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생은 반드시 해피엔딩의 모든 챕터: 챕터 571 - 챕터 580

693 챕터

제571화 무서운 점

약을 따뜻한 물에 풀어 거실로 돌아오자 이우범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자격이 없으면 넌 있어? 너하고 나 똑같은 처지야.”“맞아. 예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난 내 모든 것을 바쳐 지영이한테 보상해 줄 거야. 근데 넌 그렇게 할 수 없잖아. 이우범 넌 네 가문의 일이나 가서 해결해.”배인호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다.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내 가슴이 조금 쿵쾅거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이우범은 살짝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네 집안에는 문제가 없나 봐? 배인호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내가 지영 씨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했었지? 내 충고를 듣지 않은 건 너야.”“우리 집안에 일이 있어도 부모님은 모두 지영이를 예뻐하셔. 네가 나와 비교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허허.”배인호의 경멸 가득한 비웃음을 날렸다.“그리고 네가 민설아를 도우면서 함께 나를 괴롭힌 순간부터 넌 나한테 충고할 자격 같은 건 없다는 걸 너도 알아야지.”이우범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오히려 담담하게 당시 자기가 한 행동을 설명했다.“내가 그렇게 한 건 네가 먼저 민설아한테 잘못했기 때문이야. 민설아는 네 아이를 임신했고 만약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민설아는 정말 강에 뛰어들었을 거야. 한 번에 두 사람이 죽을 뻔했다고. 너 두 생명을 감당할 수나 있겠어?”만약 이우범이 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배인호는 그래도 화를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말들은 이우범에 대한 배인호의 분노와 원망을 모두 폭발시켰다.“내 아이라고?”배인호는 화를 내며 물었다.“이우범, 난 계속 너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넌 매번 나를 바보로 만드는구나. 난 너희 집안에 극단적인 수단을 쓰진 않았어. 과거 우리 우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부모님들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야. 만약 네가 나하고 끝까지 가보겠다면 어디 해 봐.”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배인호가 마침내 그 사실을 말할 줄은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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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2화 네가 낳은 아이라면

배인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우범의 모습도 나타났다.이미 내 침실 문 앞에 서 있는 배인호를 본 그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고 발걸음도 멈칫했지만 결국 다가왔다.이때 나는 품에 로아를 안고 있었는데 아기 침대에서 자던 승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배인호는 아기 침대로 가서 승현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두 녀석은 배인호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품에 안고 조금 달래자 승현이는 바로 울음을 그쳤다.그 모습을 보고 나는 도우미를 부르지 않았다.공교롭게도 바로 이때 밖에서는 천둥소리가 그쳤고 비바람 소리만 계속 들려왔다. 이우범은 나와 배인호가 아이를 한 명씩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는 발코니로 가서 상황을 확인하면서 말했다.“바람이 너무 셌나 봐요. 발코니 밖에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창문에 부딪혔네요. 창문에 구멍이 뚫렸는데 내일 사람 불러서 바꾸면 될 거예요.”나는 로아를 안은 채 다가가 간단하게 확인했다. 발코니는 정말 엉망이었다. 통유리에 구멍이 뚤렸지만 다행히 전부 깨지진 않았다.바람에 의해 부러진 나뭇가지가 꽤 컸고 한쪽 귀퉁이가 여전히 유리에 박혀 있었다. 발코니는 완전히 젖어 있었다.“알겠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우범에게 말했다.“어서 가서 쉬어요. 이젠 괜찮아요.”“내가 로아 안을게요.”하지만 이우범은 손을 뻗으며 다정한 눈빛으로 내 품에 안겨 있는 로아를 바라보았다.애초에 엄마가 이우범이 아이들을 보기 위해 우리집에 오는 것을 허락했다. 나도 그가 로아와 승현이에 대한 사랑에 불순한 감정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한마디 하며 로아를 건네주었다.“어깨 다쳤으니까 조심해요.”“네.”이우범은 알겠다고 하며 다치지 않은 쪽으로 로아를 건네받으며 다친 쪽으로는 살며시 로아를 토닥였다.로아는 자기를 안고 있는 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맑고 촉촉한 눈동자와 방금 울어 살짝 붉어진 눈가가 조금 불쌍해 보였다.이우범은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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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물을 뿌려

10시 반이 되자 약속대로 가느다란 형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순간 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민설아는 연보라색 트렌치코트 안에 흰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얼굴이 더 작아 보였다. 그녀는 리버 로즈 핸드백을 들고 있었는데 눈부신 보석이 박혀있었다. 사실 그녀의 단아한 옷과 화장에 어울리지 않는 코디였다.“왜요? 날 보고 놀랐어요?’민설아는 나의 맞은편에 안더니 손에 들린 핸드백을 조심히 내려놓으며 우아하게 내게 물었다.“민설아 씨가 아만다예요?”나는 정말 놀랐지만 이내 진정하며 무심한 미소를 지었다.“얘기 나누죠.”민설아는 웨이터를 불러 물 한 잔을 달라고 했다.나는 조용히 앉아서 샴페인을 마시며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만약 전매특허를 갖고 있는 사람이 민설아라면 나는 이 연구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마는 이 프로젝트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기획한 것이라고 했다. 삼촌이 돌아가시기 전 내린 마지막 결정이 바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라고 하셨다. 돈을 벌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삼촌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 드리려는 이유가 더 컸다.내가 먼저 협력을 포기하겠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다. 샴페인을 절반쯤 마셨을 때 민설아가 먼저 짜증을 내며 말했다.“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지영 씨네 회사에서 내 특허를 갖고 싶다면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민설아 씨가 말하는 성의라는 게 뭐죠?”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조롱 섞인 말을 날렸다.“배인호와 결혼하는 거라도 내가 도와줘야 하나요?”이 말을 듣더니 민설아의 표정이 바로 어두워졌다. 그녀가 한 모든 것은 모두 배인호와 결혼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몇 년간 죽은 척한 것도 남의 자식을 이용해 배씨 가문의 친손자인 척하며 돌아온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배인호 정말 마약처럼 위험한 매력으로 사람을 빼져 들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나도 한 번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에게 푹 빠져 있었을 것이다.서란이든 민설아든 나와 다른 점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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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4화 내가 빼앗아 간 5년

나는 발걸음을 멈추며 민설아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를 자극하려는 모양인데 만약 삼촌이 살아계셨다면 민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신뢰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아마 나와 똑같은 선택을 하셨을 거라고 믿었다.“그래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평가해 줄 필요는 없어요. 고마워요.”나는 태연하게 몇 마디 건넨 뒤 더 이상 민설아를 상대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차가 주차장을 떠나려 할 때 민설아가 앞을 가로막을 줄은 몰랐다. 기사님이 내게 물었다.“대표님, 저 여자가 우리 차를 막고 있습니다.”“무시하고 그냥 돌아가 주세요.”나는 상대하기 귀찮아 기사님에게 민설아를 피해달라고 했다.다시 출발하려던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나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딪힐 뻔해 화가 났다.“무슨 일이에요?”“대표님, 저 여자가 또 차 앞을 막아서서 거의 치일 뻔했습니다.”기사님은 두려움에 떨며 대답했다.유리창 밖을 바라보니 민설아가 자기 이미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팔을 벌린 채 내 차 앞을 막고 서 있었다.그 두려움 없는 기세에 나는 당황스러웠다.나는 정말 짜증이 났다. 프로젝트가 마지막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기본적으로 폐기된 거나 마찬가지다.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민설아가 이렇게 질척거리니 나는 짜증이 몰려왔다.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민설아는 내가 차에서 내리는 걸 보더니 바로 차 앞에서 비켰다. 나는 허리를 숙여 기사님에게 말했다.“먼저 다른 곳에서 기다려 주세요.”“알겠습니다.”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차를 몰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벌써 가을이 되어 호텔 밖 길 양옆으로 단풍나무가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한낮에도 가을 특유의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쌀쌀한 바람이 일자 빨간색이나 노란색 단풍잎이 바닥에 떨어져 인도를 아름답게 수놓았다.나는 단풍잎이 가득 덮인 길옆으로 민설아와 함께 걸어왔다.아름다운 풍경을 이런 사람과 함께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차는 왜 막는 거예요? 죽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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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화 후회하지 마

엄마는 감성적이긴 하지만 사업가이기에 이익과 손해를 정확하게 따지셨다.내가 분석한 결과를 말하자 결국 나의 선택을 믿어줬지만...“엄마 우리 가능한 한 빨리 대체할 수 있는 화장품 성분을 찾거나 아니면 협력 업체에 손해배상을 해줘야 해요. 만약 민설아와 손잡는다면 이후에 우리의 손해가 더 클 수도 있을 거예요.”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래, 이틀 뒤 네 아빠 수술 끝나고 상황이 안정되면 간병인 쓸 거야. 너와 내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엄마가 대답했다.엄마의 응원이 있으니 나는 바로 불안했던 마음이 많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놓였다. 편안하게 샤워를 끝냈는데 도우미가 다급하게 올라와서 나를 찾았다.“아가씨, 어젯밤에 오셨던 배인호라는 분이 또 오셨어요. 문 앞에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어요.”배인호?팩을 붙이고 있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정말 할 일이 없는 걸까? 회사와 집안에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일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어야 할 텐데.“돌아가라고 해요. 나 자고 있다고.’나는 이미 잠옷으로 바꿔 입었기에 다시 내려가기 귀찮았다.“어린 남자아이까지 데려와서 아가씨를 만나겠다고 하시는데.”도우미가 한마디 덧붙였다.어린 남자아이?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빈이일까?민설아는 배인호가 서울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여기로 왔다고 했는데? 설마 빈이까지 데리고 온 걸까?나는 빈이가 보고 싶긴 했지만 일이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만약 배인호가 빈이를 데려온 것이라면...나는 마음이 흔들려 바로 재킷을 찾아 입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정원을 지나 문밖에 서 있는 배인호가 보였다. 그는 전화하며 내가 나온 것을 발견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빠. 내일 다시 얘기해.”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뭘 찾는 거야?”배인호가 물었다.“아줌마가 당신이 어린 남자아이도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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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6화 무심하게 그를 잡다

나는 배인호의 핸드폰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여러 명의 의사와 만든 단톡방이었다. 안에는 아빠의 검사 결과와 여러 의사의 제안이 들어있었다.상세한 분석을 접하니 나는 다 아는 글자들이었지만 낯선 감각이 들었다.“내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아. 계속 그 병원에서 수술받아도 돼.”배인호는 내가 오랫동안 말이 없자 내가 아직도 그를 의심한다고 생각해 먼저 말한 것 같았다.계속 그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너무 당황스러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가 폐암 초기이기에 수술을 잘 받고 회복만 잘하면 괜찮으실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건강관리를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인호는 지금 나에게 아빠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었다.“알겠어요. 고마워요.”나는 정신을 차린 뒤 핸드폰을 배인호에게 돌려주었다. 너무 속상해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을 받으시겠다고 한 것도 모두 내가 아픈 척 연기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아빠에게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면 치료를 거부하실 수도 있었다.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빈이의 목소리가 가끔 들려왔다.배인호가 물었다.“너 괜찮아?”“괜찮아요. 많이 늦었는데, 돌아갈 거예요? 아니면...”나는 사실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컸지만 그런 모습을 배인호의 앞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 깊은 한숨을 쉰 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이때 빈이가 달려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영 아줌마, 오늘 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요? 나 내일 병원에 가는데 오늘 밤에 동생들하고 더 놀고 싶어요.”“빈이야...”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니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빈이야, 우리 오늘 밤엔 돌아가야 해. 지영 아줌마 귀찮게 하지 말고.”이때 배인호가 입을 열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빈이의 손을 잡았다.빈이도 철이 든 아이였기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서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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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7화 원해서 내게 속아주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취약점을 보여줄 수가 없었기에 오직 친구들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아빠의 현재 상황을 알게 된 뒤 정아는 침묵했다. 이 일은 사실 그녀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녀의 도움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정아야, 나 먼저 끊을게.”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지영아, 이우범한테 말해보는 건 어때?”정아는 갑자기 이우범 얘기를 꺼내자 나는 깜짝 놀랐다.“이우범한테?”“어, 이우범이 너희 부모님께 잘한다며? 아직도 너희 부모님은 이우범한테 씐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으셨잖아? 게다가 의사니까 아저씨를 설득해 주면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정아는 정말 나에게 아이디어를 생각해 줬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통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좋아, 한 번 해볼게.’나는 바로 용기를 내서 이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에 돌아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설아도 이쪽에 왔으니 아마 이우범도 한동안 여기에 있을 것 같았다.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리자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도로 끊었다.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았다. 이우범이 필요할 때는 연락하면서 필요 없을 때는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뻔뻔하게 느껴졌다.드디어 아빠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흥분했었지만 결국 이 방법도 불가능했다.나 혼자서 고민하고 있을 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이우범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이우범 쪽에서는 경적이 울리는 것이 차 안인 것 같았다.“나 지금 병원에 가는 길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아저씨 치료 방법 바꾸시도록 설득해 볼게요.’이우범이 먼저 말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마치 내가 먼저 자기에게 연락한 이유를 예상한 듯했다.“이우범 씨, 어떻게 알았어요?”나는 조금 놀랍기도 하면서 불안했다.“방금 아주머니가 나한테 연락해 주셨어요. 서울로 돌아가려다가 다시 돌아왔어요.”이우범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와 엄마의 뻔뻔한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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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화 사실 그는 신경 쓰고 있다

이우범이 너무 똑똑한 사람이라 당연히 사람한테 속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누구도 바보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순전히 나를 위해 타협한 것이었다.나는 조금 어색하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나 대신 아빠를 설득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 일 때문에 계속 그와 얽힐 수는 없었다.“이 얘기는 그만하죠.”이우범은 내가 회피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가벼워진 말투로 말했다.“아까 내가 아저씨한테 지영 씨가 아픈척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아저씨 몸 상태도 좋지 않으신데 괜히 걱정 끼칠 필요 없잖아요. 치료하려면 심리적인 안정 상태도 중요하니까요.”나는 깜짝 놀랐다.“네? 아빠한테 얘기했다고요?”이우범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도 마침 계속 거짓말할 필요 없이 아빠를 보러 가면 된다.나는 머릿속에 아주 기막힌 상상이 떠올라 참지 못하고 불쑥 내뱉었다.“우범 씨 예전에 혹시 다단계에서 사람들 세뇌하는 일이라도 했었어요?”이우범은 나의 말에 어리둥절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뒤 반응하며 말했다.“허지영 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예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잖아요?” 잘 알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뒤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했고 짧은 시간 안에 병원에서 제일 어리고 실력 좋은 전문의가 됐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뒤에는 아주 성실하게 출근했기에 다른 투잡을 뛸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나는 뭔가 이우범을 모욕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바로 해명했다.“알죠, 당연히 잘 알죠. 난 그저 우범 씨 말재주가 존경스러워서요. 우리 아빠 고집이 얼마나 센데 그걸 이렇게 쉽게 꺾어요? 나하고 엄마는 가끔 아빠 고집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예요.”“아저씨 고집 세시죠. 그래도 아저씨 날 꽤 좋아하시잖아요. 그래서 내 말도 들어주신 것 같아요.”이우범의 말은 자화자찬처럼 들렸지만 그이 말투는 맹세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했다.아빠는 엄마 못지않게 이우범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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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9화 질투하다

“아빠.”빈이는 배인호를 보고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며 달려갔다.배인호는 바로 자연스럽고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빈이를 내려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아빠 몰래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했지? 말 안 들을 거야?”빈이는 배인호가 꾸짖는 듯해지자 바로 내 뒤로 와서 숨은 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배인호의 눈치를 살폈다.“아빠, 난 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게 불편해서 일어나 걸어 다닌 거예요.”“배인호 씨, 빈이 보살필 간병인 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설아가 또 빈이 다치게 할까 봐 걱정돼요.”나는 배인호에게 물었다.하지만 빈이가 나의 말을 듣고 바로 나설 줄은 몰랐다.“지영 아줌마가 잘못 안 거예요. 마미는 날 다치게 하지 않아요.”빈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민설아가 준 약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빈이가 계속 먹는 것을 말렸을 뿐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내가 자기 엄마를 오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나와 배인호는 동시에 빈이를 바라보았다. 배인호는 빈이에게 말했다.“빈이 어서 가서 자야지.”빈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흥하더니 순순히 병실로 들어갔다.빈이가 병실로 들어간 뒤 배인호는 나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물었다.“애가 이러는데도 넌 속상하지 않아?”“별로 속상하지 않아요.”나는 대답했다. 나의 목적은 민설아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빈이가 가여웠기에 챙겨주는 것이었다.민설아가 전에 빈이에게 어떻게 했든지 두 사람이 친모자 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수년 동안 함께 의지하면서 산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네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줄 몰랐네?”배인호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내가 전에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몰랐겠죠.”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배인호는 피식 웃더니 우리 아빠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우범이 다녀간 것을 알고 있었다. 이우범이 나 대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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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0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배인호가 나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나를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빈이는 마치 나와 배인호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나를 향해 윙크했다.“지영 아줌마, 아빠가 다른 여자를 칭찬하는 거 처음 들어요. 아빠는 마미도 칭찬해 준 적 없어요.”빈이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말했다.“큼큼.”배인호는 바라 헛기침을 두 번 했다. 빈이는 바로 자기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나는지 목을 움츠렸다. 그러고서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드를 놀았다.나는 의외였다. 원래대로라면 빈이는 민설아와 배인호가 함께 하길 바라야 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친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그러나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빈이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와 배인호를 이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빈이의 이런 행동을 민설아가 알게 된다면 아마 화를 낼 것이다.“오늘은 왜 왔어?”배인호가 내게 다가오며 나가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나는 카드를 놀고 있는 빈이를 바라보았다. 빈이는 지금 이미 불쌍할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다. 항암치료를 시작해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져 비니를 쓰고 있었다. 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병실 밖을 나온 뒤 나는 배인호에게 물었다.“아직도 일치하는 골수를 찾지 못했어요?”그 말을 듣더니 배인호도 조급해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찾았어.”나는 순간 기뻐서 깜짝 놀랐다.“정말요? 그럼 수술은 언제 받는 거예요?”“빈이 상태가 조금 안 좋아서 먼저 치료받은 뒤에 할 거야.”배인호의 대답에 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빈이의 제일 큰 문제가 백혈병이다. 바로 이식 수술을 받은 뒤 회복하면 빈이는 계속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다른 문제가 또 있나?이어서 배인호는 내게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빈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양실조 상태였어. 그리고 먹었던 약이 빈이의 성정에 영향을 줘서 또래보다 작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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