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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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그는 손을 뻗어 그 가녀린 목을 움켜잡았다.이대로 숨통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컥….”유영이 고통에 신음했다.“죽고 싶어?”분노한 강이한이 으르렁거렸다.둘이 함께한 세월 동안 유영은 항상 그의 그늘 아래 살았다. 적어도 강이한은 그렇게 생각했다.자신이 오랜 세월 지켜준 여자가 자기 앞에서 다른 남자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세강 일가는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다는 얘기, 내가 안 했었나?”유영이 말이 없자 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명백한 경고였다.“나도 말했잖아. 당신이 그 시작이 되거나 나가서 죽어버리라고. 지금 나한테 당신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야.”협소한 공간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럼 내가 살아 있단 걸 느끼게 해줘야겠군.”“꺼져!”남자의 손이 옷섶을 비집고 들어오자 유영은 뺨을 날려버릴 기세로 손을 번쩍 들었다.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남자가 가녀린 손목을 꽉 움켜잡았다.전에는 항상 부드럽게 그녀를 대하던 강이한이었다.갑자기 왜 이렇게 파렴치하고 우악스럽게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유영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그녀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내 몸에 손대지 마!”“우린 아직 공식적으로 부부야.”“부부라는 자각이 있기나 해?”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면서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부부라고 주장하고 있었다.“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당신 같은 남편을 뒀는지 모르겠네! 가장 힘들 때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의 도움이나 받고 말이야.”그 말은 참고 있던 강이한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만들었다.분노한 두 사람은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한편, 청하병원.한지음은 두 눈을 가리던 붕대를 풀어 헤쳤다. 유경원이 입국한다는 소식에 안 그래도 기분이 상했던 강서희는 그 모습을 보고 부루퉁한 말투로 말했다.“지금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내가 말했잖아.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병원 관계자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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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긴 싸움 끝에 유영은 다시 오피스텔로 올라갔다.엉망이 된 얼굴로 돌아온 친구를 본 소은지의 분노가 폭발했다.“그 인간이 너 때렸어?”소은지가 부르르 떨며 물었다.유영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불도저 같이 달려들던 강이한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신의 귀뺨을 때리던 강이한의 모습을 떠올렸다.지금도 얼굴이 얼얼하고 숨통을 옥죄던 느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소은지는 다가와서 담요를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고 외투를 챙기며 말했다.“일단 병원부터 가자.”“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유영은 친구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소은지가 차분하게 말했다.“이 정도면 가정폭력으로 신고가 가능해. 우리 이혼소송에도 도움이 될 거야.”유영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곧이어 그녀는 소은지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정폭력!전에는 한 번도 가정폭력과 강이한을 연관 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그가 보인 행보를 보면 이건 가정폭력이 분명했다.과거에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믿고 이 세상에 강이한 말고 기댈 사람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그에게 모든 걸 의지했다. 그리고 강이한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바라봤다.유영은 회귀하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소은지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백지장이 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렇게까지 몰아가는 건 싫어?”유영이 말했다.“그게 아니라 좀 믿기지 않아서.”강이한에게 귀뺨을 맞고 목까지 졸렸지만 아직도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그가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았을 때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가정폭력까지 언급되다니.“그 사람은 너랑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이야. 아마 이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거야.”소은지가 말했다.마치 모든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말투였다.유영은 온몸을 바짝 긴장했다.“그건 알아….”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생에 그가 보인 행보를 보면 더 심한 건 아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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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넌 재능이 있으니까 강이한의 그늘을 벗어나더라도 잘살 수 있어. 여자는 남편에게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해.”“맞아.”유영도 그 말에 공감했다.소은지가 살아온 행보를 보면 혼자 외롭긴 해도 자유를 억압받는 적은 없었다. 유영이 그녀를 부러워하는 이유였다.시댁과의 복잡한 관계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애는 언제 갖냐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다.소은지의 유일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하고 의뢰인의 권익을 보호하는가에 있었다.휴가가 나면 해외로 보드 타러 가고 바닷가에 가서 자연을 감상했다.모든 여자가 꿈꾸지만 감히 실천할 용기가 없었던 삶을 소은지는 살고 있었다.한지음과 진영숙이 청하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걸 몰랐기에 소은지는 근처의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그들은 들어가자마자 의사에게 가정폭력 전치 진단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고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의사는 신속히 상처를 확인하고 진단서를 상세하게 끊어주었다.진단서를 건네 의사가 유영에게 말했다.“모든 게 잘되었으면 좋겠네요.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감사합니다.”진단서를 챙긴 유영이 뒤돌아서려는데 의사가 그녀를 불러세웠다.“어딘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자주 아픈 편은 아니라 병원에 다닌 적은 별로 없어요. 비슷하게 생긴 사람과 착각하신 것 같네요.”유영은 대답을 던져주고 재빨리 의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의사가 잘못 본 것은 아닐 것이다.최근 외삼촌과의 스캔들과 한지음과의 대립에서 신문에 자주 올라왔으니 가십거리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사진도 봤을 것이다.밖에서 기다리던 소은지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떻게 됐어?”“진단서 끊었으니까 가자.”“이리 줘.”소은지는 그녀의 이혼 소송 변호사로서 증거를 요구했다.유영은 말없이 진단서를 그녀에게 건넸고 소은지는 그것을 잘 챙겨 핸드백에 넣었다.그러는데 뒤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긴 어쩐 일이지?”소리가 난 곳을 따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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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유영은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아까 소은지랑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조금 믿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한지음이란 여자를 위해 자신에게 손찌검을 했단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이러는지부터 설명해 줘.”유영이 말했다.“뭐라고?”“한지음이란 여자를 위해 나한테 폭력을 휘두를 때 당신 마음이 어땠는지 알고 싶다고.”그 말을 들은 남자의 이마에 힘줄이 튀어올랐다.그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되물었다.“내가 단지 그것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해?”“아니야?”남자가 침묵했다.하지만 그녀를 노려보는 눈빛에서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유영은 낯선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서로간의 신뢰가 이 정도로 무너진 걸까?언젠가 그와 대립하게 될 줄 알았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돌아가봐야겠어.”남자가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영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이미 그를 완전히 내려놓기로 한 시점에서 이런 감정이 드는 것도 혐오스러웠다.“말을 안 하면 내가 알아내지 못할 것 같아?”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물었다.“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이것으로 부족해?”당연히 부족했다.“조 비서!”“예, 대표님.”“가서 확인해 봐.”뭘 확인하라는지는 당연히 물을 필요도 없었다.유영은 점점 머리가 울렁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조형욱은 강이한 신변에서 수년간 일을 처리해 온 엘리트답게 순식간에 답을 알아냈다.물론, 유영이 출국하는 걸 못 잡은 건 그의 실수였다.잠시 후, 되돌아온 조형욱은 뭔가 달라진 눈빛으로 유영을 바라보았다.“대표님.”“말해.”조형욱의 불안한 시선이 유영에게 닿았다. 그럴수록 강이한에게서 풍기는 압박감은 더해져만 갔다.조형욱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전치 진단을 끊어줬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강이한의 호흡이 거칠어졌다.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유영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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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세강의 안주인이라는 사람이 법을 근거로 그를 압박하는 상황!남자의 음침한 눈빛에서 지난 날의 애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유영도 개의치 않았다.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는데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이 이렇게까지 한다면 나중에 나를 원망하지 마.”문고리를 잡던 유영이 움찔했다.원망?지금까지 뭘 해준 게 있다고 저딴 소리를 지껄이는 걸까?전생의 기억대로라면 그는 아직 할 게 많은 사람이었다.한번 경험한 사람으로서 유영은 당연히 두려움 없이 맞설 것이다.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마음대로 해. 뭘 하든 당신 자유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홀로 남은 남자의 몸에서 섬뜩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항상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었던 아내가 이렇듯 낯선 사람처럼 변해버리다니!주제도 모르고!병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유영은 마주 오는 강서희와 마주쳤다. 그제야 진영숙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 이곳이라는 것을 눈치챘다.강서희는 그녀를 보자마자 습관적으로 시비부터 걸어왔다.“대체 세강 안주인이라는 자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시어머니가 입원했는데 며느리라는 사람이 한번도 문안을 안 와?”“난 세강 안주인이 아니야. 네가 그토록 바라던 결과잖아? 굳이 그 신분으로 날 몰아세우는 이유가 뭐야?”“너….”강서희가 씩씩거리며 그녀를 노려봤다.매번 힘없는 그녀를 무시하고 시비를 건 주체는 그녀와 그녀의 엄마 진영숙이었다. 유영은 알면서도 고분고분 당하는 쪽에 속했다.그런데 지금 태도가 확 바뀌었으니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다.“정말 많이 변했네. 칭찬해 줘야 하나?”“하.”유영이 냉소를 터뜨렸다.자신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유영의 눈빛에 강서희는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전에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감히 주제도 모르고 받아치던 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강서희가 이를 갈며 말했다.“고아 주제에 세강에 시집왔으면 고분고분 납작 엎드릴 것이지 주제도 모르고.”직전에 입양아라고 비꼬았던 유영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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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유영이 병원을 나왔을 때는 이미 새벽 세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앞뒤로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병원에서 시간을 꽤 오래 끌었던 탓이다.그녀는 미안한 얼굴로 소은지에게 말했다.“미안해, 많이 기다렸지?”“됐다. 나한테 그런 말하지 마.”소은지는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친구의 얼굴에 난 상처를 바라보며 그녀는 무조건 이 소송을 이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러다가 저 여린 친구의 신변 안전에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됐다.강이한의 주변에는 전부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유영이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안 봐도 눈에 뻔했다.그들은 유영을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들었다.조작된 증거 이야기를 들은 순간, 소은지는 유영을 제거하려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날 밤, 유영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강이한 역시 마찬가지였다.한지음의 두 눈이 감염되어 긴박한 치료가 진행 중이었다.의사는 감염까지 온 상태라면 빠른 수술 만이 답이라고 했다.수술을 하려면 시망막이 가장 큰 난관인데 조형욱을 시켜 여기저기 알아보고는 있지만 이렇다 할 답은 오지 않았다.그들이 고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산 사람에게서 각막을 기증받아 이식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 시국에 아무리 돈이 급해도 자신의 시력을 담보로 거래를 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다음 날, 진영숙은 빨리 퇴원하겠다며 난동을 부렸다.강이한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간곡히 말했다.“의사가 그러는데 아직 3일 정도 병원에서 지켜보는 게 좋다고 했어요.”“됐어. 내 몸은 내가 알아.”말은 그렇게 해도 환자가 의사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리가 없었다. 괜한 고집이었다.강이한은 바빠 죽겠는데 여기저기에서 일이 터지자 미쳐버릴 것 같았다.강서희가 물었다.“지음 언니 상황은 어때?”질문은 아주 자연스러웠지만 앞에 진영숙과 강이한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유영을 떠올리자 진영숙은 또 다시 화가 치밀었다.“유영 그 계집애가 이런 악수를 둘 줄 누가 알았겠니? 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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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한편, 못 잔 잠을 보충하고 유영이 느긋하게 침실을 나섰을 때, 소은지는 이미 출근하고 집에 없었다.식탁에는 친구가 남긴 메모가 붙여져 있었다.[아침 준비했으니 데워서 먹어.]용건만 적은 메모임에도 유영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소은지는 여전히 그녀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재벌 사모님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자기도 출근하느라 피곤할 텐데 아침까지 챙겨주다니.그 마음에 깊은 감동이 몰려왔다.아침을 먹고 있는데 외삼촌 정국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네, 외삼촌.”“조민정 씨를 청하에 보냈어. 앞으로는 네가 하려는 일을 도울 거야.”조민정?해외에 3개월 동안 같이 있으며 조민정이 정국진의 오른팔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에게 이 소식은 뜻밖이었다. 이렇게까지 배려해 줄 줄이야.이제는 나가봐야 할 시간이었다.“감사해요, 외삼촌.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시고.”“그 인간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지. 내 조카는 놈들이 마구 쥐고 흔들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말이야!”예상치 못했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정국진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과거에는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라서 강이한에게 모든 걸 의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유영은 꽤 배움이 빠른 사람이었다.취직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굳이 강이한이 도와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먹고 살 일자리를 마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강이한의 입장은 달랐다.“내 여자는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할 필요 없어!”이게 그의 주장이었고 지금은 그 주장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요구였는지 알고 있다.강이한과 결혼한 뒤로 사람들은 그녀가 돈을 보고 그와 결혼했다고 비난했지만 오히려 그녀를 새장 안에 가둔 사람은 강이한이었다.물론 거기에는 쉽게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유영의 미성숙함도 있었다.진영숙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해 유영을 압박한 것이었다. 유영이 강이한이 쳐준 울타리를 떠나면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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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한 시간 뒤.유영은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며 병상에 누워 있었다. 전에 강이한 때문에 다쳤던 팔이 결국 또 탈골되었다.“푹 쉬고 조심하셔야 해요. 한번 탈골된 뼈는 재발하기 쉬워요.”의사가 그녀의 팔에 깁스를 해주며 당부했다.유영은 극심한 고통 때문에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강이한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치료가 끝난 뒤, 의사와 간호사는 병실을 나갔다.병실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유영은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고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강이한이 명령하듯 말했다.“앞으로 운전대 절대 잡지 마.”다행히 경차랑 부딪혀서 최악의 상황을 피했지만 상대 차량이 트럭이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다.유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대답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그녀가 대답이 없자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내 말 안 들려?”유영은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지.”“뭐라?”강이한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주제도 모르고 깝치는 모습이 가소로우면서도 짜증이 치밀었다.그는 숨을 고르고 뭔가 얘기를 꺼내려던 찰나, 조형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말해.”“대표님, 산 사람의 망막을 기증 받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아무리 돈이 궁한 사람이라도 그런 제안을 받을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청하시는 원래 장기 기증이 활성화된 도시가 아닙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대부분이라 기증 동의를 받아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한지음의 망막 이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유영도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됐다.그녀는 조용히 강이한을 바라보았다. 강이한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했다.착잡함, 안타까움, 온갖 감정이 뒤섞인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유영은 그 배후에 숨은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전화를 끊은 강이한은 말없이 유영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서로를 유심히 바라본 적이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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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그는 유영이 모든 것을 꾸몄다고 확신했기에 망막을 되돌려주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핸드폰이 울리며 유영이 상념에서 깨어났다.조민정이었다.“미안해요. 지금 병원이라 오늘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괜찮아요. 이미 알고 있어요.”정유라의 말에 유연이 흠칫 놀랐다. 이렇게 빨리 그쪽까지 소식이 들어갔을 줄이야.역시 괜히 정국진 오른팔이 아니었다. 소식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유영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담담한 목소리가 전해졌다.“많이 다쳤어요?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아니에요. 내가 그쪽으로 지금 갈게요.”“그럴 필요는 없어요. 일단 다친 곳 잘 치료하고 이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이제 다 나았어요. 정말 괜찮아요.”유영이 고집스럽게 말했다.정국진까지 나서서 밀어주는데 스스로 더 강해져야 그 도움에 보답할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유능한 직원을 보내준 그의 마음에 미안할 지경이었다.파리에서 그토록 잘나가던 조민정을 국내로 불러들였으면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녀가 괜히 시간 낭비하게 할 수 없었다.유영은 고집스럽게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문을 나서는데 마주 오던 강이한과 마주치고 말았다.“어딜 가?”남자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싸늘했다.의사가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외출하겠다는 거지?“나랑 얘기 좀 해.”유영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강이한은 그녀를 압박하여 병실로 다시 들어갔다.유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할 얘기 있으면 해.”유영은 병상에 앉고 강이한도 의자를 끌어와서 그녀와 마주하고 앉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착잡했다.그리고 유영은 그런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결국 얘기하려는 건가?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유영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할 말 없으면 이만 가볼게.”“수술 말인데….”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유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뒤돌아선 그녀의 눈에는 사무치는 증오가 그대로 드러났다.결국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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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그녀에게서 증오를 그도 느꼈다.하지만 이미 결단을 내린 이상 굽힐 수 없었다.“평생 시력을 잃고 살아가게 하지 않을 거야. 일시적인 거야. 한지음 씨는 지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가망이 없어. 이번 수술만 무사히 마치면 당신에게 적합한 기증자를 내가 꼭 찾아줄 거야….”짝!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영은 손을 번쩍 들어 남자의 뺨을 때렸다.일시적?어떻게 저런 말을 쉽게 뱉을 수 있을까?유영은 마지막으로 남자를 힐끗 바라보고는 뒤돌아섰다.“난 망막을 기증할 이유 없어. 못 들은 걸로 할게.”말을 마친 그녀는 분노에 치를 떠는 남자를 남겨둔 채, 병실을 나갔다.결국 그에게서 그 말을 듣고 말았다.더 이상 그에게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쓰렸다.10년을 함께해 온 정을 뿌리칠 만큼 그 여자에게서 매력을 느꼈던 걸까?아니면 진짜 다른 말 못할 이유가 있었을까?유영은 스스로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강이한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유영은 자신이 무슨 정신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핸드폰이 울려서 받으니 절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은지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유영아.”“은지야, 너 괜찮은 거지?”강이한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가슴이 철렁했다.강이한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라이였다. 결국 그 피해가 소은지에게까지 간 걸까?“지금 집으로 가고 있어. 넌 집이야?”“나도… 곧 갈 거야.”“가는 길에 장 봐서 갈게. 내가 오늘은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기대해.”소은지는 애써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유영의 짐작대로라면 그녀는 아마 로펌에서 해고 통지서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결국… 칼을 빼들었구나!하긴, 그녀에게조차 이렇듯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이 그녀의 주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리는 없었다.전화를 끊은 뒤, 유영은 한참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증오로 가득한 눈동자에 물기가 돌았고 투명하고 광 나던 피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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