는 행인같다.“아, 안녕하세요. 길 좀 물을게요. 영안 빌딩 이 근처에 있는거 맞아요?”유월영이 그들의 휴대폰에 켜져있는 지도를 들여다본다.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도로 못 찾으시겠어요?”“지도 보고 온 건데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네요.”금방 서안에 온 유월영 역시 알리가 없었다.“다른 분들한테 물어보시죠.”남자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이민다.“그럼 아가씨가 좀 봐줘요. 어느쪽으로 가야돼요?”유월영의 그의 휴대폰 지도를 터치한다.“보행자 모드로 바꾸면 화살표 뜰거예요. 그거 보시면서 따라가면 돼요.”“아!
유월영이 무뚝뚝하게 말한다.“사장님, 전 지하철 시간 맞춰야 해서요. 먼저 가겠습니다.”연재준은 유월영을 막아서지 않는다. 허나 겨우 몇미터 가지도 못한채 발목을 잡아끄는 경적소리에 의해 결국 멈춰서 복잡하고 짜증 섞인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유월여이다.연재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가로등 불빛 아래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뒤에서 경적소리를 울려대던 차주는 똑같은 숫자 배열로만 이루어진 값비싼 앞차 번호판을 보고는 연재준이 쉽게 건드릴만한 사람이 아니란걸 눈치챈것 같다.이를 꽉 깨문 유월영이 결국 차에 올라탄다.문이 닫히자 기사가 묻는다.“사장님, 어디로 모실까요?”“너한테 묻잖아.”유월영은 어쩔수 없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 기사의 네비게이션에 입력해준다.“하 비서님은요?”“너한테 시비 건 사람 신주 데려다주러 갔어.”연재준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사과하려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지.”......하정은이 서정희를 찾아낸 곳은 다름 아닌 바였다.서정희는 벌써 두 세병은 동낸듯 취기가 잔뜩 올라와있다.“아가씨.”“응?”서정희가 반쯤 풀린 눈으로 하정은을 바라본다.“하 비서네요. 하 비서가 여긴 웬 일로? 재준 씨가 보낸거예요?”“네, 서안에서의 업무는 끝나셨으니 저더러 오늘 밤으로 신주 데려다 주시랍니다.”“서안을 떠나라? 참나......”서정희가 몸을 비틀대며 일어난다.“나 안 가! 왜 내가 유월영한테 자리 내줘야 하는데? 싫다고!”“아가씨, 사장님 성격 아시잖아요. 하란대로 안 하는거 제일 싫어하십니다.”서정희가 또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오늘 밤에 꼭 가야 돼요?”“네.”“근데 내일 무슨 날인지 알아요?”하정은이 고개를 저어보이자 서정희가 대답한다.“내일은 내 생일이라고.”잠시 주춤하는 하정은이다.“미리 생일 축하드립니다.”서정희가 고개를 들고 입술을 꽉 깨물며 하정은에게 묻는다.“생일만 보내고 다시 가면 안 돼요? 오빠가 말은
이 매니저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어젯밤 친구들과 바에서 놀다가 갑자기 음악이 끊기고 조명이 밝아지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는거다.일상적인 도박이나 마약 불시 점검을 하러 온줄 알았지만 유독 한 방 앞에만 사람들이 가득 둘러싸서는 경찰들이 한 여자를 데리고 나갔단다.술에 취해 몹쓸 짓을 당했다는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채 옷으로 머리가 덮여져 있어 얼굴을 보아낼수가 없었다.하지만 이 매니저는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는 단번에 오전에 행패를 부리러 온 서정희가 입고있던 옷임을 알아차렸다.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제법 놀라는 유월영이다.서정희와의 묘한 대치와 신경전이 싫증나긴 했지만 단 한번도 이런 일이 생기라고 빈적은 없는데......게다가 하필 어젯밤?연재준이 어젯밤에 서정희를 서안으로 돌려보낸다고 하지 않았나?샤브샤브집에서 연재준이 무심결에 내뱉었던 “마음대로 하라고 해”라는 말이 떠오른다.그러니까 그 연락 뒤에 저런 일을 당했다?유월영이 이내 휴대폰을 들어 하정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서정희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네.”질문을 이어나가려는 찰나, 낯선 연락처로 누군가 연락을 해온다.“여보세요, 누구시죠?”“안녕하십니까, 서안 경찰서입니다. 혹시 유월영 아가씨 맞으십니까?”“......”유월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이 없는 창가 쪽으로 가서야 입을 연다.“네, 맞습니다만.”경찰이 묻는다.“아가씨, 서정희라는 분 아십니까?”“네, 아는데 무슨 일이시죠?”“어제 사고가 좀 있어서요. 오늘 서로 와서 수사에 협조 좀 해주시겠습니까?”유월영이 미간을 찌푸린다.“서정희와는 안면만 있지 친하지도 않습니다......무슨 일 생겼죠? 저한테서 뭘 알아내시려는 겁니까?”“시간 내서 한 번 내주시죠. 언제 퇴근하십니까?”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건 국민으로서의 응당한 의무다.유월영이 시계를 내려다 본다.“일곱시 쯤에 끝나서 건너갈게요.”“그럽시다.”별다른 말없이 끊는 경찰에 유월영은 그저 관례적인 조사를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유월영이 그 중 두 장을 앞으로 내밀며 말한다.“이 두 사람 낯이 익습니다. 어젯밤 퇴근길에 두 사람이 제 앞을 가로막고는 영광 빌딩이 근처에 있는지 물었거든요.”두 경찰관은 이내 두 남자가 길을 묻는 감시 카메라 캡쳐본을 유월영에게 보여주며 묻는다.“휴대폰 보여주면서 그냥 길만 물었습니까?”“네.”“길만 묻는데 왜 감시 카메라를 피해야 하죠?”“피한다니요?”경직돼 굳어버리는 유월영이다.“전 피한 적 없습니다. 지하철 역 가는 길에 마침 코너에서 절 가로막은겁니다. 그래서 멈춰서서 알려준것 뿐이고요. 엎어지면 코 닿을데가 사거리인데 그리 편벽하지도 않은것 같네요.” 경찰관은 별다른 말이 없다.유월영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을 이어나간다.“정말 카메라를 피할 생각이었다면 여기 찍히지도 않았겠죠? 근데 지금은 버젓이 찍혀있잖아요.”“찍히긴 했으나 뚜렷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몸을 비껴 카메라를 피하는것으로 의심되는 행동까지 보이고요.”“......”이쯤되니 강한 촉이 몰려오는 유월영이다.“이 두 남자 서정희에게 몹쓸 짓을 한거군요?”경찰관은 대답 대신 말을 돌린다.“구체적인 사건 경위는 알려드릴수 없지만 도망가는 바람에 아직 검거하진 못했습니다.”유월영이 주먹에 힘을 꽉 준다. 그들이 하는 말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유월영이 경찰관들을 직시하며 침착하게 묻는다.“두 사람과의 단순한 접촉만으로 절 의심하시는건가요? 제가 두 사람한테 사주해 서정희를 괴롭혔다고요?”안색이 점차 창백해지는 유월영이다. 어쩌다 이 일에 엮이게 된걸까......이내 유월영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강단있게 말한다.“전 그런 짓 한 적 없습니다. 두 사람은 휴대폰에 있는 지도 앱을 켜고 길을 묻고 있었을 뿐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감시 카메라 화면 확대해보시......”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 번뜩이는 유월영이다.“설마 그 각도에선 휴대폰 화면이 찍히지 않은건가요?”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카메라를 피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지.경찰관은 흥분에 겨
윤영훈 역시 유월영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하는 복잡한 심정을 지어보인다.유월영은 개의치 않고 논리정연하게 대답한다.“아가씨, 방금 그 말은 전부 제가 연재준 때문에 아가씨한테 적대심을 품었다는 말로 밖엔 안 들리네요. 허나 저희는 6개월도 훨씬 전에 정식으로 헤어졌고 전 시종일관 재회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절대요. 그러니 전 그럴만한 명분이 전혀 없는겁니다.연재준은 하정은과 경찰서로 들어오다 마침 유월영의 그 여지없인 매정한 대답을 듣고는 멈춰서 그녀를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본다.복도 끝에 마주서있던 유월영도 두 사람 뒤로 서있는 연재준과 눈을 마주치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데.허나 유월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또한 종신 그룹은 그저 잠시 계약을 미룬것 뿐이지 SK그룹과의 협력을 파기한건 아닙니다.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거죠. 그러니 아가씨가 제 계약을 망쳤다는 말 역시 틀린 말이거니와 전 거기에 대해 원한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저 기댈곳도 없는 평범한 일개 직원인 전 서씨 가문과 유씨 가문이 아가씨 뒤를 지키고 있다는것 또한 잘 압니다. 제가 얼마나 멍청해야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을까요? 논리와 부합되지 않으니 전 정말 아닙니다.”윤영훈은 사실 유월영에게 의심을 품으며 동생 관리를 잘하라는 말에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 그녀의 조리정연한 말을 듣고는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허나 서정희의 귀엔 유월영의 말들이 들어갈리가 없다.“빈틈없는 계획이라 절대 들키지 않을거라 생각하니까 무슨 일이든 다 하겠지!”이내 서정희는 윤영훈의 품에 파고들어 통곡하며 소리친다.“오빠! 쟤야, 쟤라고! 유월영이 그 남자들한테 사주했어! 돌아온지 얼마 안 돼서 충동 생긴건 유월영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쟤가 아니면 누구겠어!”어이없어 말문이 막히는 유월영이다.“정 절 물고 늘어질거라면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밝혀보죠. 법 앞에선 그 누구든 공평할거니까요.”“재회할 마음 없다면서 요즘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