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만나요의 모든 챕터: 챕터 531 - 챕터 540

967 챕터

제531화

세상의 이목은 아랑곳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그런 이목이 SY그룹과 배현수에게 상처를 준다면 조유진은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조유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가끔은 정말로 7년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 작은 셋방에 다시 살고 싶어요. 그때의 배현수는 아무 걱정도 없이 조유진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때의 결백한 조유진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었으니까.”그땐 아무도 조유진이 배현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대제주시 방송학과의 퀸카 조유진, 대제주시 법학과 수재 배현수, 두 사람 모두 한없이 빛나는 앞날을 기약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조유진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배현수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조유진에게 거짓 증언의 딱지가 붙어 뗄 수 없기 때문이었다.배현수는 늘 멘탈을 붙잡고 이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막상 조유진을 밀어내려고 하니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는 배현수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한마디 했다.“적어도 나에게 너는 절대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야. 유진아, 네가 있어서 내 인생도 가치가 있는 거야.”눈시울이 붉어진 조유진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와 결혼해 줄래요? 배현수 씨?”‘얼마든지.’마음속으로 열 번 넘게 하는 말이었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그에게 쓸데없는 세상의 이목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배현수가 원한다면 그 여자가 살인범이어도 상관이 없었다.조유진의 그까짓 죄명은 그만 용서해 주면 그만이다. 세상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하지만 조유진이 죽어가는 사람과 결혼하게 할 수는 없었다.배현수는 눈을 꼭 감고 말했다.“유진아, 미안해. 나는 할 수 없어.”그녀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없는 것이다.조유진도 그리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배현수를 원망하지도 않았다.목이 꽉 막힌 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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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허탈한 미소를 지은 조유진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나도 화내고 싶어요. 7년 전에 거짓 증언으로 현수 씨에게 3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시키지 않았다면 인터넷에 떠도는 송인아와의 기사를 해명하라고 화를 냈겠죠. 빨리 우리 사이를 공개하라고 했겠죠. 하지만 나에게는 자격이 없어요. 그렇게 하면 SY그룹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것도 잘 알아요. 물론 현수 씨에게도, 나에게도...”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헤어진 줄 알고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다.그리고 송인아와 재결합하라는 내용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조유진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수모를 참을 수 없었다.배현수는 분명 그녀의 남자친구이고 얼마 전 금방 재결합했다. 하지만 배현수와 송인아 사이에서 그녀는 제3자에 불과했다.설령 배현수와 송인아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조유진이 알고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 혼자만 알 뿐, 밖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배현수가 바로 반박기사를 내 해명하지 않은 것을 조유진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눈치껏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배현수에게 누를 끼치면서 그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인터넷 여론은 조유진에게 매우 우호적이지 않았다.배현수가 뒤에서 아무리 사람을 시켜 조유진에 대한 연관검색어를 지운다고 해도 열기가 워낙 뜨거운 탓에 여론의 목소리는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남초윤마저 보다 못해 쏘아붙였다.“배현수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아예 송인아와의 관계를 인정한 거야?”조유진은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주말에 심미경 씨 결혼식에 갔다가 바로 성남으로 돌아갈 거야.”“무슨 뜻이야? 헤어진다고? 배현수가 진짜 헤어지자고 했어?”조유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눈치껏 알아챈 남초윤은 잔뜩 화를 내며 말했다.“배현수와 같이 있고 싶다는 사람은 너였어. 이제 누리꾼들이 두 사람 헤어졌다고 하면 진짜 헤어진 거야? 예전에는 배현수가 그래도 뚝심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내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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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남초윤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티즌들은 배현수와 송인아를 아예 커플로 인정했어요. 회사 직원들조차 두 사람이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요. 진짜로 그런 생각이 없으면 왜 나와서 해명하지 않는 건데요?”육지율은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다.“현재는 송인아의 열기가 SY의 주가 반등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일단 맛 좀 보고 나서 해명해도 늦지 않고요.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부분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조유진만 그 여론들이 거짓이고 오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돼요.”남초윤은 씩 웃더니 콧방귀를 뀌었다.“당신네 남자들이란 정말 다 똑같아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죠. 거절도 인정도 하지 않고요. 쓰레기 같은 인간!”분명 배현수에게 하는 욕이었지만 왜 말에 뼈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왠지 누구를 저격하는 말처럼 들리네? 남초윤의 말에 육지율은 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행동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당신네 남자들? 육씨 집안 사모님. 말에 뼈가 있네요?”눈살을 찌푸린 남초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입을 열었다.“당신은 남자 아니에요? 설마 여자예요?”남초윤이 여기서 말하는 ‘남자’는 결코 좋은 단어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잘생긴 남자를 보고 사람들은 단지 ‘저 남자’라고 지칭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육지율의 귀에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였다.손에 있던 수건을 옆으로 내던진 육지율은 몸을 숙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잊었어요? 내가 남자라는 것 외에 당신의 남편이라는 것을?”남초윤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어차피 곧 남편도 아니잖아요. 이혼하기로 약속한 거 잊었어요?”육지율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이혼하기로는 했지만 조건이 있어요.”“무슨 조건인데요?”육지율은 차분한 얼굴로 따지며 말했다.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 당신은 육씨 집안 사모님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어요. 나도 별 요구는 없어요. 못다 한 아내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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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일요일, 부경 산장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갰다.결혼식은 야외 잔디밭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부경 산장의 잔디밭은 전문 인력이 관리하고 있어 겨울에 접어드는 11월에도 색이 바래지 않아 사진이 잘 찍혔다.한 무리의 사람이 결혼식장에 도착했다.남초윤은 조유진과 선유와 같이 산장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여러 장 찍은 후 결혼식장의 디저트 테이블 근처로 돌아와 술잔을 기울였다.야외 결혼식장에 은은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고 장미 꽃잎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남초윤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상하네? 강이찬의 결혼식인데 왜 소란 피우기 좋아하는 여동생이 안 보이지? 이렇게 큰 행사에 얼굴 드러내는 거 좋아하지 않았어?”“분장실에서 도와주고 있겠지.”그 말에 남초윤이 코웃음을 쳤다.“걔가 돕긴 뭘 도와. 말썽만 안 부리면 다행이지. 결혼식에 오지 않은 것 같은데?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조유진은 별생각 없이 샴페인 잔을 들고 마시려던 참이었다.이때 남초윤이 그녀의 잔을 확 낚아채며 말했다.“유진아,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건 술이야! 넌 마시면 안 돼.”결혼식이었지만 조유진은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멀찍이 서서 술잔을 든 채 육지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배현수를 본 남초윤은 조유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내일 정말 성남에 가는 거야? 다시 얘기해 볼 생각 없어? 그동안의 감정이 아깝지도 않아?”조유진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깨진 거울은 절대 다시 붙일 수 없나 봐. 다시 붙인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으니까. 서로 너무 오랫동안 시간만 지체한 것 같아. 이제 정말 인연이 끝난 것 같아. 우스운 얘기기는 한데 사실 7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있은 적이 없어. 그래서 그런지 지금 헤어져야 정상이라는 생각까지 들어.”너무 많은 것들을 오랫동안 잃어버리면 없는 것에 습관이 되고 그런 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저도 모르게 이 감정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결혼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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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심미경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중년여성의 기세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 누구야? 급한 일이 있으니까 강이찬 좀 바꿔. 직접 나와서 해결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가서 여동생을 폭로해 버릴 수밖에 없어!”심미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저는 강이찬 씨의 아내입니다. 누구세요? 이찬 씨를 왜 찾는 거죠?”맞은편에는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표준 서울 발음이 아닌 사투리가 억세게 들렸다.“아, 그러니까 당신이 강이진의 시누이야? 누구든 상관없어. 돈만 받으면 되니까! 아직 1억이 남았는데 왜 안 갚는 거야? 전화도 안 되고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어. 어디 도망간 거 아니야?”심미경은 들으면 들을수록 아리송했다.“당신 대체 누구예요? 이진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요?”설마 이진이가 도박 빚이라도 졌단 말인가?전화기 너머의 장순자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강이진! 그 년이 내 남편을 사주해 교통사고를 내게 했어. 감옥에 들어가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생겨 입막음 비용으로 우리에게 2억을 주겠다고 했어. 그런데 지금 1억밖에 못 받았어. 당신들이 강이진 대신 이 돈을 갚지 않으면 당장 경찰서에 가서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심미경은 잠시 멍해졌다.“혹시 전화 잘못 거신 거 아니에요?”“잘못 건 거 아니야! 강이진의 오빠가 강이찬이잖아? 맞지? 발뺌할 생각하지 마! 2억은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껌값이잖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돈을 보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교통사고는 내 남편이 다 뒤집어썼어. 물론 내 남편은 음주운전에 그치긴 했지만 강이진 그 년은 살인 미수야! 누구의 형이 더 무거울지 잘 생각해 봐!”교통사고?음주운전?살인 미수?강렬한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심미경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부여잡으며 말했다.“당신 남편 이름이... 뭐예요?”“황인구!”순간 뇌 정지가 된 듯 머릿속이 윙윙 소리가 났다.황인구? 황인구...심미경의 교통사고도 황인구라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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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나간 후 분장실에는 심미경과 강이찬만 남았다.심미경은 화장대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두 다리가 후들거려 지탱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강이찬이 부축해 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넘어졌을 것이다.“미경 씨.”강이찬의 손을 덥석 잡은 그녀는 시뻘게진 눈시울로 심문하듯 물었다.“강이진 짓이에요?”긴 침묵이 흐른 후, 강이찬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네, 이진이가 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 직성이 풀릴까요? 말만 해요. 내가 바로 할 테니.”동공이 미세하게 떨린 심미경은 주위의 공기마저 희박하게 느껴져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러니까 강이진이 한 짓이라는 걸 진작 알았던 거예요?”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심미경은 우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네 남매의 눈에 내가 바보로 보여요? 매일 나를 죽이려 했던 살인범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당신들에게 원숭이처럼 놀아나는 것을 보고 어땠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강이진 짓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으면서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친동생을 감싸기 위해 평생 저를 속일 생각이었어요?!”강이찬은 강이진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히 해명했다.“자수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자살하겠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나를 협박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어요. 그래서...”심미경은 강이찬의 말을 끊었다.“강이진, 지금 어디 있어요? 방금 장순자 말로는 도망갔다고 하던데 오늘 결혼식에 안 온 것을 보면 벌써 도망갔나 보네요?”“이미 대선국에 갔을 거예요.”“하하... 강이진이 도망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뒀다고요? 강이찬 씨! 교통사고 때문에 우리 아이가 죽었어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운전을 제대로 못 한 내 탓이라고 생각해 얼마나 자책했는지 알아요?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고요. 꿈에서 강이진이 칼을 들고 내 배를 찔렀어요. 이것도 내가 생각이 많아서 이런 꿈을 꾼 줄 알고 감히 이찬 씨에게 말도 못 했어요! 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네요.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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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심미경은 웨딩드레스를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치맛자락을 들고 비틀거리며 뛰어나갔다.강이찬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고 눈시울은 시뻘게졌다.다이아몬드 반지가 ‘딸가닥’ 소리를 내며 손바닥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심미경과 완전히 끝났다.마당에서 한창 음식을 먹던 남초윤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하얀 그림자가 산장 뒤뜰로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저기 저 사람 신부 아니야? 왜 도망가는 거지?”조유진도 얼떨떨한 얼굴로 남초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진짜로 심미경이 뛰어가고 있었다.“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남초윤은 잔뜩 호기심이 생겼다.“강이찬이 또 무슨 짓을 했기에 심미경이 결혼식 날 도망가게 만들어?”결혼식 참석 하객들이 모여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을 때 신랑 측 비서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여러분, 오늘 결혼식에 문제가 생겨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음식은 예정대로 마련될 것이니 마음껏 드시고 즐기다가 가세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흰색 벤츠 한 대가 미친 듯이 부경 산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차 안에 있는 심미경은 운전대를 꽉 잡고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눈물이 시야를 가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혼자 있는 차 안에서 그녀는 큰 소리로 통곡했다.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고 지난번 교통사고 이후로 함부로 운전대를 잡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흰색 벤츠는 마치 거침없는 맹수처럼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뒤에 검은색 벤틀리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며 쫓아왔다.강이찬의 차였다.휴대전화는 계속 울렸지만 그녀는 받을 생각이 없었다.부경 산장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가끔 길에 화물을 운반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대형 화물차가 오가고 있었다.흰색 벤츠가 코너를 도는 순간 큰 트럭과 마주쳤고 날카로운 경적이 조용한 산길에 울려 퍼졌다.끼익!곧이어 급정거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바닥에 마찰되며 검은색 타이어 자국을 몇 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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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강이찬은 심미경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 몰랐다.깜짝 놀란 강이찬은 다급히 그녀를 잡고 말했다.“미경 씨, 강이진의 일이라면 나는...”심미경은 눈시울을 붉히며 웃었다. “강이진이 우리 아이를 죽였어요. 강이찬 씨, 어떻게 범인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있어요?”“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잠시 마음이 약해졌어요...”잠시 마음이 약해졌다고?하...강이진이 교통사고를 사주해 임산부를 차에 치이어 죽이려 했을 때는? 약해진 마음 따위 없었을 것이다. 차 안에 앉아 있는 심미경의 얼굴에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하지만 가슴 가득 찬 분노에 사지가 굳고 마비되어 몸을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감출 수 없었다.“강이찬 씨, 나와 결혼하려 한 이유가 나를 사랑해서예요? 아니면... 미안해서예요?”강이찬은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를 보며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 가시가 돋친 듯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사랑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그도 헷갈렸다.그저 망설일 뿐이었다.‘나를 사랑하냐'는 질문에 3초 동안 답을 하지 못한 것이 어쩌면 최선의 답이었다.눈을 꼭 감은 심미경의 얼굴에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혼전임신으로 아이를 위해 멀리 원주까지 쫓아온 강이찬이었다. 큰비 속에 서서 자기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했다.그래서 마음이 약해졌다. 그때, 분명 천천히 좋아지리라 생각했다.강이찬의 마음에 조금씩 자리 잡아 뿌리를 내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강이진 때문에 죽었고 그녀는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강이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강이진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뒀다.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이제 이 꿈에서 깨야 했다.“강이진이 왜 나를 죽이려 했는지 알아요?”강이찬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다 생각났어요?”“아마 하늘도 강이진의 행동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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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남의 결혼식 소란에 별 관심이 없던 조유진은 선유를 데리고 자리를 뜨려 했다. 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엄창민이었다.조유진은 배현수 앞에서 직접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창민 오빠?”“환희야,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왔어. 의사 말로는 심근경색이라 상황이 별로 안 좋대. 얼른 성남에 와야 할 것 같아.”조유진은 인상을 찌푸렸다.“알겠어요. 바로 비행기 표 예매할게요.”전화를 끊은 조유진의 얼굴에 걱정과 불안함이 역력했다.그러자 옆에 있던 배현수가 물었다.“무슨 일이야?”“엄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져 상황이 안 좋대요. 바로 성남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처음부터 심미경의 결혼식만 끝나면 성남으로 돌아가기로 했었다.심미경의 결혼식에 이런 소란이 생겼으니 결혼식도 끝난 셈이었다.오늘 밤, 늦은 시간 성남에 간다고 해도 그저 계획보다 하루 앞당겨졌을 뿐이었다.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배현수는 이내 감정을 추스렸다.“그래, 산성 별장으로 돌아가 짐을 싸. 내가 데려다줄게.”“아니에요. 요즘 안 그래도 여론에 시달리고 있는데 직접 배웅 안 해줘도 돼요. 내가 선유와 같이...”“너는 괜찮다고 해도 선유가 걱정돼서 그래.”말뜻인즉슨 선유가 걱정되어 데려다주겠다는 뜻이었다.말투가 강압적이어서 차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조유진도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서정호는 저녁 8시 비행기 표로 예약했다.공항으로 가는 길, 오롯이 선유만 신났을 뿐이었다. 아이에게는 그저 즐거운 여행이었다.“엄마, 성남은 대제주시와 똑같이 생겼어?”대제주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편이라면 성남의 사람들은 외유내강의 스타일로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아니, 많이 달라.”기후나 도시 분위기 모두 완전히 달랐다.“그럼 엄마는 대제주시가 좋아, 아니면 성남이 좋아?”갑자기 묻는 선유의 말에 조유진은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옆에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흘끗 쳐다보고는 일부러 약 올리려는 듯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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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혼전 검사 결과를 손에 쥔 심미경은 병원 건물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의사의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심미경 씨, 교통사고로 유산을 하면서 자궁이 많이 다쳤어요. 아마 앞으로 임신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어요. 임신해도 태아로 성장하기 어려울 거고요. 혼전 검사 결과하신 것을 보면 앞으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거죠?”창백한 얼굴로 차에 탄 심미경은 ‘쾅’하고 차 문을 세게 닫았다.보고서를 꽉 움켜쥔 심미경은 어느새 눈시울이 시뻘게졌고 눈가에는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차올랐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이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통화’버튼을 누른 심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릴 뿐이었다.몇 초간 침묵하던 강이찬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 몇 번이나 머뭇거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미경 씨, 어디예요?”“병원이요.”그녀의 쉰 목소리를 들은 강이찬은 바로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어디 아파요? 어느 병원인데요? 내가 바로 갈게요.”“아픈 데 없어요. 혼전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온 거예요.”애써 울음을 참았지만 목소리는 이미 많이 떨리고 있었다.전화기 너머의 강이찬은 그녀의 이상한 목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그녀가 왜 이러는지도 아는 듯했다.강이찬이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 심미경이 물었다.“내가 혼전 검사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나에게 숨길 생각이었어요?”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강이찬이 목을 가다듬더니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교통사고 때문에 원기가 많이 상하고 몸도 아직 회복이 안 돼서 말할 수가 없었어요. 몸이 좀 나아지고 결혼식이 끝나면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말하려고 했어요.”“내가 힘들어할까 봐 말을 하지 않은 거예요? 아니면 강이진을 원망할까 봐예요?”“그때는 저도 교통사고가 이진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심미경은 조롱하듯 피식 웃었다. “이제 알았잖아요. 강이진 때문에 내가 유산을 했고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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