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씨 가문 역시 아침 식사가 한창이다.하 사모님이 인기척에 고개를 드니 서정희가 하부인을 부축하며 내려오는게 보인다.어제 유월영이 생각했던 그대로 두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친구 사이가 된 듯 가까워 보였다.하 사모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시더니 이내 내색을 하지 않고 말하신다.“서 아가씨 고생하셨어요. 어젯밤 정이랑 아이들까지 케어해 주셨다면서요.”서정희는 하부인이 앉도록 자리를 내주며 웃어보인다.“사모님 별 말씀을요. 저 역시 사모님을 친할머니처럼 여기기에 이건 당연한겁니다.”그 말에 감동한 하부인은 서정희의 손을 잡으며 함께 자리에 앉았다.하 사모님이 덤덤하게 웃으시며 말한다.“듣기론 재준이는 어젯밤에 갔다던데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 보네요?”“업무 때문에 급히 가셔서 저한테 대신 사과 인사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다음에 올땐 사모님 곁에서 잘 보살펴 드리시겠다고요.”하부인의 그녀의 손을 쓰다듬어주며 말한다.“어젯밤에 보니까 연 사장님이 아가씨 특별히 아끼시는것 같던데요. 사과 인사까지 대신 전해달라고 하는 정도면 거의 약혼녀로 생각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겠어요.”서정희가 쑥스러운듯 웃어보인다.“정연 언니.”하 사모님은 한 마디만 하신다.“대기업 사장인데 분담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이끌어 나가려니 고생이 많지. 식사나 하자.”하 사모님이 대화를 끊어버리시니 서정희도 더는 입을 열지 못한다.식사를 마친 서정희가 잠깐 화장실에 간다.하 사모님과 하부인 두 사람만 남았을때 하 사모님이 말하신다.“정아, 서 아가씨랑 너무 가까이 지내진 마렴.”깜짝 놀란 하 부인은 이해가 되지 않는듯 되묻는다.“엄마 정희 좋아하시잖아요? 친근하고 성격도 좋던데요.”“성격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다만 너무 단순해 보여서 그래.”업계에 오래도록 몸 담고 있으면서 별별 사람 다 만나본 하 사모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좋게 말하면 공감 능력 높은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둥글둥글하다는거지. 너랑은 전에 알지도 못한 사인데 겨우 하룻밤 만에
링거를 다 맞았지만 시간은 그제야 여덟시를 조금 넘기고 있다. 병원에서 더는 혼자 누워있기 싫었던 유월영은 호텔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는다.금방 이불을 걷어내려는 찰나 문 쪽에서 온 몸이 배배 꼬이는 징글징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Honey.”눈꺼풀이 펄떡펄떡 뛰며 불길한 예감이 든 유월영이 커튼을 제끼니 역시나 그건 윤영훈이 맞았다! 윤영훈도 유월영을 보더니 반달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유 비서 깼어요? 마침 잘 됐네요, 아침 챙겨왔으니까 뜨거울때 어서 먹어요.”윤영훈은 바리바리 사온 포장 봉지들을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사 봤어요. 골라서 먹어 봐요.”유월영이 굳은 채로 그를 바라본다.이상하다, 어딘가 이상하다.“사장님이 제가 있는건 어떻게 아셨어요?”신현우가 알려줬나? 근데 신현우한테는 어느 병원 몇호실에 있다는것도 언급한적이 없는데 어떻게 바로 찾아온거지?윤영훈은 아침 댓바람부터 각 잡힌 정장 차림에 꿀 떨어지는 눈빛을 하고 있다.“유 비서가 아프면 나도 아프니까 와 봤죠.”“......”전혀 농담할 기분이 아닌 유월영이 진지하게 묻는다.“사장님 대체 어떻게 아신거예요? 저 미행하세요? 감시하세요?”진짜로 화 난듯한 유월영의 표정에 윤영훈도 그제야 웃음기를 빼고 침대 곁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어젯밤에 친구가 사고 때문에 응급실 왔다가 유 비서 보고 아침부터 저한테 알려줬거든요. 방금은 간호사한테 물어서 찾아온거죠. 어떻게 설명이 잘 됐을까요? 아니면 간호사랑 친구 데려와서 대질심문이라도 시켜요?”아직도 어딘가 탐탁치 않다.“친구 분은 저 어떻게 아시는데요?”윤영훈이 다리를 꼬더니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웃어댄다.“난 뭐든 정정당당하게 하는 사람이라서요. 제 친구들 다 제가 유 비서 좋아하는거 알거든요.”“......?”뭣이라??윤영훈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어간다.“내가 하루에 식사 자리에서 만나는 고객이나 친구가 몇인데요. 다들 자꾸 여자 소개시켜준다 하길래 이젠 그럴 필요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에 의해 어깨가 잡혀버리는 윤영훈이다. 그리고는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다시 어깨가 홱 돌려지는데!그 바람에 비틀대던 윤영훈은 죽을 전부 옷에 떨어뜨리고 만다.몇겹인 옷 때문에 화상은 입지 않았지만 이런 낭패가 어디있나.눈을 희번득이던 윤영훈은 연재준임을 확인하더니 입꼬리는 올린채 차갑게 물었다.“연 사장, 말로 하면 되지 이건 무슨 경우예요?”“윤 사장이 어디 말로 해서 될 사람인가요.”“되죠. 왜 안 되겠어요?”윤영훈은 몇천만원짜리 겉옷을 벗어 둘둘 말더니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어젯밤엔 연 사장님이 유 비서 데려오셨다던데 감사드려요. 앞으론 예비 남자친구인 저한테 직접 연락하세요.”유월영이 옷소매를 정리하는 연재준에게 주의를 기울인다. 저 옷은 어젯밤에 입었던 옷 같은데......어제 집 안 갔었나?그럴 리가.단 일초만에 자신의 가설을 부정해버리는 유월영이다.늘 비슷한 패턴의 검정색 정장만 입고 다니는데다 어젯밤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었다.연재준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한다.“윤 사장님, ‘예비’라는 단어가 더이상 필요 없어지면 그때 다시 말씀하시죠.”“겨우 한 단어 차인데요 뭘.”연재준은 아예 유월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입만 뻐끔댈뿐 무슨 말을 할진 모르는 유월영이다.연재준 뒤엔 하정은도 함께다. 어제 별장에선 못 봤는데 서정희만 데리고 온게 아니었구나.하정은이 공손히 말한다.“윤 사장님, 방금 병원 입구에서 경찰분들이 페라리 차량 끌어가던데 번호판 보니 사장님 차 같더라고요. 지금 내려가셔서 처리 안 하셔도 될까요?”윤영훈은 하정은을 바라보며 꽤나 예의를 차린다.“괜찮아요, 끌어가게 냅두세요.”“전 세계 한정판인데다 몇십억은 될텐데 파손이라도 되면 수리비도 엄청난거 아닌가요. 사장님, 그래도 내려가 보세요.”“수리비가 없는것도 아니고. 아가씨가 걱정 안 해도 돼요.”유월영이 입을 연다.“윤 사장님, 전 괜찮으니까 얼른 차부터 확인하
산장에서의 일만 언급하면 유월영은 창문 틈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에 뼈가 쑤시고 시려날 정도였다.그 날 유월영은 또 한번 연재준의 자신에 대한 멸시와 매정함을 몸소 느꼈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기까지 했다.꿈에서 연재준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것에 대한 대가라며 옷을 벗게 했고 새벽 세시에 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심장에 다시금 잠에 들지 못했다.갑자기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잃은건 바뀐 환경과 업무 스트레스도 있지만 근심이 지나쳤던것 역시 한 몫 했다.유월영이 아픈 목으로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그 두가지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데요?”연재준은 어젯밤보다도 창백해진 유월영의 얼굴을 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는다.유월영은 안간힘을 써 손을 빼내고는 연재준에게 계좌이체를 한다.“받는거 잊지 마세요.”연재준은 여전히 말이 없다.유월영도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힘이 빠진다.꼬르륵거리는 소리에 밥상 위에 있는 호빵을 먹으려고 하는 유월영이다.그때 연재준이 드디어 입을 여는데.“회사 간다며? 지금 가자, 데려다 줄테니까.”그의 말을 어기는 후과가 어떤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유월영이었다. 그래, 데려다주고 싶으면 그러라고 하지 뭐.회사에라도 가면 더이상 못살게 굴지 않을테니.유월영은 호빵을 가방에 넣고는 연재준의 뒤를 따라나섰다.......병원에 온 신연우는 주차를 하기도 전에 연재준의 차에 올라타는 유월영을 보게 된다.형 앞에서는 유월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해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몰래 그녀를 보러 온 신연우였다.허나 유월영이 또 연재준과 함께일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차에 앉아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한참동안 연락처를 뒤지던 신연우는 오래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아낸다.“나 서울 가야 해서 그 사람 눈 여겨 볼 수가 없어. 얼른 들어와. 요즘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찝찝한게 네가 걱정하는 일이랑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시우가 답장을 보내온다.
박수진이 말한다.“적어도 밥 한끼는 사주셔야죠!”밥 한끼 정도야 별일 아니었으니 유월영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래요. 전 서안이 아직 익숙치 않으니 시간 장소 정해서 알려만 줘요.”마침 오늘은 업무량도 적은데다 다들 칼퇴근이 가능했던터라 박수진이 유월영에게로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유 비서님! 회식은 오늘로 해요! 제가 동료들 다 불러뒀어요!”유월영은 더이상 열도 나지 않고 어지럼증도 사라졌지만 목이 여전히 불편한 탓에 회식이 영 하고 싶지가 않았다.허나 기대에 가득찬 동료들의 모습에 어쩔수 없이 승낙한다.“좋아요.”그렇게 사무실 일곱명의 직원들은 두 차로 나눠 “인생은 덧없는 꿈이노라”라는 팻말이 적힌 회관 앞에 도착한다.안목이 남다른 유월영은 신주 서궁과 비해도 손색이 없는 회관을 보고는 단번에 꽤나 비싼 곳임을 알아차린다.동료들도 곁에서 혀를 끌끌 찬다.“여기......너무 비싼데? 아마 서안에서 제일 비싼 회관일걸. 룸밖엔 없다던데 룸 한 번에 최소 50만원이래.”“맞아, 게다가 과일이나 쥬스는 추가로 비용 계산한다니까 2-3개월치 월급은 나올텐데.”흠칫 놀란 유월영이 박수진을 쳐다본다.박수진은 바로 지난번 유월영더러 윤영훈을 받아주라고 부추기던 그 매니저다.박수진은 되려 당연한거 아니냐는 모양새다.“우리한텐 비싸도 유 비서님한텐 아무것도 아니죠. 수석비서시니까 연봉도 높고 보너스도 두둑한데. 그리고 유 비서님이 우리보고 알아서 정해라고 하셨잖아요. 예약금까지 냈는데 유 비서님 여기까지 와서 파토내실건 아니죠?”자존심만 내세우고 체면만 차리는 방정맞은 시기는 진작에 지난 유월영에게 이 말은 별다른 자극으로 다가오지 않았다.“알아서 정하라고 했으면 어떤데 골라야 될지 박 매니저는 정말 생각이 없었던건가? 수준에도 맞지 않는데 데려와서 나 한번 당해봐라는 거예요 지금?”박수진이 반박한다.“요구사항 있으셨으면 쿨한척 알아서 정하라고 하지 말고 미리 말씀을 해줬어야죠. 다 예약까지 해뒀는데 이제 와서 비싸다느니 뭐니
박수진은 윤영훈의 말 뜻을 눈치채고는 얼굴이 빨개져 났다.“저, 저는 일부러 난처하게 만든게 아니라 유 비서님이......”“아니라고 치죠 뭐. 근데 지금은 내가 쏘는거니까 누구한테 쏠지도 내가 정해요. 그쪽은 미안하지만 지금 먼저 가줄래요? 눈에 너무 거슬리니까.”“......”대놓고 내쫓는 윤영훈의 말에 제 아무리 뻔뻔한 박수진도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유월영에게 눈을 부라리고는 터덜터덜 자리를 떴다.유월영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윤영훈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근데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안 된다뇨. 누가 유 비서 괴롭히면 나도 그 사람 괴롭혀야지.”윤영훈이 씨익 웃으며 뒤에 있던 동료들에게 말했다.“오늘 다들 먹고 싶은거 놀고 싶은거 마음껏 해요. 유 비서가 쏘고 돈은 유 비서를 좋아하는 이 몸이 낼테니까.”“......”윤영훈은 정말이지 어딜 가나 자신이 유월영을 좋아한다는걸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닌다. ......“연 사장님?”고객의 말에 밖을 내다보고 있던 연재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2층으로 올라간다.이윽고 밖에 있던 무리들도 안으로 들어왔고 유월영의 옆엔 역시나 윤영훈이 붙어있다.유월영은 득달같이 매달리는 윤영훈이 곁에 붙어있어도 그리 배척하는것 같지 않다.적어도 자신만큼은 아니니 말이다.연재준은 시선을 거두고 옷소매 단추를 정리한다.시선에 민감한 유월영은 뭔가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고 이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있는 연재준을 발견한다.흠칫 놀라는 유월영이다.회관 내부를 수놓은 은은한 금색빛 조명들은 남자의 온 몸을 감싼채 신성하고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 한층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멀끔한 이마와 베일듯한 콧대를 비추고 있는 조명 때문에 두 눈은 독수리마냥 예리하고 날카로워 보인다.그런 그의 눈빛에 유월영은 꼼짝없이 잡힌 사냥감이 된것 마냥 심장이 조여왔다.이내 연재준은 유월영에게서 눈을 떼고 마지막 남은 계단 하나를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그가 서안에서 가장 유
마침 유월영의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사장님 전화시네요. 급한 일 있으신것 같은데 나가서 받고 올게요. 다들 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드세요.”유월영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발코니 문을 열어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윤영훈은 알수 없는 눈빛으로 유월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술 한 모금을 홀짝 들이킨다.밖으로 나오자 마자 알람을 끄는 유월영이다.오늘 밤이 지나면 더는 이러지 말라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윤영훈에게 말해야겠다.규모가 엄청난 발코니엔 여러가지 꽃들과 식물들이 빼곡이 심어져 있었고 스탠드 조명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 탓에 빛이 그리 밝지 않았다.급히 룸으로 돌아가지 않고 반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기로 하는 유월영이다.생각없이 정원을 거닐던 유월영은 엄마한테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나이가 드신데다 대수술까지 하시고 나니 사실 엄마의 회복 상태는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 반응도 많이 둔감해지셔서 가끔은 유월영의 말에 한참이 지나서야 반응을 할때도 있었다.선생님과 상담도 해봤지만 선생님 역시 그렇다 할 의견을 없이 그저 곁에서 잘 보살펴 주라는 말씀만 하셨다.서안에서 출근하는 요즘은 매일마다 신주로 돌아갈 여력도 없었으니 주말에만 얼굴 보러 간 뒤 평일엔 연락으로만 대체하고 있다. 유월영이 금방 휴대폰 귀에 갖다댄 찰나, 등 뒤에서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와 그녀를 구석진 곳에 밀쳐버린다!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던 유월영은 그만 휴대폰을 땅에 떨어뜨렸고 이내 연락도 끊겨버리고 만다.차가운 벽에 등이 닿아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은 유월영이 소리친다.“윤 사장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가뜩이나 어두운 발코인데다 구석진 곳엔 조명조차 없었으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유월영은 일시적으로 상대가 미쳐 날뛰는 윤영훈이라고 여겼던거다.남자가 풉하고 웃음을 터뜨린다.익숙한 느낌이다. 윤영훈이 아니었다.“어쭈? 둘이 이젠 그런 사이야?”“!”유월영은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더욱 격렬히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연재준?! 네가 여기 어떻게?!
“뻥 치지 마!”유월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왜 거절 안 하냐고? 윤영훈 같은, 아니 너희들 같은 인간들이 과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 구겼으면 노발대발 화 안 낼까? 과연 쿨하게 날 놔줄까?”그런 사람들의 속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유월영이다.내킬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면서 잘 해주다가도 일단 체면 구겨지면 내일 당장이라도 회사생활 그만두게 만들 사람들인데.연재준이 바로 그렇지 않았던가?그게 아니었으면 오랜 고향을 떠나, 병도 호전되지 않은 엄마 곁을 떠나 신주에서 서안까지 도망쳐 왔을까?유월영의 말에 그제야 연재준의 안색이 좋아진다.“룸 값은 내가 냈어. 앞으론 돈이든, 사람이든 뭐든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연재준한테 말하라고? 둘이 무슨 사이라고?유월영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기회를 틈타 연재준을 밀어냈지만 얼마 밀지도 못하고 오히려 연재준에 의해 더욱 바짝 눌려버리고 만다.유월영은 들끓는 화를 간신히 누르며 말한다.“연재준, 너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나 안 괴롭히겠다며!”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연재준이다.“내가 룸값까지 내줬는데 그게 괴롭히는거야? 그리고 너 그런 말은 누구한테서 배웠어? 윤영훈?”“그건 너고......그래 맞아, 너 지금 윤영훈 따라하는거지?”유월영은 아침 내내 들었던 의구심을 입 밖에 꺼냈고 연재준은 딱히 부정을 하지 않는다.부정을 하지 않는다?!진짜 윤영훈을 따라하는건가?!유월영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묻는다.“왜? 왜 이러는건데?”연재준은 대답 대신 유월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애기야, 빚 진건 언제 갚을래?”매번 애기야 소리를 들을때면 숨이 턱 막혀오고 심장이 조여오면서 눈 앞이 아찔해난다.남들이 말하는 “애기야”는 연인, 여자 친구, 와이프를 부르는 애칭이겠지만 연재준에게 “애기야”는 유월영을 속여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같은 것이었다.그렇다, 연재준은 유월영의 몸을 탐하고 있을뿐이다.지난번 산장에서 바램을 이루지 못해 요즘 이렇게 이상하게 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