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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1화

별다른 해명이 없는 연재준이다.늘 그렇다, 그는 누군가에게 해명하는 법을 모른다.2층 난간을 붙잡고 있는 그의 시선은 활짝 열려있는 대문 뒤로 펼쳐진 칠흙같은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이내 연재준은 고개를 틀어 서정희에게 말한다.“준비해둔 방으로 가서 쉬어.”“재준 씨는요?”딱히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는 그였지만 서정희는 그가 간섭받기 싫어한다는걸 잘 알고 있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제 말은 내일 아침에 사모님이 재준 씨 안 보이는거 알면 어디 갔냐고 물으실텐더 그땐 어쩌냐는거였어요.”“네가 알아서 해.”앞으로 두 발자국 내밀던 연재준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본다.“하부인은 아직 상태가 많이 불안정하니 네가 잘 말씀드려. 사모님한테 유월영이 찾은 진범에 대해 잘 말씀드리라고.”유월영이 찾은 진범이라......유월영이 본인의 힘으로 찾아낸건 맞지만 방금 하부인 앞에서 사건에 대해 분석한건 분명 그였는데.허나 그는 특별히 강조하며 유월영이 찾은 진범이라고 콕 집어 말한다.“잘 말씀드릴게요.”연재준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왔을때 유월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가 곁에 있던 하인에게 묻는다.“그 사람 택시타고 갔나?”“걸어가셨습니다. 여기는 택시가 잘 안 잡혀서요.”걸어서 갔다?이 늦은 밤에, 그것도 산길을 혼자 걸어 내려간다?연재준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바로 차에 올라탔다.아니나 다를까 100미터쯤 내려오니 비틀거리는 뒷모습이 보인다.그는 냅다 유월영의 옆으로 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추운 밤바람에 정신이 더 혼미해져 자동차 소리도 듣지 못한 유월영이 놀라서 펄쩍 뛴다.차창이 내려오고 연재준의 차가운 얼굴이 보인다.“타 빨리.”한사코 거절하는 유월영이다.“사장님한테 민폐끼치기 싫어요. 제가 알아서 택시타고 갈게요.”“여기서 택시가 잡혀?”그 말은 맞다. 택시는 커녕 위치 서비스도 되지 않는다.올라올때도 돈을 더 얹어줬으니 기사가 산길을 올라와준거지 가장 가까운 지점은 산 아래 뿐이었다.유월영은 차가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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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연재준이 쌀쌀맞은 눈빛으로 유월영을 쳐다본다.“네가 준다며?”유월영이 이를 꽉 악문다. 그러나 갑자기 풀악셀을 밟아 코너를 돌아버리는 바람에 유월영은 준비도 없이 차문에 부딪혔다가 다시 안전벨트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왔다.“......”아프진 않았지만 울화통이 치민 유월영이 실핏줄 터진 눈으로 남자를 노려본다.핸들을 쥔 연재준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더니 이내 속도를 늦추고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전엔 한 성깔하는거 왜 몰랐지? 이래도 안 된다 저래도 안 된다.”이런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다면 진짜 “넌 방법이 없다”, “널 어떻게 하면 좋겠냐”, “넌 날 너무 무안하게 만들어”같은 애정표현의 일종으로 여길테지만 그는 연재준이다.그의 말에서 묻어나오는거라곤 짜증 뿐이었다.유월영은 그런 성격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뭐든 다 억제할수 있는 사람이지만 일단 몸이 불편하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감정을 표출해낸다. 그 날 영안에서 몇끼를 굶었을때도 연재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 반박을 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랬다.유월영이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사장님도 재밌더라고요. 하 사모님이 따지고 드실때도 ‘어젯밤에 저랑 쭉 같이 있었고 그런 적 없었다’는 말 한 마디도 하기 싫으셨던걸 보면.”그런 사람이 “아가씨 도와드려야죠”라는 서정희의 말에 구구절절 입을 열다니.“지금은 또 친히 저 쫓아오셨는데 본인 행동에 괴리감이 들지도 않으세요?”“내가 그 말 안 해준것 때문에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가뜩이나 날카로운 연재준의 옆모습이 더욱 예리하고 차가워진다.“그럼 넌 왜 사모님이 물으실때 나랑 같이 있었다고 말 안 했어?”다른 사람은 다 거론해놓고 자기 이름만 쏙 빼놓고선 이제 와서 자기 탓을 한다니.“말해도 도와주지도 않을건데 뭐하러 힘을 빼요?”연재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뭐?”유월영이 간크게 또 한번 똑같은 말을 읊조린다.“제가 말해도 도와주지도 않았을거잖아요, 아니에요? 사장님은 신 교수님처럼 아무 이유없이 제 편을 들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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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누가 누굴 건드려?자길 건드렸다고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건가? 그런 법도 또 자기 마음대로 정한거겠지?뭐든 지 마음대로면서!유월영은 울화통이 치민 나머지 말도 못하고 있는다. 연재준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쓱 닦아낸다. 사람 손 못 탄 야생 고양이마냥 입술을 냅다 물어버린다니.“잘 잡아, 또 부딪히고는 내 탓마냥 째려보지 말고.”유월영은 목구멍까지 솟구친 화를 겨우 누르고 자리에 앉아 손잡이를 꽉 잡았다.연재준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그는 집주소를 묻지 않았고 유월영 역시 말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다는걸 알았으니까.겨우 손바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날들은 사실 전부 그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었다.드디어 차가 산 아래로 내려와 도로에 들어서자 연재준은 그제야 조수석에 앉은 유월영을 힐끔 쳐다본다.유월영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찔끈 감고 연신 불안정한 호흡을 하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잔뜩 찌푸린 미간은 어딘가 모르게 생각이 많아보인다.몇 번이고 곁눈질해 보던 연재준은 말 끝마다 신 교수님거리던 그녀의 말이 떠올라 다시 시선을 홱 돌려버린다.유월영은 절대 잠이 든게 아니었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이 느낌은 그 날 유람선에서 정신을 잃었을때와 똑같은 느낌을 줬다.아마 그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쓰며 쉬지도 못하고 일한 탓이겠지.호텔에 도착하자 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영혼없이 한 마디를 했다.“감사합니다 사장님.”극한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유월영은 어기적어기적 휴대폰을 꺼내 구급차를 부르려고 한다.연재준은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유월영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구급대에 주소를 말하며 정신을 판 사이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히고 마는 유월영이다.멀쩡한 사람이라면 잠시 비틀거리다 중심을 잡겠지만 중심이라는게 전혀 없었던 유월영은 그만 뒤로 넘어가고 만다.그래 뭐, 넘어가면 넘어가는거지. 어차피 구급차도 불렀는데......허나 예상했던 통증과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허리가 붙잡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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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유월영은 누가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고 이튿날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이곳은 2인실, 커튼으로 가려진 옆 침대에선 따뜻하게 주고 받는 대화 소리가 들리지만 여긴 적막이 맴돈다.연재준은 어느새 자리에 없다.아마 어젯밤에 간거겠지.신분 고귀한 연 사장님께서 밤을 새워 곁에 있어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유월영이다.서안의 아침, 쌀쌀한 겨울바람이 창문 틈으로 불어들어오자 유월영은 추위에 이불속을 파고든다.여전히 머리는 어지러웠고 고열이 빠진 몸엔 근육통이 자리잡았다.신현우가 깨있을 시간이라고 추측한 유월영은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연락을 한다.역시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는다.유월영이 기침을 하고는 입을 연다.“사장님, 하씨 가문 일은 어젯밤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그래요, 무슨 일이었는데요?”유월영은 일련의 일들을 서술하면서도 서정희와 연재준을 만난 일은 자연스레 생략했다.“이렇게 된 겁니다. 결국 다 오해였고요.”“오해면 다행이네요. 우리 두 가문은 내년이면 다시 계약 연장을 해야 할 관계인데 이번 일로 틀어지면 어쩔까 했어요.”유월영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다.“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잘 처리할게요.”“기침 하던데 어디 아파요?”“어제 열이 나서요.”“그럼 오늘은 쉬어요.”“괜찮습니다. 오전까지 링거 맞고 오후엔 미리 가서 화상회의 준비 해 놓겠습니다.”반차를 쓰겠다는 의미다.유월영같이 능력있는데도 분수를 잘 알고 절대 사생활로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직원은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직원이다.신현우도 그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그리고는 식탁에 마주앉아있는 넷째 동생을 바라보는데.그는 커피 한 모금을 홀짝 마시더니 입을 연다.“유 비서 열 때문에 병원에서 링거 맞는 중이라는데 안 가봐도 돼?”신연우는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일할때 열심히는 해도 몸은 사릴줄 아는 사람이야. 오후에 출근할수 있다는걸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닐텐데 괜히 가서 부담주긴 싫어.”전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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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장

하씨 가문 역시 아침 식사가 한창이다.하 사모님이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서정희가 하부인을 부축하며 내려오는게 보인다.어제 유월영이 생각했던 그대로 두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친구 사이가 된 듯 가까워 보였다.하 사모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시더니 이내 내색을 하지 않고 말하신다.“서 아가씨 고생하셨어요. 어젯밤 정이랑 아이들까지 케어해 주셨다면서요.”서정희는 하부인이 앉도록 자리를 내주며 웃어보인다.“사모님 별 말씀을요. 저 역시 사모님을 친할머니처럼 여기기에 이건 당연한겁니다.”그 말에 감동한 하부인은 서정희의 손을 잡으며 함께 자리에 앉았다.하 사모님이 덤덤하게 웃으시며 말한다.“듣기론 재준이는 어젯밤에 갔다던데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 보네요?”“업무 때문에 급히 가셔서 저한테 대신 사과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다음에 올땐 사모님 곁에서 잘 보살펴 드리시겠다고요.”하부인의 그녀의 손을 쓰다듬어주며 말한다.“어젯밤에 보니까 연 사장님이 아가씨 특별히 아끼시는것 같던데요. 사과 인사까지 대신 전해달라고 하는 정도면 거의 약혼녀로 생각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겠어요.”서정희가 쑥스러운듯 웃어보인다.“정연 언니.”하 사모님은 한 마디만 하신다.“대기업 사장인데 분담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이끌어 나가려니 고생이 많지. 식사나 하자.”하 사모님이 대화를 끊어버리시니 서정희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한다.식사를 마친 서정희가 잠깐 화장실에 간다.하 사모님과 하부인 두 사람만 남았을때 하 사모님이 말하신다.“정아, 서 아가씨랑 너무 가까이 지내진 마렴.”깜짝 놀란 하 부인은 이해가 되지 않는듯 되묻는다.“엄마 정희 좋아하시잖아요? 친근하고 성격도 좋던데요.”“성격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만 너무 단순해 보여서 그래.”업계에 오래도록 몸 담고 있으면서 별별 사람 다 만나본 하 사모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좋게 말하면 공감 능력 높은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둥글둥글하다는거지. 너랑은 전에 알지도 못한 사인데 겨우 하룻밤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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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장

링거를 다 맞았지만 시간은 그제야 여덟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병원에서 더는 혼자 누워있기 싫었던 유월영은 호텔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금방 이불을 걷어내려는 찰나 문 쪽에서 온 몸이 배배 꼬이는 징글징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Honey.”눈꺼풀이 펄떡펄떡 뛰며 불길한 예감이 든 유월영이 커튼을 제끼니 역시나 그건 윤영훈이 맞았다! 윤영훈도 유월영을 보더니 반달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유 비서 깼어요? 마침 잘 됐네요, 아침 챙겨왔으니까 뜨거울때 어서 먹어요.”윤영훈은 바리바리 사온 포장 봉지들을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사 봤어요. 골라서 먹어 봐요.”유월영이 굳은 채로 그를 바라본다.이상하다, 어딘가 이상하다.“사장님이 제가 있는건 어떻게 아셨어요?”신현우가 알려줬나? 근데 신현우한테는 어느 병원 몇호실에 있다는것도 언급한적이 없는데 어떻게 바로 찾아온거지?윤영훈은 아침 댓바람부터 각 잡힌 정장 차림에 꿀 떨어지는 눈빛을 하고 있다.“유 비서가 아프면 나도 아프니까 와 봤죠.”“......”전혀 농담할 기분이 아닌 유월영이 진지하게 묻는다.“사장님 대체 어떻게 아신거예요? 저 미행하세요? 감시하세요?”진짜로 화 난듯한 유월영의 표정에 윤영훈도 그제야 웃음기를 빼고 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어젯밤에 친구가 사고 때문에 응급실 왔다가 유 비서 보고 아침부터 저한테 알려줬거든요. 방금은 간호사한테 물어서 찾아온거죠. 어떻게 설명이 잘 됐을까요? 아니면 간호사랑 친구 데려와서 대질심문이라도 시켜요?”아직도 어딘가 탐탁치 않다.“친구 분은 저 어떻게 아시는데요?”윤영훈이 다리를 꼬더니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웃어댄다.“난 뭐든 정정당당하게 하는 사람이라서요. 제 친구들 다 제가 유 비서 좋아하는거 알거든요.”“......?”뭣이라??윤영훈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어간다.“내가 하루에 식사 자리에서 만나는 고객이나 친구가 몇인데요. 다들 자꾸 여자 소개시켜준다 하길래 이젠 그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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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장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에 의해 어깨가 잡혀버리는 윤영훈이다. 그리고는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다시 어깨가 홱 돌려지는데!그 바람에 비틀대던 윤영훈은 죽을 전부 옷에 떨어뜨리고 만다.몇겹인 옷 때문에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이런 낭패가 어디있나.눈을 희번득이던 윤영훈은 연재준임을 확인하더니 입꼬리는 올린채 차갑게 물었다.“연 사장, 말로 하면 되지 이건 무슨 경우예요?”“윤 사장이 어디 말로 해서 될 사람인가요.”“되죠. 왜 안 되겠어요?”윤영훈은 몇천만원짜리 겉옷을 벗어 둘둘 말더니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어젯밤엔 연 사장님이 유 비서 데려오셨다던데 감사드려요. 앞으론 예비 남자친구인 저한테 직접 연락하세요.”유월영이 옷소매를 정리하는 연재준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저 옷은 어젯밤에 입었던 옷 같은데......어제 집 안 갔었나?그럴 리가.단 일초만에 자신의 가설을 부정해버리는 유월영이다.늘 비슷한 패턴의 검정색 정장만 입고 다니는데다 어젯밤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었다.연재준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한다.“윤 사장님, ‘예비’라는 단어가 더이상 필요 없어지면 그때 다시 말씀하시죠.”“겨우 한 단어 차인데요 뭘.”연재준은 아예 유월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입만 뻐끔댈뿐 무슨 말을 할진 모르는 유월영이다.연재준 뒤엔 하정은도 함께다. 어제 별장에선 못 봤는데 서정희만 데리고 온게 아니었구나.하정은이 공손히 말한다.“윤 사장님, 방금 병원 입구에서 경찰분들이 페라리 차량 끌어가던데 번호판 보니 사장님 차 같더라고요. 지금 내려가셔서 처리 안 하셔도 될까요?”윤영훈은 하정은을 바라보며 꽤나 예의를 차린다.“괜찮아요, 끌어가게 냅두세요.”“전 세계 한정판인데다 몇십억은 될텐데 파손이라도 되면 수리비도 엄청난거 아닌가요. 사장님, 그래도 내려가 보세요.”“수리비가 없는것도 아니고. 아가씨가 걱정 안 해도 돼요.”유월영이 입을 연다.“윤 사장님, 전 괜찮으니까 얼른 차부터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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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장

산장에서의 일만 언급하면 유월영은 창문 틈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뼈가 쑤시고 시려날 정도였다.그 날 유월영은 또 한번 연재준의 자신에 대한 멸시와 매정함을 몸소 느꼈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꿈에서 연재준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것에 대한 대가라며 옷을 벗게 했고 새벽 세시에 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심장에 다시금 잠에 들지 못했다.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잃은건 바뀐 환경과 업무 스트레스도 있지만 근심이 지나쳤던것 역시 한 몫 했다.유월영이 아픈 목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그 두가지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데요?”연재준은 어젯밤보다도 창백해진 유월영의 얼굴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유월영은 안간힘을 써 손을 빼내고는 연재준에게 계좌이체를 한다.“받는거 잊지 마세요.”연재준은 여전히 말이 없다.유월영도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힘이 빠진다.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밥상 위에 있는 호빵을 먹으려고 하는 유월영이다.그때 연재준이 드디어 입을 여는데.“회사 간다며? 지금 가자, 데려다 줄테니까.”그의 말을 어기는 후과가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월영이었다. 그래, 데려다주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지 뭐.회사에라도 가면 더이상 못살게 굴지 않을테니.유월영은 호빵을 가방에 넣고는 연재준의 뒤를 따라나섰다.......병원에 온 신연우는 주차를 하기도 전에 연재준의 차에 올라타는 유월영을 보게 된다.형 앞에서는 유월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몰래 그녀를 보러 온 신연우였다.허나 유월영이 또 연재준과 함께일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차에 앉아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한참동안 연락처를 뒤지던 신연우는 오래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아낸다.“나 서울 가야 해서 그 사람 눈 여겨 볼 수가 없어. 얼른 들어와. 요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찝찝한게 네가 걱정하는 일이랑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시우가 답장을 보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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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장

박수진이 말한다.“적어도 밥 한끼는 사주셔야죠!”밥 한끼 정도야 별일 아니었으니 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전 서안이 아직 익숙치 않으니 시간 장소 정해서 알려만 줘요.”마침 오늘은 업무량도 적은데다 다들 칼퇴근이 가능했던터라 박수진이 유월영에게로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유 비서님! 회식은 오늘로 해요! 제가 동료들 다 불러뒀어요!”유월영은 더이상 열도 나지 않고 어지럼증도 사라졌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한 탓에 회식이 영 하고 싶지가 않았다.허나 기대에 가득찬 동료들의 모습에 어쩔수 없이 승낙한다.“좋아요.”그렇게 사무실 일곱명의 직원들은 두 차로 나눠 “인생은 덧없는 꿈이노라”라는 팻말이 적힌 회관 앞에 도착한다.안목이 남다른 유월영은 신주 서궁과 비해도 손색이 없는 회관을 보고는 단번에 꽤나 비싼 곳임을 알아차린다.동료들도 곁에서 혀를 끌끌 찬다.“여기......너무 비싼데? 아마 서안에서 제일 비싼 회관일걸. 룸밖엔 없다던데 룸 한 번에 최소 50만원이래.”“맞아, 게다가 과일이나 쥬스는 추가로 비용 계산한다니까 2-3개월치 월급은 나올텐데.”흠칫 놀란 유월영이 박수진을 쳐다본다.박수진은 바로 지난번 유월영더러 윤영훈을 받아주라고 부추기던 그 매니저다.박수진은 되려 당연한거 아니냐는 모양새다.“우리한텐 비싸도 유 비서님한텐 아무것도 아니죠. 수석비서시니까 연봉도 높고 보너스도 두둑한데. 그리고 유 비서님이 우리보고 알아서 정해라고 하셨잖아요. 예약금까지 냈는데 유 비서님 여기까지 와서 파토내실건 아니죠?”자존심만 내세우고 체면만 차리는 방정맞은 시기는 진작에 지난 유월영에게 이 말은 별다른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았다.“알아서 정하라고 했으면 어떤데 골라야 될지 박 매니저는 정말 생각이 없었던건가? 수준에도 맞지 않는데 데려와서 나 한번 당해봐라는 거예요 지금?”박수진이 반박한다.“요구사항 있으셨으면 쿨한척 알아서 정하라고 하지 말고 미리 말씀을 해줬어야죠. 다 예약까지 해뒀는데 이제 와서 비싸다느니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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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장

박수진은 윤영훈의 말 뜻을 눈치채고는 얼굴이 빨개져 났다.“저, 저는 일부러 난처하게 만든게 아니라 유 비서님이......”“아니라고 치죠 뭐. 근데 지금은 내가 쏘는거니까 누구한테 쏠지도 내가 정해요. 그쪽은 미안하지만 지금 먼저 가줄래요? 눈에 너무 거슬리니까.”“......”대놓고 내쫓는 윤영훈의 말에 제 아무리 뻔뻔한 박수진도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유월영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터덜터덜 자리를 떴다.유월영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윤영훈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근데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안 된다뇨. 누가 유 비서 괴롭히면 나도 그 사람 괴롭혀야지.”윤영훈이 씨익 웃으며 뒤에 있던 동료들에게 말했다.“오늘 다들 먹고 싶은거 놀고 싶은거 마음껏 해요. 유 비서가 쏘고 돈은 유 비서를 좋아하는 이 몸이 낼테니까.”“......”윤영훈은 정말이지 어딜 가나 자신이 유월영을 좋아한다는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닌다. ......“연 사장님?”고객의 말에 밖을 내다보고 있던 연재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올라간다.이윽고 밖에 있던 무리들도 안으로 들어왔고 유월영의 옆엔 역시나 윤영훈이 붙어있다.유월영은 득달같이 매달리는 윤영훈이 곁에 붙어있어도 그리 배척하는것 같지 않다.적어도 자신만큼은 아니니 말이다.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옷소매 단추를 정리한다.시선에 민감한 유월영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고 이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있는 연재준을 발견한다.흠칫 놀라는 유월영이다.회관 내부를 수놓은 은은한 금색빛 조명들은 남자의 온 몸을 감싼채 신성하고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 한층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멀끔한 이마와 베일듯한 콧대를 비추고 있는 조명 때문에 두 눈은 독수리마냥 예리하고 날카로워 보인다.그런 그의 눈빛에 유월영은 꼼짝없이 잡힌 사냥감이 된것 마냥 심장이 조여왔다.이내 연재준은 유월영에게서 눈을 떼고 마지막 남은 계단 하나를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그가 서안에서 가장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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