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1033 챕터

제301화

장소월은 그들의 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끝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여 간식거리를 가지러 아래층에 간 것인데 그와 맞닥뜨릴 줄이야.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연기하며 말했다.“윤서 언니한테 무슨 일 있어? 조금 전에 2층으로 뛰어 올라가던데.”전연우가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묻지 마.”그녀는 그저 화제를 만들어 조금 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던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싶었을 뿐이었다.“방금 밥 먹었잖아. 왜 또 배고픈 거야?”그녀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그냥 입이 좀 심심해서.”“그럼 난 올라갈게.”장소월이 한 발을 채 떼기도 전에 전연우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그녀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뭘 하려는 거야?”“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싫어!”장소월이 단호히 거절했다.전연우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장소월을 보고는 그녀의 손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장소월은 손에 쥐고 있던 컵 안 위태롭게 출렁이는 우유를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이렇게 폭력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우유를 쏟잖아!”하마터면 그녀의 손이 데일 뻔했다.“차에 타서 마셔.”장소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연우는 그녀를 조수석에 밀어 넣고는 허리를 굽혀 안전벨트를 매준 뒤 운전석에 탔다.장소월이 우유컵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병원에 갈 필요 없어. 이미 서울시 모든 병원에 가봤는데 소용없었어.”“내 몸에 약을 넣을 때 고려했어야지. 후천적 자궁 결함은 치료가 안 된다는 걸.”장소월은 한 번도 그를 완전히 이해해본 적이 없다. 그는 분명 여러 차례 그녀에게 지독한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녀를 걱정한단 말인가?여기에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왜 하필 오늘 급히 병원에 가자고 하는 걸까! 장해진과의 대화를 끝마친 직후인 지금 이 시간에 말이다.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남원 별장을 떠났다.장소월이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손에
더 보기

제302화

전연우는 총칼이 빗발치는 피로 얼룩진 어둠의 세계를 진정으로 경험해온 사람이다. 장해진에게 그동안 해온 끔찍한 일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아마 그중 절반은 전연우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반면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부잣집 귀한 아가씨로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왔다.그녀는 어쩌면 말싸움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이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신변에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어 다들 그녀만 보면 멀찌감치 피해 다녔으니 말이다.그녀는 그렇게 일생을 걱정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다.전생에서 송시아가 그녀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라고 도발한 적이 있었다.사실 송시아의 말이 맞다. 그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전연우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제외하면, 그저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그녀는 예전 전연우의 팔짱을 끼고 수많은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었다. 당시 사람들은 송시아처럼 능력 있는 여자야말로 전연우와 어울리는 배필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가장 최선의 파트너일 테니 말이다.그들의 시선 속에서 장소월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였다.때문에 그의 옆에 있을 때마다 늘 무력감과 비참함에 몸부림쳤었다.“5년 전.”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전연우는 심장을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는 것만 같았다.5년 전?당시 그녀는 고작 13살이었다.그토록 어린아이를 상대로 시작했었구나...“약은 어디에 넣은 거야? 내가 먹는 음식 안에? 아니면 물 안?”“도착했어! 내려.”병원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는 서울 강남 병원이라는 여섯 글자가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전연우는 안전벨트를 풀었지만 장소월은 자리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죽을 때 죽더라도 왜 죽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전연우는 순간 담배 갈증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손을 창문에 걸쳤다.“그걸 안다고 한들 네가 바꿀 수 있는 게 뭔데! 그렇게 알고 싶다면 말해줄게. 우유에 넣었어. 그리고 그 약은 외국산
더 보기

제303화

입안 가득 풍겨오는 담배 냄새에 장소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다.장소월은 검사실로 끌려들어갔다.기계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서철용이 여자처럼 생긴 요염한 얼굴을 들이밀었다.“오랜만이에요! 꼬마 아가씨.”“왜 당신이 여기에!”장소월은 곧바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이 검사를 거부하려 했다.서철용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꼬마 아가씨, 내가 보는 게 싫어요?”“저 검사 안 받겠어요.”서철용이 오른쪽 주먹을 말아쥐고 입 옆에 가져가고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담당의는 내가 아니니까. 맹세할게요. 절대 보지 않겠다고.”“아가씨, 창피해하지 말아요. 의사에겐 남녀구분이 없답니다. 이번 검사를 맡은 사람은 저예요. 서 선생님, 아가씨를 놀라게 하지 말고 이제 나가세요!”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 의사였다.장소월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서철용이 나간 뒤 검사가 진행되었다. 부끄러운 자세 때문에 장소월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두 발을 m자 모양으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파란색 천이 올려졌다. 순간 무언가 들어가는 듯한 불편함에 장소월이 살짝 몸을 움직였다.안에 자리 잡고 있는 투명한 막을 발견한 의사는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말했다.“세상에. 오늘 환자가 너무 많아 아직 어린 소녀라는 걸 깜빡했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바로 바꿀게요.”장소월은 초음파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병실 밖 흡연 구역.방 안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바닥엔 적지 않은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었다.목에 청진기를 건 서철용이 두 손을 가운 호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이미 너한테 말했잖아. 아무리 검사를 많이 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고.”“지금으로선 자궁 척출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그토록 충고했는데 지금 네 상태를 좀 봐!”전연우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넌 말이 너무 많아!”서철용은 피
더 보기

제304화

“보호자분의 의견은요?”전연우가 어두운 눈빛으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전연우를 원망하며 분노하는 대신 아무 일도 아닌 듯 평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 아이 뜻대로 해주세요.”대답을 마친 전연우는 마음이 복잡해져 자리를 박차고 문을 나섰다.서철용은 은은한 웃음을 지은 채 분노하며 멀어져가는 전연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그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전연우는 분명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서울 최고 미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여자아이를 옆에 두고 있는데, 속세를 떠난 스님이라고 해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을 순 없을 것이다.그게 전연우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자를 손에 넣지는 못한 듯하다!두 사람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거의 어두워져 있었다.장소월은 점심에 갖고 나왔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약을 우유에 넣었었다니.우유와 관련된 음식이라면 죽을 때까지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다.전연우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차 안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에 답답해진 장소월은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었다.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창문이 닫혀버렸다.“날이 추워 찬바람을 맞으면 안 돼. 감기 걸려.”장소월이 고개를 숙이고 반질반질한 자신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아버지한텐 알아서 숨겨줄 거지?”“뭐 사실 큰일도 아니야. 난 결혼 생각도 없으니까.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늙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실버타운에 가면 되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주는 사람도 있고...”돌연 전연우가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멈춰 세웠다.“그래서... 너 날 미워하는 거야? 장소월... 너한테 무슨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장씨 성을 가진 사람은 전부 죽어야 마땅하다.장소월은 그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난 이미 한 번 죽었어. 그럼에도 여전히 증오가 남아있다면... 전연우! 나도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더 보기

제305화

바로 러시아의 무르만스크였다.오로라 외, 사슴과 함께 찍은 셀카 사진도 있었다. 그는 검은색 패딩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마에 비집고 나온 앞머리엔 하얀 서리가 덮여 있기도 했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예쁘네. 고마워.」고마워란 말엔 강용이 보내온 모든 풍경 사진을 봤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사실 이곳 무르만스크엔 강용 혼자만 온 것이었다. 그의 뒤에 세워져 있는 텐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그는 열다섯 시간을 거쳐 이곳에 도착했고 그 과정에서 여행객들을 만났다.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용, 밥 먹어.”(러시아 어)강용은 장소월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한 뒤 호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설 연휴.전연우와 백윤서는 유리창 곳곳에 풍선과 예쁜 전구를 달아놓았다.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서 설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허리를 다쳤던 오 아주머니는 설 연휴에 맞춰 병원에서 장씨 저택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이번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도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었지만 이대로 빈둥거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가방을 메고 아래로 내려갔다.오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곧 식사 시간인데 어디에 가려고요?”장소월이 대답했다.“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가려고요.”“방학도 했는데 또 공부하려고요? 집에서 쉬어요. 만두가 곧 완성돼요.”“아가씨, 아가씨 앞으로 온 편지입니다.”도우미 한 명이 두꺼운 편지 봉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지금도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네요. 정말 신기해요. 그것도 러시아에서 보낸 거예요.”도우미의 말을 들은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번에 강용이 떠올랐다.장소월이 편지를 받아든 순간, 물건을 사러 갔던 전연우와 백윤서가 두 손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도우미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전연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시선을 돌렸다.장소월은 보지 않아도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이게 그의 새해 선물인가?오 아주머
더 보기

제306화

장소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순간 마음속에서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이 피어올랐다.기차 창밖엔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강용은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느리게 편집해 영상을 만들었다. 그녀가 편히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장소월은 그가 보내온 영상을 모두 보았지만 그녀의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만약 지금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다시 여러 차례 돌려보고 나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되어갔다.그녀는 도서관을 나서며 강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되었다.“왜? 무슨 일이야?”장소월이 말했다.“강용, 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았어. 고마워! 사진과 영상 모두 다 봤어. 정말 예쁘더라.”핸드폰 너머 강용의 목소리는 갓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그래. 알았어.”그의 대답은 아주 차가웠다.“다른 용건 있어? 나 잘 거야.”“편집하지 않은 원본 볼 수 있을까?”“무슨 요구가 그렇게 많아. 없어! 끊어.”그 말을 끝으로 강용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장소월은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다음 다시 얘기해보면 될 일이다.마지막 수업인 두 시간의 피아노 수업이 끝났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소월은 문방구에 들러 사진을 보관할 사진첩을 구매했다.그때 돌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는 바닥에 떨어진 뒤 이내 녹아내렸다.도우미가 그녀에게 전화해 집에 손님이 왔으니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말했다.장소월은 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했다.마당엔 익숙한 차가 세워져 있었다.이건...장소월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평소 같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를 느꼈다.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우미가 그녀를 반겼다.“아가씨.”강영수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도우미에게 건넸다.“제 방에 가져가 주세요. 조심하세요.”“네. 아가씨.”강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왔어?”장해진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그녀를 책망했다.“설인데 무슨 수업이야!
더 보기

제307화

장소월은 오늘 기분이 꽤 좋았다. 그녀는 주방에 들어가 앞치마를 맨 뒤 냉장고에서 식자재들을 꺼내 직접 밤 케이크를 만들 준비를 했다.오 아주머니가 다가왔다.“제가 도울까요?”장소월이 거절했다.“아니에요. 몇 번이나 해봤으니 할 수 있어요. 아주머니도 바쁘잖아요.”“그래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절 불러요.”“네.”밤 케이크는 그리 어려운 음식이 아니다.그때 백윤서가 들어와 바삐 돌아치는 장소월을 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소월아, 너 언제부터 밤 케이크를 만들 줄 알았던 거야? 나한테 가르쳐주면 안 돼?”“이것도 오 아주머니한테서 배운 거예요. 배우고 싶으면 내가 레시피를 보내줄게요. 어렵지 않아요.”“좋아! 아니면 지금 옆에서 네가 만드는 것을 볼까? 난 저분들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겠어서 여기로 왔어. 내가 거들어줄까?”“그럼 일단 이 그릇을 씻어줘요. 이미 반은 완성했어요. 조심해요.”“그래.”백윤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매를 거둬 올리고 물 온도를 체크했다.“소월아, 강 대표님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널 좋아하는 게 내 눈에도 보여.”장소월은 고개를 떨구고 푹 삶아진 밤을 열심히 으깨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다른 질문으로 화제를 돌렸다.“올림피아드 팀은 어때요? 내가 다닐 때 고 선생님이 주신 문제집은 너무 어려워 아직도 절반 밖에 못 풀었어요.”백윤서가 대답했다.“괜찮아. 하지만 1반 공부 열기가 너무 뜨거워 매일 문제를 푸는 것 외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어.”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풀지 못하는 문제는 고 선생님이나 오빠한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데 요즘 오빠가 귀가 시간이 늦어 그대로 두고 있어.”“너 내가 네 자리에 들어간 것 때문에 날 원망한 적 없어? 나 때문에 올림피아드 팀에 들어가지 못한 거잖아.”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언니를 왜 원망하겠어요. 승자는 생존하고 패자는 탈락하는 거, 그게 1반의 방식이에요. 성적만 좋으면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하죠. 어디든 길이 있
더 보기

제308화

강영수가 한입 베어 물고는 말했다.“맛있네.”이 모든 건 장해진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강씨 저택에서 머물렀을 땐 대부분 강영수가 그녀를 챙겼었다.“예전 집에선 이렇게 잘해주지 않았었잖아. 오늘은 왜 이렇게 친절해?”그녀를 바라보는 강영수의 눈동자에 사람을 빨아들일 듯한 깊은 바다의 소용돌이가 일렁였다.누가 봐도 순수하지 않은 눈빛이었다.강영수가 말한 집이란 물론 강씨 저택이다.장소월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 없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렸다.“여긴 우리 집이고 넌 손님이잖아. 당연히 잘 대접해줘야지. 얼른 먹어. 식으면 맛없어.”이번 식사는 장소월의 인생에서 가장 긴 식사였다. 장장 두 시간이나 지속되었으니 말이다.사람들은 이미 적잖게 취해 있었다. 장해진은 귀중하게 보관해두었던 몇천만 원짜리 와인과 위스키를 가져왔고 세 사람은 모든 술을 깡그리 마셔버렸다.장해진은 너무 취해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강영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그가 다리 병증을 완전히 회복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또 고질병이 발작하기 때문에 절대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저녁 아홉 시.장소월은 강영수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은경애가 오 아주머니가 만든 해장국을 가져왔다.“오빠, 오빠도 술을 많이 마셨으니 해장국 먹어요.”“됐어. 난 방에 돌아가 잘 거야. 너도 일찍 쉬어.”백윤서가 듣기에 전연우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다. 심지어 그녀를 보는 눈빛까지도 평소처럼 부드럽지 않았다.장소월 때문일까?하지만 오빠는 장소월을 좋아하지 않는다.이는 그녀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예전 장소월이 전연우를 좋아하는 마음에 갖은 미친 행동을 할 때에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아마... 그녀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알았어요. 오빠.”조금 전 밥상에선 큰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런데 왜 기뻐하지 않는 걸까?장해진과 전연우는 술자리에서 일을 성사시키는 베테랑이나 다름없었다.장소월이 해장
더 보기

제309화

“하지만 절대 그럴 필요 없어... 나한테 뭘 해주지 않아도 넌 내 최고의...”친구야!마지막 세 글자가 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때, 밖에서 거대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금빛 찬란한 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오색찬란하게 피어나는 불꽃이 강영수의 준수한 얼굴을 밝혔다. 그는 멍하니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장소월은 몸을 돌려 다 하지 못한 말을 삼켜버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부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됐어. 다 나으면 말하자.“먼저 해장국을 마시고 폭죽 보러 갈래?”강영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남원 별장 후원 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고 밤하늘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즐겼다.“난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 앉아 불꽃놀이를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 그래서 매일 불꽃놀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예전엔 항상 오 아주머니가 나와 함께...”강영수의 문신이 새겨진 손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사실 난 오래전에 널 봤었어.”“오래전? 언제?”장소월이 그를 쳐다보았다.장씨 저택 뒷마당 맞은 편이 바로 강영수의 별장이었다. 불빛 하나 없이 텅 빈 곳이라 밖에서 보면 고독과 어둠에 짓눌려있는 유령의 집 같았다.강영수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3년 전, 내가 가장 어두웠던 시절, 너무 힘들어 숨쉬기 조차 힘들 때였어.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적막한 내 방에 네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날도 아마 설날이었지...”“넌 정말 잔뜩 신이 나 웃고 있었어. 대체 뭐가 널 그토록 기쁘게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어.”“넌 인형 하나를 끌어안고 하루종일 인형과 말을 하고 있더라고. 네 엄마가 남겨준 인형 같았어.”“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난 늘 네가 마당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3년 전 그는 몇 차례나 자살 시도를 했었다. 그날도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유리 조각으로 팔목을 긋고는
더 보기

제310화

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못 하는 게 없지.”서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강한 그룹의 대표인 강영수다. 장소월은 그가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다.“소월아... 너 계속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돼?”강영수가 그녀를 빨아들일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장소월은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나 지금도 계속 네 옆에 있잖아?”“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아.”장소월은 알아듣지 못한 척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뭐라고?”강영수가 손을 뻗어 그녀의 긴 머리를 어루만졌다. 이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가락으로 그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얼굴을 쓸어내린 뒤 아래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장소월은 점점 더 그의 깊은 눈동자에 빠져들어갔다...그가 천천히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장소월의 눈을 막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차갑고 부드러운 남자의 입술이 느껴졌다.장소월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머릿속은 온통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격렬히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두 사람의 호흡이 엉키며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바닥에 그려진 두 그림자가 친밀히 서로를 끌어안았다.오늘 밤의 달빛은 평소보다 더욱 은은하고 부드러웠다.강영수는 이미 십여 분 전 술이 깼지만 진봉은 강영수를 데리러 이곳에 왔다. 음주운전은 위험할뿐더러 하면 안 되는 것이니 말이다.장소월이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현관으로 들어왔다. 도우미들도 모두 퇴근해 희미한 불만 켜져 있었다.은옥매는 아직 의자에 앉아 아래턱을 괴고 애써 졸음을 참고 있었다.장소월이 걸어가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아주머니, 이만 들어가 쉬세요.”은경애가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어머, 어머... 오셨네요.”“전 올라갈게요. 얼른 들어가세요.”“네.”장소월은 복도 난간을 잡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대체 왜... 그녀는 응당 그를 밀어내야 했다...하지만 강영수의 그 말 때문에 마음이 약해졌었다.알고 보니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구했던 것이다
더 보기
이전
1
...
2930313233
...
104
DMCA.com Protection Status