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빈이는 배인호를 보고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며 달려갔다.배인호는 바로 자연스럽고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빈이를 내려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아빠 몰래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했지? 말 안 들을 거야?”빈이는 배인호가 꾸짖는 듯해지자 바로 내 뒤로 와서 숨은 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배인호의 눈치를 살폈다.“아빠, 난 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게 불편해서 일어나 걸어 다닌 거예요.”“배인호 씨, 빈이 보살필 간병인 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민설아가 또 빈이 다치게 할까 봐 걱정돼요.”나는 배인호에게 물었다.하지만 빈이가 나의 말을 듣고 바로 나설 줄은 몰랐다.“지영 아줌마가 잘못 안 거예요. 마미는 날 다치게 하지 않아요.”빈이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민설아가 준 약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빈이가 계속 먹는 것을 말렸을 뿐이다. 그러니 내 말을 듣고 내가 자기 엄마를 오해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나와 배인호는 동시에 빈이를 바라보았다. 배인호는 빈이에게 말했다.“빈이 어서 가서 자야지.”빈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흥하더니 순순히 병실로 들어갔다.빈이가 병실로 들어간 뒤 배인호는 나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물었다.“애가 이러는데도 넌 속상하지 않아?”“별로 속상하지 않아요.”나는 대답했다. 나의 목적은 민설아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빈이가 가여웠기에 챙겨주는 것이었다.민설아가 전에 빈이에게 어떻게 했든지 두 사람이 친모자 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에 수년 동안 함께 의지하면서 산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네가 이렇게 마음이 넓은 줄 몰랐네?”배인호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내가 전에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으니까 당연히 몰랐겠죠.”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배인호는 피식 웃더니 우리 아빠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우범이 다녀간 것을 알고 있었다. 이우범이 나 대신 아
배인호가 나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나를 이렇게 대놓고 칭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빈이는 마치 나와 배인호의 사이를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나를 향해 윙크했다.“지영 아줌마, 아빠가 다른 여자를 칭찬하는 거 처음 들어요. 아빠는 마미도 칭찬해 준 적 없어요.”빈이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말했다.“큼큼.”배인호는 바라 헛기침을 두 번 했다. 빈이는 바로 자기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나는지 목을 움츠렸다. 그러고서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카드를 놀았다.나는 의외였다. 원래대로라면 빈이는 민설아와 배인호가 함께 하길 바라야 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줘도 친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그러나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빈이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나와 배인호를 이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빈이의 이런 행동을 민설아가 알게 된다면 아마 화를 낼 것이다.“오늘은 왜 왔어?”배인호가 내게 다가오며 나가서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나는 카드를 놀고 있는 빈이를 바라보았다. 빈이는 지금 이미 불쌍할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다. 항암치료를 시작해 머리카락도 거의 다 빠져 비니를 쓰고 있었다. 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병실 밖을 나온 뒤 나는 배인호에게 물었다.“아직도 일치하는 골수를 찾지 못했어요?”그 말을 듣더니 배인호도 조급해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찾았어.”나는 순간 기뻐서 깜짝 놀랐다.“정말요? 그럼 수술은 언제 받는 거예요?”“빈이 상태가 조금 안 좋아서 먼저 치료받은 뒤에 할 거야.”배인호의 대답에 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빈이의 제일 큰 문제가 백혈병이다. 바로 이식 수술을 받은 뒤 회복하면 빈이는 계속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다른 문제가 또 있나?이어서 배인호는 내게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빈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양실조 상태였어. 그리고 먹었던 약이 빈이의 성정에 영향을 줘서 또래보다 작고 마
“빈아. 만약에 진짜 엄마랑 가고 싶다면 아줌마는 너 많이 보고 싶을 거야.”결국 내가 내뱉은 말은 이처럼 온도 없는 대답이 되었다.빈이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래도 얌전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줌마가 빈이 보고 싶어 할 거라는 거 알아요. 크면 꼭 다시 보러 올게요.”나는 마음이 어수선했다. 내 능력으로 아이 하나쯤 더 키우는 건 문제 없었다. 전에 불임 판정을 받았을 때 입양에 대해서도 고민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빈이의 신분이 문제였다.“응. 아줌마도 시간 나면 보러 갈게.”결국 난 마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민설아가 그렇게 쉽게 아이를 내게 넘겨줄 리가 없었다.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 안아달라고 했다.“아줌마, 안아보고 싶어요.”나는 허리를 숙여 빈이를 안아주었다.“그래요, 그럼 저는 대디 찾으러 가요.”빈이는 얼른 나를 풀어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그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빈이를 데려다주려 했으나 그가 거절했다.“아줌마, 빈이 혼자 올라가면 돼요. 아줌마도 엄청 바쁘잖아요. 자주 보러 오지 않아도 돼요. 보디가드 아저씨 둘이나 있는데 심심하지 않아요. 같이 카드 게임도 하고 애니메이션도 보면 돼요.”빈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내 시간을 뺏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런 빈이를 보며 멈칫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빈이는 빠르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병원에서 나갔다. 아빠를 봤으니 이제 아이를 보러 가야 했다.차에 올라탔는데 배인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그가 물었다.“아까 빈이한테 뭐라 한 거야?”“아니요. 별말 안 했는데? 왜요?”내 가슴이 조여왔다.“올라와서는 말도 안 하고 갑자기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울더라고.”배인호의 말투에서 난감함이 느껴졌다.나는 마음이 먹먹했다. 아까 내 반응에 상처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빈이에게 희망을 주고 또 실망을 준
“인호야, 지영이 아픈 거 아니니까, 그 이유로 찾아오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엄마는 내가 망설이자 대신 털어놓았다.배인호는 우리 엄마의 말을 듣더니 눈이 반짝였다. 나를 보는 눈빛에서 탐구의 의미가 보였다.마음이 켕기지 않는다면 거짓이었다. 인생에는 난처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평생 갈고 닦은 연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배인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태연하게 웃었다.“네, 엄마 말이 맞아요. 병원 오진이에요.”엄마와 아빠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마도 오진은 무슨, 일부러 불쌍한 척하는 거라고 생각하실 것이다.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딱히 이 점을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무슨 용건 더 있어? 없으면 가봐. 나도 인제 그만 쉴 거야.”아빠가 전혀 배인호를 배려하지 않고 내쫓았다. 그러고는 아이처럼 눕자마자 이불을 덮은 채 자는 척했다.“인호 씨, 무슨 일 있으면 나랑 얘기해요. 나가요.”미안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해서 그런지 배인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계속 엄마, 아빠의 냉대를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배인호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엄마가 한 말에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더니 몸을 돌렸다.부모님은 내가 배인호와 나가서 얘기하려고 하자 다급하게 나를 말리려 했지만 내가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둘은 내키지 않아도 결국 가만히 있었다.복도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 층은 다 고급 병실이라 조용한 편이었다. 가끔 몇몇 간호사만 갔다 왔다 했다.나와 배인호는 부모님이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게 나란히 걸어 나왔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미안해요. 오진이라는 거 진작에 알려줬어야 했는데, 바빠서 까먹었어요.”“이번엔 오진 아니래?”배인호가 되물었다. 눈빛으로는 그의 기분을 가늠할 수 없었다.“네, 이번에는 오진 아니래요. 만약에 나한테 속았다고 생각해서 전에 나한테 약속한 그 조건…”나는 알게 모르게 이 포인트를 짚었다. 내가 제일 묻고 싶은
아빠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데 엄마가 막았다.무엇이든 도가 넘으면 역효과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나와 배인호는 아직 재결합의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데 더 자극하다가 나의 반항 심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엄마는 나를 잘 알았다. 전에 모녀 사이에 틈이 생길 뻔한 이유도 너무 강압적으로 내 감정에 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아빠, 됐어요. 잘 쉬고 계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나는 부모님과 인사를 하고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돌아오니 골치 아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이모건이 우리 집 앞에 서서 어두운 표정으로 우리 집 대문을 훑어봤다.세희는 요즘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정서가 안정적이지 않아 별로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나의 두 아이를 돌봤다. 귀여운 두 아이를 보며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고 했다.이모건을 본 순간 내 마음이 조여왔다.나는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즉시 세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빨리 어딘가 숨어 있으라고 말이다.문자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태연한 척 차에서 내렸다.“허지영 씨.”나를 본 이모건은 이국적인 외모로 약간은 가식적으로 웃었다. 그는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외국인의 발음이 조금씩 들렸다. 오히려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제 여자 친구 여기에 있나요?”여자 친구라니,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영국에 약혼녀까지 있는 사람이 무슨 낯짝으로 세희를 자기 여자 친구라고 부르는지 의문이었다. 영국에 요즘 들어 일부다처제가 유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미안한데, 이모건 씨 여자 친구가 누구죠?”나는 가방을 들고 이모건 앞으로 걸어가 낯선 말투로 물었다.“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고요?”“여자 친구와 조금 다퉜어요. 전화를 안 받아주더라고요. 정아와 민정이네는 이미 찾았는데 없었어요. 그래서 이쪽으로 온 거예요.”이모건은 내가 이렇게 비꼬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담담한 미소를 유지했다. 하지만 눈가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나는 이모건 어머니의 신분이 떠올라
“지영아, 나 내일 여기서 나갈게. 나 때문에 너까지 피해 보는 건 싫어. 너한테 폐 끼칠 수는 없어.”세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지금 오히려 내 생활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고 있다.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희가 여기 있어야 이모건을 더 빨리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옆에서 사상 작업을 수시로 해주는 원인도 있다.“괜찮아. 그냥 여기 있어. 그리고 너 지금 갈 데도 없잖아. 혼자 있으면 이모건을 더 끊어내기 힘들 거야.”나는 세희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아 멋대로 전원을 꺼버렸다.“전화도 받지 말고 문자에도 답장하지 마.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세희는 내 손에 든 핸드폰을 보더니 망설이는 듯했다.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일에서 보여주는 박력과 의지를 감정에 좀 나눠주면 안 돼?”다른 건 몰라도 경영에는 정말 소질이 없는 나와 비하면 세희는 정말 뛰어났다. 경영에 천재적인 잠재력이 있었고 일이라면 목숨을 걸었다. 우리끼리 세운 가설도 있었다.만약 우리 네 명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제일 많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가설이었다. 답안은 세희였다.“근데…”세희가 갑자기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너도 처리해야 할 일 많을 거 아니야. 아저씨도 몸이 안 좋으시고 돌봐야 할 애도 둘이나 되잖아. 지금은 배인호까지 찾아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이래?”내가 멈칫했다.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 문제가 언제 갑자기 내 쪽으로 전이된 걸까.나도 배인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 집 앞에 나타났는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다면 아까 병원에서 말하면 될 것을 말이다.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아줌마가 올라와 배인호가 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내게 전해주었다.‘이모건은 간 건가?’나는 세희와 눈길을 주고받고는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이모건이 간 건 맞았다. 문 앞에는 배인호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며 물었다.“어떻게 돌려보낸 거예요?”“아마도 다른 일이 생
세희는 까만색 벨벳 맨투맨을 입고 있었는데 하얀 모유가 묻자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 바로 격하게 반응이 올 것이다.나는 그래도 엄마라 아이가 가끔 모유를 토해도 정상이기에 이 냄새에 적응했지만 세희는 미혼인지라 그 냄새를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나는 세희가 이 정도로 반응이 클 줄은 몰랐다. 세희는 옷깃에 묻은 냄새를 킁킁 맡더니 목구멍에서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어가 토했다.로아는 토하고 나니 시원한 듯했다. 입가와 옷에 묻은 자국을 처리하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다. 로아는 억울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세희 이모가 왜 저러지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로아 몸에 남은 자국을 닦아주며 말했다.“로아야, 덕분에 세희 이모 토까지 하고…”로아는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작고 귀여운 입가에 보조개 두 개가 쏙 들어가 있었다. 웃으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빨며 자기 다리를 만지기 시작했다.나는 화장실로 가서 세희의 상태를 살폈다. 안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아. 로아나 잘 보살펴. 샤워하고 옷 갈아입혀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나는 이렇게 대답하고는 로아를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 준비를 했다.로아를 샤워시키고 나오는데 세희가 진이 빠진 듯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야, 너 설마 내장까지 다 토한 건 아니지?”세희는 의자를 찾아 앉더니 내 얼굴을 꼬집으며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하, 위장이 안 좋아서 그래.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정서의 영향도 크대.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지 로아가 뱉어낸 모유 냄새를 맡자마자 바로 내장을 다 토해낼 듯이 토했어.”로아는 잠옷을 입고 엉덩이를 위로 든 채 앞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세희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인지 세희는 정신을 번
“민설아!”그때 이우범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말투에서 엄격함과 불만이 느껴졌다.민설아는 놀란 듯 뒤를 돌아보더니 그런 이우범을 비웃었다.“우범 선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좋아하는 여자한테 하면 안 될 말이라도 할까 봐 그래요?”이우범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민설아의 손목을 과격하게 끌어당겼다.“따라와.”“안 가요!”민설아가 이우범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말했다.“그냥 일 얘기 하러 온 거예요.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네, 맞아요. 근데 틀어졌죠. 미안해요. 저는 아직 일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네요.”이우범이 민설아를 잡고 있으니 나는 빠르게 자리를 뜰 수 있었다.민설아는 내가 가려고 하자 갑자기 이우범에게 캐물었다.“선배, 진짜 지영 씨한테 얘기 안 할 거예요? 선배가 지영 씨를 위해서 뭘 잃었는지?”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우범을 돌아봤다.민설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나는 잃은 거 없어. 됐지?”이우범은 인내심을 잃은 것 같았다. 나를 보지도 않고 민설아를 잡아당겨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들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고 나도 쫓아가서 묻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속에 의문만 남았을 뿐이다.하지만 민설아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와 협력하려 하지 않았고 나만 계속 물고 늘어졌다. 내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다른 주주를 사적으로 연락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다른 주주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독단적으로 아무렇게나 결정해서 회사가 큰 손해를 보게 될 거라고 말이다.사실 엄마의 생각은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회사의 다른 주주는 민설아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엄마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엄마니 당연히 나의 판단을 믿어주었다.하지만 회사는 나와 엄마만 결정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주주까지 설득하자면 행동으로 우리의 결정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업무상의 고려로 나와 엄마는 잠시 포지션을 바꿨다. 나는 병원으로 가서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