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에서의 일만 언급하면 유월영은 창문 틈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뼈가 쑤시고 시려날 정도였다.그 날 유월영은 또 한번 연재준의 자신에 대한 멸시와 매정함을 몸소 느꼈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꿈에서 연재준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것에 대한 대가라며 옷을 벗게 했고 새벽 세시에 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심장에 다시금 잠에 들지 못했다.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잃은건 바뀐 환경과 업무 스트레스도 있지만 근심이 지나쳤던것 역시 한 몫 했다.유월영이 아픈 목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그 두가지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데요?”연재준은 어젯밤보다도 창백해진 유월영의 얼굴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유월영은 안간힘을 써 손을 빼내고는 연재준에게 계좌이체를 한다.“받는거 잊지 마세요.”연재준은 여전히 말이 없다.유월영도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힘이 빠진다.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밥상 위에 있는 호빵을 먹으려고 하는 유월영이다.그때 연재준이 드디어 입을 여는데.“회사 간다며? 지금 가자, 데려다 줄테니까.”그의 말을 어기는 후과가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월영이었다. 그래, 데려다주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지 뭐.회사에라도 가면 더이상 못살게 굴지 않을테니.유월영은 호빵을 가방에 넣고는 연재준의 뒤를 따라나섰다.......병원에 온 신연우는 주차를 하기도 전에 연재준의 차에 올라타는 유월영을 보게 된다.형 앞에서는 유월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몰래 그녀를 보러 온 신연우였다.허나 유월영이 또 연재준과 함께일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차에 앉아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한참동안 연락처를 뒤지던 신연우는 오래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아낸다.“나 서울 가야 해서 그 사람 눈 여겨 볼 수가 없어. 얼른 들어와. 요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찝찝한게 네가 걱정하는 일이랑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시우가 답장을 보내온다.
박수진이 말한다.“적어도 밥 한끼는 사주셔야죠!”밥 한끼 정도야 별일 아니었으니 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전 서안이 아직 익숙치 않으니 시간 장소 정해서 알려만 줘요.”마침 오늘은 업무량도 적은데다 다들 칼퇴근이 가능했던터라 박수진이 유월영에게로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유 비서님! 회식은 오늘로 해요! 제가 동료들 다 불러뒀어요!”유월영은 더이상 열도 나지 않고 어지럼증도 사라졌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한 탓에 회식이 영 하고 싶지가 않았다.허나 기대에 가득찬 동료들의 모습에 어쩔수 없이 승낙한다.“좋아요.”그렇게 사무실 일곱명의 직원들은 두 차로 나눠 “인생은 덧없는 꿈이노라”라는 팻말이 적힌 회관 앞에 도착한다.안목이 남다른 유월영은 신주 서궁과 비해도 손색이 없는 회관을 보고는 단번에 꽤나 비싼 곳임을 알아차린다.동료들도 곁에서 혀를 끌끌 찬다.“여기......너무 비싼데? 아마 서안에서 제일 비싼 회관일걸. 룸밖엔 없다던데 룸 한 번에 최소 50만원이래.”“맞아, 게다가 과일이나 쥬스는 추가로 비용 계산한다니까 2-3개월치 월급은 나올텐데.”흠칫 놀란 유월영이 박수진을 쳐다본다.박수진은 바로 지난번 유월영더러 윤영훈을 받아주라고 부추기던 그 매니저다.박수진은 되려 당연한거 아니냐는 모양새다.“우리한텐 비싸도 유 비서님한텐 아무것도 아니죠. 수석비서시니까 연봉도 높고 보너스도 두둑한데. 그리고 유 비서님이 우리보고 알아서 정해라고 하셨잖아요. 예약금까지 냈는데 유 비서님 여기까지 와서 파토내실건 아니죠?”자존심만 내세우고 체면만 차리는 방정맞은 시기는 진작에 지난 유월영에게 이 말은 별다른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았다.“알아서 정하라고 했으면 어떤데 골라야 될지 박 매니저는 정말 생각이 없었던건가? 수준에도 맞지 않는데 데려와서 나 한번 당해봐라는 거예요 지금?”박수진이 반박한다.“요구사항 있으셨으면 쿨한척 알아서 정하라고 하지 말고 미리 말씀을 해줬어야죠. 다 예약까지 해뒀는데 이제 와서 비싸다느니 뭐니
박수진은 윤영훈의 말 뜻을 눈치채고는 얼굴이 빨개져 났다.“저, 저는 일부러 난처하게 만든게 아니라 유 비서님이......”“아니라고 치죠 뭐. 근데 지금은 내가 쏘는거니까 누구한테 쏠지도 내가 정해요. 그쪽은 미안하지만 지금 먼저 가줄래요? 눈에 너무 거슬리니까.”“......”대놓고 내쫓는 윤영훈의 말에 제 아무리 뻔뻔한 박수진도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유월영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터덜터덜 자리를 떴다.유월영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윤영훈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근데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안 된다뇨. 누가 유 비서 괴롭히면 나도 그 사람 괴롭혀야지.”윤영훈이 씨익 웃으며 뒤에 있던 동료들에게 말했다.“오늘 다들 먹고 싶은거 놀고 싶은거 마음껏 해요. 유 비서가 쏘고 돈은 유 비서를 좋아하는 이 몸이 낼테니까.”“......”윤영훈은 정말이지 어딜 가나 자신이 유월영을 좋아한다는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닌다. ......“연 사장님?”고객의 말에 밖을 내다보고 있던 연재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올라간다.이윽고 밖에 있던 무리들도 안으로 들어왔고 유월영의 옆엔 역시나 윤영훈이 붙어있다.유월영은 득달같이 매달리는 윤영훈이 곁에 붙어있어도 그리 배척하는것 같지 않다.적어도 자신만큼은 아니니 말이다.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옷소매 단추를 정리한다.시선에 민감한 유월영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고 이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있는 연재준을 발견한다.흠칫 놀라는 유월영이다.회관 내부를 수놓은 은은한 금색빛 조명들은 남자의 온 몸을 감싼채 신성하고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 한층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멀끔한 이마와 베일듯한 콧대를 비추고 있는 조명 때문에 두 눈은 독수리마냥 예리하고 날카로워 보인다.그런 그의 눈빛에 유월영은 꼼짝없이 잡힌 사냥감이 된것 마냥 심장이 조여왔다.이내 연재준은 유월영에게서 눈을 떼고 마지막 남은 계단 하나를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그가 서안에서 가장 유
마침 유월영의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사장님 전화시네요. 급한 일 있으신것 같은데 나가서 받고 올게요. 다들 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세요.”유월영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발코니 문을 열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윤영훈은 알수 없는 눈빛으로 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술 한 모금을 홀짝 들이킨다.밖으로 나오자 마자 알람을 끄는 유월영이다.오늘 밤이 지나면 더는 이러지 말라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윤영훈에게 말해야겠다.규모가 엄청난 발코니엔 여러가지 꽃들과 식물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었고 스탠드 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 탓에 빛이 그리 밝지 않았다.급히 룸으로 돌아가지 않고 반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기로 하는 유월영이다.생각없이 정원을 거닐던 유월영은 엄마한테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나이가 드신데다 대수술까지 하시고 나니 사실 엄마의 회복 상태는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 반응도 많이 둔감해지셔서 가끔은 유월영의 말에 한참이 지나서야 반응을 할때도 있었다.선생님과 상담도 해봤지만 선생님 역시 그렇다 할 의견을 없이 그저 곁에서 잘 보살펴 주라는 말씀만 하셨다.서안에서 출근하는 요즘은 매일마다 신주로 돌아갈 여력도 없었으니 주말에만 얼굴 보러 간 뒤 평일엔 연락으로만 대체하고 있다. 유월영이 금방 휴대폰 귀에 갖다댄 찰나, 등 뒤에서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와 그녀를 구석진 곳에 밀쳐버린다!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유월영은 그만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렸고 이내 연락도 끊겨버리고 만다.차가운 벽에 등이 닿아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은 유월영이 소리친다.“윤 사장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가뜩이나 어두운 발코인데다 구석진 곳엔 조명조차 없었으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유월영은 일시적으로 상대가 미쳐 날뛰는 윤영훈이라고 여겼던거다.남자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린다.익숙한 느낌이다. 윤영훈이 아니었다.“어쭈? 둘이 이젠 그런 사이야?”“!”유월영은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더욱 격렬히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연재준?! 네가 여기 어떻게?!
“뻥 치지 마!”유월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왜 거절 안 하냐고? 윤영훈 같은, 아니 너희들 같은 인간들이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 구겼으면 노발대발 화 안 낼까? 과연 쿨하게 날 놔줄까?”그런 사람들의 속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유월영이다.내킬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면서 잘 해주다가도 일단 체면 구겨지면 내일 당장이라도 회사생활 그만두게 만들 사람들인데.연재준이 바로 그렇지 않았던가?그게 아니었으면 오랜 고향을 떠나, 병도 호전되지 않은 엄마 곁을 떠나 신주에서 서안까지 도망쳐 왔을까?유월영의 말에 그제야 연재준의 안색이 좋아진다.“룸 값은 내가 냈어. 앞으론 돈이든, 사람이든 뭐든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연재준한테 말하라고? 둘이 무슨 사이라고?유월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기회를 틈타 연재준을 밀어냈지만 얼마 밀지도 못하고 오히려 연재준에 의해 더욱 바짝 눌려버리고 만다.유월영은 들끓는 화를 간신히 누르며 말한다.“연재준, 너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나 안 괴롭히겠다며!”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연재준이다.“내가 룸값까지 내줬는데 그게 괴롭히는거야? 그리고 너 그런 말은 누구한테서 배웠어? 윤영훈?”“그건 너고......그래 맞아, 너 지금 윤영훈 따라하는거지?”유월영은 아침 내내 들었던 의구심을 입 밖에 꺼냈고 연재준은 딱히 부정을 하지 않는다.부정을 하지 않는다?!진짜 윤영훈을 따라하는건가?!유월영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묻는다.“왜? 왜 이러는건데?”연재준은 대답 대신 유월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애기야, 빚 진건 언제 갚을래?”매번 애기야 소리를 들을때면 숨이 턱 막혀오고 심장이 조여오면서 눈 앞이 아찔해난다.남들이 말하는 “애기야”는 연인, 여자 친구, 와이프를 부르는 애칭이겠지만 연재준에게 “애기야”는 유월영을 속여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같은 것이었다.그렇다, 연재준은 유월영의 몸을 탐하고 있을뿐이다.지난번 산장에서 바램을 이루지 못해 요즘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
밤 열시가 넘은 시각, 그들은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걸 인지하고서야 겨우 뿔뿔이 흩어졌다.윤영훈은 술 한번 입에 대지 않고 누가 따라주려고 할때마다 한 마디를 했다.“이따가 유 비서 데려다 줘야 해서요.”그래서인지 거절할 명분이 없었던 유월영은 결국 윤영훈의 차로 호텔에 도착했다.윤영훈에겐 어디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허나 이 남자들은 하나같이 전부 유월영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다른 곳으로 옮길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보안도 철저하고 청소와 조식까지 포함한데다 출근도 편한 이런 가성비 좋은 호텔을 다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문득 짜증이 난다. 이 남자들만 아니었어도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하진 않았을텐데.유월영은 안전벨트를 풀고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윤 사장님.”윤영훈은 겉옷을 벗은 채 잔근육들이 이따금씩 돋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허나 이 남자는 입만 열면 순식간에 호감도가 뚝 떨어지게 하는 대단한 매력이 있다. “음? 올라가서 있다가 가라고요? 에이 됐어요. 야밤에 그러는건 좀 그렇네요. 유 비서가 그럴만한 명분이라도 주면 모를까.”이미 윤영훈의 헛소리에 면역이 생겨버린 유월영이다.“사장님, 제가 분명 몇번이고 거절했잖아요. 누굴 좋아하는지는 감히 다른 이가 간섭할수 없는 개인의 자유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제가 곤란해질수 밖에 없습니다.”“내가 유 비서 좋아하는게 유 비서를 곤란하게 만든다는거예요? 뭐가 곤란해요? 난 왜 내가 유 비서를 위해 근심거리들을 해결해준것 같지?”“사장님이 그러시니까 전 회사에서 비서 신분 뿐만이 아니라 ‘윤 사장님 여자친구’라는 딱지까지 붙어버리잖아요. 이런 일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건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윤영훈은 콘솔박스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담배 안 피기로 약속했잖아요. 이젠 사탕만 먹어요.”유월영은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거늘. 또 무슨 억지스러운걸 끼워 맞추려는건지.윤영훈은 창문을 내리고 밤바람을 맞
유월영이 묵묵부답인 사이 윤영훈은 웬 서류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말한다.“종신 그룹 자료들이에요. 잘 봐봐요.”유월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봉투를 받아쥔다.“감사합니다 윤 사장님.”“올라가서 쉬어요. 자기 전에 잊지 말고 약 챙겨먹고요. 소리 들으니까 아직도 쉰것 같던데.”유월영이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묻는다.“근데 사장님 저 거기 가는거 어떻게 아셨어요?”그 말에 윤영훈은 진지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한다.“인연줄이 길면 천리 밖에서도 알수 있죠.”냉큼 차에서 내려버리는 유월영이다.윤영훈은 그런 유월영의 뒷모습을 보며 웃는다.......이튿날, 유월영은 신현우와 밖에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극장에서 약속을 잡은 그들은 사업 얘기를 하는 동시에 극도 감상했고 극이 끝나 막이 드리울때쯤 얘기도 거의 마무리됐다.빠뜻하게 이어지는 다음 일정으로 얼른 일어나 2층으로 내려가던때, 층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하정은을 만나게 된다.하정은이 공손하게 말한다.“신 사장님, 다음 극은 저희 연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극인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보시지 않으시겠냐고 물으십니다.잠시 고민한던 신현우가 고개를 돌려 유월영에게 말한다.“유 비서는 먼저 진 차장한테 가서 좀 늦을거라고 말해줘요.”“네.”신현우는 하정은과 함께 특실로 들어가고 유월영은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1층으로 계단에서 고개를 든 유월영은 마침 2층 난간 쪽 특실에 앉아있는 연재준을 보게 되는데.그는 오늘 보기 드물게 자수가 박힌 흰색 정장을 입고는 고급스러움을 더욱 뽐내고 있었다.차 한 모금을 홀짝 하던 연재준은 이내 덤덤한 눈빛으로 유월영을 쳐다본다.어젯밤 발코니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 유월영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온 뒤에야 겨우 숨을 내뱉었다.연재준이 신현우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리없는 유월영이지만 점심 식사때문에 차로 동승하던 신현우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인사부더러 박수진한테 해고통지서 보내라고 해요.”“박 매니저 해
회사엔 직원 식당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 들어가 봤자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나 들을게 뻔하다고 생각한 유월영은 회사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한다.문을 활짝 열어놓은 식당 앞을 지나던 서정희가 우연히 안에 있는 유월영을 보게 됐던거다.“월영 씨, 여기서 만나네요.”그날 밤, 별장에서 참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서정희를 쏘아붙인 유월영이지만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닌가. 완전히 등 돌리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친한 척 할 수 있는게 바로 사회생활이다. “그러게요. 아가씨가 여긴 웬일이세요?”서정희는 자연스럽게 유월영의 반대편에 앉더니 그녀와 같은 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여기 있는 오래된 책방에 구하기 힘든 옛날 책들도 있다고 들어서 찾아보러 왔어요.”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인다.“그래서 찾으셨어요?”“아니요. 괜찮아요, 아직 연 회장님 생신까진 꽤나 남았으니까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해도 돼요.”그 말에 유월영이 잠시 주춤한다.“연 회장님 선물해 드릴거예요?”“그럼요.”서정희가 표달하고 싶었던건 연재준이 자신을 부모님께 데리고 갔을 뿐만 아니라 회장님도 꽤나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것일지도 모른다.서정희가 국수를 받아들고 일회용 젓가락을 빼들며 말한다.“어젯밤에 백 아가씨부터 쫓아내라고 하셨는데 그럴 필요 없을것 같아요.”유월영이 고개를 들고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서정희도 더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월영 씨는 모르겠지만 회장님은 재준 씨랑 백 아가씨 동의하셨다가 어떤 일 때문에 지금은 절대 동의 못하신다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둘은 가망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유월영도 의문을 감추지 않고 직접 묻는다.“무슨 일 있었는데요?”“아무튼 백 아가씨랑은 지난 관계니까 저도 신경 안 써요.”아, 서정희도 무슨 일인진 모른다.허나 자신이 알고 있는게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쿨한척을 하고 있는것 뿐이다.식사가 마무리 될 때쯤 서정희는 자신이 연재준과 고등학교 시절 만났었고 서로가 첫사랑이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